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맹’사회에서 책읽기


고등학교 시절, 나는 영화광이었다. 그것도 지독할 정도로. 그리하여 친구들 사이에서 통용되던 내 별명은 ‘충무로’였다. 당연하게도 그 시절의 내 꿈은 영화감독이었다. 물론, 연극영화과에 진학하고자 하는 바람도 품고 있었다. 허나 그 바람은 대학입시를 눈앞에 두고 산산이 부서졌다. 부모님께 연영과에 입학하고 싶다는 소망을 꺼내지 못했던 것이다. 그때 나에게는, “네가 딴따라가 되겠다는 것이냐”라는 부모님의 힐난을 감당할 자신이 없었다. 정말 소심한 시절이었다. 그래서 나는 아버지가 권하시는 대로 법대에 진학했다. 그렇게 기대치 않았던 물결을 따라 꿈이 표류하게 되자마자, 내 일상은 갑자기 심심해지고 말았다. 예정된 수순처럼, 아직 스무 살도 되지 않은 나에게 묵직한 권태의 시간이 찾아왔다. 먹고 자는 일 외의 나머지 시간은 지리멸렬했다. 그래서 나는 그 시절 갑작스레 맞게 된 그 지리멸렬함으로부터 탈출할 수 있는 비상구 하나가 절실했다. 그때, 내 손에 잡힌 것이 있었다! 바로 책이었다. 어릴 적부터 홀로 공상하기를 즐겼던 덕에 나는 책의 마력에 쉽사리 빠져들 수 있었다. 그 후 십년 동안 나는 책읽기의 매혹에 풍덩 빠져 살았다. 정말 잘난 척한다는 빈정거림을 들을 각오를 하고 말하건대, 정말이지 책은 남부럽지 않을 만큼 읽었다. 그렇게 해서 집에 쌓인 책만도 대략 삼천 권이다.

어쨌거나 나의 십대 끝자락과 이십대의 전부는 그렇게 흘러갔다. 당연하게도 그 시절 동안의 나는 혼자 방안 한구석에 몸을 파묻은 채 책장을 넘기는 시간이 많았다. 종종, 책맹(冊盲)사회에서 책에 미쳐 살아가는 일의 고독이 얼마나 큰지도 절감할 수 있었다. 그때마다 내 어머니는 나를 바라보시며 한숨을 푹푹 내쉬곤 하셨다. 그리고 한 달에 한번꼴로는 나에게 근심 어린 표정으로 이렇게 타이르셨다. “책 그만 읽고 공부 좀 해라. 그렇게 책만 읽어서 어디다 써먹으려고. 쯧쯧.” 그럴 적마다 나는 너털웃음으로 화답했다. 어머니가 지칭하는 ‘책읽기’와 ‘공부하기’의 차이가 무엇인지 충분히 수긍할 수 있었지만, 적어도 그 시절의 나에게 책읽기와 공부하기는 동의어였던 탓이다.

그러나, 시간이 점점 흐르고, 그리하여 내 나이의 무게가 더해갈수록, 나는 내 스스로가 인생의 공식으로 세워두었던 책읽기와 공부하기의 등호관계가 점차 부등호관계로 어긋나가고 있음을 감지할 수 있었다. 이 사회는 나이를 먹어 어엿한 사회인이 되어 갈 시점에 이를수록 그 나이에 맞는 역할 모델을 강요했지만, 미련하게 ‘공부는 안 하고 책만 읽어 온’ 나는 그 역할 모델에서 점차 멀어져가고 있었던 것이다. 그렇게 서른의 나이에 이르고 보니, 어느샌가 나는 거의 한국사회의 부적격자가 되어 있었다! 이 오묘한 세상에 하나의 유한한 생명체로 태어나 먹고사는 문제에 초연할 수 없었던 나는, 그리하여 내 이십대를 온통 도배질하다시피 한 책읽기 이력이 갑작스레 버거워졌다. 최종학력이 ‘국졸’인 내 어머니의 한국사회 감식안이 십 년 넘게 대학 캠퍼스를 학생 신분으로 유령처럼 배회한 나보다는 수십배 더 예리했다는 것도 알 수 있었다.

물론 지금에 와서도 나는 내가 책벌레로 보낸 지난 십 년 남짓의 시절을 후회하지 않는다. 다만, 아둔하게 ‘책만’ 읽어온 지난 세월이 비현실적으로 느껴질 때가 많다는 것은 솔직하게 고백할 필요가 있을 것 같다. 한국사회에서 책읽기와 공부하기가 등호관계에 가까웠다면, 아마도 나의 삶이 요즘처럼 이렇게 비현실적으로 느껴지지는 않았을 것이다.

내가 맨 처음 본격적으로 책의 매혹에 빠져들었을 때에도 그러했고, 서른의 나이에 이른 지금에도 그러하듯, 이 나라 책맹사회는 책에 빠져 사는 사람들을 공중부양이나 축지법을 꿈꾸는 몽상가 정도로 취급한다. 말로는 책 열심히 읽어야 한다고 주장하지만, 자기 자식이 책벌레 되는 거 겁내는 부모들이 꽤 많다. 과장이 아니다. 그건 내 삶이 증명한다.

이휘현/자유기고가·대학원생
한겨레 2004.02.11(수) 18: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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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관여행자 2004-07-07 14: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제 김현의 <한국 문학의 위상>을 읽었다. 이 문학개론서의 핵심 주제는 "써먹을 데 없는 문학의 쓸모"이다. 물고구마를 빨면서 소설책을 쌓아두고 읽던 어린 김광남에게 그의 어머니가 내던진 한 마디에 대한 오랜 훗날의 답변이다. 문학도의 항변이고 변명이다. '김광남'에서 문학평론가 '김현'이 되었건만 그의 부모는 돌아가시기 직전까지 그가 문학도가 된 것에 대해서 아쉬워했던 모양이다. 어쨌거나 김광남의 어머니나, 김현의 어머니나, 이휘현 씨의 어머니나, 내 어머니는, 김광남이나 김현이나 이휘현 씨나 나보다 훨씬 현명했으므로 우리들이 답하기 곤란한 문제들을 만들어낼 수 있었던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