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자의 그림일기
오세영 지음 / 글논그림밭 / 2001년 7월
평점 :
구판절판


만화로 된 만화 이론서인 <만화의 이해(스콧 맥클루드 지음)>를 읽으면, 만화라는 예술 장르(의 무한한 가능성)에 대해서 놀라게 된다. <만화의 이해>에 살고 있는 ‘만화’라는 놈은, 활자의 의미와 그래픽의 형상을 아우르면서 상상의 공간을 이리저리 휘젓고 날아다닌다. 그리고, 오세영의 단편만화집인 <부자의 그림일기>을 보자니, 만화는 단지 ‘가능성’에서 머물고 있지는 않다는 걸 확, 실, 히, 알게 된다.

<부자의 그림일기>는 여러 경로를 통해서 높은 평가의 소개를 받아서 기대감이 높았다. 독후감을 서둘러 말하자면, 오세영은 그 기대감 이상으로 나를 만족시켜 주었다. 이 한 권의 만화책을 읽고나니 좋은 만화책을 더 많이 찾아 읽어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어서 만화책 리스트를 만들어두고 꾸준히, 열심히 찾아서 읽어야겠다는.


오세영은 만화를 ‘배운’ 적이 없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그림체에서 흔하디흔한 일본만화의 입김도 별로 느낄 수 없다. 오히려 그의 그림체는 독자로 하여금 거칠게, 낯설게 느껴지도록 한다. 그리고 그가 다루는 소재와 이야기와 마무리도 (만화라는 장르임을 생각할 때) 거칠고, 낯설다. 그 거칠고 낯설음은 어디서 오는 것일까. 한국 단편소설에서의 영향이 아닐까. 그의 여러 단편들에서 이런 생각을 전개시킬 수 있는 흔적을 찾을 수 있다. 가난과 역사(전쟁, 분단, 광주…)의 모진 채찍에 나가떨어지는 인간들을 자주 그린 점이나, 방화로 인한 파국적 결말(<불>)이나, 토속적인 관능이라든가. 한국 단편소설들이 지나온 길이 보인다. 물론 그가 단순히 단편소설을 (만화로의) 장르 번역하는 데 끝난 것은 아니다. 그러나 문학을 만화로 옮기거나 문학의 영향을 짙게 받았다는 사실은 오세영의 만화의 문학성을 생각하게 한다. …오세영이 리얼리즘의 만화를 그려내고 있는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나, 그것은 환상적이며 동시에 기괴한 리얼리즘이다. 사실을 그려내려고 노력하되, 그 사실은 비틀어진 사실이다. 그래서 더 충격적으로 다가온다. <난.쏘.공>의 조세희를 떠올리게 한다. 아니다. 오세영은, 오세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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