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하엘 엔데의 마법 학교 푸른숲 어린이 문학 4
미하엘 엔데 지음, 카트린 트로이버 그림, 유혜자 옮김 / 푸른숲주니어 / 2004년 1월
평점 :
절판


 내가 어렸을 때, 책읽기를 그다지 좋아하지 않았다. 같은 반의 한 친구가 있었는데, 어린 나이에 벌써부터 책벌레가 된 녀석이었다. 책꽂이 두 개가 전부였던, ‘학급문고’의 최다대출자였던 놈은, 책읽기를 업으로 삼지 않았으며 발랄한 정신의 소유자였던 내게는 현기증 날 정도로, 책을 많이 읽었다. 놈의 생일날, 생일초대를 받아 집에 놀러갔었다. 별로 크지도 않은 집 안 가득히 책들이 꽂혀있는 걸 보고는 다시 한번 질렸었다. 뒷날, 나는, 놈은 학자의 아들이었기에 부르디외가 말한 ‘문화자본’이 풍요로웠고 그렇기에 자연스레 독서를 한 것이었으며, 한편, 그런 문화자본이 없었던 내 유년기의 빈곤한 독서史는 용서받을 수 있다고, 입가에 음흉한 미소를 지으며 그렇게 생각했다. 그 친구가 지금은 무얼 하는지 나는 알 수 없다. 아마도 지금 이 시간에도 책을 파먹으면서 학자의 길을 걷고 있을 것이려니… 생각한다. 지금까지의 이 엉뚱한 회상과 상상은 미하엘 엔데가 지었다는 <모모>라는 책에서부터 시작됐다. 그 친구가 열심히 읽고나서 내게도 일독을 권했던 동화책 <모모>. 물론, 놀기 바빠 책 따위엔 신경 쓸 시간이 없었던 나는 지금껏 읽지 않았다. 대신 미하엘 엔데가 쓴 <마법 학교>라는 동화책을 읽게 되니, 반갑다.

<해리포터> 시리즈나 <반지의 제왕>으로 판타지 영화나 소설이 아이들에게도 너무도 익숙한 장르로 다가올 것이다. 미하엘 엔데의 이 동화도 그런 요즘 유행에 편승해서 번역 출판된 것이 아닐까, 하는 의심을 해보면서 책을 읽기 시작했다. 동화책에서는 재미와 교훈이 가장 중요한 가치일 텐데(어른 책도 크게 다르지 않지만), 이야기의 흐름상 이 동화는 교훈들이 앞쪽에 몰려 있고, 재미있는 얘깃거리들이 뒤쪽에 자리 잡고 있다. 어린 시절 교훈만을 추출해내는 기괴한 학교 독후감 쓰기에 길들여진 탓인지, 오히려 뒷부분으로 갈수록 나는 좀더 지루해졌다. 이 동화는 작가가(?) 소원 나라라는 곳을 여행하면서 마법학교의 머그와 말리라는 아이와 함께 했던 시간들을 적어낸 이야기이다. <해리포터>에서처럼 머그와 말리도 마법을 배우기 위해서 마법학교에서 열심히 공부하는데, <해리포터>보다는 더 철학적(?)이다. 담임선생님 로자마리노 질버씨는 처음에는 입바른 구라들만 잘 치는 사기꾼으로 보이는데, 실은 참 스승이다. 내가 보기에, 동화의 초반부에서 질버 씨는 마법을 가르쳐주는 게 아니라 철학이나 교육학 강의를 하고 있다. 심지어는 진학지도까지…. “사실 자기가 정말로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제대로 잘 알아내기만 하면 다른 문제는 저절로 풀린단다. 하지만 자기가 진심으로 바라는 소원이 무엇인지 알아내는 게 쉽지 않지.”라든가, “예를 들자면 어떤 사람은 유명한 의사나 교수 혹은 장관이 되고 싶다고 말하지만, 그가 미처 알지 못하고 있던 진정한 소원은 평범하고 실력 있는 정원사가 되는 것일 수도 있어. 또 어떤 사람은 돈 많고, 권력도 많은 사람이 되고 싶다고 말하지만 그의 진정한 소원은 서커스의 피에로가 되는 것일지도 모르지.”라든가. 내 유년의 꿈은 내가 설정하지 않았고/못했고 국가가 대신 지정해줬다. 그것은 과학자가 되어 힘센 “나라”를 만드는 것이거나 대통령이 되어 좋은 “나라”를 만드는 두 가지 길이었는데, 나는 멋지게 생긴 로보트를 만드는 과학자가 되길 희망했었다. 물론, 내 또래 아이들도 대부분 그 두 가지 중에서 장래희망을 고르곤 했다. 자기가 진심으로 바라는 소원을 잘 알지 못했다. 제대로 자신의 소원을 몰랐으니 어떠한 초급 마법도 꿈꿀 수 없었다. 머그와 말리는 나중에 마법 대학교에 진학했다고 하던데 그 아이들이 소원을 잘 찾았는지 모르겠다.


그나저나, 내 유년기의 책벌레 친구여, 내가 먼 뒷날에 아이가 생기게 된다면, 반드시 <모모>를 읽혀 내가 못 다한 숙제의 유업을 이루게 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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