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 한 번의 졸업식. 교사가 된 후 어제로써 두 번, 아이들을 떠나보냈다. 이번 아이들은 나와 인연이 깊다면 깊다. 대학을 졸업하자마자 맨 처음 만났던 아이들이었고 그 때 우리는 모두 새내기였다. 1학년 신입생과 신규 교사로 만나 온갖 시행착오와 악다구니 속에서 겁나먼 일 년을 보냈다. 어리버리한 교사와 천방지축 아이들이 만들어내는 일상이란 매일매일이 거침없이 하이킥, 이었다. 선배 선생님들은 처음 가르쳤거나 처음 졸업을 시킨 아이들은 평생 기억에 남는다고 하셨지만 아이들을 떠올릴 때마다 내 마음 속에서는 우리 그만 잊기로 해요, 라는 절절한 목소리만 되돌아왔다. 그런데 한 해 동안 학년이 엇갈려 떨어져 지내다가 3학년이 된 아이들을 다시 만났을 때, 서로 뭔가 조금 달라졌다는 걸 느낄 수 있었다. 크고 작은 사건들로 인해 하루도 바람 잘 날 없는 곳이 남자중학교라지만 어쩐지 이제는 서로를 향해 마음의 여백이 생긴 것 같았다. 어제 Y는 편지에 그런 말을 썼더랬다. 선생님이 다시 우리를 가르치신다는 말을 들었을 때 솔직히 걱정했는데 재작년과는 달리 수업시간에 웃음도 많아지고 재미있어서 좋았노라고. S의 편지를 읽고 났을 땐 낯이 뜨거워졌다. 우리를 가르치실 때는 별로 웃지도 않고 혼내시기만 했는데 작년에 3학년 형들한테는 많이 웃고 잘 대해주시는 것 같아서 화도 나고 질투도 났었다고. 하지만 왠지 1학년 때의 선생님 모습이 더 좋았다고. 나는 사실 그 동안 아이들의 이런 마음을 모르지는 않았다. 헤어질 무렵이 되어서야 진심을 전하는 그 마음까지도 알 것 같다. 서로 아옹다옹하면서 소진했던 일 년이었지만, 훨씬 여유로워지고 화기애애해진 현재보다 왜 그 때를 그리워하는지도. 굽힐 줄 모르는 자존심과 넘어질 듯한 열정으로 오해의 벽과 이해의 문 사이를 들락거리며 난감한 표정을 짓고 있었을 때, 아이들이 내게 바랬던 것은 특별한 게 아니었다. 진정한 이해, 라는 것도 결국 타이밍의 문제다. 

  졸업식과 종례를 마치고 누나와 함께 우리 교실로 찾아온 W는 급기야 내 앞에서 눈물을 쏟았다. 몰라보게 훌쩍 자란 녀석이 훌쩍거리니 당최 마음의 갈피가 잡히질 않았다. 순간적으로 코끝이 찡해왔지만 잘 달래서 보내야 한다, 는 생각만 계속 났다. W는 1학년 때 내가 담임을 했던 아이다. 반 배정을 마치고 교실에 들어와 일단 대충 자리를 잡고 앉았는데, 의자가 불편했던 모양인지 빼빼하고 예쁘장한 아이가 계속 몸을 비틀며 눈에 띄도록 인상을 쓰고 있었다. 곱게 자란 예민한 아이구나. W에 대한 첫인상은 그랬다. 나중에 알고보니 역시 집안에서 사랑을 듬뿍 받고 자란 귀한 아들이었다. 잘 먹지 않아서 몸이 약한 편이었고 공부보다는 그림 그리는 것을 좋아했다. W는 쉬는 시간에도 열심히 만화를 그렸고 나는 점심시간에 교실에 들를 때마다 W의 만화노트를 보며 칭찬을 해주기도 하고 이어질 내용을 함께 구상해 보기도 했다. 말수가 적고 몹시 까다로운 아이였는데도 처음부터 쉽게 말을 붙이고 폭폭 안겨오는 아이들에 비해서 왠지 더 정이 가곤 했다. 교사에게는 아이들을 향한 호오의 감정이 있어서도 안되고 그것을 결코 밖으로 드러내서도 안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조금 더 정이 가거나 매력을 느끼는 케릭터가 존재한다는 건 다른 모든 인간관계와 다르지 않다. 

