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출처 : wasulemono > 라깡의 신비화?
욕망 이론
자크 라캉 지음, 권택영.민승기.이미선 옮김 / 문예출판사 / 1994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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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깡 원저작의 번역서로서는 아직까지 이 책이 유일하다. 번역이 잘 안 되는 이유는 자명하다. 영어나 불어 실력이 있다고 라깡을 번역할 수 있는 건 아니다. 적어도 라깡의 지적 깊이와 폭을 아우르겠다는 열정 없이는 아무도 라깡 저작을 번역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이 책은 <에끄리>, <여성적 성욕>(편저) 등 라깡의 저작 중 이해에 필요한 몇 편의 논문을 가려서 번역하였다. 라깡 저작 전체를 인간의 육체라고 한다면 아마 이 정도 분량은 엄지 손가락 정도나 되지 않을까 싶다.

그러나 미약하나마 이 정도의 번역은 최소한 라깡의 원저작을 접하고 싶어하는 이들에게는 가뭄 속의 몇 방울 빗줄기 정도는 되리라 생각한다. 번역에서 문제가 되는 것은 오역의 가능성인데, 내가 보기에 이 번역서의 작업자들의 경우 번역에 있어 그다지 큰 오류를 범한 바는 없다고 생각한다. 라깡을 신비화한다, 라깡 이해가 부족하다 등의 견해가 있기는 하지만, 무엇을 근거로 이야기하는지 선뜻 감이 오지 않을 뿐이다. 오히려 이 정도의 번역이라도 되었다는 것이 다행이라 여겨진다. 그리고 이 번역서 이후 그럴 듯한 번역서가 나오지 않은 이유 중 하나는 적어도 이 번역서의 작업자들의 수준이 적어도 형편없는 수준이 아니라는 점을 반증해 준다고 생각한다.

라깡 하면 거울단계나 상상계, 상징계, 아버지의 이름, 팰러스나 욕망, 기표나 결여 같은 용어들을 떠올리게 된다. 하지만 실제로 라깡의 문제 의식은 시간의 흐름에 따라 계속 유동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들은 계속 상상계와 상징계, 거울 단계 같은 초기의 라깡 문제 의식만을 동어반복적으로 되풀이하고, 그 이후로 나아가지 못하는 느낌이다.

라깡의 문제 의식을 창의적으로 계승한 지젝이 지적 유행화하면서 라깡에 대한 관심이 새로이 고조되고 있다. 지젝을 통해 본 라깡이 새롭게 느껴지는 것은 지젝의 창의적 접근에만 기원하는 것이 아니라 협소화된 틀로만 접근해 온 우리의 지적 풍토에도 어느 정도 문제가 있는 듯하다.

작년에는 푸코, 올해는 라깡 하는 식으로 단기간 정복에 익숙한 우리의 모습을 되돌아 볼 필요가 있다. 적어도 라깡의 이론이나 학설은 수십년에 걸친 말과 글쓰기의 결과였다. 그 결과를 받아들이는 데 수십 년이 걸리지는 않는다 하더라도 최소한 몇 년을 투자되어야 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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