겹무늬, 이중선율
"그리고 나는 가끔 이 세상에서 제일 아름답고 부러운 것은 몸이 날씬한 금발 미인이라고 생각하네. 하지만 어떨 땐 검정머리 소녀가 더 아름다워 보이기도 하네. 게다가 아름답고 부드럽기는 하늘 높이 떠다니는 자유로운 새를 따를 게 없다는 생각도 드네. 그런가 하면 때로는 날개에 붉은 무늬가 있는 흰 나비보다 아름다운 것은 이 세상에 없다고 생각할 때도 있네. 그리고 혹은 찬란하게 빛나지만 눈부시지 않고 환희에 넘치는 순결한 저녁 노을이 가장 좋단 말이야."
"사실 그래. 그러고 보면 세상에 아름답지 않은 게 없네."
"그렇지만 나는 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것은 기쁨을 주는 동시에 슬픔과 불안도 안겨 준다고 생각하네."
"그건 어째서?"
"아무리 아름다운 여자라도 한때 뿐이거든. 나중에는 늙어서 죽기 마련이야. 또 그 까닭에 사람들은 아름다운 소녀를 보면 사랑하게 되는 걸세. 만일 아름다움이 영원히 지속된다면 처음에는 매혹되지만 나중에는 대수롭게 생각되지 않을 걸세. 언제나 볼 수 있을 테니 말이야. 그렇지만 연약하고 변모하는 것에 대하여는 언제나 기쁨과 비애를 동시에 느끼게 마련이 아니겠나?"
"그렇긴 해."
"그렇기에 나는 밤 하늘에 오르는 불꽃처럼 아름다운 것은 없는 줄 아네. 어두운 밤에 치솟는 푸른 불꽃은 가장 휘황찬란한 무렵에 작은 혼선을 그리면서 꺼져버리거든. 그때 그것을 바라보고 있노라면 자연히 기쁨과 불안을 동시에 느끼게 마련이지. 기쁨과 불안은 이렇게 서로 짝지어 다니면서 그것이 순간적일수록 더욱 아름다운 것일세. 그렇지 않나?"
“사람은 누구나 자기만의 영혼을 갖고 있지. 그러므로 다만 사람의 영혼과는 완전히 구별되네. 사람은 둘이서 같이 걸어갈 수도 있고, 말할 수도 있으며, 가까이 다가앉을 수 있지만, 두 영혼은 마치 꽃과 같아서 각각 어느 일정한 곳에 뿌리박고 있기 때문에 서로 가까이 할 수 없네. 가까이 하려면 뿌리를 뽑아야 할 테니 그게 어디 될 말인가. 그러므로 꽃은 그 향기나 씨앗으로 가까이 접근할 수 있네. 그러나 그것은 꽃이 하는 일이 아니고 바람이 하는 일이지. 바람은 마음대로 내왕할 수 있으니 말이야”
ㅡ 헤르만 헤세, <크눌프> 중에서
나는 이중성을 표현하고 싶다. 나는 대립적인 두 가지 멜로디가 동시에 나타나고 다채로움과 통일성, 농담과 진지함이 공존하는 글을 쓰고 싶다. 왜냐하면 나에게 삶은 바로 양극 사이의 파동, 즉 세계의 두 지주 사이의 움직임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나는 항상 세계의 축복받은 다채로움을 감동적으로 보여주고 싶은 만큼 이러한 다채로움이 통일성에 바탕을 두고 있다는 점을 상기시키고 싶다. 나는 항상 아름다움과 추함, 밝음과 어두움, 죄악과 신성함이 한순간만 대립적일 뿐, 줄곧 서로 교차하고 있다는 것을 나타내고 싶다.
나에게 인간성에 대한 최상의 언어는 이러한 이중성을 마술적인 기호로 표현하는 것이다. (9)
ㅡ 헤르만 헤세, <영혼의 수레바퀴> 중에서
헤세의 소설들을 읽는 것은, 잔잔한 피아노곡의 선율을 따라 내 마음도 흘러가는 느낌이다. 혹은, 헤세의 소설을 읽을 때엔 피아노곡이 잘 어울린다. 헤세의 겹무늬, 그리고 이중선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