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장자의 일부분을 읽다가 무용지용(無用之用)이란 표현을 보았다.
쓸모 없음의 쓸모 있음.

그 부분을 읽자 마자 떠오른 건, 김현의 문학론이었다. 
쓸데 없는 문학의 쓸모를 말하는 그의 문학론은 확실히 장자의 언어를 빌린 것이었다.

[행복한 책읽기]에서 인가 몇년간이나 김현이 집안에 들어박혀서 노장만 읽었다는 게 기억난다.
집안에 틀어박혀서 노장 따위나 읽는 짓, 무위지위...
그리고 무용지용.

확실히 쓸모 없음도 쓸모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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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출처 : 릴케 현상 > 독서노트만드는법

자꾸 때리다 
::   독서 노트 만드는 법....
메뉴스크립트에서 강유원 님이 만드신 자습노트를 보았습니다. 그런데 촬영이 제대로 되지 않아서 정확히 어떠한 방식으로 노트를 구성하셨는지 알기 힘들더군요. 정리를 하며 책을 읽어 본 적이 없는지라 처음 독서노트를 만드는데 매우 서툽니다. 독서노트 만드는 방법이나 노하우 등을 알려주시면 감사드리겠습니다...

강유원 :: 풀로엮은집에서 이반 일리히의 <<학교없는 사회>>를 예로 들어 설명한 것을 수강생 중의 한 분이 정리했더군요. 그것을 옮겨 보겠습니다.
1. 목차 읽기
책을 읽을 때에는 '목차'를 먼저 읽는다. 목차를 읽으면서 대강의 내용을 예측해 본 후에 본문을 읽는다. 결코 저자에게 주눅들 필요가 없다. 내가 이반 일리히를 아는 것도 아니고, 이반 일리히가 나를 아는 것도 아니다. 어차피 내가 모르는 사람이다.
메모를 하며 읽는다. 그 메모들이 서평의 기본적인 자료가 된다. <학교 없는 사회>의 경우 학술서적이므로 논리적인 서술 구조를 가지고 있을 것이다. 그러므로 목차를 통해 전반적인 내용을 예측할 수 있다. 책을 다 읽었는데 목차를 읽으면서 짐작한 바와 별 다르지 않은 내용이라면 문제가 있다. (반드시 그런 것은 아니지만) 독자의 예상을 깨는 책일수록(독자의 배반감이 클수록) 괜찮은 책인 경우가 많다.
책을 사고 읽은 후 서평을 쓰기까지의 순서를 제시하겠다.
1) 우선, 장서표를 붙이고 첫 장에 그 책을 구입한 의도와 목적을 기록해 둔다.
2) 그리고 목차를 읽으면서 짐작되는 내용을 쓴다. 이것이 서평 쓰기의 출발점이 된다. 책을 다 읽고 나서는 처음의 의도와 그 내용이 일치하는지를 확인한다. 공부를 하려면 책은 이렇게 읽어야 한다. 또, 짐작가는 내용을 써 봐야 책을 선택하고 구입할 수 있게 된다. 남이 쓴 서평을 읽고 책을 살 수는 없다. 서평은 지극히 개인적인 것이기 때문이다.
3) 이제 책을 읽기 시작한다. 책을 읽을 때에는 내다 버릴 책이라 할지라도 충실히 읽어야 한다. 충실히 읽고 깔끔하게 재정리해야 한다. 책을 읽으면서 (난외에) 써야 한다. 다 읽은 후에는 다시 한 번 처음부터 읽으면서 노트에 정리한다. 그리고 나서는 노트만 읽으면서 관점을 잡아서 서평의 초고를 쓴다.
서평 자체는 어찌 보면 창작이라 할 수 있다. 서평은 저자도 발견하지 못한 어떤 것을 독자가 발견하고 저자와 커뮤니케이션하는 과정이다. 저자가 책을 쓸 때에는 '독자가 여기까지는 읽어줬으면...'하고 생각(기대)하는 부분이 있다. 거기까지는 읽어봐야 한다. <책과 세계>를 읽고 '병든 자만이 책을 읽는다.'라는 구절에 현혹된 독자는 '하수'이다. 그런 구절이 저자가 깔아 놓은 부비트랩이다.
2. 서문 읽기
