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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의 물고기
권지예 지음 / 자음과모음(이룸) / 2010년 1월
평점 :
품절


『천년의 사랑』이나 ‘번지점프를 하다’처럼 운명적 사랑을 소재로 한 작품들이 유행하던 시절이 있었다. 그 붐이 잠시 사그라진다 해도 운명적 사랑은 여전히 많은 작가들이 관심을 갖고 우려먹는 이야깃거리임이 분명하다. 얼마간의 편차가 있다 한들 독자들에게 꾸준히 먹히는 것을 보면 운명적 사랑이란 누구나의 마음 저변에 깔려 있는 로망 같은 것일 수도 있겠다. 혹자는 말했다. 첫눈에 반한다는 것은 무의식중에 상대에게서 아버지나 어머니의 상(像)을 보았기 때문이라고. 결핍된 모정이나 부정의 발로일 뿐이라고. 하지만 그렇듯 심리적 추론을 할 틈도 없이, 설사 애정에 굶주린 어린 내 모습을 마주하는 안쓰럽고 부끄러운 과정이라고 할지라도, 불가피하게 빠져들 수밖에 없는 것이니 운명 아니겠는가.

『4월의 물고기』역시 운명적 사랑의 계보를 잇는 소설이다. 처음에는 소녀취향을 채 못 벗어난 요가 강사와 겉멋 든 사진작가의 그저 그런 로맨스이려니 했다. 나는 벌써 노회한 것일까. 이렇듯 신파스런 주인공들을 만나면 공감의 맥이 툭, 툭, 끊어지며 공중 부양하는 가오나시나 좀비를 보는 것 같다. 그럼에도 이 작가에게서 이야기를 끌고 나가는 힘이 보였다. 상투적인 대사와 과잉 연민에 눈살을 찌푸리다가도 그 다음이 궁금해진다. 책을 덮을 수가 없다. 시의 적절하게 배치해놓은 추리 장치들 때문이었다. 하지만 점차 읽어나가는 동안, 그 감성에 있어선 차마 신경숙을 따를 수 없고 추리기법은 정이현의 솜씨에 한창 못 미친다는 느낌.

  주인공 진서인과 강선우의 운명적 사랑에는 어린 시절의 트라우마라는 교착점이 있다. 어머니를 잃고 성폭행을 당한 상처가 있는 진서인과 쌍둥이 여동생이 죽고 나서 성격 장애를 앓게 된 강선우. 강선우는 진서인에게서 죽은 여동생의 환영을 보고 진서인은 사랑에 홀려 떠난 어머니와 자신을 동일시하며 강선우에게 빠져 든다. 진서인에게는 할머니가 있었고 강선우에게는 신부님이 있었지만 두 사람의 기억과 내상을 온전히 치유할 만한 사람은 없었다. 상대에게서 자신이 보고 싶은 것만 보던 반쪽짜리 사랑에서 점점 비밀에 싸인 베일이 벗겨지며 두 사람은 각자의 감춰진 진실을 보게 된다. 마치 몹쓸 어른들로부터 방치되고 버림받은 천둥벌거숭이 같은 소년과 소녀로 돌아가 기억하고 싶지 않은 기억과 마주하게 된 것이다. 그 과정은 고통스럽고 결말은 비극일 수밖에 없지만 운명적 인연을 통과하며 강선우와 진서인은 스스로의 진짜 얼굴을 본다.

  책을 다 읽고 나는 왜『폭풍의 언덕』에는 열광하면서 이 소설에는 마음을 줄 수 없는가, 생각했다. 어차피 허구이며 창작인 것이 소설이기에 작위가 작위인 것을 모르면 상관이 없다. 독자가 미처 느낄 수 없거나 눈치 채지 못하게 하는 것도 작가의 수완이자 능력이라고 본다. 그런데 이 소설엔 작위적 연민만 넘쳐날 뿐 마음을 덥혀 오는 진솔한 감동이 없다. 작가는 이렇게 말한다. 만날 사람은 만나고야 말고, 사랑할 사람은 사랑하고야 만다는, 사랑은 거부할 수 없는 운명이라는 지고지순한 명제를 사랑을 믿지 못하는 젊은 연인들에게 나는 말하고 싶었던가. 그렇다면 나는 오히려 젊은 연인들에게 피천득의 『인연』을 권해주고 싶다. 그리워하는데도 한 번 만나고는 못 만나게 되기도 하고 일생을 못 잊으면서도 아니 만나고 살기도 한다. 내게는 끈적거리는 이 긴 소설보다 담백한 저 한 줄의 문장이 몇 배의 지고지순함으로 다가온다. 『4월의 물고기』는 안타깝게도 책장을 덮지 못하게 하는 가독성이 있다고 해서 모두 다 좋은 소설이 되지는 않는다는 사실을 일깨워준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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웽스북스 2010-02-03 15: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실은....
번지점프를 하다,를 너무 좋아해요.

결혼을 못하는 두번째 이유쯤 되려나 ㅋㅋㅋㅋㅋㅋ

깐따삐야 2010-02-03 15:48   좋아요 0 | URL
저도 그 영화 좋아해요. 영화 속 이은주가 참 예뻤죠.

어디서 많이 본 듯한 얼굴에 후광이 비치고 종소리가 들리고... 꼭 그런 것만이 운명은 아닐 거에요. 웬디양님의 반쪽은 웬디양님처럼 어딘가에서 열심히 일하고 있을 것 같아요. 웬디양님과 비슷한 생각을 하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