짧았던 연휴가 끝났다. 입덧이 오락가락해서 이번 명절에는 시댁에 가지 못했다. 근처 도시에 있는 시댁까지는 두 시간 정도 걸리는데 멀미를 견디며 차를 탈 자신이 없었다. 덕분에 일찌감치 친정으로 가서 오빠 내외와 다 같이 식사를 하고 남편 혼자만 시댁에 보냈다. 시어머니는 괜찮다고 하셨지만 그래도 며느리는 며느리인지라 마음이 불편했다. 아기를 가진 후로는 변덕스러워진 내 몸 하나 건사하기도 힘들어서 직장에서나 가정에서나 이기적인 사람이 되어버렸다.

  괴물 같은 도시 서울에서 오빠가 용케 집장만을 했다는 소식을 들었다. 우리는 오빠보다도 맞벌이를 하며 알뜰하게 살아준 올케에게 더 고마워했다. 오빠는 그다지 다정하거나 살가운 사람이 아니다. 엄마가 그렇게 키우지도 않았을 뿐더러 결혼 전까지 아들로서 한 집안을 군림해왔던 남자다. 선이 굵고 책임감이 투철하다는 장점이 있는 반면 소소한 잔재미는 영 부족한 남편이다. 팔이 아무리 안으로 굽는다지만 내가 막상 결혼을 해보니 올케언니의 불만을 대체로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 한편, 우리 남편은 손수 김밥도 싸고 천 피스짜리 퍼즐도 뚝딱 맞출 정도로 자상하고 차분하지만 간혹 벙어리 마빡 치는 것처럼 갑갑할 때가 있다. 사람의 장단점이란 것은 뫼비우스의 띠 같다.

  오빠가 집을 샀다는데 나와 남편도 작게나마 필요한 것 준비하시라고 봉투를 건넸다. 이럴 땐 돈이 많아서 쓰고 싶은 만큼 팍팍 쓸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싶다. 동창회에 다녀온 남편의 말을 들어봐도 그렇고 지방 출신이 서울에서 직장 구하고, 결혼하고, 집장만을 한다는 것이 말처럼 쉬이 이뤄지는 것이 아니다. 아무렇게나 살면 어디든 상관없겠지만 서울에서 제대로 자리 잡고 살려면 부단히 노력해야 한다. 올케는 얘기 도중에 우리 남편을 바라보며 죄스럽다는 듯 얼굴이 갈수록 좋아지신다며 부러워했다. 새카맣게 숱이 많던 오빠의 머리가 예전 같지 않은 것이 마음에 걸렸나 보다. 줄어든 본인 머리숱은 생각도 안 하고 시댁에 오면 그런가 보다. 올케 언니가 어느 만큼은 자기 멋대로, 본인 하고 싶은 대로 하고 살았으면 좋겠다. 이번 주부터 요가를 시작한다니 심신이 보다 건강해지길 빈다.

  남편과 함께 산지도 그새 일 년이 다 되어간다. 지나온 시간은 서로간의 차이를 좁히는 시간이라기보다는 차이를 인정하는 시간이었다. 피를 나눈 가족도 각양각색인데 생판 남인 남편은 오죽하랴. 남이라면 나 몰라라, 그러려니 지나칠 수도 있지만 가족이 되었기에 그럴 수가 없었다. 불필요하거나 소모적인 일에는 빨리 마음을 접는 그에 비해 나는 조금이라도 께름칙한 일은 그냥 넘어가지를 못한다. 그는 그런 나를 받아준다고 생각하고 나는 그를 이해한다는 착각 속에 살고 있는 것이다. 그래도 내 대접에 있는 전복을 그의 수저에 얹어주는 것은 내가 그의 아내이기 때문이다. 무뚝뚝한 오빠조차 돔구이며 갈비며 올케언니의 수저에 차곡차곡 올려준다. 오빠가 올케의 남편이기 때문이다. 그 사람의 입에 몸에 좋거나 맛있는 것이 들어가는 것을 보고 내 배까지 함께 부른 것 같은 느낌이 들 때. 내가 그와 가족이 되었다는 생각이 든다. 인생은 어차피 혼자 가는 거야, 그런 생각으로 살다가도 저런 마음에 그 사람이 달리 보이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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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바람 2009-10-06 12: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참 따뜻한 가족이네요. 든든할 것같아요

깐따삐야 2009-10-08 08:53   좋아요 0 | URL
^^

라로 2009-10-07 00: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참 따뜻한 글이에요,,,근데 제 남편도 "자상하고 차분하지만 간혹 벙어리 마빡 치는 것처럼 갑갑할 때가 있다"는~.ㅎㅎㅎㅎ어떤 남편과 사시는지 알겠어요~.ㅎㅎㅎ

깐따삐야 2009-10-08 08:53   좋아요 0 | URL
nabee님도 어떤 남편과 사시는지 알겠어요.ㅋ

2009-10-07 10:38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9-10-08 08:55   URL
비밀 댓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