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 비욘세 말고도 볼 것이 많은 영화였다. '사운드 오브 뮤직' 정도에 견줄 만한 스케일은 아니더라도 이 정도면 갖출 것을 제대로 갖췄다 싶을 만큼 웰메이드 뮤지컬 영화였다. 무엇보다 두 시간 남짓의 러닝타임 동안 절절하고도 감미로운 흑인 음악을 실컷 감상할 수 있다는 점이 좋았다. 평소에 리듬 앤 블루스나 재즈 등의 음악을 즐겨 듣는 편은 아니었지만 내 취향과는 별도로, 음악과 체육 분야에서 두드러지는 검은 피부의 활약상은 역시나 놀라운 것이다. 대개 그냥 말할 수 있는 것도 노래로 말하면 쿡, 하고 웃음이 삐져 나올 때가 있는데 드림걸즈의 주인공들이 대사를 노래로 대신할 때, 관객들은 아무도 웃지 않았다. 나는 사실 영화를 보는 동안 누가 웃으면 어떡하나, 속으로 쓸데없는 걱정까지 했더랬다. 상대방이 무슨 일인가로 흥분하거나 실망해서 진지한 대사를 읊고 있는데 그 면전에다 대고 워우워우워, 한다는 건 자칫하다간 비극적인 상황도 희극적으로 보이게 만들 소지가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그런 짓을 벌이다가 본의 아니게 망신당한 적도 있고. 하지만 드림걸즈의 출연진들은 죄다 사람이 노래인지, 노래가 사람인지, 분간이 가지 않을 정도로 심신 전체가 하나의 거대하고 매력적인 소리통이 되어 가슴을 파고들고 머리를 관통했다. 감정의 오버라고 해도 좋다. 나는 그녀들의 노래를 듣던 도중에 잠깐 울 뻔 했다.

  그들만의 음반을 내기 위해 뭉친 트리오, 디나(비욘세 놀즈 분), 에피(제니퍼 허드슨 분), 로렐(에니카 노니 로즈 분)은 어느 오디션 현장에서 쇼 비즈니스계의 매니저 커티스(제이미 폭스 분)로부터 가수 제임스 얼리(에디 머피 분)의 코러스로 활동해 줄 것을 제안받는다. 처음엔 다른 가수의 코러스나 하고 있는 건 말도 안 된다는 에피의 반대로 무산될 조짐이 보이기도 하지만, 결국 세 사람은 믿고 따라온다면 머잖아 음반을 내주겠다는 커티스의 약속을 받아들이기로 한다. 이후 그녀들은 제임스 얼리의 공연을 따라다니며 쇼 무대에서의 다양한 경험을 쌓게 되고, 커티스는 리드보컬 자리를 에피에서 디나로 바꿈으로서 드림걸즈의 새로운 변신을 시도하려 한다. 음악적 자존심으로 똘똘 뭉쳐있던 에피는 크게 반발하게 되고, 연인이었던 커티스의 애정마저 디나에게로 쏠리자 팀을 탈퇴하고 만다. 스포트라이트를 받으며 점점 더 화려한 상품으로 변모되어 가던 디나는 매니저인 커티스와 결혼함으로서 음악을 위한 음악을 하는 것이 아니라, 비즈니스성 댄스 가수로 색깔을 굳혀가게 된다. 성공에 눈이 먼 커티스는 재기를 위해 준비했던 에피의 노래마저 가로채기하고 이에 반발한 에피와, 점점 자신의 모습을 잃어가고 있는 상황에 환멸을 느끼던 디나는 서로 화해의 계기를 맞게 된다. 조종당하는 인형이 아니라 당당하게 자신의 색깔을 찾기로 결정한 그녀들은 드림걸즈의 마지막 공연에서 화려하게 재회한다.

  머라이어 캐리를 무척 좋아하던 아이가 전에 '글리터'란 영화 시디를 주었고, 가수가 주연으로 나오는 영화가 대개 그렇듯 크게 기대는 하지 않았지만 정말로 몹시 실망하며 영화를 보았던 기억이 있다. 무대에서의 카리스마는 간데온데없이 영화 속의 그녀는 딱 김빠진 사이다 같았다. 김빠진 사이다는 밍밍하긴 해도 미약하게나마 단맛이라도 남으니, 그 흔한 비유조차 아까울 지경이었다. 한 가지 발견이라면, 그녀의 상대역이었던 '맥스 비슬리'라는 배우였는데 머라이어 캐리의 아둔한 연기력 때문에 멋진 남자배우 하나 애먹였다, 는 느낌이 들었다. 물론 가수로서의 그녀는 많은 이들이 인정하듯 한 시절을 풍미했던 휘트니 휴스턴, 타고난 음폭으로 자유자재로 노래를 부르는 셀린 디옹과 더불어 팝계의 3대 디바가 아니겠는가. 하지만 가수로서 무대를 꽉 채우던 그녀는 영화 속 어느 장면에서도 나는 머라이어 캐리다, 라고 말하지 못했다. 드림걸즈에는 비욘세가 나온다길래 나는 사실 비슷한 지레짐작을 했었다. 그럼에도 이 영화를 보고싶었던 건 에디 머피를 보면서 실컷 웃고 싶었고, 뮤지컬 영화라는 장르에 구미가 당겼고, 스토리와 메시지가 있는 영화보다는 그런 건 다소 뻔해도 좋으니 편히 앉아서 화려한 쇼와 흥겨운 노래를 감상하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한 마디로 쉽게 가자, 였다. 대충 예고편과 홍보기사만 훑어도 감이 왔다. 드림걸즈가 지닌 상업성과 음악성, 그 점에 이끌렸다.