서문에 있는 내용은 세 가지면 충분하다. 그러므로 서문은 세 문단으로만 구성되면 된다.
1) 이 책을 쓰게 된 과정, 이유------------<동기>
2) 책에서 밝히고자 하는 핵심 주장-----<목적>
3) 핵심 주장을 논증하는 방법------------<방법>
그 이상 쓰는 것은 오버다. (출판사 사장, 가족에 대한 감사 따위)
예를 들어 서평집의 서문은 다음과 같은 내용이면 충분할 것이다.
1) 내(저자)가 생각하기에 책은 '이러이러한 것'이다.
(세상의 수많은 책 중에서 몇몇 책을 골랐으므로 선택의 기준을 제시하는 것이다.)
2) 서평집을 내게 된 경과
3) 내가 책을 해석interpretation한 방법
여기에 덧붙여 독자에 대한 당부 정도를 쓸 수 있겠다.
여기까지 정리가 되면 책의 3분의 1정도는 이해된 것이다. 본문을 읽기 전에 이면지(메모지나 아무 종이)에 처음의 의도(짐작한 내용), 목차와 서문을 읽고 이해한 내용을 정리한다. 정리한 종이를 '책갈피'로 사용한다. 읽는 중간중간 서문에서 제시한 목적과 방법이 본문 속에서 균형있게 서술되고 있는지 대조해 가면서 확인한다.
제1장 우리는 왜 학교를 폐지하여야 하는가
'학교폐지론'에 대한 내용으로 이 책의 핵심 주장을 담고 있는 부분이다. 상식적으로도 가장 중요한 부분임을 알 수 있다.
책을 읽을 때 효과적으로 -힘을 쓸 부분과 쓸 필요가 없는 부분을 구분해서- 읽어야 한다. 각각의 챕터에 같은 시간을 배정할 필요가 없다. 바쁠 때는 필요한 부분만 읽고, 나중에 시간이 날 때, 읽고 싶을 때 더 읽으면 된다. 이 책의 경우, 1장을 치밀하게 읽고 '핵심주장'과 그것을 논증하는 데 사용한 '개념'을 분명히 해 두면 서평이 써진다. 처음에(1장에서) 기본 개념을 철저히 정리하고, 이해하고 넘어가면 (시간이 걸리더라도) 책의 끝까지 잘 읽을 수 있다.
제대로 된 책은 1장의 첫번째 내지는 두번째 문장에서 알 수 있다.
'예'를 들어 논증한 부분은 잘 봐두어야 한다. 쉽게 appeal이 되고 잘 이해되기 때문이다. 거론된 사례에 강한 설득력이 있는 경우에는 서평을 쓸 때 인용해도 좋다.
주장이 확장되고 있는 부분에서는 '소제목'을 붙여 지표로 삼는다.
밑줄은 세 줄 이상 치면 의미가 없다.(주목성이 떨어진다.) 중요한 부분, 문단에는 '박스'를 친다.
논술은 결국 창의적인 사고와 토론인데, 일단 집에서 부모와 자연스럽게 대화(토론)을 해 본 아이들이 잘 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런데 우리 사회는 정형화된 정답을 강요하고, 할(하고 싶은) 말 하는 아이들에게 싸가지 운운하니 논술을 잘 할 수가 없다.
이반 일리히의 주장은 결국 누구나 가르치는 일과 배우는 일을 할 수 있다는 것이다. 교육에 대한 '자격'이 있는 사람만 교육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그 자격(에의 진입장벽)을 높일수록 경직된 사회가 되고, 교육은 시장에서 거래되는 '상품'으로 전락한다.
외국 저자의 책 서문에 인명이 등장하는 이유는 우리나라의 저자들이 출판사 사장과 가족들에게 감사하는 것과는 다르다. 그 책의 저술에 기여contribution한 이들을 기록해 둔 것이다. 그 이름들을 기억하고 책을 읽다가 다시 등장했을 때 중요한 사람인 줄 알면 된다. 그 인명들은 나중의 확장된 독서를 위한 저자 리스트가 될 수 있다. 특히 세 번 이상 등장하게 되면 관련 도서 목록을 마련하는 출발점이 된다.
각주에 등장하는 책은 체크해 두고 번역본이 있는지 확인한다. 인용된 책이 얼마나 중요한 역할을 하는지 살피고, 사서 읽거나 도서 목록에 추가한다.
 
