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출처 : 쎈연필 > 삶의 피안에서 불멸하는 예술가들

빈센트 반 고흐, 별이 빛나는 밤
정신은, 혼은, 하나의 몸에 깃들어 있다. 때론 아주 크고 깊은 정신과 혼을 가진 사람을 볼 수 있다. 그런 사람의 정신과 혼 역시 너무 작은 몸에 갇혀 있다. 몸에 갇힌 심혼은 터져 나올 수밖에 없고 극에 달하면 폭발한다. 세상과 타협을 하면 성자가 되고, 외면하면 세상으로부터 광인으로 몰려 박해 받는다. 주체 못할 광기는 다른 형태로 표출되고, 그 최상의 귀착점은 언제나 예술이다. 광인의 삶을 살았지만 예술의 천재였던 그들을 우리는 잊을 수 없다.
지상은 어두워지고 차가워지며, / 인간의 영혼은 고난으로 쇠약해지리라. / 선량한 신들이 이런 청년들을 이따금씩 지상에 보내어 / 주름진 인간의 삶에 활력을 불어넣을 수만 있다면. /『엠페도클레스의 죽음』, 훨덜린
우리 근대 문학사의 박제가 된 천재 이상은 역작 『종생기』에서, 만 이십칠 세를 살다 죽은 자신이 요사(夭死)가 아니라 노사(老死)라고 말했다. 『악의 꽃』의 시인 보들레르는 「나는 남들이 한 시간을 살 동안 세 시간을 살았다」고 내면 일기에 썼다. 너무 일찍 세상의 이면을 알아 버린 <견자>는 필연적으로 고통을 겪는다. 보들레르가 존경했던 소설가 에드가 앨런 포 역시 극한의 광기와 무의식의 어두운 지하실, 죽음 충동을 모티프로 다뤘다. 포 또한 그의 재능을 시기하는 문단으로부터 철저히 무시당했고, 가난과 고독과 마약과 술로 비참한 삶을 살다가 볼티모어의 한 주점에서 쓰러진 지 사흘 만에 죽었다. 시인 이성복이 전공해서 우리나라에도 다소 알려진 네르발은 광기의 기록으로 알려진 『오렐리아』를 썼다. 독일의 노발리스, 영국의 블레이크에 비견되는 네르발 역시 동시대의 독자로부터 외면 받고 20세기 초까지 잊혀진 작가였다. 서른세 살에 정신병을 앓았던 그는 정신병원에서 퇴원한 후 무일푼으로 방랑하다가 어느 거리에서 목을 맨 시체로 발견되었다. 로트레아몽은 스물네 살에 파리의 몽마르트 어느 호텔에서 쓸쓸히 죽었다. 우루과이에서 파리로 꿈을 안고 유학 온 청년 시인을 아무도 알지 못했다. 그가 죽은 호텔방에 있던 노트가, 내장에서 게워낸 듯한 광기의 울부짖음과 잔인한 이미지의 난장으로 범벅된 시집 『말도로르의 노래』이다. 사회로부터 따돌림 당하며 광인 취급 받기는 블레이크도 훨덜린도 마찬가지였다. 그들의 작품 속에 세상은 공통적으로 병들어 있지만, 외려 세상이 그들을 병든 사람 취급했다. 그들은 세상을 온전히 살아 낼 수가 없었다.
현대의 문화는 이미지의 과잉이다. 도처에서 융기하는 혼란의 이미지들. 카메라는 가능한 모든 이미지들을 담아내고, 그 이미지들을 우리는 소비한다. 믿을 수 없는 일들이 티브이를 통해 전달되고, 우리는 「아, 끔찍해」라는 말과 함께 채널을 돌린다. 마침내는 현대의 전쟁이 가상게임과 같다는 이론까지 등장한다. 미사일 버튼을 누르고 화면으로 확인하기 때문에 가상실재라는 것이다. 가해자의 시선만이 있을 뿐이다. 우리는 시뮬라크르의 허를 망각한 채 새로움에만 열광한다. 곳곳에서 발발하는 고통들은 오롯이 타인의 고통일 따름이다. 우리는 연민하는 방법마저 잊고 냉소의 늪에 빠진다. 냉소하는 때야말로 시선이 가장 끔찍한 폭력이 된다. 유례없이 감수성이 절멸된 우리 시대에 예술은 무엇인가.
