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음 학기에 바로 복직을 할까 생각을 해보기도 했지만 그냥 올해 말까지 쉬기로 했다. 여러가지 상황을 고려하기도 했고 무엇보다도 우리 영달이랑 함께 있고 싶었다. 아마 평생 우리가 이렇게 살을 맞대고 24시간 함께 할 수 있는 시간은 지금 뿐인지도 모른다. 요즘 학창시절에 외웠던 모든 노래들이 내 입에서 흘러나온다. 클레멘타인, 아빠의 얼굴, 등대지기 등등. 살면서 그 노래들을 이렇게 하루에도 수십번씩 다시 부르게 될 날이 올 줄은 몰랐다. 영달이는 손을 심하게 타서 안고, 흔들고, 노래 부르지 않으면 두눈을 말똥말똥, 온몸을 바둥바둥거리곤 한다. 1단계-안는다, 2단계-일어선다, 3단계-흥얼거리며 흔들어준다. 3단계까지 제대로 해주지 않으면 마치 말소리를 울음으로 대신하듯 억지 울음을 울곤 한다. 진짜 화가 나서 우는 것이 아니라 날 좀 봐주세요, 하는 호소의 울음. 그 모든 것을 받아주는 일이 내 자식이기에 가능한가 보다.
그런데 한창 정신없을 땐 모르다가도 영달이가 친정엄마 품에 가 있거나 조금 여유가 생기면 '나'에 관한 생각이 고개를 쳐든다. 이런저런 생각을 하다보면 명치 끝이 메스꺼우면서 머리가 띵해지고 우울해지는 이상한 기분이 반복된다. 집에 와서는 잠도 잘 자고 약도 지어먹고 있는데 마음도, 몸도 아직은 정상이 아닌 것 같다. 산후우울증을 검색해보곤 덜컥 염려가 되어서 나름 기분전환을 하려고 수다도 떨고, 시장도 보고, 책도 읽고, 영어공부도 하고... 노력은 하는데 뭐든 백일이 지나야 하는 건가. 짬만 나면 기분이 다운되어서 좀 헤매는 중이다.
생각해보면 어릴 적에 나는 아침에 보는 엄마 얼굴에 영향을 많이 받았던 것 같다. 엄마 얼굴이 환하게 피어 있으면 하루 종일 공부도 잘되고 기분도 좋고 엄마 얼굴이 어둡게 굳어 있으면 온종일 내 기분도 활짝 펴지지 않았다. 물론 엄마는 의식적으로라도 씩씩해 보이려고 노력하셨고, 그 또한 알고 있었지만 숨길 수 없는, 오히려 아이라서 빨리 알아채는 감정이란 것도 있다. 그 또래 아이들은 스스로를 위해서가 아니라 부모를 기쁘게 하기 위해서, 라는 명목으로 공부도 하고 상장도 타오는데 나 역시 그랬던 것 같다.
임신 기간 동안 내가 지닌 우울질의 성정이 아이한테 고스란히 전달될까봐 조금 걱정했는데 앞으로야 알 수 없지만 지금까지의 영달이는 백호랑이띠 아이답게 매사 화끈하고 분명하다. 이건 제 아빠도 아니고 나도 아닌데 누굴 닮은 걸까. 다만 내가 걱정하는 것은, 예민하고 우울한 엄마로부터 알게 모르게 받을 영향에 관해서이다. 나는 상대를 배려하기 위해 스스로의 감정을 감추거나 위장할만큼 사려깊고 의연한 사람이 못된다. 그렇게 해보려다가도 얼마 못 가거나 우스워진 적이 더 많았지 아마.
혼자 잠시잠깐 멍때리고 있다보면 아득하고 토할 것 같은 기분이 들지만 그럴수록 더 큰 소리로 노래를 부르며 영달이를 찾는다. 이 작고 고운 아이는 나를 우울함으로부터 건져올리는 동시에, 그 천진함 때문에 나를 우울하게 만들기도 한다. 이 아이가 아무런 선택의 기회 없이 나에게 왔다는 것 자체가 놀랍고 미안하다. 어쩌면 닮고 싶은 사람이 따로 있었을지도 모르고, 앞으로도 그럴텐데, 좋은 것이든, 그른 것이든, 선택의 기회조차 없이 나와 남편의 피를 물려받았으니 말이다. 내가 과연 영달이에게 너 자신을 사랑해야 한다고 말할 자격이 있을까.
<생의 한가운데>의 니나는 밖에서는 작가로, 선생으로, 공산당원으로 치열하게 일하면서도 집에 돌아오는 순간 아이들에게 몸과 마음을 완전히 오픈한 따듯한 엄마였다. 내가 좀더 어렸던 시절에는 굳은 의지라든가, 재능, 모험심 등 니나의 다른 면들에 이끌렸지만 지금은 엄마로서의 니나, 아이들이 먼곳에서 니나에게 보냈던 편지글이 생각나곤 한다. 물론 니나는 소설 속 히로인으로 다분히 이상화된 감이 없지 않지만 나 또한 언젠가 일을 하러 나가야 하는 엄마로서 그녀가 아이들에게 보여주었던 일관된 애정에 감탄하게 된다. 그간의 내 행실로 볼 때 밖에서 온갖 피로와 스트레스를 주섬주섬 묻히고 돌아와 아이 앞에서 축 늘어진 어깨나 드러내지는 않을지, 그런 못난 엄마로 살지나 않을지, 걱정이 많다.
나 하나 믿고 세상에 나온 아이. 그런데 엄마라는 사람이 이렇게 스스로를 못 믿고 허둥지둥, 염려투성이인 채로 무기력하게 있으면 되겠는가. 그러고보면 과거의 나는 내가 원했던 거의 모든 일에 참 자신있는 사람이었다. 덜컥 엄마가 된, 지금과 비교하면 말이다. 하지만 그것은 어느만치 허깨비 같은 거였는지도 모르겠다. 결국 이 끝간데없는 우울함의 정체는 그런 나 자신을 인정해야 함과 동시에 더 이상 오만해질 수도, 방만해질 수도 없는 새로운 역할로 인한 부담 때문일 것이다. 결혼을 통해서는 나도, 남편도 변하지 않았다. 그는 이따금 내게 당신 많이 변했어, 라고 말하지만 나는 알고 있다. 우리는 그저 서로를 인정하거나 체념하고 있을 뿐이라는 걸. 하지만 이제는 그럴 수 없고, 그러지 못한다는 것을 안다. 아마도 누구 한편이 게으르거나 오만하여 변하지 않는다면 다른 한편이 그 사람 몫까지 해내느라 두배로 힘이 들겠지. 그러지 않기를 바라지만 이미 주변의 많은 부부들이 그러한 모양새로 사는 것을 본다.
어쩐지 나는 그날, 마취에서 깨어남과 동시에 두번째 삶을 살고 있는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