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국

― 최승자



왕의 영토는 무한 대륙이었다.

즉위한 그날부터 왕은 자기 영토의 중심에,

검은 의자 위에 앉아 검은 거문고로

검은 죽음의 가락들을 탄주하기 시작했다.

왕의 거문고 솜씨는 너무도 신적이어서,

그가 거문고를 뜯기 시작하자 맨 먼저,

허공을 날고 있던 모든 새들이 추락했고,

그 다음엔 모든 나무들이 키 큰 순서대로 쓰러졌고,

지상의 모든 기고 걷는 것들은 영원히 그 움직임을 멈췄다.

그가 신명을 다해 어둡고 깊은 죽음의 가락들을

하나씩 토해낼 때마다, 먼 대륙 끝이 하나씩 대양의 물 속에 잠겼다.

왕은 밥도 먹지 않고 잠도 자지 않고

검은 머리가 긴 백발로 변할 때까지,

검은 대양에 대륙을 삼키고

억조 창생이 물 속에 익사할 때까지,

자신의 온 생애를 기울여 죽음의 가락을 탄주했다.

어느 날 그가 필생의 신명을 기울여 최후의 연주를 끝냈을 때

무한 대륙의 영토는 사라지고, 무한 대양의 검은 물결이

바로 그의 발 아래서 남실거리고,

그가 탄주했던 그 모든 어두운 가락들은

귀곡성 같은 바람 소리로 변해 하늘을 가득 채우고 있었고,

그는 거문고를 안은 채, 이제 그의 영토의 전부가 된

의자 위에 앉아 흡족한 미소를 띠고 잠들어 있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