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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중문화의 겉과 속 3
강준만 지음 / 인물과사상사 / 2006년 1월
평점 :
구판절판
대중문화의 변화 속도는 섬뜩할 정도로 빠르다. 핸드폰 같은 기계들이 인간에게 미치는 영향은 쫓기가 무섭고 새로워지고, 고등학교와 중학교 그리고 대학교에서도 기성세대가 모를 문화들이 현란하다고 할 정도로 복잡, 다양해지고 있다. 뿐인가. 인터넷에서는 종잡을 수 없는 유형의 폐인들이 새로운 문화를 창조하고 있다. 그리고 그것은 다시 컴퓨터 밖 세상에 영향을 끼치고 그것이 다시 컴퓨터 속에 영향을 끼친다. “숨이 가쁘다”는 강준만의 말은 괜한 과장이 아니다.
이런 사정을 안다면 ‘대중문화’를 책으로써 읽는다는 것이 무의미해 보인다. 책을 쓰고, 찍는 과정을 거쳐 그것이 독자의 손에 오기까지, 그 사이에 또 얼마나 많은 변화들이 있을 것인가! 과연 그것이 무슨 의미가 있는지를 생각해보지 않을 수가 없다. 하지만 반대로 생각해보면 바로 그것이 책으로 읽어야 할 이유가 된다. 강준만의 말처럼, 그 변화들은 너무 빠른지라 성찰의 시간을 주지 않기 때문에 기록의 필요성이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대중문화의 겉과 속 3>의 요지는 분명해 보인다. 현상을 쫓는 것으로 대중문화를 안다고 하는 것이 아니라 심도 깊게 파고들어 제목처럼 대중문화의 ‘겉’과 ‘속’을 파고들겠다는 것이다. 쉬운 일은 아니다. 그렇기에 기대감을 갖고 책의 첫 페이지를 펼쳐본다.
<대중문화의 겉과 속 3>의 목록을 보자. ‘방송문화’, ‘영화, 연예 문화’, ‘인터넷 문화’, ‘디지털 기술, 산업’, ‘휴대전화 문화’, ‘생활, 소비, 일상 문화’ 등 총 6장으로 구성돼 있다. 책이 선정한 주제들은 적절해 보인다. 그럼 내용을 간략하게 살펴보도록 하자. 첫 주제는 ‘내 이름은 김삼순’인데 강준만은 사람들이 왜 이 드라마에 열광했는지를 돌아보고 있다.
시청률 50%를 넘는 드라마이기에 ‘김삼순’이라는 캐릭터에 대한 분석은 꽤나 심도 깊게 진행됐었다. 강준만은 사회에서 논의됐던 것들, 적나라한 일상이나 건강한 모계 사회 등 드라마가 인기 있었던 일련의 분석들을 일목요연하게 정리한 뒤 끝자락에 가서 심각한 질문거리를 던지고 있다. 그것은 외모지상주의를 타파했으며 ‘평범한 여자임에도 당당했다’는 김삼순이라는 캐릭터를 넘어 김선아라는 인물이 ‘위장 몸꽝’이었다는 사실에서 비롯된다.
위장 몸꽝이란 무엇인가? 문자 그대로다. 김삼순은 몸꽝이었지만 넉넉한 시간과 고비용을 요구하는 체중 감량 시스템을 통해 김선아는 몸짱이 되어 돌아올 것이다. 그러면 사람들은 다시 그것을 부러워하는 ‘이중적 태도’를 보일 것이다. 이런 사실을 안다면, 평범한 캐릭터라고 좋아했었던 ‘평범한’ 사람들이 느낀 카타르시스는 어떻게 되는 것인가? 강준만은 모범답안은 없다고 말하며 드라마를 좋아한 이유를 각자 생각해보라고 말하지만 말 끝에 가려진 여운이 쉽사리 가라앉지 않는다.