예술은 절대 잊지 말아야 할 것을 세상에 각인시켜야 한다. 18세기 스페인의 궁정화가였던 고야는 불혹에 이르러 귀머거리가 된다. 출세를 위해 갖은 노력을 다해 최고의 지위에 오른 그는 청각을 잃어서야 비로소 심연의 눈을 떴다. 그 전까지의 화려한 색채와 궁정 문화를 모두 버린다. 죽기 전까지 어두운 판화를 그렸으며 그로테스크한 소재에 천착했다. 그러한 그림들은 모두 현실에서 비롯되었다. 『1808년 5월 2일』 『1808년 5월 3일』은 절대로 잊을 수 없는 작품이다. 마드리드 주민이 프랑스군을 공격한 사건이 첫 번째 작품에서 묘사되었고, 두 번째 작품에서는 민중 봉기했던 5월 2일의 투사들이 프랑스군에 의해 보복 공개 처형당한 사건이 묘사되었다. 그림 속의 처형 집행자들은 얼굴이 없다. 뒷모습만이 있을 뿐이다. 그러나, 처형 집행자들의 음침한 색과는 대조적으로, 가열된 것처럼 빛을 내는 밝은 색으로 칠해진 불행했던 민중들은, 불멸의 존재가 되어 아직도 우리에게 1808년 5월 3일의 고통을 생생하게 전이시켜 준다. 고야는 후에도 『종교재판소 광경』과 판화집 『전쟁의 참화』 등의 그림을 그려 잊을 수 없는 고통을 불멸하는 예술로써 존재케 했다.
메시아 콤플렉스라는 용어가 있다. 이천 년 전, 십자가를 지고 골고다 언덕을 올랐던 청년을 자신과 동일시하는 사람을 일컫는 말이다. 동시대 사람들에게 미치광이 취급을 받았던 점에서 이천 년 전의 청년과 이들 예술가들의 운명은 닮았지만, 절대적인 믿음마저 잃은 채 고독하게 죽어갔다는 점에서 예술가들의 운명은 더욱 애달프다. 모질게 버림받고, 철저히 무시당한 채, 오직 작품만이 자신과 세계의 구원이 될 거라 믿었던 그들.
타르코프스키 감독의 영화 『향수』에 등장하는 도메니코라는 사내는 인류가 썩어 파멸할 지경에 처했다고 말한다. 세상의 구원을 위해서는 도메니코 자신이 희생해야 하며, 같은 시간에 다른 곳에서 자신을 위한 촛불이 켜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도메니코는 다른 곳에서 자신을 위해 흔들릴 촛불을 위해 온 몸을 불살라 산화한다.
훨덜린이 비극 『엠페도클레스의 죽음』으로 승화시킨 바 있는 헬라스의 철학자 엠페도클레스의 생애도 도메니코와 다를 바 없다. 고향의 민중들에게 버림 받고, 어지럽혀진 질서를 바로잡기 위해 에트나 산의 화구에 몸을 던진다. 그것은 니체의 차라투스트라가 세계를 위해 기꺼운 몰락을 한 것과 다를 바 없다. 엠페도클레스의 불, 물, 공기, 흙의 4원소 연금술 이론은 심리학자 융과 상상력의 철학자 바슐라르에 의해 거듭 연구되어 예술적 기폭제로 우리의 심혼을 울린다.
평생을 도박과 간질에 시달렸던 광기의 천재 도스토예프스키의 4대 장편은 인간 심연의 어두운 그림자를 탐색한 대작으로 지금껏 널리 읽히고 있다. 그의 일련 소설들은 온통 광기로 들끓는다. 『죄와 벌』 주인공 라스콜리니코프 또한 광기의 사내다. 소설 속 어린 라스콜리니코프는 어느 날 광장에서 학대 받는 말을 발견하곤 눈물을 흘리며 달려가 끌어안고 입을 맞춘다. 도스토예프스키를 단 하나의 심리학자라고 말한 바 있는 철학자 니체는 1888년 이탈리아 토리노의 알베르토 광장에서 채찍질 당하는 말목을 끌어안고 울다가 정신착란을 일으킨다. 니체는 서구가 강요해 왔던 <유일무이의 진리>란 관념을 파괴했다. 이성으로 인해 억압된 감각의 자유를 되찾았다. 「니체는 생각을 많이 해서 미쳤다. 나는 생각하지 않을 것이다. 나는 미치지 않을 것이다」고 광기의 일기를 썼던 러시아의 전설적 무용가 니진스키 역시 보름간의 일기를 마치자마자 정신착란을 일으킨다. 그 후로 30년을 정신병원에서 살다 갔다.