자꾸 때리다 :: 하~~~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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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적이면서도 유머러스한 글을 쓰는 에코에 탄복할 뿐입니다. 이 글도 내용뿐만 아니라 형식으로도 대단히 유쾌한 발상으로 씌어있네요. 잘 읽어보시면 감탄하시리라 믿어요. ^^
 
글을 잘 쓰는 방법 - 움베르토 에코
 
 

 

1. 두운(頭韻)을 피하라. 비록 올빼미들을 유혹할지라도.
(이탈리아 어로 allitterazione(두운), allettare(유혹하다), 그리고 allocco(올빼미)는 두운이 일치한다.
 
2. 접속사를 피해야 하는 것은 아니지만, 그러나, 오히려 필요할 때는 쓰도록 한다.
 
3. 기성품 문장들을 피하라. 그건 <다시 데운 수프>와 같다.
 
4. 자신의 생각을 표현하라. 자신을 살찌우게 하니까.
 
5. 상업적 기호 & 약자 etc.를 사용하지 마라.
 
6. 괄호는 (꼭 필요해 보일 때도) 담론의 흐름을 방해한다는 것을 (언제나) 기억하라.
 
7. 말없음표들의...... 소화 불량에 걸리지 않도록 주의하라.
 
8. 가능한 한 따옴표를 적게 사용하라. 그것은 "목표"가 아니다.
 
9. 절대로 일반화하지 마라.
 
10. 외국어는 절대 엘리건트한 스타일을 만들지 않는다.
 
11. 인용을 줄여라. 에머슨이 올바르게 지적하였듯이 <나는 인용을 증오한다. 단지 네가 아는 것만 말해라>
 
12. 비유는 기성품 문장과 같다.
 
13. 과잉 설명을 하지 마라. 똑같은 말을 두 번 반복하지 마라. 반복한다는 것은 불필요하다(과잉이라는 말은 독자가 이미 이해한 내용을 불필요하게 다시 설명하는 것을 의미한다.)
 
14. 단지 똥 같은 놈들이나 저속한 말을 사용한다.
 
15. 언제나 대충 구체적이도록 하라.
 
16. 단 하나의 단어로 문장을 만들지 마라. 없애라.
 
17. 지나치게 과감한 은유들을 조심하라. 그것은 뱀의 비늘 위에 돋은 깃털과 같다.
 
18. 쉼표는, 정확한 곳에, 넣도록 하라.
 
19. 콜론과 세미콜론을 구별하라 : 비록 쉽지 않을지라도.
 
20. 만약 적절한 이탈리아 어 표현을 찾지 못하더라도 절대로 사투리 표현에 의존하지 마라. <페소 엘 타콘 델 부소(베네치아의 사투리 속담으로, 병보다 오히려 치료가 더 나쁜 경우를 가리킨다)>
 
21. 어울리지 않는 은유를 사용하지 마라. 비록 <노래하는> 것처럼 보일지라도. 그것은 마치 탈선한 백조 같다.
 
22. 정말로 수사학적 질문이 필요한가?
 
23. 간략하게 하라. 긴문장을 피하고, 가능한 한 적은 숫자의 단어 안에다 자신의 생각을 압축하도록 노력하고 - 또는 삽입구를 넣지 마라. 그것은 불가피하게 산만한 독자를 혼란스럽게 만드니까 - 그리하여 담론이 분명히 매스 미디어의 권력에 지배되는 우리 시대의 비극들 중 하나를 이루는(특히 불필요하거나 필수 불가격하지 않은 자세한 정보들로 쓸모없게 채워졌을 경우) 정보의 오염에 기여하지 않도록 하라.
 