한류 문제에 대한 지적도 여운이 깊기는 마찬가지다. 강준만은 한류 문제에 대한 다양한 입장을 정리하면서 성찰할 것들을 짚어주고 있다. 이중에서 눈에 띄는 지적은 언론이 한류를 다룰 때 국가주의, 민족주의의 정서가 배어있다는 것과 한류를 지나치게 경제주의와 문화주의의 문제로 보고 있다는 것이다. 한류를 얼마나 많은 돈을 벌어오느냐에 관심을 두고 한류를 띄워주는 것에 대해 되레 그것이 한류의 수명을 단축시킬 수 있다고 지적한 것은 경청할 만한 분석이다.
이어서 2장에서는 연예보도 행태, 스타파워, 간접광고, 온라인 음악 등 현재 논란이 되고 있거나 앞으로 심각하게 부상할 잠정적인 문제들을 짚어준 뒤 3장에서는 인터넷 문화를 돌아보고 있다. 3장의 첫 번째 주제는 블로그다. 강준만은 블로그 이용자가 2,000만명을 넘어선 지금, 그들에게 질문을 던지고 있다. 블로그의 속성이 ‘공개적으로 쓰는 일기’라면 왜 자신의 일기를 공개해야 하는 것인가?, 하는 질문이다.
사회적 소속감과 존재감을 느끼기 위해서? 한국 특유의 ‘쏠림 현상’ 때문에? 너나 할 것 없이 블로그를 만드는 때에 강준만이 지적한 것은 생각해볼 문제가 아닐 수 없다. 이 장에서 다루는 ‘포털 저널리즘’은 어떤가? 2003년 3월 ‘미디어다음’이 등장한 이후 다른 포털사이트들도 뉴스 서비스를 시작했는데 ‘뉴스 사이트에 접속할 필요가 없다’는 말이 나올 정도로 그 파장력이 상상을 초월하고 있다.
뉴스 서비스는 누리꾼들의 수고를 덜어준다는 점에서 좋은 일이기는 하지만 문제가 있다. 또 하나의 언론권력으로 부상하고 있다는 것이다. 언론사 기자들이 포탈사이트의 메인 면에 배치될 수 있도록 기사를 작성하는 것이 단적인 예다. 그리고 여기서 또 다른 문제가 발생한다. 포탈사이트 뉴스 서비스를 이용해본 사람이라면 십분 이해할 수 있을 텐데 여기서 주요하게 처리하는 기사들은 지나치게 ‘선정적’이라는 것이다.
일종의 ‘저급한 상업주의 행태’라고 지적할 수 있는데 문제는 이것을 막을 방법이 딱히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다. 또한 지금도 포털 저널리즘은 인터넷 시대에 중앙집권화가 더 강화되는 역설을 증명이라도 하듯 영향력을 키워가고 있다는 것도 문제다. 어떻게 해야 하는가? 제도적인 문제에서 답을 찾을 수 있겠지만 결국 질문의 끝은 누리꾼들을 향하고 있다.
전체적으로 영상문화, 디지털문화, 일상문화로 압축될 수 있는 주제들을 다룬 <대중문화의 겉과 속 3>은 이런 방식으로 구성됐다. 강준만은 주요한 대중문화를 요약, 분석한 뒤 그것을 어떻게 바라봐야하는지를 물으며 성찰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고 있다. 때문에 정보습득 차원용으로 그것을 관찰하는 수준을 넘어서 그것에 손을 넣을 수 있게 만들어주고 그것은 비판의식을 한 단계 높여주는데 일조하고 있다.
대중문화의 속성이 그렇듯 <대중문화의 겉과 속 3>에서 다룬 문제들은 놀라울 정도로 빠르게 변하는 것들이다. 그것을 책으로 보면 무엇하나 싶겠지만 <대중문화의 겉과 속 3>은 몇 달이 지나도, 설사 연도가 넘어간 뒤 접하더라도 대중문화를 파고드는 ‘감각’이 녹슬지 않는 단단한 내구성을 지녔다. 그러니 기대치를 한껏 높여도 무방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