라스콜리니코프는 거리의 어린 창녀 소냐의 발에 입 맞추며 「나는 당신에게 절한 게 아니라 온 인류의 고통에 입을 맞춘 거요」라고 말했다. 니체는 차라투스트라의 말을 빌려, 온 인류의 병폐를 끌어안고 권위를 무너뜨렸다. 니진스키 또한 영혼의 병을 앓았다. 그는 썼다. 인류의 모든 고통이 사라질 때에 자신의 병은 나을 것이며, 그때까지 앓을 것이라고. 보들레르와 네르발과 니체와 고흐의 광기 혐의가 사회의 음모라고 비판한 아르토 역시 예술로써 병든 세상을 앓았다. 그는 연극을 페스트에 비유했다. 페스트 환자가 온 힘을 쇠진하여 무기력해지는 순간이 연극의 최고점이며, 페스트가 물러 간 희열을 예술의 절정이라고 말했다. 삶은 궁극적으로 잔혹하므로, 잔혹한 방식의 예술적 치유가 필요하다고 부르짖었다. 고통을 구경하는 것이 아니라, 극렬한 감정이입을 하는 것. 그 잔혹한 치유를 위해 예술가들은 광기의 열정으로 투신한다. 육체의 지속은 자식을 생산하는 것이고, 명예에 집착하는 것은 기억의 지속 때문이며, 명작을 창작하는 것이 영혼의 생산이다. 영혼의 생산자들은 작품에서 자신의 예술혼을 불살랐다. 그들은 자신의 작품이 시공간을 초월해 미약한 촛불을 켜리라 믿었다. 불멸의 예술을 느낄 수 있는 축복, 그것이 병든 세상을 구원해 낼 열쇠다. 반 고흐가 밤 풍경을 그리기 위해 모자에 열두 개 초를 매달았던 심정을 느낄 수 있을 때, 우리는 그의 『별이 빛나는 밤』과 같은 별을 생생히 보게 된다. 아름다움의 어원이 앓음다움인 것은 괜한 말이 아니다. 우리는 그 고통을 느낄 수 있어야 한다. 니진스키의 『영혼의 절규』만큼 예술혼의 고통과 사랑을 잘 나타내는 글은 또 없을 것이다. 비록 불치일지라도 미약한 치유를 위해 우리의 의지로 선택해야 하는 병이다.
「나는 고통을 느낀다. 내 영혼은 병들었다. 나의 병은 영혼의 병이지 마음의 병이 아니다. 내 병은 쉬이 치유되기엔 너무나 위중하다. 나는 불치이다. 내 영혼은 앓고 있다. 나는 가련하다. 나는 가난하다. 나는 불행하다. 나는 비참하다. 이 구절을 읽으면 누구나 고통스러워하리라는 걸 나는 알고 있다. 나는 인간이지 신이 아니다. 나는 신이 되고 싶다. 나는 춤을 추고 싶다. 나는 그림을 그리고 싶다. 나는 피아노를 치고 싶다. 나는 시를 쓰고 싶다. 나는 발레를 창작하고 싶다. 나는 모든 사람을 사랑하고 싶다. 우리는 서로를 발견하고 있는 것이다」
광기와 예술가, 라는 23.1매짜리 기사다. 30매에서 22매만 쓰기로 하고, 나머지는 다른 기사를 넣기로 했다. 1.1매를 초과해서 200자쯤 줄여야 한다. 아르토에 대한 글도 썼는데, 1.8매를 줄여야 한다. 확실히 내가 고민하고 쓴 문장이라 지우는 게 힘겹다. 명동 캠퍼스에서 수업을 듣고 집 앞에 도착했는데 마침 학보사 선배들과 조우했고, 술을 먹었다. 대뜸 "너 광기에 사로잡혀 일찍 죽고 싶지?" 라고 묻는 선배에게 한사코 아니라고 말했지만 "너의 예술관을 알겠어" 라는 말을 들었다. 다들, 내가 쓴 글은 기사가 아니라고 말했다. 이런 주제를 써 버린 내가 대단하다면서 '광기'랬다. "후배님은 아르토의 친구 같아요. 하지만 저라면 그렇게 쓰진 않았을 거예요" 라고 한 선배가 말했다. 그 애매한 말의 뜻이 헛갈린다. 기사체가 아니지만 어쩌겠나. 학보는 한 달에 한 번 찍고, 조판은 말일인데. 벌써 내일이구만.
ㅇㅈ이가 내 컴을 보더니 파워가 타 버렸단다. 2-3만원쯤 한다나. 나야 당장 급하니, 바가지 쓰더라도 할 수 없는 일이다. 내 방에서 자주 밥을 얻어 먹는 ㅇㅈ이는 중고를 얻어서 공짜로 주겠단다. 고마운 일이다. 해서, 집에 오는 길, 함께 했던 동기들에게 떡볶이를 샀다. 나는 떡볶이를 내 돈 주고 3천원 이상 먹어 본 적이 없는데, 6천원이 나왔다. 계산할 때, 뱃속에 있던 게 다 꺼지는 듯했다. (成峨야 돼지는 너다)
모두들 기피하는 주제를 쓰느라고 나는 요 며칠 새 엄청난 책들을 속독했다. 나 스스로도 해괴하지만 이틀 동안 뒤적거린 책이 수십 권이다. 때문에 이런 내가 한심스럽기도 하다. 상호텍스트 어쩌고를 떠나서, 내가, 내가, 내가 한심하다. 만약에 내 곁에 책이 없다면…. 읽는 만큼 쓰는 게 안 따른다는 것을 절감하는 요즘이다. 하나를 읽어도 제대로 읽어야 할 텐데. 어쨌거나 한숨 돌리고 나니 조오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