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인문학상 수상작 모음집 1979~1984 - 13~16회
조세희 외 지음 / 조선일보사 / 2003년 12월
평점 :
절판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 혁명가가 바다로 띄워 보낸 비망록


1.


제13회 동인문학상의 수상작은, 이미 고전의 고전이 되어버린 조세희의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이다. 평론가들마저도 <난.쏘.공>을 논할 때는 평론이 아니라 독후감을 쓰곤 한다. “이 소설책을 총 몇 번 읽었는데, 첫 번째는 어떠어떠한 감동이었으며, 그 다음의 독서는…” 이런 식인데, 이 소설집의 해설을 쓴 방민호도 여러 권의 <난.쏘.공>을 가지고 있다며 개인적인 독서체험을 이야기한다. 다치바나는 고전을 두고서 “그 저서(고전)가 어떤 메시지를 전달하는 매체로서 그 역할을 다하는 것이 아니라 그 책 자체가 토론의 대상이 되어, 서로 이야기를 나눌 때의 소재로 활용되기에 적절한 책만이 결국 진정한 의미의 고전으로서 살아남게 되는 것이 아닐까 생각됩니다.”(『나는 이런 책을 읽어 왔다』, 55쪽)라고 말했다. 그렇다. 실상, 특정한 텍스트가 고전이나 정전으로 채택되기 위해서는 처음에는 그 텍스트의 내적인 가치가 귀중한 것으로 판명되는 과정이 필요하겠지만, 그 이후에는 많은 이들의 입과 귀에서 끊이지 않고 얘깃거리가 되어야만 하는 것이다. 그 텍스트의 내용보다 그 텍스트와 관련된 독서체험이나 심경변화를 이야기하는 일이 더 벌어지는 것은, 이미 그 텍스트의 품질을 보장한다는 말에 다름 아니다. 이것은 마치 우리가 명품의 디자인이나 기능을 구구절절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라 그 명품 자체에 얽힌 이야기를 즐기는 것과 같다.


나는 불우(?)하게도 중학 시절에 필독도서의 하나로 <난.쏘.공>을 읽어야만 했다. 필독도서로 억지로 읽는 책이었으므로, 그것은 짜증과 지루함으로부터 시작되어 감동으로 끝난 독서였다. 그러나 스무 살이 넘은 뒤에 읽은 <난.쏘.공>은 그때와는 또 다른, 더 깊은 감동을 주었다. 사회과학과 역사 책으로 더 정밀하게, 더 구체적으로 불합리하고 불평등한 세계를 인식할 수 있겠지만, 문학 읽기를 통한 세계 인식은, 삶의 인식은, 이와는 또 다른 것이라고 생각한다. 사회과학이나 역사와는 다른 문학만의 감동과 전율이 있기 때문이다. <난.쏘.공>의 경우, 시적인 문체와, 현실과 환상이 포개어지는 매혹적인 구성 등이 독자들을 사로잡는 것이고, 여전히 고전의 고전으로 칭송받는 까닭일 것이다.


2.

제13회에서 16회에 이르는 동인문학상 수상작들이 다루고 있는 주제와 소재들은 각기 다채롭다. 13회 수상작 <난.쏘.공>에서 ‘난장이’로 상징되는 억압적인 시대상과 ‘쏘아올린 작은 공’이란 제목에서도 드러나는 ‘차마 버리지 못하는, 또는 절대로 버려서는 안 되는, 작은 희망과 의지’의 혼재의 고통을 독자들은 즐거이 받아들여야 한다. 14회 수상작인 전상국의 <우리들의 날개>는 동생의 존재 때문에 가족들이 비극을 겪게 된다는 운명의 망상을 그대로 받아들이는 가족들의 모습을 그린다. 인간이 운명(이것의 실체도 정작 모르면서!)을 받아들이거나 비극의 원인을 전혀 다른 곳에서 찾아내는 까닭은 무얼까. 15회 오정희의 <동경>은 죽음으로 서서히 미끄러져 가는 노부부의 일상을 그려낸다. 오정희의 섬세한 문체가 그려내는 구체적 일상들은, 어린 아이의 거울 장난이 오히려 늙은 부인의 노쇠를 조롱하는 것처럼, 얄밉게 반짝인다. 16회 수상작 이문열의 <금시조>는 일종의 예술가 소설이다. 금시조의 비상을 보고픈, 예술의 극점에 다다르려는 한 서화가의 일생과 갈등이 <금시조>의 세계다. 예술가 소설로는 특별히 도드라진 점은 없겠지만, <금시조>에서 마음에 든 점은 주인공 고죽의 일상적 삶이 천재들의 불우에 비할 바는 아니지만 적당히 불우하고 적당히 평범하다는 것이었다. 언제나 드라마틱한 삶이 예술가의 삶은 아니니까. 16회 수상작, 김원일의 <환멸을 찾아서>는 현대 한국이 안고 있는 가장 큰 문제인 분단 문제에 천착한다. 어느 좌천당한 혁명가의 북에서 띄워 보낸 비망기를, 역시나 분단으로 고통 받고 있는 실향민 아버지가 바다에서 습득하게 되고, 시인이자 교사인 아들이 이것을 가족들에게 전해준다는 이야기이다. 소설은 이렇게 마무리되고 있다.


‘영동행각’이란 제목으로 일곱 편의 시를 썼던 울진 출신의 젊은 시인은 전쟁을 기억하지 못하는 세대였으나, 시대의 앞뒤를 두루 살펴 그 불가해한 상처의 뿌리를 노래했다. 그는 ‘다시 영동에서’란 시의 마지막 연을 이렇게 썼다.


한 생애가 눈물 가득 찬 물결로도 출렁이고

서러울수록 그 위에 엎어져 함께 흐느껴 가면

어둠 속을 더욱 넓어지는 소리의 한없는 두런거림

여기서 자라 이 물결에 마음붙인

사람들의 오랜 고향을 나는 안다.(342쪽)


전쟁을 겪지는 않았으나 총성이 들리지 않는 전쟁, 즉 분단 상황하에서 살고 있으며 여전히 상처가 치유되지 못한 역사적 상황에서, 우리는 삶의 바다에서 길어올린 이 쓰라린 편지를 어느 곳으로, 누구에게 배달해야만 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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zaza 2004-08-17 09: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우찬제도 난.쏘.공의 해설을 독후감으로 시작하고 있더군요...^^
어두웠던 팔십년대를 경제학도로 살았던 그에게 난.쏘.공이 던져준 인상은 각별한 것이었겠죠.

도서관여행자 2004-08-17 10: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래. 아마, 내가 그 해설을 두고 얘기한 걸꺼야.
이미 난.쏘.공에 대한 2차텍스트들은 숱하게 쓰여졌을테니, 다른 얘기를 하는 게 독자들을 덜 지루하게 만드는 게 아닐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