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상했던 서른과는 조금 달랐지만 올 한해도 비교적 무탈하게 보냈다. 언젠가 친구와 재미로 색깔사주란 것을 본 적이 있다. 영화관 앞 한 평 남짓한 간이건물에서 수다쟁이 색깔도사가 우리를 반겨주었다. 그는 그때 내 인생의 정점은 지났다는 듯 말했었다. 그리고는 평범하게 흘러가는 인생이 요즘 같은 시대에 나쁜 것만은 아니라고 덧붙였다. 내 인생에 과연 정점이 있긴 있었나? 내 직업과 내 성격 상, 그의 말이 틀린 것도 아니라는 생각을 했었다.

  올 한해 학교에 복직해서 여름까지는 정말 바쁘게 보냈다. 군단위의 작은 학교에 근무하다가 대학원으로, 다시 도시의 큰 학교로 복직했을 때 처음에는 다소 혼란스러웠다. 항상 어디에나 장단은 있는 법. 시골 아이들이 학구열은 낮은 반면 정감 있는 행동들로 감동을 주었다면, 도시 아이들은 매사 열심이면서도 이기적인 말 한 마디로 확 거리를 두게 만드는 대비를 보여주었다. 그것은 아이들을 지도하는 교사나 학부모도 마찬가지였다. 콩 심은 데 팥 나겠나. 아이들이 그러한 부모와 교사들의 언행을 무의식중에 답습하고 있는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 한 가지 미안한 것은, 담임이 자꾸 바뀌어서 우리 반 아이들에게 혼란을 주었던 점. 지금 그 아이들을 대신 맡고 계신 기간제 선생님을 보면서 느낀 것도 많다. 임시 담임을 하는 내내 교탁에 예쁜 화병을 갖다 놓고 아이들에게 잔치도 열어주셨다. 아무 걱정 없이 쉴 수 있었던 것도 선생님 공이 크다. 나와 동갑이지만 그 순수하고 열성적인 마음에 존경심이 절로 일었다. 그런 분들이 학교 현장에 많아졌으면 좋겠다.

  결혼생활도 그럭저럭 꾸려왔다. 남편은 나에게 많이 변했다고 한다. 예전 같으면 절대 이쯤에서 끝나지 않을 문제도 지금은 어느 순간 입을 다물어 버린다나. 내가 뒷심이 없어 포기가 빠른 건지, 더 해봤자 소용없다는 것을 알아버려 체념하기 시작한 건지, 다툼은 과거보다 줄었지만 그렇다고 내 기분이 썩 좋아진 것은 아니다. 그는 성실하긴 하지만 훌륭할 정도는 아니고 나 역시 크게 꼬투리 잡을 데는 없을지라도 함께 살기 무난한 성품은 아니다. 자꾸 마모되다 보면 둥글어지기도 하는 것인지 이제는 왜? 라며 고개를 바짝 쳐들 때 보다 그래그래, 하고 넘어갈 때가 더 많아진 것은 사실이다. 더욱이 엄마 목소리를 식별한다는 뱃속의 아기를 생각하면 청소기 돌리는 소음 이외에는 오로지 좋은 소리, 고운 말만 들려주고 싶기도 하다. 이따금씩 너도 알 건 알아야 해, 세상이 그렇게 만만한 줄 알아, 그런 주장을 핑계로 목소리를 높일 때도 있지만.

  책을 많이 읽는다고 좋은 사람이 되지는 않는다는, 어쩌면 당연한, 그러나 제대로 인지하지 못하고 있었던 깨달음 하나. 부모님으로부터, 친구들로부터, 심지어 남편에게까지 들었던 말. 너는, 깐따삐야 너는, 당신은, 책을 노상 읽으면서도... 어떻게... 오버인지는 몰라도 그러한 비판은 일말의 수치심까지 들게 했다. 좋은 사람이 되려고 책을 읽는 줄 아냐, 라고 반박하기에는 어딘지 께름칙한 기분. 좋아하는 책을 읽는다고 좋은 사람이 되지는 않지만 필요한 책을 읽으면 희망이 있는 것도 같다. 아픈 곳이 낫고 무럭무럭 성장하려면 때로는 쓴 약, 입에 맞지 않는 음식도 섭취해야 하는 것처럼 말이다. 간혹 아, 이 책 재밌겠는데, 가 아니라 이 책은 나 같은 사람이 읽어야 되는데, 싶은 책들이 있다. 책 많이 읽고도 하나도 안 변했다는 이야기를 듣고 싶지 않으면, 스스로 사랑해 마지않는 취미에 오욕을 남기고 싶지 않다면, 지적 허영이나 호기심, 단순한 흥미를 떠나 전략적, 성찰적 독서가 필요한 것 같다.

