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출처 : 바람구두 > 헤르만 헤세

열세 살 때였으리라. 나는 시인이 되든가 아니면, 아무 것도 될 수 없을 것 같은 불안에 휩싸였다. 그러나 다른 모든 길에는 이끌어 주는 제도와 스승과 선배가 있었으나, 시인이 되는 길에는 아무 것도 보이지 않음을 비로소 깨달았던 것이다. 시인이 된다는 것은 참으로 막연한 길이었다. 그 길이란 자칫하면 웃음거리가 될 수 있는 너무나 막연한 환상과 같은 그림자였다.

그러나 나는 오래지 않아 곧 깨닫게 되었다. 시인은 되는 것이 아니라, 오직 존재할 뿐이라는 것을 체험하게 된 것이다. 시인은 언제 어디에서나 찬미와 찬탄을 받으며, 그러한 운명을 갖고 있는 다른 모든 존재들처럼 비범한 운명을 짊어지고 살아가야 한다는 것 을 나는 비로소 절감하게 되었다. 마침내 긴 방황과 고통 끝에 시인이 되겠다는 길을 선택하고 부터는 다른 모든 것들이 모호해지면서 집에서나 학교에서 남들이 이 해하기 힘든 사건들을 일으키게 되었다. 그리하여 마침내 나는 다른 도시의 라틴어 학교로, 또 그 이듬해에는 신학교로 옮기지 않으면 안 되었다.

그것은 억압받은 내 청춘의 갈등이 나로 하여금 그곳을 끝끝내 떠나게 만들었던 것이다. 그런 뒤에도 학업에 대한 주위 사람들의 열망과 내 자신의 온갖 노력에도 불구하고 결국은 참담한 실패로 끝나고 말았다. 그리하여 나는 여러 방면의 기술의 도제(徒弟:어려 서부터 소송을 따라 기술을 배우는 제자)와 견습공으로 몇 년간을 전전 하지 않으면 안 되었던 것이다.

학업에 실패하고 난 후, 나는 내 스스로 가고자 하는 선택의 길에 있어서 내 나름대로의 수업을 시작했다. 조부 때부터 가전(家傳)되어 온 많은 장서 속에 묻혀서 독서와 습작에 전념할 수 있었던 것은 참으로 다행스럽고 행복한 순간 순간의 시간들이었다. 스무 살에 이르기까지 나는 내 눈에 띤 문학 서적들을 반쯤은 읽었으며, 철학과 예술사(藝術史)와 언어학 등에도 끈질기게 집념을 보였으며 또한 수 많은 습작을 할 수 있었다.

마침내 스스로의 힘으로 자신의 생활을 꾸려 가기 위해 나는 서점 점원으로 취직을 했다. 책과 더불어 산다는 것은 다른 어느 것보다도 확실히 나에게 알맞는 직업이었다. 책 속에 묻혀서 나는 처음에는 새로 나온 것들에만 집착하여 급급했는데 점차로 오래된 책(古書)과의 관계를 통해서 보다 더 정신적인 위안을 받으며 지혜를 터득해 갈 수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 헤르만 헤세


댓글(1)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도서관여행자 2004-08-03 09: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문은 헤세 도서관에서 읽으실 수 있습니다.
http://hesse-library.mokwon.ac.kr/lifeworks/kurz.html
댓글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