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출처 : 갈대 > 진중권 - 김훈의 우익삼락

김훈의 우익삼락(右翼三樂)

: 43 : 4

최근에 소설가 김훈이 재미있는 얘기를 한 모양이다. 나는 그의 그 유명한 소설을 아직 안 읽었는데, 거기에는 두 가지 이유가 있다.
하나는 공적인 것으로, 박정희 시절의 이순신 이데올로기와 그것의 시대착오적 리바이벌에 이미 충분히 질려있기 때문이고, 다른 하나는 사적인 것으로, 이순신을 사무라이 삼아버리는 어설픈 일본 우익 미학의 촌스러움이 내 미감을 적잖이 거스르기 때문이다. 그리고 솔직히 말하면 김훈은 미시마 유키오와 달리 사무라이 미학으로 비장하기에는 너무 귀여운 사람이다. 어쨌든 김훈은 그 ‘꽈’가 아니다.

노무현과 이순신
소설 ‘칼의 노래’
/경향신문 자료사진
사실 <칼의 노래>가 베스트셀러가 된 데에는 정치적 배경이 있다. 2001년에 그 책이 나왔을 때만 해도 그렇게 요란하지는 않았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게 갑자기 베스트셀러가 된 것은 어떤 정치적 사건과 관련이 있다.
김훈이 그토록 싫어하는 386 세대의 두목이 언젠가 국회에서 탄핵 먹고 잠시 청와대에 들어앉아서 근신을 한 적이 있다. 그때 직무를 정지당한 그 황건적 두목이 정신수양 차원에서 읽고 있다며 공개한 책의 목록에 우연히 <칼의 노래>가 들어 있었던 것이다.

예수를 믿는 이들이 예수를 닮기를 원하듯, 노짱을 믿는 사람들은 노짱을 닮기를 열망한다. 이런 것을 전문용어로 ‘미메시스’라 하는데, 내가 전공하는 미학에서 대단히 중요하게 다루어지는 개념이기도 하다.
<칼의 노래>가 나온 지 2년 후에 갑자기 베스트셀러로 떠오른 데에는 황건적들의 이 예술적 습성이 대단히 중요하게 작용했던 것으로 안다. 덕분에 이 책은 베스트셀러가 되어 방송에 소개가 되기도 하고, 최근에는 김훈이 “아동극”이라 평한 그 드라마를 낳기도 했다.

우익일락

김훈에게는 이게 한편으로는 반가웠던 모양이다. 김훈의 말대로 “우익에겐 세 가지 즐거움(右翼三樂)이 있어. 세금 왕창 내고, 아들 최전방으로 보내고, 질서를 지키고.” 책이 많이 팔리면 인세를 많이 받고, 인세를 많이 받으면 “세금을 왕창” 낼 수 있다. 이로써 우익일락(一樂)이 저절로 해결된다.
有錢而自進納稅면 不亦樂乎아. 돈이 생겨도 저를 위해서가 아니라, 국가에 “세금 왕창” 낼 수 있기에 즐거운 것이 우익의 미덕. 거기에 비하면 담배 한 값에 500원 더 받는다고 절필 선언하는 일부 문인들의 좌익적 심성은 얼마나 옹색한가?

다른 한편 이게 부담스럽기도 했을 게다. 우익 김훈이 하필 국가에 “왕창” 공헌을 하는 계기를 마련해준 게 바로 황건적 두목, 그 휘하의 386 장수들, 그들을 따르는 노란 졸병들이 아닌가.
김훈이 종종 연출하는 우익 낭만주의적 위악은 그가 가진 모종의 결벽증에서 나오는 것이다. 내가 보기에 김훈이 맥락 없이 386 비난을 늘어놓는 것은 그가 수구 꼴통이라서가 아니라, 마음 속에서 이 불편한 고리를 잘라버리려는 무의식적 기제의 작동이다. 일종의 문학적 알리바이의 마련이라고나 할까?