  며칠 전, 영화 <파주>를 보면서 생각했다. 사람은 참 약하고, 비겁한 존재구나. 죄의식에 시달리다가도 쉽게 용서를 구하고, 잡히지 않아 열망하던 것들에 대해 다시 쉽게 실망하고 도망치고... 모든 다채로운 감정과 이성적 판단에 앞서 살아가는 일, 삶이 우선이기 때문일까. 언젠가부터 전혀 간을 하지 않은 음식처럼 내 삶이 밍밍해졌음을 깨달았을 때 나이를 먹는구나, 라는 느낌 한켠에는 내가 이제 제대로 비겁해지고 있구나, 하는 씁쓸한 자각. 어떤 문학작품들은 마지막 불씨를 태우듯 서른을 불사르라고 말하고 있지만 그간의 세월동안 구축해놓은 틀 안에서는 그 무엇도 도화선이 되지 못하더라는. 영화에서 김중식(이선균 분)은 말한다. 자꾸 할 일이 생겨. 그는 학생일 때는 학생운동을 하고 사회로 나오자 사회운동을 한다. 자꾸 할 일을 만듦으로서 정체성을 찾고 속죄를 하고. 아무것도 제대로 지켜내지 못하지만 그것이 삶의 누추함과 지루함을 견디는 그의 삶의 방식이다. 내 눈에는 그 또한 비겁한 삶의 방식.

  내게는 이제 더욱 평범해지는 일만이 남은 것 같다. 수다쟁이 색깔도사가 말한 것처럼. 그때는 그 말이 어쩐지 섭섭하게 들리기도 했지만 이제는 부디 그랬으면, 하고 바라게 된다. ‘죽음’을 잊고 살 때가 많은데 베푸는 것은 관두고서라도 그저 주변에 빚 많이 안지고 떠날 수 있는 생이었으면, 하는 바람. 머릿속으로 오만가지 상상을 하더라도 결국 내가 발 딛고 서 있는 한 자리를 소홀히 할 수 없다는 현실. 나는 아직도 어른이 되지 못했지만, 영원히 어른아이로 머물더라도, 반드시 숙제를 끝내고나서 놀러나가는 순진한 초등학생 같은 마음가짐만큼은 변함없이 가지고 갔으면 좋겠다. 그것이 내 비겁함과 맞바꾸는 최고의 약속일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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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ephistopheles 2009-12-23 22: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 파주를 보며 그냥 '불쌍한 인생들' 이 자꾸만 떠올랐다는.. 하지만 그 영화에서 건진 건 '서우'라는 배우에요. 형부를 사랑하지만 감정이 뒤얽혀버린 연기를 너무 기가막히게 해주는지라..더불어 책 많이 읽는다고 똑똑하고 현명해지지 않는다.. 이것 역시 요즘 제가 느끼는 명제 중에 하나라는..^^

깐따삐야 2009-12-27 15:00   좋아요 0 | URL
저는 그 영화 속 주인공들이 참 싫었어요. '서우'의 연기는 단연 돋보였죠. 이선균에 대해선 조금 실망. 책도 많이 읽어야 할 나이가 있는 것도 같고. 저 자신이 매너리즘에 빠진 것도 같고 그러네요.^^

레와 2009-12-24 11: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 새해 다짐을 '무뎌지지 말자!'로 정했어요. ^^

쿵당쿵당 가슴 뛰는 일이 많았으면 좋겠습니다.

깐따삐야 2009-12-27 15:02   좋아요 0 | URL
좋네요. 무뎌지지 말자! 제게도 필요한 다짐이에요.
전에는 별 거 아닌 일에도 급흥분하고 가슴 뛰고 그랬는데 말이죠.^^

웽스북스 2009-12-26 16: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정의라고 생각했던 것들이 사실은 위무였음을 깨닫게 되는 일이 많지요. 파주, 저도 꼭 보고 싶네요. 흑.

사실 이 연말일기를 쓰자는 태그를 보고 저도 뭔가좀 써보고싶은데 슬렁슬렁 아무래도 그냥 지나가게 될 것 같아요. 흐흐. 깐따삐야님. 우리 새해에는 글로 좀더 자주 만나요.

깐따삐야 2009-12-27 15:05   좋아요 0 | URL
그쵸? 그나저나 영화가 좀 어두워서 보고 나면 꿀꿀해져요.

작년에는 서로 이런저런 변화를 맞느라 그랬는지 이야기를 많이 못했죠. 정말 올해는 더 많이, 자주 봐요.^^


Mephistopheles 2009-12-27 15:07   좋아요 0 | URL
또 누가 압니까 웬디양님과 깐따님이 자주 수다를 떨면 메피스토가 간장게장 쏠지...(먹는 걸로 미끼 던지는 중)

깐따삐야 2009-12-29 17:28   좋아요 0 | URL
대체 언제적 간장게장인지 가물가물~ 지금은 왠지 냉면이 먹고 싶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