햄릿 : 사느냐, 죽느냐, 이것이 문제로다. 참혹한 운명의 화살을 맞고 마음속으로 참아야 하느냐, 아니면 성난 파도처럼 밀려오는 고난과 맞서 용감히 싸워 그것을 물리쳐야 하느냐. 어느 쪽이 더 고귀한 일일까. 남은 것이 오로지 잠자는 일뿐이라면 죽는다는 것은 잠드는 것. 잠들면서 시름을 잊을 수 있다면, 잠들면서 수만 가지 인간의 숙명적인 고통을 잊을 수 있다면 그것이야말로 우리가 진심으로 바라는 최상의 것이로다. 죽는 것은 잠드는 것…… 아마도 꿈을 꾸겠지. 아, 그것이 괴롭다. 이 세상 온갖 번민으로부터 벗어나 잠속에서 어떤 꿈을 꿀 것인가를 생각하면 망설여진다. 이 같은 망설임이 있기에 비참한 인생을 지루하게 살아가는 것인가. 그렇지 않으면 이 세상의 채찍과 조롱을, 무도한 폭군의 거동을, 우쭐대는 꼴불견들의 치욕을, 버림받은 사랑의 아픔을, 재판의 지연을, 관리들의 불손을, 선의의 인간들이 불한당들로부터 받고 견디는 수많은 모욕을 어찌 참아나갈 수 있단 말인가. 한 자루의 단검으로 찌르기만 하면 이 세상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일진대, 어찌 참아나가야 한단 말인가. 생활의 고통에 시달리며 땀범벅이 되어 신음하면서도, 사후의 한 가닥 불안 때문에, 죽음의 경지를 넘어서 돌아온 이가 한 사람도 없기 때문에, 그 미지의 세계에 대한 불안 때문에 우리들의 결심은 흐려지고, 이 세상을 떠나 또다른 미지의 고통을 받기보다는 이 세상에 남아서 현재의 고통을 참고 견디려 한다. 사리분별이 우리들을 겁쟁이로 만드는구나. 이글이글 타오르는 타고난 결단력이 망설임으로 창백해지고, 침울해진 탓으로 마냥 녹슬어버린다. 의미심장한 대사업도 이 때문에 샛길로 잘못 들고 실천의 힘을 잃게 된다. 가만, 저게 누군가. 오, 아름다운 오필리어! 기도하는 미녀여, 그대의 기도 속에서 나의 죄도 용서를 받게 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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