24. 과장하지 마라! 감탄 부호를 적게 써라!
 
25. 야만적 표현을 좋아하는 최악의 <팬들>이라도 외국어를 복수로 만들지 않는다.
 
26. 외국어 이름을 정확하게 써라. 가령 보둘레르, 루즈웰트, 니채 등처럼.
 
27. 언급하는 저자나 등장인물들을 완곡하게 표현하지 말고 직접 지명하도록 하라. 19세기 롬바르디아 출신의 최고 작가지아, <5월 5일>의 작가도 그렇게 했다.
 
28. 글의 첫머리에서 독자의 환심을 사기 위해 <감사의 표시>를 하도록 하라(그런데 혹시 여러분이 너무나도 멍청해서 내가 지금 말하고 있는 것을 이해하지 못할 수도 있다)
 
29. 철자를 자세하게 학인하라.
 
30. 반어법은 얼마나 지겨운 것인지 말할 필요도 없다.
 
31. 너무 자주 문단을 바꾸지 마라.
최소한 불필요 할 때는.
 
32. <위엄 있는> 1인칭 복수를 절대 쓰지 마라. 우리는 그것이 나쁜 인상을 준다고 확신한다.
 
33. 원인과 결과를 혼동하지 마라. 오류를 범하게 될 것이며, 따라서 실수할 것이다.
 
34. 논리적으로 결론이 전제에서 도출되지 않는 글을 쓰지마라. 만약 모든 사람이 그렇게 한다면, 전제가 결론에도 도출될 것이다.
 
35. 옛날 표현이나 <아팍스 레고메나(유일하게 단 한 번의 기록만 남아 있는 어구)>처럼 이례적인 어휘들. 리좀같은 <심층 구조>를 너무 많이 사용하지 마라.
그것들은 아무리 그라마톨로지적 <차연>의 현현(顯現)이나 해체론적 표류에의 권유처럼 보일지라도 -
만약 그것이 극도로 세심한 문헌 비평 의식과 함게 읽는 사람의 세밀한 검토에 의해 논박의 여지가 있는 것으로 드러날 경우 더 나쁠 것이다 -어쨌든 수신자의 인지 역량을 넘어서기 때문이다.
 
36. 완성된 문장이 되어야 하는데

 

1997 - 움베르토 에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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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출처 : 릴케 현상 > [퍼온글] RSS, 복잡한 웹을 요약해주다

RSS, 복잡한 웹을 요약해주다

노경윤 / 전 스키조 편집장
nohmad@sub-port.net


웹이 너무 복잡해졌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많아졌다. 통계적으로 증명할 수는 없지만 전체 웹 트래픽의 70% 이상이 사용자가 원하지 않은 컨텐츠에서 유발된다고 해도 틀린 말은 아닐 것이다. 확실히 지난 몇년 사이에 조금의 여백도 남기지 않고 화면을 빼곡 채우는 웹 디자인이 하나의 뚜렷한 ‘사조’로 자리잡은 것 같다. 그리고 지긋지긋한 회원가입, 로그인. 처음 가고자 했던 페이지에 도달하기 위해 얼마나 많은 패킷을 낭비해야 하는가. 로그인에 성공한 후에도 팝업, 플래쉬, 아바타 등 뜻하지 않은 복병들이 도처에서 정보의 흐름을 막아서고 현기증을 유발한다. 결과적으로 인터넷 초창기에 비해 컴퓨터 사양은 10배 이상 나아졌지만 응답을 기다리는 시간은 조금도 줄어든 것 같지 않다.

