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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본과 지식인: 공병호의 경우

공병호(지음), <<핵심만 골라 읽는 실용독서의 기술>>, 21세기북스, 2004.

기업의 사원 교육을 대행해주고 자기 계발을 위한 프로그램을 제공하며, 일종의 컨설팅을 해주는 사람들은 꽤 오래 전부터 있어왔다. 이들 중에서도 널리 알려진 사람들이 펴내는 책이 베스트셀러가 되는 것은 새삼스럽지 않다. 정확하게 측정된 수치는 없지만 이들이 끼치는 영향은 무시할 수 없는 수준 정도가 아니라 막대하다는 것이 내 생각이다. 기업가는 이들에게 의뢰하여 노동자를 교육하고 이를 통해 노동자들은 자극을 받거나 결심을 하게 된다. 소극적으로는 회사에서 살아남기 위해 이들이 제시한 방법을 실천하며 적극적으로는 그 자신 성공 이데올로기의 신봉자가 된다. 그리고 그들이 쓴 책으로 반복적인 자습을 한다.

성공이데올로기 전파 체제는 산업교육이라는 이름으로 구축되어 있다. 생산성본부나 능률협회 등에서 내놓는 강좌들의 목표는 표면적으로는 노동자의 '자기 계발'이나, 기업에서 비용을 들여 실시하는 교육이 오로지 노동자만을 위한 것이 아님은 분명하다. 기업가는 핵심적인 이윤창출 요소인 노동력의 질을 높이고, 그들의 지식을 늘려 더 많은 것을 얻고자 이러한 교육을 실시하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교육의 목표는 기업가를 위한 이윤창출이다.

자유기업센터 소장과 자유기업원 원장을 지내고 지금은 공병호경영연구소 소장을 하고 있는 공병호는 널리 알려진 인물이다. 직장인들을 상대로 '다음 중 이름을 들어본 적이 있는 사람을 적어 보시오' 라는 설문을 하면 상위를 차지할 것이다. 간단히 말해서 강준만은 몰라도 공병호는 안다는 것이다. 그는 산업교육 강사를 넘어, 과거의 이력을 보건대 철저한 자유시장주의를 옹호하고 전파하는 이데올로그이기도 하다. 이런 그가 제시하는 독서법은 그가 밝히고 있듯이 독서법을 다룬 책들에서 얻어낸 정보를 재정리한 것이다. 그래서 그런지 어디선가 한번쯤은 본듯한 내용이고 딱히 해악을 끼칠만한 내용은 담고 있지 않으며, 오히려 유용한 방법과 제안이 아주 풍부해서 굳이 다른 책을 참조할 필요를 느끼지 않을 정도이다. 그러면 이 책은 제목 그대로 '독서의 기술'을 가르쳐 주고 있을 뿐이니 무해한 것으로 판단하고 받아들일 수 있는가?

그가 생각하는 독서의 목적은 다음과 같다: "내가 책읽기를 좋아하고, 이를 권하는 주요한 이유 가운데 한가지는 의도적이고 체계적인 독서야말로 정보와 경험을 조직화해서 시장에서 제대로 가치를 인정받을 수 있는 지식을 만들어내는 데 결정적인 공헌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의 독서 목적은 아주 간단하다. '시장에서 가치를 인정받을 수 있는 지식의 창출'이다. 읽어야 할 책은 이 목적에 부합되는 방향에서 선정된다. 세상의 모든 책이 읽을 가치가 있으나 목적이 다르면 똑같은 책에서도 얻어내는 것이 다를 것은 분명하다. 극단적인 예를 들어 논어論語를 읽으면서도 공병호는 '공자의 리더십', '논어에서 배우는 인재경영' 만을 생각할 것이라는 말이다.

독서의 방법 역시 시장적 가치 창출이라는 목적에 부합하는 방식의 것이 채택된다. 그는 방법을 제시하기에 앞서 독자의 상황을 다음과 같이 정리한다: "필자와 마찬가지로 늘 시간에 쫓기면서 살아가고 있지만 그런 분주한 생활 속에서 부지런히 책을 읽지 않으면 안되는 사람들" 그러면서 그는 "기존의 독서 방법을 다룬 책들은 속도감을 요구하지 않는 환경에서 생활하는 전문가들, 이를테면 문인이나 교수들에 의해 쓰여졌기 때문에 삶의 현장에서 매일매일 삶을 일구어가는 사람들의 수요와는 거리가 있는 경우도 많았다"고 평가하기도 한다.

