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출처 : 노부후사 > <인물과 사상> 종간

<인물과 사상>이 이번 33호를 끝으로 종간했다. 강준만은 서문에서 “인터넷이 활자매체의 목을 조르고 있다.”며 “모든 면에서 책은 인터넷의 경쟁상대가 되질 않는다. 지난 몇년간 그 이전과는 달리 시사적인 이슈를 다루는 책이 대중의 호응을 얻은 건 거의 없다.‘인물과 사상’은 그런 세상의 변화에 순응하기로 했다.”는 말로 종간의 이유를 설명했다. 그러나 내가 보기에 보다 근본적인 이유는 민주당 분당사태 이후 겪었던 마음가짐의 변화때문인 것 같다. 강준만은 서문 말미에서 이렇게 말했다. “내가 옳다고 믿는 게 이른바 '개혁'을 지지하는 사람들 절대 다수의 생각과 충돌할 땐 나의 퇴출만이 유일한 해법일 것”
1997년 창간 이후 <인물과 사상>이, 그리고 강준만이, 한국사회에 해온 일은 거의 기적에 가깝다. 이것이 과연 한 잡지와 한 개인이 이뤄낸 성과일까 하는 경외감마저 든다. 한국인들 내면에 들어박힌 '김대중 혐오, 호남 혐오'를, 보수언론 문제를, 외국인 노동자 문제를, 성적 소수자 문제를, 양심적 병역거부 문제를, 서울대 문제를, <인물과 사상>과 강준만은 뒷골목에서 논의의 장으로 끄집어냈다. 이는 오늘날의 한국사회에 산적해 있는 거의 모든 사회적 현안이었다. 요컨대 <인물과 사상>과 강준만은 97년 이후 쏟어진 거의 모든 담론들을 생산해냈다는 말이다.
이게 말처럼 쉬운 일이었을까? 그가 임지현이 말한대로 "인간적 상처에 대한 감수성이 결여된, 즉 상처받을 수 있는 마음이 없는 반파시즘의 기계적 투사"였기 때문에 가능했을까? 지금에야 나아졌지만, 2000년대 이전까지 그는 <인물과 사상>과 관련하여 '자칭 지식인'들의 십자포화를 받았다. 게중에는 이런 말도 있었다. "두더지의 슬픈 초상"(임지현). 그렇게 반파시즘 운운하는 인간이 이런 인신 공격성 어투를 스스럼없이 내뱉을 수 있는 공간이 한국사회이다. 그리고 강준만은 그곳을 지원군 하나 없는 단기필마로 헤집고 다녔다.
강준만이 그 기간동안 싸우기만 한 것이 아니다. 아마도 그는 한글이 문자언어로 뿌리내린 이래 가장 많은 한글 텍스트를 생산한 이 중의 하나로 평가받을 것이다. <대중매체 이론과 사상>이나 <세계의 방송매체> 등 그의 전공분야인 언론과 관련된 저작뿐 아니라 한국 현대사 50 여년을 15권에 담아낸 <한국 현대사 산책> 등에서도 그의 필력은 오롯이 빛난다. 그래, 말의 바른 의미에서 <한국 현대사 산책> 하나만으로도 강준만은 한국 역사학계에서 이름을 남길만 하다.
이유야 어찌됐든 강준만이 떠났다. 아니, 제자리로 돌아갔다. 남은 자들이 할 수 있는 일이란 그의 행적을 되돌아 보는 일 뿐일 것이다. 이로써 한 시대가 마감했다.
<인물과 사상>이 종간한 날, <조선일보>는 "보수 진영을 악으로 분류해 강하게 비판해온 그가 이 글에서 '노 정권과 그 지지자들이 한나라당에 대해 선악 이분법을 구사하는 걸 보고 경악했다'고 말한 것은 역설적이다."라고 여유있게 평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