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은 모두 다 똑같다.
이것이 도대체, 사상일까요? 나는 이 신기한 말을 발명한 사람은 종교인도 철학자도 예술가도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민중의 주막에서 솟아난 말입니다. 구더기가 끓듯이 어느 틈엔가, 누가 먼저 말했다 할 것도 없이 꿈틀꿈틀 솟구쳐 전세계를 뒤덮고 세계를 난처하게 만들었습니다.
이 신기한 말은 민주주의와도, 또한 맑시즘과도 무관합니다. 그건 틀림없이 주막에서 못생긴 남자가 미남자를 향해 내뱉은 말입니다. 단순한 초조감입니다. 질투입니다. 사상이고 뭐고 있을 리 없습니다.
그런데 그 주막에서의 질투어린 고함이 묘하게 사상다운 표정을 띠고 민중 속을 누비고 다녀, 민주주의와도 맑시즘과도 전혀 무관한 말인데도 어느 틈엔가 정치 사상이며 경제 사상에 얽혀 들어 엉뚱하게 떳떳치 못한 형국이 되고 말았습니다. 메피스토인들, 이런 터무니없는 발언을 사상으로 탈바꿈시키는 묘기는, 차마 양.심.에. 부.끄.러.워. 주저했을지도 모릅니다.
인간은 모두 다 똑같다.
이 얼마나 비굴한 말입니까. 남을 업신여기는 동시에 자신마저 업신여기고, 아무런 자부심도 없이 모든 노력을 포기하게 만드는 말. 맑시즘은 노동하는 자의 우위를 주장합니다. 다 똑같다, 라고는 하지 않습니다. 민주주의는 개인의 존엄을 주장합니다. 다 똑같다, 라고는 하지 않습니다. 오직 유곽의 호객꾼만이 그렇게 말합니다. "헤헤헤, 아무리 잘난 척 해 봤자, 다 똑같은 인간 아닌감?" (186-187쪽)
⇒ 이런 블랙유머는 질펀한 술자리에서나 들을 수 있는, 아주 진귀한 것으로, "시는 알콜의 대체"라는 평소의 생각을 좀더 건설적으로, 좀더 논리적으로 확장시켜서 "독서는 술자리의 대체"로 바꾸어 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