어제 마트에서 J 선배와 우연히 마주쳤다. 뒤에서 내 이름을 부르는 차분한 목소리. 둘째를 낳은지 두달 쯤 됐다는데 이쁜 복어라는 옛 별명이 무색하게 핼쑥했다. 우리는 여전히 같은 동네에 살고 있었고 선배는 바뀐 연락처를 일러주었다. 동행했던 엄마는 좋은 그늘 아래서 자란 사람 같다, 고 평했다.
그리고 집에 돌아와 영달이가 잠든 후 짤끔짤끔 울었다. 볕이 화창한 오후였는데 그늘진 블라인드로 추억이 드리워졌다. 언젠가 J 선배는 내게 조심스런 충고를 건넸고 나는 그것을 거부했다. 나중에 선배의 충고가 옳았다는 것이 드러났을 때 나는 선배의 칼날 같은 미소에 마음을 베어버렸다. 그것은 힐난이나 책망의 제스처는 아니었다. 어른이 아이에게 지어보일 수 있는 종류의 미소였다. 만약 그것이 명백한 힐난이나 책망이었다면 지금껏 그 미소를 기억하지는 못했을 것이다.
그새 엄마가 된 나는 예나 지금이나 갈팡질팡 사느라 은혜 입은 사람들을 잊고 지낸다. 특정한 시기, 특별한 누군가로부터, 시의적절하게 입은 은혜는 두고두고 나를 괴롭혀댄다. 잊지 않는다 해도 마땅히 갚을 길 없는 마음의 빚이란 것이 있다. 원수 진 사이보다 더한 것. 엄마의 적확한 평처럼 선배는 좋은 그늘 아래서 자랐고 타인에게 좋은 그늘을 드리울 줄 아는 사람이었다. 나는 그 청량한 그늘 아래서 인생의 한 마디를 키웠다.

수목원에 다녀온 후, 자연의 조화인지 영달이 아랫니 두개가 올라왔다. 앙증맞고 딴딴하고 대견해서 나는 또 바보처럼 웃었다. J 선배는 엄마가 된 나를 신기해했고 나 역시 그렇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