'속도감', 이것이 핵심이다. 산업교육 강사들은 입만 열면 '하루가 다르게 변하는 세상'이라는 말들을 한다. 그런데 정말로 세상이 날마다 변하는가? 자신이 오늘 직장에서 수행하고 있는 업무는 어제의 것과 다른가? 육개월 전의 것과는 전혀 다른 능력을 요구하는가? 독서를 빨리 해야할만큼 '지식'이 매일매일 쏟아져 나오는가? 이런 물음에 긍정적인 대답을 내놓을 수 있는 직장인은 거의 없다. 그런데도 공병호와 동종업계 종사자들은 '현대의 직장인은 바쁘다. 아니 바빠야 한다'는 것을 무비판적으로 깔고 들어간다. 자주 반복해서 듣다보면 한가한 이들은 뭔가 잘못하고 있다는 불안감이 들 정도이다.

속도감이 강조되면, 그것으로부터 귀결되는 독서법은 하나 밖에 남지 않는다. 이 책의 제목처럼 "핵심만 골라 읽는 실용독서", 구체적으로 말하면 "새로운 독서법의 포인트는 정보를 읽는 속도와 빠른 속도를 유지하면서 건져 올리는 정보의 양과 질을 동시에 획득하는 방법" 뿐이다. 실용독서가 잘못된 것은 아니다. 나 역시 공병호의 이 책을 핵심만 골라서 읽었다. 275페이지를 읽는데 1시간이 채 걸리지 않았다. 핵심 부분에 밑줄이나 옆줄을 치면서 여백에 뭔가를 적어 넣으면서 읽었어도 그렇다. 이정도면 읽는게 아니다. 스캐닝scanning이라 해야 정확하겠다. 저자 스스로도 자기는 수없이 많은 책을 읽는다고 여기저기서 강조하고 있는데, 그렇게해서 만들어낸 것이 고작 이렇게 스캐닝 독서만 해도 되는 책이라는 점이 놀라울 정도다.

어쨌든 시장에서 유용한 가치창출이라는 목적과 속도감있는 책읽기라는 방법이 결합되면 책읽기도 "독서경영"이 된다. 그런데 이렇게 독서경영을 할때 독자에게 남는 것은 무엇일까? 공병호의 대답은 다음과 같다: "두뇌 속에 양질의 정보를 많이 입력하면 할수록 여러분은 정보를 가공해서 멋진 상품을 만들어낼 가능성이 그만큼 높아지게 된다." '멋진 상품'이라고? 독자가 자본가라면 이윤을 만들어 내어 자신이 가질 수 있는 멋진 상품일 것이고, 그가 노동자라면 자본가의 이윤 창출에 기여하는 노동력이라는 원자재로서의 상품일 것이다. 따라서 공병호가 제시하는 독서의 본질적 목적은, 부지런히 책 읽고 많은 지식을 습득해서 재빠르게 돌아가는 자본의 순환 사이클에 양질의 지식 원자재를 공급하는 것이라 할 수 있겠다.

공병호는 그람시가 말하는 '유기적 지식인' -- 또는 '기능적 지식인' -- 으로 분류할 수 있다. 그람시에 따르면 자본주의 기업가는 자신들의 이익을 조직화하고 더 큰 권력을 얻고 더 많은 통제력을 갖기 위해 자신들의 곁에 산업 기술자, 정치경제의 전문가, 새로운 문화와 새로운 법률체계의 조직가를 창출해낸다. 이들 지식인들은 자본의 이익에 철저하게 복무하기 위해 사회에 개입한다. 그리고 이들이 사회에 개입하는 방식 중의 한 사례를 공병호에서 볼 수 있다. 그는 그 자신이 자본에 의해 이용되는 지식인이면서 대중을 자본이 먹기 좋은 떡으로 재형성 해주고 그 과정에서 떡고물을 먹는다. 그는 자신을 "지적인 사업가"라 말하지만 엄밀히 말하면 '마름'에 불과하다. 그리고 그가 '지식인'이라는 이름으로 펼치는 언설들이 끼치는 해악은 상상할 수 없을만큼 크다. 신경 바짝써서 경계해야 할 무리들은 바로 이들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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