  변덕스런 흥 이면에 감춰진 무기력한 절망을 연기했던 에디 머피나, 온몸을 울리는 듯한 파워풀하고 개성 넘치는 가창력을 선보였던 제니퍼 허드슨, 어쩌면 이들이야말로 자연과 본성 그대로의 검은 피부인지도 모르겠다. 반면에 고혹적인 이집트 여인처럼 아름다운 용모를 갖춘 비욘세와, 궁리가 많은 눈빛을 한 채 영리하고 계산적인 매니저 역할을 선보인 제이미 폭스는 오히려 제조된 케릭터처럼 평범했다. 고의적인 구도이자 설정일테지만, 나는 에디 머피나 제니퍼 허드슨을 보기 위해 영화관에 온 것 같았다. 비욘세는 탄성이 절로 나올 만큼 예쁘고, 영화의 흐름이 진행될수록 입이 쩍 벌어질 만큼 점점 더 아름다워진다. 연기도 글리터의 머라이어 캐리에 비하면 훨씬 더 진정성이 느껴졌다. 하지만 그녀는 56%에 머물러 있다. 아마도 가장 많이 팔리는 맛. 그래도 길들여졌기에 가장 먹을만하다고 인정할 수 밖에 없는. 실제로 제니퍼 허드슨의 절창이 이어질 때조차, 예쁜 비욘세는 언제 나오나, 하고 잠깐씩 생각하기도 했다. 바비인형 같은 백인 여가수들이 갖지 못한 특별한 아름다움이 있었다, 고 말할 틈조차 주지 않고 그녀는 참 예뻤다. 대사를 노래로 전달하는 장면에서 혼자 웃지 않을 자신이 있다면, 느슨한 마음으로 눈과 귀를 즐겁게 하고픈 사람들은 이 영화를 본다면 후회하지 않을 것이다.  

 

 


댓글(6)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해적오리 2007-02-27 09: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주변에서 영화를 본 사람들이 뭔가 그 영화에 대한 이야기를 하면 귀가 솔깃하는데, 이 영화도 그런 것 같아요.
근데 왜 56%를 보니 드림카카오가 먼저 생각이 날까요? ^^

마태우스 2007-02-27 10: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비욘세의 미모에는 동의하는데요...전 이 영화가 내내 혼란스러웠어요 뭐가 선이고 악인지가 헷갈렸고, 또 주인공이 일정하지가 않아서 집중이 잘 안됐어요 다만... 음악은 좋았고, 싸우는 것도 노래로 하는 게 신선하더이다.

깐따삐야 2007-02-27 12: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해적파시오나리아님, 반갑습니다. 드림카카오 맛을 연상하며 쓴 것 맞아요. ^^

마태우스님, 아무래도 유명 가수를 전면에 내세우는 영화들은 대개 한계가 있는 것 같아요. 노래 나올 때만 좋다는 거. ㅋㅋ

Mephistopheles 2007-02-27 14: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배철수씨가 진행하는 라디오 프로에서 이 영화의 실존그룹 "슈프림스"의 역사에 대해 이야기 하더군요..결국 리더자리를 빼았긴 후 그룹 해체 후 에피는 페렴으로 새상을 떠났다고 하더군요. 프로듀서와 메니저 격인 커티스는 상당히 잔인한 면모를 지닌 냉정한 사람이였다고 하더군요..^^ 그리고 세계적인 뮤지션으로써의 인정을 받진 못하지만 슈프림스도 비틀즈에 버금가는 위상을 가지고 있다고 하더군요..
넘버 원 싱글 힛트는 비틀즈보다 많다고 하네요..^^

레와 2007-02-27 14: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보고싶은 영화가 속속 개봉하고 있다는 반가운 뉴스가 또 하나!

행복한 날들입니다.^^*

깐따삐야 2007-02-27 16: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메피스토님, 흑인 뮤지션에 대한 천대라든가, 쇼비즈니스계의 어두운 면을 엿볼 수 있는 영화이기도 했어요. 역시 현실은 영화보다 훨씬 냉정했겠죠.

레와님, 레와님은 참 밝은 성품이신 것 같아요. 즐거운 봄 맞으시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