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출처 : 바람구두 > [다시 보는 필화사] 남정현의 「분지」 사건

주체적 근대성의 소신, 친미반공 이데올로기와 맞서다
  [다시 보는 필화사] 남정현의 「분지」 사건 [위지혜] 2005-10-27 오후 6:07:42 
 
「분지」의 작가 남정현
▲ 「분지」의 작가 남정현

이달부터 새로운 기획으로 독재 정권에 의해 필화를 겪었던 작가와 사건을 조명해 보는 <다시 보는 필화사>를 매달 1회 총 10회 연재합니다. 독자 여러분의 많은 관심 바랍니다. / 편집자

남정현의 소설 「분지(糞地)」는 1965년 3월 『현대문학』지에 발표되었다. 그리고 1965년 7월 남정현은 반공법 위반으로 구속되었다. 이 사건은 1년여 동안 미결로 남아 있다가 1966년 9월, 이와 관련한 첫 공판이 열렸으며, 작가는 1967년 6월 서울고등법원에서 유죄선고와 집행유예 판결을 함께 받았다.

검찰의 공소 요지는 「분지」가 1)계급의식과 반정부의식을 고취, 2)반미감정을 조성, 3)북괴의 대남전략에 동조하였다는 것이다. 그러나 아마도 그보다 더 결정적인 이유는 이 작품이 1965년 7월 북한 노동당 기관지인 『조국통일』에 전재되었다는 데 있을 것이다.

애초 3월에 발표되었을 당시에는 아무 말도 없다가 북한의 지면에 수록되자마자 작가가 구속되었다는 사실은 이를 증명한다. 이 사건은 이후 문단과 사회 각층에 문학과 언론의 자유 문제, 당대 현실에 대한 문학의 참여 문제와 관련하여 많은 화제를 불러 일으켰고 상당한 논쟁을 촉발시키기도 했다.

작가의 공판에는 안수길, 이어령 등의 문인이 변호인측의 증인으로 참여했고, 한승헌 변호사는 표현의 자유와 반공법의 모호한 적용으로 인한 인권의 문제를 제기하면서 재판부의 공소이유를 반박했다. 당시의 언론은 “우리의 민주주의를 스스로 창살없는 감옥으로 만드는 우(愚)”(조선일보)를 범해서는 안된다고 작가를 옹호했으며 문단 안팎의 여러 인사들이 이 사건의 반인권적, 반민주적 행태를 비판한 바 있다.

이 사건을 계기로 우리 문학은 문학과 정치의 문제, 표현의 자유와 사상의 자유에 관해 직접적 개입과 논쟁의 물꼬를 틀 수 있었다. 이후 1970년대에 박정희 정부의 문화탄압이 더욱 강화되었음을 생각한다면 「분지」사건은 불행의 신호탄이면서도 또한 유신독재정치의 본질을 말해주는 상징적 사건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분지」는 그렇다면 당시 검찰의 주장처럼 반미용공의 사상을 조장시키는 작품인가?. 이런 식의 질문은 사실 이 사건에 대한 올바른 접근을 유도하지 못한다. 한 작가가 당대의 현실을 고뇌어린 열정으로 투시하고 형상화한 작품을 ‘반미’나 ‘용공’의 꼬리말을 달아 불법화시키는 행위 자체가 반인권적인 폭력이라는 사실이 먼저 주목되어야 하겠기 때문이다.

소설가 남정현의 대표 소설들을
묶어 만든 「남정현 대표소설선집」
(실천문학사, 2004)

당시의 변론서나 변론증언은 당대의 엄혹한 권력의 판단기준 내에서 작가의 무죄를 주장하기 위해 이 작품이 반미용공의 사상과 무관하거나 직접적 연관이 없다는 점을 애써 강조한 것이지만 오늘의 시점에서 이 문제는 좀 더 근본적인 시각으로 조명될 필요가 있다.

