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출처 : 갈대 > 집단 정신의 진화 中

 

 

 

 

케냐의 케코피에 있는 사바나에는 클리포드라는 어린 개코원숭이가 다리를 다치자 즉시 공격 목표가 되었다. 클리포드의 어미가 말릴 때까지 동년배 원숭이들이 집단으로 습격한 것이다. 어미의 개입 후에도 학대는 계속되었다. 부상으로 불구가 된 어른 개코원숭이들도 같은 운명을 겪는다. 수컷 한 마리가 다치자, 그 집단의 개코원숭이들은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모두 비명을 지르며 피했고, 친구로 지내던 수컷들은 이제는 공격해오기 시작했다. 신체적 장애에 대한 혐오는 영장류들에게만 국한된 것이 아니다. 포식자에게 꼬리가 잘린 우두머리 도마뱀은 무리로 돌아가 봤자 이제는 폐물이 될 뿐이다. 재난을 당한 재갈매기를 본 동료들은 도와주지 않고 오히려 공격을 하는 일이 많다. 동물 행동학의 창시자 니코 티베르헨의 말에 따르면, "비정상적인 방식으로 행동하는 개체들"에 대한 적대 행위는 사회적 동물에게 거의 보편적인 것이다.

한 살이 넘으면 유아들은 부모가 정하는 기준들에 고착되어, 주위의 대상들을 사회적인 기준과 비교하여 가족이 정한 이상향에서 벗어나면 스트레스를 받는다. 14개월 정도에는 아직 규범에서 벗어나는 일들에 개의치 않지만, 19개월이 되면 아이들은 아주 작은 결함에도 비난의 손가락질을 한다. 이를테면 옷에 구멍이 났다거나 장난감의 칠이 벗겨졌다거나 벽에 얼룩이 졌다거나, 무엇보다도 누군가 다른 사람이 나쁜 행동을 하는 것을 보게 되는 경우가 그렇다. 그러다가 20개월 무렵이면, 규범에서 벗어난 것을 지적하는 풍부한 어휘를 갖게 된다. 그래서 주위의 사물들이 "싫어", "에비", "지지"일 때 무척 화를 낸다. 간단히 이야기해서, 적어도 두살이 안 된 아장아장 걷는 아이들도 이미 자신의 내적인 동조를 감시하는 본능뿐 아니라 그것을 다른 사람들에게 집행할 때 사용하는 도구들을 드러내는 것이다.

보통의 경우, 예쁘지 않은 아이들 혹은 낯선 종교적 배경이나 우스운 이름, 그리고 드문 인종의 아이들이 이러한 괴롭힘의 목표가 된다. 또 아이들은 학교에서 평균적인 수준보다 훨씬 더 뛰어난 아이들, 훨씬 더 못하는 아이들을 응징한다. 뛰어난 재능이 화를 부른 한 초등학교 3학년 여자어린이의 경우가 있다. 이 여자아이는 피아노, 발레, 읽기에 탁월한 재능이 있었다. 하지만 학급 친구들은 모두 이 어린이를 싫어했다. 아무리 친구들에게 상냥하게 대하려고 애써도 잘난 척하는 아이라는 취급을 받았고, 전형성에서 벗어난 탁월한 재능은 당연히 조롱의 대상이 되었다. 조화와 일치라는 이상향을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일본에서는 동조 집행이 특이하고 악랄한 방식으로 이루어진다. 바로 이지메다. 남들과 달라 눈에 띄는 누군가를 괴롭히고 못살게 구는 그러한 행동은 심지어 학교 선생님이 유도하기도 한다. 혐오스러운 일이지만, 이것이 바로 인류의 특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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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관여행자 2004-08-03 09: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갈대 님 코멘트 추가 :
도킨스의 <이기적 유전자>는 분명 선구적이고 훌륭한 저작이지만 많은 모순, 불합리를 내포하고 있습니다. (1960년대에 썼다는 걸 감안해야겠지만) 거짓 정보를 인용했을 뿐만 아니라(물론 도킨스는 맞다고 생각했겠지만 후에 거짓으로 판명났죠) 모든 실험 결과를 자신의 이론에 유리하도록 끼워맞추려는 위험한 시도도 엿보입니다(역시 후에 잘못됐다고 판명). 그럼에도 역시 필독서라 할 만한 책이죠^^
<집단 정신의 진화>는 '이기적 유전자'론에 반대해서 씌어진 책입니다. 진화의 핵심은 유전자의 이기성이 아니라 집단 정신, 즉 세포, 개체들간의 네트워크라고 주장합니다. 네트워크가 중요하다는 건 곧 유전자가 이기적이 아니라 협력을 중시한다는 것을 뜯하죠. 저로서는 네트워크 쪽 손을 들어주고 싶네요^^

갈대 2004-08-03 11: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런데 이렇게 생각해볼 수도 있습니다. 유전자가 네트워크에 의존하는 건 그렇게 하지 않고서는 살아남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인간이 혼자서 살 수 없는 것처럼 말이죠. 지금까지 밝혀진 바로는 유전자는 네트워크를 통해 뭔가 상호이익을 얻을 수 있다는 판단이 섰을 때에만 협력하는 것 같습니다. 일방적인 봉사는 없다는 말이죠. 결국 이런 관점에서 보면 유전자는 도킨스가 주장한 것과 마찬가지로 이기적입니다. 하지만 "유전자는 단지 자신과 똑같은 유전자를 후세에 전달하는 것이 유일한 목표이고 인간은 유전자의 이런 목표를 위해 이용당하는 도구에 불과하다"는 도킨스가 <이기적 유전자>에서 내세운 주장은 아무래도 수정이 필요할 듯 합니다. 어떤 집단에 속해 있는 개체는 집단의 이익을 위해서 자신의 생명을 포기하기도 한다는 것이 밝혀졌으니까요. 정리를 해보자면 '유전자는 이기적이지만(이때 '이기적'이라는 단어의 뜻은 도킨스가 말한 것과는 약간 다릅니다. 집단의 이익을 지향하는 이기심이니까요) 생존을 위해 서로 협력한다' 정도가 되겠네요. 쓰다보니 횡성수설이 되었네요. 괜히 혼란만을 안겨드린 건 아닌지...-_-;;

도서관여행자 2004-08-04 09: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네... 그렇군요. 중요한 문제들은 언제나 한 문장으로 요약되지 않는 법이죠. <작은 인간>에서 마빈 해리스 아찌도 언어에 대한 장에서, 현대인들의 언어 중에서 서로에 대해서 무언가 요구하는 말들이 차지하는 비중이 엄청나다는 걸 얘기했던 걸로 기억되요. "물 좀 줘요. 소금 좀... 돈 좀..." 인류학에서는 아마도 '교환'이라는 개념으로 자주 다루어지는 거 같은데 자세한 건 잘 모르겠구요, 인간과 인간들의 행동에 대한 정의와 묘사라 흥미있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