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출처 : 바람구두 > [다시 보는 필화사] 장정일의 『내게 거짓말을 해봐』

대한민국의 문화적 소양과 예술가의 운명
  장정일의 『내게 거짓말을 해봐』 [위지혜] 2005-12-26 오전 11:12:57 
 
『내게 거짓말을 해봐』의 작가 장정일 /사진제공 <데일리서프라이즈>
▲ 『내게 거짓말을 해봐』의 작가 장정일 /사진제공 <데일리서프라이즈>

안타깝게도 지금 내 손에는 『내게 거짓말을 해봐』가 없다. 구입하려고 해도 구입할 수가 없고, 학교 도서관의 자료를 검색해도 도대체 나오지가 않는다. 공권력의 가공할 위력이다. 그러니 새롭게 읽지 못한 상태에서 기억에 의존하여 글을 써 내려갈 도리밖에 없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1996년 『내게 거짓말을 해봐』가 출판되었을 때 재빨리 책을 사서 읽었다는 사실이다. 『아담이 눈뜰 때』를 접한 직후부터 장정일은 관심이 많이 가는 작가였기에 『내게 거짓말을 해봐』를 읽으며 이런저런 생각을 넓게 펼쳐 나갔던 기억이 새롭다.

내가 샀던 『내게 거짓말을 해봐』는 아마 강준만 교수가 소장하고 있을 것이다. 음란성 여부로 『내게 거짓말을 해봐』의 작가 장정일이 재판을 받을 무렵 강준만 교수는 장정일에 관한 글을 쓴 적이 있다. 그 글에서 강 교수는 『내게 거짓말을 해봐』에 대한 논의를 제대로 펼칠 수 없다고 적어 두었다. 책을 구할 수 없었던 까닭에 읽지 못했다는 것이다. 당시 내 생각은 이러했다. ‘왕성한 필력을 자랑하는 강준만 교수가 이 문제를 사회적 의제로 부각시키면 좋겠군. 法典과 예술의 거리를 자리매김하는 데 도움이 될 거야. 그렇다면 『내게 거짓말을 해봐』가 내 수중에 있는 것보다 강준만 교수에게 넘어가는 게 낫지 않을까.’ 『내게 거짓말을 해봐』를 우편으로 강 교수에게 부쳤던 이유다.

먼저 『내게 거짓말을 해봐』의 재판 관련 일지를 보자. 이 일지는 『장정일: 화두, 혹은 코드』(행복한 책읽기, 2001)의 「변론기: 장정일을 위한 변론」이라는 글 뒤에 붙어 있다. 「변론기」를 쓴 사람은 훗날 법무부장관을 역임하게 된 강금실 변호사다. 당시 강금실 변호사가 장정일의 변호를 맡았다는 사실이 새삼 흥미를 끄는 바 있다.

1996. 10. 10 김영사에서 출간
1996. 10. 31. 간행물윤리위원회에서 관계당국에 제재권고 결정
1996. 11. 14. 김영사 상무이사 김영범 씨, 음란물판매죄로 구속
1996. 12. 30. 벌금 700만원 선고
1996. 12. 31. 장정일 씨, 프랑스에서 귀국하여 자진출두
1997. 1. 7. 검찰은 장정일 씨에 대하여 구속영장을 청구하였으나 신형근 판사는 도주의 우려가 없다는 이유로 기각
1997. 1. 13. 장정일 씨, 음란문서제조죄 등으로 불구속 기소
1997. 5.30. 서울지방법원 김형진 판사는 작가 장정일 씨의 1심 재판(97고단172호) 선고기일에 실형 10월을 선고하고, 반성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법정구속
1997. 7. 23. 항소심재판부(97노4055호, 재판장 한정덕 부장판사)는 장정일 씨에 대한 보석결정하여 석방
1998. 2. 18. 항소심에서 징역 6월에 집행유예 1년의 선고를 받고 상고
2000. 7. 상고심(대법원 98도679호)에서 상고기각 확정

논란은 『내게 거짓말을 해봐』의 외설을 형법에서 규정하는 ‘음란’으로 규정할 수 있는가를 두고 벌어졌다. 38세의 유부남과 18세의 여고생이 벌이는 가학/피학적인 성행위라든가 폰섹스, 구강성교, 항문성교 따위를 어떻게 볼 것인가가 문제였다는 것이다. “익숙한 사고방식과 기성논리를 통렬하게 넘어서고 있다. 그러므로 예술의 범주에서 이해해야 한다.”라거나 “성을 통한 자기모멸을 시도함으로써 경쟁사회로부터 면책과 휴식을 꿈꾸는 한 인간의 심리적 정황을 핍진하게 묘사하고 있으므로 예술 장르 속에서 접근해야 한다.”라는 것이 당시 문학계의 입장이었다. 물론 완고한 법원이 이를 제대로 이해했을 리 만무하다.