「분지」에서 드러난 바 미군이 한국사회의 권력으로 군림하고 한국의 민중들이 미군의 횡포 아래 고통받고 있는 현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회전반에는 미국추종의 세력들이 만연해 있는 현실은 그것이 구체적이고 심층적인 체계 속에 드러나 있지 않다 하더라도 당대의 한 진실임이 틀림없다.

그렇다면 이러한 현실을 방치한 채 친미 반공의 이념적 잣대만을 신성불가침으로 내세우는 정부는 작가를 검열할 정당성을 근본적으로 상실하고 있었던 것이다. 말하자면 「분지」는 당시 정권의 부당성과 비합리성을 정면에서 고발하고 있는 작품이며, 정부는 그러한 작가의 날카로운 현실인식을 국가의 사법적 권위를 동원하여 통제할 필요성을 느꼈던 것이다.

「분지」가 북한 노동당 기관지에 전재되었다는 사실은 이러한 정권의 필요성에 하나의 명분을 제공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반공 이데올로기야말로 한국전쟁의 참화와 공포에서 아직 벗어나지 못한 당대 사회에서 가장 효과적이고도 위력적인 통제논리였기 때문이다.

실제로 「분지」는 미국에 종속되어 있는 한국의 정치현실뿐 아니라 미군과 함께 들어온 서구문화에 무방비로 노출되어 정신적 주체성을 가지지 못한 한국 사회문화 전반을 통렬하게 비판하고 있다. 근거없는 미국병에 대한 작가의 문제의식은 전작인 「너는 뭐냐」를 통해서도 분명하게 드러난다.

한일협정을 둘러싼 대일 굴욕외교 반대투쟁이 당시의 한국사회 전반을 휩쓸고 있던 분위기를 생각한다면, 작가의 이러한 민족주체성의 문제의식은 정권의 안정성을 위협하는 불온한 것이었다. 또한 “도시의 미관과 경제의 성장을 위해서” 무차별적으로 전국을 헤집어 놓았던 개발열풍, 그리고 그 화려한 도시 속에서 가진 자들의 이익만이 살쪄가는 현실의 불평등에 대한 고발 역시 당시의 정부로서는 적잖이 불편한 것이었음에 틀림없다.

“빌딩의 층과 수가 번창하여 갈수록 이렇게 자꾸만 밑으로 패망하여 가는 이 참담한 생활”은 근대화 논리 속에 피폐해져가는 당대 민중의 삶을 정확하게 적시하고 있는 것이다. 게다가 「분지」는 “이런 세상이란 말할 것도 없이 이런 세상이란 사실을 구체적으로 표현할 수 있는 자유마저도 없는 세상이 바로 이런 세상”이라는 작중인물 홍만수의 발언이 얼마나 정확한 분석인지를 작가의 구속을 통해 사후에 증명하지 않았는가.

물론 이러한 현실인식의 형상화나 효과문제에 대해서는 좀 더 정밀한 분석이 필요할 것이다. 그러나 적어도 「분지」가 당대의 삶을 가로지르는 핵심적 문제에 대해 의미심장한 발언을 하고 있는 작품이라는 사실은 분명해 보인다. 그러므로 「분지」 필화사건은 이중으로 불행한 사건이다. 기본적인 표현의 자유마저도 억압당한 문학의 고초라는 측면에서 그렇고 작품 속에 내재한, 당대로서는 발견하기 드문 현실진단의 날카로운 목소리를 정면으로 마주하는 일 자체가 차단당했다는 측면에서 그렇다.

강정구 교수의 발언을 두고 때 아닌 사상의 자유논쟁이 벌어지고 있는 지금, 여전히 국가보안법의 개폐문제가 반공 이데올로기의 테두리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지금, 남정현의 「분지」가 지니는 문제성은 지극히 현재적이다. 홍만수를 없애 버리기 위해 향미산 전체를 폭파하려는 미군의 기획이 전쟁의 참화가 지속되고 있는 이라크에 겹쳐지는 대목에서는 더욱 그렇다.

서영인 (문학평론가)

출처 : 컬쳐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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