RSS의 탄생

최근 블로그 사용자들을 중심으로 확산일로에 있는 RSS가 이 어지러운 문제에 답이 될 수 있을 것이다.
RSS는 1999년 넷스케이프사가 My Netscape Network
(my.netscape.com)라는 개인화 서비스를 시작하면서, 주식현황, 스포츠 소식, 날씨, 별자리 정보 등 여러 채널의 정보를 수집해서 제공하기 위한 목적으로 고안한 XML 형식의 파일이다. 당시에는 ‘RDF Site Summary’의 약자로 사용되었는데, RDF(Resource Definition Framework)란 사이트, 페이지, 저자 등과 같이 웹상에 존재하는 정보가 스스로 의미를 가질 수 있도록 도와주는 메타데이터를 기술하기 위해 W3C(World Wide Web Consortium)가 정의한 표준을 말하는 것이었다. 이후 블로그의 원조인 유저랜드(userland.com)가 자사의 블로그 발행 프로그램을 위해 원래 버전을 개량한 포맷을 공개하면서, 여러 소스에서 추출한 뉴스를 통합하고 배급한다는 아이디어가 사람들에게 알려지기 시작했다.
현재는 넷스케이프로부터 빠져 나와 RSS-DEV Working Group이 자체적으로 주도권을 가진 RDF Site Summary 1.0과 Userland사가 소유하고 있다가 표준화를 위해 최근 비영리기관인 하버드대의 버크먼인터넷센터로 저작권을 양도한 Really Simple Syndication 2.0이 따로 존재한다. 그러나 두 버전간에 큰 차이가 없고, 대부분의 경우 2가지를 모두 지원하고 있어 버전 문제로 고민할 일은 거의 없다.

푸쉬 모델의 장점

최초의 RSS는 이질적인 정보를 간추려 한 곳에 모아서 보여주기 위한 용도로 사용되었고 지금도 크게 달라진 것은 없다. 다만 이제는 웹사이트를 구성하는 필수요소가 되어, What’s New에 해당하는, 최근 추가되거나 변경된 페이지들에 대한 헤드라인을 제공하는 식이다. 이 RSS 파일의 위치만 기억해두면, 나중에는 이 파일에 요약된 내용만 보고 대문을 거칠 필요 없이 직접 해당 페이지로 바로 접근할 수 있게 되어 방문자들의 수고가 크게 줄어든다. 이런 장점이 확산되면서 아예 RSS 파일만을 전문적으로 모아 카테고리별로 통합된 정보를 제공하는 신디케이션 사이트들(moreover.com, syndic8.com, newsisfree.com)이 크게 주목을 받고 있다.
RSS가 방문자들의 수고를 덜어준다고 했는데, ‘구독-배급(subscription-syndication)’ 모델의 장점이 바로 그것이다. 개별 페이지에 대해 ‘요청-응답(request-response)’을 반복하는 모델하에서는 결국 사용자가 주소를 타이핑하거나 링크를 클릭하여 일일이 페이지를 찾아다녀야 한다(브라우저는 이와 같은 일을 쉽게 하도록 만들어진 것이다). RSS 역시 웹을 이용하는 이상 요청-응답 프로세스 위에 존재하지만, 시간에 따른 변경사항을 기록한 요약본을 통해 요청-응답을 통제하거나 주기적으로 자동화할 수 있다는 점에서 차이가 있다.
이러한 차이는 과거에 실패한 기획이었던 푸쉬 미디어를 떠올리게 만든다. 당시에는 성숙하지 못한 인터넷 여건과 제한된 컨텐츠, 컨텐츠 제공자의 열의 부족 등의 문제로 실패했지만, 사용자 중심의 부활은 그 전철을 그대로 밟지는 않을 것이다. RSS 전용 프로그램--Reader, Aggregator 따위의 이름을 가진--들을 사용하다보면 이 푸쉬가 주는 느낌을 더 잘 실감할 수 있다. 먼저 사용자 인터페이스 면에서 RSS 전용 프로그램들은 브라우저보다는 메일/뉴스그룹 프로그램에 가깝다. 뉴스그룹에 가입하거나 메일링리스트 구독을 신청하듯이, RSS를 구독할 위치만 명시하면 뉴스그룹/메일링리스트 이용하는 것과 별반 다를 것이 없다.

