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도 기획하지 않은 자유 - '수유+너머'에 대한 인류학적 보고서
고미숙 지음 / 휴머니스트 / 2004년 1월
평점 :
절판


단 한 번도 가본 적은 없지만 늘 그곳에 관심을 두고 있었다. 그곳은, 연구공간 ‘수유+너머’. 여러 경로를 통해서 대학이라는 울타리 틀이 얼마나 학문을 억압하는지 조금씩 알게 되었다. 돈이 되지 않는 연구의 어려움, 밥그릇 싸움으로 인한 혹은 전공 이외의 무지로 인한 학제간 연구의 어려움, 진정한 의미에서의 학파가 아닌 학계 내 파벌 형성, 학연으로 뒤엉킨 교수 사회, 생기를 잃어버린 낡아빠진 강의와 연구, 비판과 새로운 대안이 없는 학회…. 대학과 학자들에게 공부와 연구에 매진하라는 주문을 하기에는 외적인 억압 요인이 너무도 많아 보인다. 어차피 대한민국의 학계인 이상 대한민국의 가장 추악한 모습들을 그대로 떠안고 있는 것은 당연한 것이겠지만, 사회에 문제를 제기하고 대안을 제시해야할 학자들의 내부마저도 이런 모양이니 무슨 다른 말을 할 수 있으랴. 그렇다고 해서 ‘수유+너머’와 같은 제도권 외부의 학술연구공간이 대학을 대체해야 한다거나 제도권 교육기관, 학술기관을 모두 무시하자는 것은 아니다. ‘수유+너머’의 존재는 그것 자체로서 하나의 대안의 제시이다. 그러면서 동시에 기존의 학계에 반성을 촉구하고 새로운 활력을 불어넣는 귀염둥이가 되지 않을까. 대학이 대학 밖에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다면, 반대로 대학도 대학 밖에서도 배워야 하는 게 당연하지 않은가.

우선, 고미숙은 어린 시절로 돌아가서 이야기한다. 시골이 고향이었던 터라 특별난 배움의 기회가 없었지만, 아이들과 공부 동아리 활동을 하면서 나름대로 세미나(?)를 했던 즐거운 추억을 떠올린다. 공부는 우선 즐거워야 하는데 대학은 그런가? 규격화된 논문 쓰기 연습으로 인한 인식의 화석화과 새로운 앎의 세계에 접속하는 어려움…. 대학이나 대학원과 같은 고등교육기관이 유치원 같은 초등교육기관보다 교육과 학습의 등급(질)이 떨어질 수도 있다는 것은, 아주 기초적인 교육학적 상식이다. 대학 교수의 학습과 연구보다 유치원생들의 놀이와 연계된 학습이 더 높은 점수를 받을 수도 있다는 것! ―― 사실, 이 책에서는 그렇게까지 대학을 비판하지는 않는다. 대학에서의 공부와 자신들의 공부를 비판적으로 대비시켜 놓기보다는 수유+너머의 즐거운 일상과 그 즐거움이 가능하기까지의 좌충우돌들을 발랄하게 유쾌하게 그려놓고 있다. 남들을 비판하기보다는 우선 자신들의 삶을 새롭게, 즐겁게 재구성하려는 그 시도! 저자 고미숙이 시종일관 웃음을 강조하는 것은 자신의 낙천적 기질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웃음의 활력이 이뤄낼 수 있는 놀라운 가능성을 믿기 때문일 것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