우익이락

지난해 10월 종교단체와 보수·우익단체들이 서울시청 앞 광장에서 개최한 ‘국가보안법 사수 국민대회’ 집회에 10만여명이 모여 시위를 벌이고 있다.
/강윤중기자
우익의 두 번째 즐거움은 “아들 최전방으로 보내”는 것이다. 우익과 좌익 미학의 차이는 그들이 처한 물질적 상황의 관념적 반영이리라.
대한민국에서 병역은 국민의 4대의무의 하나로 부과된다. 때문에 좌익의 물적 토대에 처한 이들에게 아들을 군대 보내느냐 마느냐 하는 것은 적어도 존재미학의 대상이 아니다. 왜? 그것은 자유로이 선택할 사안이 아니기 때문이다. 국가가 이렇게 즐거움을, 우익이락의 열락을 온 국민에게 의무적으로 제공하는 것이 바로 대한민국 국민 된 보람이 아니던가.

어떤 이들에게는 아들 군대 보내는 것도 존재를 완성하는 미적 수단이 된다. 여기서 우익은 선택할 수 있는 두 개의 옵션을 갖고 있다.
하나는 김훈처럼 아들을 군대 보냄으로써 그 즐거움을 긍정하는 우익 에피쿠로스(쾌락주의)의 길이다. 다른 하나는 그 즐거움을 애써 거부하는 우익 스토이시즘(금욕주의)의 길이다.
가령 국가안보를 위해 시청 앞에 수만의 인파를 동원한 모 우익 목사. 그는 자신의 쾌락을 7개월 단기복무로 절제하고, 자식 셋 모두 군대에 보내지 않음으로써 성직에 따르는 금욕의 모범을 보여준 바 있다.

우익삼락

우익의 세 번째 즐거움은 “질서를 지키고”이다. 먼저 우익일락의 예를 들어 보자.
“세금 왕창” 내는 우익에게는 존재미학인 것이, 그 주제가 못 되는 좌익에게는 “질서”라는 이름의 의무가 된다. 우익이 세금 내면서 기쁨을 느끼는 것은 안 내도 될 세금을 낸다는 뿌듯함에서 비롯되는 것이리라. 반면 담배 한 갑 살 때마다 500원씩 전에 안 하던 애국을 덤으로 하면서 좌익들이 기쁨을 못 느끼는 것은 아마 그것이 강요된 것이기 때문일 게다. 우익의 존재미학은 좌익에게는 선택의 여지가 없이 지켜야 할 “질서”가 된다.

우익이락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우익의 자식들이 군대에 가지 않는 것은 우익 된 쾌락을 자제하는 스토이시즘의 존재미학이나, 좌익의 자식들이 군대에 한번 안 가려면 난리 바가지를 쳐야 한다. ‘양심적 병역 거부’니 어쩌구 하며 아무리 변명을 해도, 감히 국가에서 제공한 즐거움을 거부한 죄를 단단히 치러야 한다.
이것이 바로 우익의 마지막 즐거움, 즉 공동체의 안녕과 번영을 위하여 반드시 지켜져야 할 “질서”라는 것이다.

소설가 김훈씨
/경향신문 자료사진
짜라투스트라는 귀엽게 놀았다

대한민국의 대부분의 우익들이 삼락(三樂)을 마다하고 저 스스로 불행해지는 금욕주의적 분위기 속에서, 저 홀로 과감하게 쾌락을 긍정하는 소설가는 새 시대의 열림을 알리는 짜라투스트라다.
남들 다 내는 세금 내고, 남들 다 가는 군대 가고, 남들 다 지키는 질서를 지키면서 거기서 남다른 즐거움을 느낀다면, 참으로 귀한 일이다. 내가 우익 미학의 그 처참한 촌스러움을 그나마 참아줄 수 있는 것은, 매사를 긍정적으로 바라보는 이 여유 때문이다.

ps.

아, 김훈씨께 마지막으로 한 마디. 이순신과 노무현의 동일시는 귀엽지만, 이순신과 박정희의 동일시는 징그럽다.



진중권 / 문화비평가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