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2월은 1월의 연장선상에 있는 듯하다. 겨울이어도 이젠 예전만큼 많은 눈이 내리지도 않고 달력을 보니 4일이 벌써 입춘이다. 눈덩이 한번 뭉쳐보지 않고 겨울이 다 갔다.
대학 초년생 때 단짝처럼 붙어 다니던 친구 E가 드디어 교단에 서게 되었다. 덕분에 뜸했던 동기들과도 연락이 닿아 그간의 안부를 주고받았다. 이곳을 떠나 혼자 수험생활을 했던 E는 그 동안 많이 고단했을 것이다. 바로 옆 동네에 살면서도 생각처럼 자주 만나지지 않았다. 이젠 하루에도 수차례씩 희비가 엇갈리는 반인반수(?)로서의 교직 생활에 대해 서로 공유할 수 있는 부분이 늘어나겠지.
S는 바뀐 내 번호로 전화를 걸어왔고 먼저 걸려온 전화에 무척 미안했다. 가까운 데 있으니 나오라는 E의 말에 그냥 다음에 보자고 한 다음 전화를 끊고 생각해보니 S가 어머니 병환 때문에 고생하고 있단 소식을 얼마 전에 들었던 기억이 났다. 옆에 있단 말을 듣고도 미처 안부 챙기는 것까지 생각이 못 미쳤고, 진즉에 한번 찾아갔어야 하는 건데, 하는 후회가 S의 목소리를 듣고서야 뒤늦게 들었다. 이 나이를 먹고도 사람 대하는 폼이 이렇듯 서툴다는. 나는 뭐에 놀란 사람마냥 무턱대고 어머니의 안부부터 물었고 S는 고맙다고 했지만 미안함은 채 가시질 않았다. S는 워낙 머리가 좋고 낙천적인 아이였다. 그늘지거나 옹이진 부분이 없어 우리는 S의 환한 기운에 주광성을 지닌 곤충들 마냥 모여들곤 했었다. 조만간 동기 결혼식에서 만날 텐데 부디 그 유쾌하고 장난스런 웃음소리가 그대로이길.
S는 모인 동기들끼리 내 이야길 했다면서 넌 여전히 열심히 공부하는구나, 라고 말했다. ‘여전히’란 말과 ‘열심히’란 말이 생경하게 들렸다. 학부 시절을 떠올려보면 나는 그다지 학과 공부에 매력을 느끼지 못하는 아이였다. 주로 동아리방이나 구내서점에서 많은 시간을 보냈고 강의 시간 중에도 머릿속으로는 잡념과 몽상에 빠져 있었다. 실용영어와 전산수업을 들으러 다니는 친구들은 아랑곳하지 않고 혼자 사과대로 건너가 교양 수업을 즐기곤 했다. 순진하고 성실했던 동기들은 전공 책이 아닌 다른 책들을 읽는 나를 똑똑하다고 오해했는지 모르겠다. 그들의 기억 속에서 한껏 미화된 내가 나의 전부가 아니듯, 다른 사람을 향한 나의 판단 역시 그럴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간의 세월 동안 과거 그대로인 부분과 새롭게 변한 부분을 두루 지니고 있을 얼굴들을 조만간 만나게 된다.
비둘기 새내기로 불리던 우리가 어느덧 스물아홉이 된 새해. E가 지루한 수험생활을 마치게 된 것이 반갑고 앞으로 묻게 될 안부의 내용도 달라지리란 생각에 마음도 편하다. E는 아마 엄마 말씀처럼 그 동안 마음 졸이며 고생했던 만큼 더 훌륭하고 겸손한 선생님이 될 것이다. 느끼한 음식을 좋아하던 아이였는데 피자를 사줘야겠다. 이제는 아이가 아니니깐 다른 것을 좋아할지도. 느끼한 뉴스만 족족 올라오는 요즘이라서 뭐를 먹어도 피자맛이 날 것 같긴 하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