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우리 이론 어디로 가는가 - 現代 韓國의 自生理論 20
교수신문 엮음 / 생각의나무 / 200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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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 흥미로운 학술 저널리즘 기획서를 읽었다. 이 책은 교수신문에서 연재되었던 한국 자생이론에 관한 기획기사를 엮어낸 책이다. '한국의 자생이론'. 이 말 자체가 한국 학계의 한계를 담고 있다. 이론이란 보편적인 논리와 언어로 세계를 해석한 체계가 되어야 할 텐데, '한국의 자생이론'이란 기획 아래 특별한 케이스의 이론들을 소개해냈다는 것은 그만큼 이 땅에서 난 이론들이 턱없이 부족했다는 증거가 된다. 그러나 20개로 선정할 만큼의 한국 자생이론들이 있다는 것은 한국 땅에도 이론의 수입상들만이 아니라 창조적인 학자들도 있다는 한 줄기의 희망을 보여준다.

그 자생이론들을 만들어낸 학자에는 대중적으로 잘 알려진 백낙청, 김용옥, 김지하, 송두율 등도 있고 최창조나 박동환처럼 처음 듣는 학자도 있다. 이들의 삶과 이론을 적은 분량에 충실히 소개하고 또 그 장과 단을 분명히 밝혀 비판적으로 제시하기란 쉽지 않다. 더욱이 이들과 같은 전공이 아니고 기초적인 지식이 대단하지 않는 일반독자에게는 정확히 그들의 목소리가 무엇인지 파악해내기도 어려운 점이 많다. 그렇지만 대개의 탄탄한 학술 저널리즘이 그렇듯 일반독자들에게 이론의 대강의 요지와 그 현재성과 시사하는 점을 밝히는 데에는 어느 정도 성공하지 않았을까 한다. 그렇기 때문에 현재 한국 학계의 돌아가는 모양을 알고 싶은 독자들과 새내기 인문사회과학도가 훑어 읽으면 도움이 많이 될 것이다. 게으른 수입상들이 판치는 강단에 실망한 독자들이여, 그래도 아직 성실한 학자들은 많이 있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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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기말 블루스 창비시선 149
신현림 지음 / 창비 / 1996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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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현림의 시들을 읽는다. 신현림을 처음 알게 된 것은, 어느 얇은 잡지에서였다. 그녀의 순탄치만은 않은 20대를, 나는 거기서 읽었다. 그러니까 나는 그녀의 시보다 그녀의 삶을 먼저 읽은 것이었다. 그녀의 스산한 20대에서 詩들은 피어올랐다. 「나의 이십대」라는 시에도 거칠게 그 삶이 기록되어 있다. 그녀의 이십대가 새롭지만은 않았기에 어떤 시적인 충격은 얻을 수 없지만, 진실된 삶의 모습은 얻을 수 있었다. 아마도, 자기 삶을 시로 쓰는 것은 가장 쉬운 일이면서도 가장 어려운 일이리라.

'빈민가 담벼락 같은 가슴을 뚫고 겨울이 온다'(「슬픔의 독을 품고 가라」)라는 표현이나 '우울하도다 개 같은 세월 / 승냥이나 되어 컹컹 울어나 보고 싶도다'(「제니스 조플린과 함께」)라는 우울과 절망의 정서, 그리고 블랙유머. 나는 이 시인이 아마도, 최승자에게서 영향을 받지 않았는가, 하는 추측을 해보았다. 그러나, 무슨 상관 있으랴. 이런 시들은 허허로운 바람이 되어 내 가슴을 파고든다.

사진, 판화, 꼴라주 등을 활용한 시들은 형식을 파괴할 정도라거나, 특별히 전위적이지는 않지만 시집 전체로 볼 때는 몇몇의 액센트를 부여하고 있다. 그녀의 '첫사랑인 시각적인 매혹'은 시를 해체시키지 않고 시에 옷을 입히고 있는 셈이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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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와 해석 - 안병무전집 1 안병무 전집 1
안병무 / 한길사 / 1993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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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병무의 민중신학은 크게 말해서 탈식민 담론에 속하는 실천적 성격의 제3세계 신학이라고 말할 수 있다. 그렇기에 남미의 해방신학과는 유사한 문제의식을 공유하고 있다. 또한 부정한 현실세계를 단호히 비판한다. 이것은 독재정부에 항거한 안병무의 삶으로도 쉽게 알 수 있는 것이다.

안병무 전집의 첫 번째 권인 <역사와 해석>은 3부로 나누어져 있다. 제1부는 '고전(古典)으로서의 성서'이고 2부와 3부는 각각 구약과 신약에 대해 다루고 있다. 그 중에서 1부는 이 책의 가장 중요한 대목이 아닌가 싶다. 신학적 전문지식이 전무한 사람도 이해하기 쉬운 말들로 설명했고 성서를 해석하기 전에 성서의 의미를 말해주고 있다. 성서는 고전으로서 인간사의 온갖 것들이 실려있는데, 성서를 보는 눈을 과학적 관점으로만 고정시키거나 지엽적인 사실들에만 둘 것이 아니라 역사적인 해석으로, 그 성서 안의 역사주체를 민중(오클로스 ; 민중)이라고 각각 선명한 예를 들어서 말한다.