필터로 살아남기

‘골라리스’라는 프로젝트는 스포츠신문 연재만화의 이미지 URL만 추출해서 여러 사이트에 개별적으로 로그인할 필요 없이 한 사이트에서 모두 볼 수 있게 해주는 서비스였다. 그러나 과도한 방문자수로 인해 서비스 운영이 불가능해지자 서비스에 사용한 소스를 공개했고, 이 소스를 이용하여 여러 개인이 현재 게릴라식으로 서비스를 운영하고 있다. ‘골라리스’ 이전에도 비슷한 서비스를 하는 사이트들이 많이 있었으나 신문사 측의 요구로 모두 중단되었고, ‘골라리스’는 소스 공개를 통해 저작권자의 위협을 우회하는 길을 택한 것이다.

이 짧은 에피소드에서 눈여겨봐야 할 대목은 웹에서 자신이 진정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해 허비하는 것이 많고, 그것을 줄이기 위해 많은 사람들이 실제로 노력하고 있다는 점이다. 구글의 인기가 식지 않는 것도 그 심플함과 신뢰할만한 여과 능력 때문이 아닌가. 마찬가지로 웹에서 시간을 허비하지 않기 위한 방법들이 계속 연구될 것이다. RSS는 좋은 출발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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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ontreal florist 2009-10-30 07: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구독하게 해주는 시스템이군여, 글 잘 읽엇네여
 
 전출처 : 로쟈 > 제대로 지젝거리기 입문
누가 슬라보예 지젝을 미워하는가? ROUTLEDGE Critical THINKERS(LP) 1
토니 마이어스 지음, 박정수 옮김 / 앨피 / 200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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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나의 유령이 우리의 인문학 동네를 떠돌고 있다. “마돈나가 싱글 앨범을 발표하는 것보다 더 정기적으로 책을 발표”하면서 “동시대의 정치적 무관심에서부터 이웃집 닭한테 잡아먹힐 걱정을 하는 남자에 관한 조크에 이르기까지” 끊임없이 지절대는 철학자 슬라보예 지젝이 그 유령의 이름이다. 그 유령은 이미 지난 2003년 가을에 우리 곁을 다녀가기도 했는바 어느새 자신을 따르는 무리들까지 거느리게 되었다. 우리 주변에 ‘지젝거리는’ 이들이 그들이다. 최근에 급기야는 ‘지젝거리는’ 이들을 위한 교본까지 등장했으니, 토니 마이어스의 <누가 슬라보예 지젝을 미워하는가>가 그것이다.

슬라보예 지젝, 이 슬로베니아 출신의 '괴물' 철학자는 <이데올로기의 숭고한 대상>(1989)을 통해서 영어권 학계/이론계에 등장한 지 불과 15년 만에 '우리 시대의 사상가' 명단에 당당하게 자신의 이름을 등재시켰고, 저자 마이어스의 주장대로 그의 파괴력/영향력은 갈수록 확고해질 가능성이 높다. 이미 <삐딱하기 보기>(시각과 언어, 1995) 이후에 열댓 권이 넘는 지젝의 책들이 우리말로도 번역/소개되었으니 우리 또한 그의 영향력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하다. 하지만, 그 책들은 한편으론 “오늘날 활동하는 가장 탁월한 사상가” 지젝의 지적 파워를 확인시켜주면서, 다른 한편으론 그의 말들을 (도대체 알아먹지 못할) 지저귀는 언어로 옮겨놓음으로써 가뜩이나 “대중문화로 철학을 더럽히는 철학자”로 오해받는 지젝에 대한 반발과 미움을 더욱 부채질하기도 했다.

