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딥스 ㅣ 행복한 육아 15
버지니아 M. 액슬린 지음, 주정일.이원영 옮김 / 샘터사 / 2002년 9월
평점 :
구판절판
사람들은 가끔씩 일상이 무미건조하게 느껴지면 감동적인 영화 한편으로 가슴 속을 잔잔히 적시고 싶어질 때가 있습니다. 지금이 만일 그 때라면 이 책 한 권은 어떨까요. 저의 제안에 대해 이 책이 가지는 성질로 봐서는 좀 아니다 라고 생각하시나요? 하지만 「딥스」의 이야기만큼 사람을 깊은 생각 속으로 끌고가는 책이 어디 흔하겠습니까.
하지만 흔히들 이렇게도 생각하시겠지요. 정신적인 장애를 겪고 있는 아이의 이야기. 나와는 별개의 사람들만이 가지는 고민. 그래서 참 고통스러울 것 같다는 막연한 추측에 의지한 연민만이 남는 이야기. 이렇게 사는 사람들도 있구나.그래서 내가 얼마나 행복한가를 일깨워주는 이야기. 이것이 실화이니 더욱 그럴 수박에 없는 이야기 정도로요. 이런 고정적인 생각이 들더라도 「딥스」를 만나 보세요. 그럼, 원하는 것을 얻을 수 있을 겁니다.
제가 딥스와 A선생님의 놀이방으로 놀러갈 수 있었던 것은 큰 영광입니다. 그 방은 매주 목요일 세시에서 네시까지 딥스와 A선생님 외엔 아무도 들어갈 수 없는 금지 구역이니깐요.딥스는 선생님을 제외한 그 누구와도 그 방을 나누고 싶어하지 않으니깐요. 그래서 특별하답니다.
특별하고 비밀스런 일이 일어나고 있는 그들의 공간을 들여다볼 수 있는 기쁨은 A선생님의 기록과 녹음의 산물이지요. 딥스의 치료 과정의 기록들이 철저하지 않았다면 우린 그들만의 생생한 기억들을 현장감 없이 구경하는 꼴이 되었을텐데, 덕분에 우린 그들과 함께 그 시간과 공간에 나눌 수 있게 되어 다행입니다.
첫만남에서 분명 딥스는 신비하고 매력적인 아이였습니다. 딥스에 대해 알고싶다라는 욕구가 일게하는 아이였습니다. 그 아이가 과연 자신을 어떤 방식으로 드러낼 지도 궁금했구요. 전 가끔 이렇게도 생각했거든요. 치료자의 계속적이고 일방적인 노력의 결과로 환자인 아이가 어느 날 놀랍게도 말문을 열면서 갇혀있던 자신의 세계에서 기적적으로 탈출하는 그런 상상 말이예요.
그런데 딥스는 딥스 스스로가 자신을 치유해 나가는 힘을 보여준답니다. 자신 속에 내재해 있는 미움과 증오 두려움, 분노를 하나씩 발산해 내며 그리고 때론 억누르며, 그 감정의 소용돌이를 헤쳐나가기 위해 놀랍고도 아름다운 힘을 발휘한답니다. 겨우 여섯 살인 어린 딥스라고 믿기 힘든 일이지요.
부모로부터 올바른 사랑과 인격적인 대접을 받지 못하고 자라오면서 마음의 문을 닫았던 딥스가, 치료가 거의 끝이 날 무렵, 자신이 필요할 때 위로가 되어 준 젖병을 철제 라디에이터를 행해 힘껏 던지며 산산조각을 내고 마는 대목이나 지금까지의 딥스의 모습을 상징하는 작은 딥스 인형을 모래 속에 파묻어 버리는 장면은 가히 파괴적이지요. 하지만 이 파괴적인 힘 앞에서 딥스의 집착이 건강한 모습의 사랑으로 회복되었음을 느낄 수 있어 행복했습니다. 자신과의 싸움에서 건강한 자아를 되찾고 세상의 두려움과도 맞서 싸울 수 있는 용감한 딥스를 만나게 되어 딥스가 자랑스럽습니다. 그리고 딥스의 행복과 자랑스러움이 잔잔한 감동으로 마음 속을 적시는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