나의 경우라면 『내게 거짓말을 해봐』를 읽으며 장정일 식의 강렬한 사회성을 느낄 수 있었다. 가부장적인 체제가 어떻게 재생산되는가가 파악되었기 때문이다. 다시 말한다면 가부장적인 우리 사회의 면모를 장정일 식으로 드러내는 데 필요했던 방식이 포르노였다는 것이다. 실제로 정신분석학적인 방법을 도입해서 접근한다면 『내게 거짓말을 해봐』의 이런 측면이 흥미롭게 느껴지기도 한다. 라캉을 공부하면서 내내 『내게 거짓말을 해봐』를 새삼스럽게 떠올렸던 까닭도 여기서 기인한다. 혹 관심이 있으시다면 과도한 훈육(체벌)과 가학/피학적인 인간의 생산 관계에 대해 공부를 해 보시라. 그리고 『내게 거짓말을 해봐』를 읽으시라. 짚이는 바가 분명 있을 것이다. 그래서 이런 측면이 제대로 이야기되었더라면 조금 더 나아지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장정일도 이런 측면을 의도했던 듯하다. 『장정일의 독서일기』(하늘연못, 1997)의 187쪽부터 193쪽까지는 “「『내게 거짓말을 해봐』에 대해 바로 말함」이란 쓸데없는 글”인데, 거기에는 자신의 “소설이 끈질기게 천착했던 두 개의 사항”이 소개되어 있다. “하나는 이번 소설에서처럼 나라는 개체를 낳아 준 아버지를 씹새끼로 만드는 것으로 다른 또 하나는 『너희가 재즈를 믿느냐?』에서 시험된 ‘그는 성냥으로 담뱃불을 붙이고 라이터를 탁자에 놓았다’ 식의 구문은 물론이고 이야기가 지탱해야 하는 최소한의 개연을 파괴함으로써 나의 실존과 호구의 근거가 되는 소설의 모든 형식을 부정하는 것으로 나타난다.” 나는 작가의 이 말에 동의한다. 또한, “한 마디로 이 소설은 성을 주제로 하지 않는다”라면서 “소설 속에 가장 많이 언급된 묘사가 곧바로 그 소설의 주제를 이루지는 않는다”라는 발언에도 동의한다.

그런데, 준엄하신 법관 나리들이 나와 같을 리 없다. 가부장의 자리에 올라서고 싶은 그들이 어떻게 가부장적인 사회를 부정하겠는가. 그들이 ‘체제/아버지/선생님’의 질서와 맞대면하여 그 질서를 균열시키는 데 동의하리라고 상상할 수 있는가. 그들이 어느 세월에 정신분석학을 공부하여 한 인간의 상처와 내면을 이해하려 들 것이며, 만에 하나 그러한 방법론을 공부했다고 한들 무리 없이 작품에 적용할 수 있겠는가. 그저 법의 이름으로 ‘심판’하고 ‘단죄’하면 간단할 것을!

우리 사회엔 문화적으로 소양이 부족한 이들이 너무도 많다. 이것도 심각한 문제인데, 더 심각한 일은 이를 부끄러워 할 줄 모르는 인간들이 꼴사납게 권력을 휘두르고 있다는 점이다. 이런 현실을 가끔 목도하곤 하는데, 『내게 거짓말을 해봐』 필화 사건도 여기에 해당한다. 그래서 생각하게 된다. ‘이 나라가 나름의 세련을 구가하려면 오랫동안 지긋지긋한 시간을 기다려야겠군. 이게 정신 박힌 예술가의 운명이군.’ 아마 운명이란 단어는 이럴 때 쓰는 게 맞을 거다.   

홍기돈 (문학평론가)

출처 : 컬쳐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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