  아팠다기 보다는 무슨 일인가로 마음이 너무 상해서 학교에 나가지 못했을 때 W가 다른 아이들과 함께 집으로 찾아왔었다. 간식을 좀 내어오자 맛있게 먹는가 싶더니 방바닥에 떨어진 과자 부스러기를 손으로 꼭꼭 찍어서 다시 쟁반에 털어놓던 모습이 떠오른다. 깔끔한 녀석...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다가 보고싶었어요, 라고 말하는데 속으로 문득 놀랐고 굉장히 미안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엄마가 아프면 그 집의 아이들이 풀이 죽는 것처럼, 나는 무슨 일이 있어도 아이들 앞에서 만큼은 계속 씩씩해야겠구나, 다짐하기도 했다. 3학년이 되어서 아이들의 장난에 맥을 놓고 있던 내게 편지를 써서 마음을 풀어주려 했던 것도 W였다. 하지만 그 반 아이들이 다시 안심하고 난리를 피울까봐 나는 일부러 W를 포함한 그 반 아이들 모두를 담담하고 차갑게 대했다. 어제서야 비로소 그런 내 마음을 전했다. W는 수줍은 표정을 짓더니 인사를 하고 돌아서다 걸음을 잇지 못한 채 꺼억꺼억 울음을 터뜨렸다. 나는 선생님과 헤어지는 것이 서운해서 울어본 기억이 없다. 교생실습 마지막 날, 작년의 졸업식에서도 헤어지는 것이 못내 아쉽고 서운한 분위기야 있었지만 이런 풍경은 처음이었다. 나는 나보다 훨씬 키가 큰 W의 등을 토닥이며 선생님은 멀리 가는 것이 아니다, 나중에 돌아오면 네 소식 누구한테라도 꼭 물어볼테니 공부 열심히 해야 한다, 등등 그 때 그 때 생각나는 모든 말을 해가며 W를 달랬다. 그 눈물이 무척 고맙고도 미안했다. 한 치의 티끌도 섞일 틈이 없는, 순도 백퍼센트의 고마움과 미안함이 있다면 바로 어제의 내 마음이었을 것이다. W의 이야기를 하자 엄마는 W의 어머니가 예전에 보내주셨던, 깨농사를 직접 지어 짠 참기름과 들기름을 기억해내셨다. 농사를 짓듯 아이들에게도 꾸준히 정성을 기울이는 부모님과 참하고 다정한 누나가 곁에 있으니 W는 잘 해나갈 수 있을 것이다. 사랑을 많이 받고 자란 사람이 다른 사람을 사랑할 줄도 알고 스스로를 아낄 줄도 안다.

  신규였을 때 내가 감당할 수 있었던 아이들의 폭은 딱 우리 학급 뿐이었고 담임을 맡았던 아이들에게 만큼은 지금 생각해봐도 참 잘해주었다. 처음이었으니까 당연했을 것이다. 하지만 나의 오버로 인해 우리 반 아이들은 다른 반 아이들의 질투를 샀고 그럴수록 내가 다른 반 수업에 들어가면 교실은 고의적인 장난들로 난장판이 되었다. 그러면 그럴수록 착하고 말 잘 듣는 우리 반 아이들이 더 고맙고 사랑스럽게 느껴졌고, 그런 마음을 표현하면 할수록 다른 반 아이들은 더욱 더 심술궂고 교활해졌다. 아무리 처음이라고 해도 제 무덤 파는 격으로 나는 참 미련하고 어리석었다. 그렇듯 악순환만 되풀이 하다가 앙금만 잔뜩 맺혀서 헤어졌다가 다시 만난 아이들이 어제의 졸업생들이다. 블랙리스트에 올랐던 아이들이 다시 우리 반이 되기도 했고 나와 매일매일 다정하게 속닥거리던 아이들이 자주 마주치지 못하는 맨 끝 반 교실로 배정되기도 했다. 학년별 교과 담당 교사를 발표하던 조회 시간에 내 이름이 강당에 울려퍼지자 여기저기서 고함과 휘파람이 섞여 나오는 등, 우스운 진풍경이 벌어졌고 영문을 모르는 다른 선생님들은 내가 아이들 사이에서 인기가 많은 줄로만 아셨다. 하지만 그건 환영이 아니라 어이없음, 이었다. 아무튼 그 어이없는 인연의 사슬에 매여 다시 일 년을 보냈고 재작년의 끔찍한 악몽에 비하면야 그 정도만 해도 무릉도원에서 노니는 격이었지만 그렇다고 쉽지는 않았다. 자잘한 사건사고가 끊일 새 없는 나날을 보내는 동안 3년만 채우고 어디로든 갈 것이다, 가야만 한다, 가고야 말 것이다, 라고 늘 생각했으니까. 올해 나는 여기에 없다. 발령 통지를 받았고 다른 학교로 가시는 몇몇 선생님들과 함께 나도 떠난다. 올해에도 여기 계실 거냐고 묻는 아이들에게 공부 좀 하고 오겠다고 했더니 노처녀 되기 전에 결혼이나 하시라는 둥, 공부라니 징글맞지도 않느냐는 둥, 선생님은 확실히 공부 좀 더 하고 오셔야 된다는 둥, 별별 녀석들이 다 있었다. 괴짜들 덕분에 힘들었지만 즐거웠다. 아이들로부터 배운 것도 많았고 이런 감정이 보람이라면, 보람도 느낀다. 그리워질 무렵이면 다시 돌아오겠지.

  그 눈물은 절대 잊지 못할 것이고, 지쳐 있을 때마다 나를 웃겨 주려 했던 너희들의 마음씨 또한 그럴거야. 고백하건데, 속으로는 킥킥대고 얼굴로는 근엄하느라 나도 힘들었다. 언제까지 그렇게 마냥 순수할 수만은 없겠지만 너무 빨리 철이 들지는 말기를. 졸업과 입학을 진심으로 축하한다. 너희들이 장난 칠 때마다 선생님이 잘하던 말 있지. 그러니까 좋아? 재밌어? 행복해? 그렇듯 내내 좋고 재미있고 행복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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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늘빵 2007-02-17 23: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

깐따삐야 2007-02-18 21: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프락사스님,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봄봄 2007-02-19 20: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진정한 이해, 라는 것..시차의 문제이기도 할 것입니다^^ 님도 재미난 새해 맞으시길..

깐따삐야 2007-02-20 08: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봄봄님, 때가 되면 이해하게 되곤 하죠. 님도 즐거운 한 해 보내세요.^^

레와 2007-02-23 14: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앙..

오늘, 멋찐 제자들과 훌륭한 선생님을 만났습니다.^^



깐따삐야 2007-02-23 16: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레와님, 제자들이 멋지게 성장하고, 저도 제발 훌륭한 선생님이 되라고 빌어주세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