2부와 3부에서 다루는 구약, 신약은 <역사와 해석>이라는 책 제목에서 어긋나지 않게 역사적 해석으로 다시 쓰여지는 성서이다. 신학과 사회학에 무지한 나로서는, 안병무의 사회학적 눈으로 보는 성서가 어떻게 나타나는지 나는 정확히 이해하기 힘들다. 다만, 그의 민중적이며 실천적인 신학이 한국이라는 '지금 여기'의 시공간에서 어떻게 성서를 다시 읽어내는가를 조금씩 감지할 뿐이다. 나는 <창세기>의 창세설화가 두 화자의 목소리가 겹쳐지는 바람에 성서의 시작부터 어긋남을 보여준다는 사실, 그 이상으로 '따라서 우리에게는 이 역사 안에서의 현재에서 책임지는 존재로 살아가는 길만이 남아 있다.(168쪽)'라는 말을 기억해야 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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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평역에서 창비시선 40
곽재구 지음 / 창비 / 198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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확실히 마음은 몸을 따른다. 겨울이라던가? 몸이 느끼는 한기는 마음으로 전해진다. 그러더니만 가을에는 느낄 수 없던 따스한 서정시들이 김이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호빵처럼 성큼성큼 다가온다. 가을에는 낙엽이 뒹굴면서 질러대는 비명 때문에 온통 절망과 비탄과 절규밖에 보이지 않더니만, 겨울은 힘이 세다. 따스한 시들을 자석처럼 끌어당기는 겨울은.

여기, 우리 앞에 고개를 내민 곽재구의 시들도 겨울의 온기를 지니고 있다. 이 시집에 실린 표제시 '사평역에서'와 '그리움에게'같은 절창의 시도 계절적 배경이 겨울이다. 시린 겨울, 전라선의 시골역을 지나치는 기차 안에서 그리움에 사무치고, 소박한 이웃들의 풍경에 녹아든다. 시에 구질구질한 삶이 담겨져 있고 털장갑 같은 온기가 묻어있다. 익숙한 간이역의 한 자리에는 독자 몫의 한 자리가 비워져 있을 법도 하다.

삶의 언저리, 삶의 모서리를 파고드는 그의 시선은 그대로 언어가 되고 시가 된다. 이토록 詩眼이란 보통 사람과는 다른 것일까. 평범한 삶의 구석을 옮겨놓았음에도 이렇게 아름다울 수 있다. 주변부의 그늘를 향하는 그의 눈빛은 정답고 맑다. 그러나 '後記'에 실린 그의 말을 들어보면; '한 시대의 삶과 시가 공유해야 할 필연적인 과제들을 절실하게 느끼기 시작했던 내 이십대 후반에 내게 처음 찾아온 생각은 서정시에 관한 것이었다. 그것도 종래의 전통적인 서정시의 범주에서 한 걸음도 더 나아가지 않고 오히려 더 후퇴한, 오천년 우리 민족의 역사와 삶 속에 녹이 탱탱 슨 우리만의 뜨거운 감성들을 되찾아 우리 민족 고유의 튼튼한 서정시를 만들어보고 싶었던 것이 나의 꿈이었다.'라는데, 그 꿈은 아름다운 문제의식을 담고 있는 것이다. '跋文'을 참고해 보면, '대학의 교양과정 시절부터 지금에 이르기까지 그가 반도의 남쪽 끝 어디거나, 지리산이나 섬진강 등지를 비닐 백 하나만으로 떠돌아다닌 것'을 알 수 있는데, 며칠 전 TV 안에서 그것을 재확인할 수 있었다. 발로 쓴 시, 삶으로 쓴 시, 그것은 너무도 쉽게 드러나는 곽재구 시의 비밀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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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춘문예 당선시집 1998
송주성 외 / 문학세계사 / 1998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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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춘문예는 명백한 그 한계와 폐해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한국문단의 입구이자 잔치이다. 이 책은 그 중에서도 당선시들을 모아놓은 일종의 스크랩북이다. 그래서 이 스크랩북은 시 독자들에게 오랫동안 찾아 읽혀지는 영광을 얻지 못할 것이다. 그러나 이 시집에서 1998년이란 기점에 새로이 들고 일어난 詩싹들의 얼굴 윤곽을 어느 정도 가늠하는 것은 가능하리라.

5년이 지난 이 때에, 내가 발견한 낯익은 이름은 손택수 하나뿐이다. 지금도 그렇지만 이때의 손택수는 모어의 부드러운 살결과 강물 같은 서정을 보여주는 시들을 써내고 있었다. 이외에도 다른 '견습시인'들의 시들도 저마다 기성시인들 이상의 상상과 언어의 빛남을 자랑한다. 펜이 지나간 자리마다 찬란한 시의 족적을 남기는 시인은 많지 않아서 기성시인들의 시집에 들어있는 모든 시가 값진 시는 아니다. 그러나 시가 아직은 마침표가 아니고 물음표인 견습시인들이 스스로를 채찍질하며 쓰고, 그리고 고르고 고른, -- 그래서 '칭찬 받은 시'들만을 엮은 이 시집은 그보다 좀더 치열하다. 지금은 그들이 어떤 시를 쓰고, (혹은 시를 쓰지 않고 있는지도...) 어떤 삶을 살아내는지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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