 

이번에 나온 마이어스의 책은 ‘가장 쉬운 지젝 입문서’로서 그러한 오해와 미움을 단번에 불식시켜줄 수 있는 책이다. 저자가 한 입 크기로 적당히 썰어놓은 지젝의 아이디어들을 머릿속에 집어넣다 보면 “아하, 그렇구나!”라는 감탄과 함께 결국엔 저자의 이러한 결론에 동참하게 된다: “우리는 지젝이 라캉으로 ‘되돌아가고’, 라캉이 프로이트로 ‘되돌아간’ 것과 동일한 방식으로 지젝에게 ‘되돌아갈’ 것이다.”(231쪽)

 

이러한 여정의 안내자로서 저자는, 이미 알려진 바대로 지젝에게 영향을 준 세 사람, 즉 헤겔, 마르크스, 라캉에 대한 예비적인 설명을 앞세운 이후에 다섯 가지의 핵심 이슈로 그의 사상을 갈무리한다. (1)주체란 무엇이며, 왜 그토록 중요한가? (2)탈근대성에서 끔찍한 것은 무엇인가? (3)현실과 이데올로기를 어떻게 구분할 수 있는가? (4)남성과 여성의 관계는 무엇인가? (5)왜 인종주의는 환상인가?

 

이 주제들을 다루는 각 장의 말미에 친절하게 요약돼 있는 내용을 다시 반복할 필요는 없을 테지만 지젝에게서 과연 무엇이 새로운가는 잠시 소개할 필요가 있겠다. 가령, 지젝은 대부분의 현대철학자들, 특히 포스트모더니스트들과는 달리 데카르트의 ‘코기토’를 근대적 주체로서 결코 포기하지 않는다. 하지만, 이때 그가 말하는 주체(subject)는 ‘자기로의 철회’라는 극단적 상실의 결과로 이르게 되는, 부정성의 텅 빈 지점이고 텅 빈 공간이다. 그리고 이 텅 빈 자리는 주체화(subjectivization)의 과정을 통해서 채워지는바, 주체화란 우리들 자신을 언어 등과 같은 상징적 질서에 종속시키는 과정이다.

 

여기서 전제되는 것은 ‘주체’와 ‘주체화’의 차이이며, 이 차이는 하이데거에서 존재와 존재자 사이의 ‘존재론적 차이’에 견주어 ‘주체론적 차이’라 이름붙일 만한 것이다(지젝의 철학박사학위 논문은 하이데거에 관한 것이었다). 순수한 부정성으로서의 주체는 아무런 내용물도 갖지 않는 텅 빈 장소이자 공백이지만, 이 공백은 언제나 주체화가 실패하는 지점을 표시한다. 이러한 주체로서의 코기토를 전면에 내세운다는 점에서 지젝은 근대(모던) 주체철학의 계보를 계승한다. 하지만, 그의 주체철학은 탈근대(포스트모던)의 탈-주체철학 이후에, 그것을 비판/극복한 자리에서야 비로소 도래 가능한 철학이다. 그것이 포스트모던 이후, 즉 포스트-포스트모던의 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우리에게, 지젝이 ‘우리 시대의 철학자’로서 자리할 수 있는 이유이다. 그리고 이러한 의의를 우리는 그가 다루는 다른 주제들에서도 확인해볼 수 있다.       

 

아직 현재진행형인 지젝의 사상을 안내하는 여정의 끝에서 저자는 지젝의 이론에 대한 우리의 이해가 소급적으로 변화하게 될 것이고,“한마디로, 지젝은 존재하게 될 것이다!”라고 결론을 내린다(미래에 ‘존재’하게 될 것이기에 그는 현재 ‘유령’이다.) 그러한 예언을 다만 미래의 것으로 제쳐놓는다 하더라도, 적어도 1989/1991년 이후의 탈냉전 시대, 그리고 2001년 9.11 이후에 '가능한 철학'이란 무엇인가를 가장 잘 보여주고 있는 지젝의 작업들은 그가 어쩌면 '우리 시대의 헤겔'일지도 모른다는 걸 암시해준다.

 

그리고, 마이어스의 책은 이 ‘또 다른 헤겔’ 입문서로서 현재로선 더없이 유익한 길잡이이다(이 책을 통해서 우리는 제대로 ‘지젝거리는 법’을 배울 수 있다). 그리고, 그런 의의를 책의 제목에 반영하자면, "누가 슬라보예 지젝을 미워하는가"보다 더 적절한 것은 "누가 슬라보예 지젝을 두려워하랴?"가 될 것이다. 비록 그가 유령이라 한들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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