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경과 상처
김훈 지음 / 문학동네 / 1994년 1월
평점 :
구판절판


그가 내가 구독하던 신문에 미셀러니를 연재했을 때, 나는 그에게 별다른 관심이 없었고, 그 무관심은 오랫동안 지속되었다. 그의 글들은 읽거나 말거나, 였다. 그러던 중, 그가 어쩐 일인지 말단 평기자가 되어 밑바닥과 거리를 헤매고 다니는 것 같았다. 그가 거리에서 써냈을 기사문 중 하나가 나를 놀라게 했다. 바리케이드를 사이에 둔 시위대와 전경들의 평온한(?) 점심 식사를 포착해낸 기사 아닌 기사였다. 그 기사는 시위대의 사람들과 전경들 모두를 욕보이는 글이겠지만, 아름다웠다. 주어진 아주 짧은 지면 안에서 자기 글을 이, 착륙시키기 위해서 노력한다는 그의 말 때문에, 그가 더 대단해 보였다.

『풍경과 상처』는 기행산문집이란다. 이 글뭉치들을 굳이 ‘기행’산문집이랄 필요는 없을 것이다. 신경숙과 정현종, 천상병 들에 대한 몇몇 글을 빼면 여러 곳의 풍경에 대해 쓴, 기행문집이 맞지만, 실상, 그 글들은 김훈이라는 풍경을 담을 뿐이다. 김훈 특유의 청승맞은 그 풍경스케치들은 그 자신이 고백하듯 “(모든 풍경은) 상처의 풍경일 뿐”이란다. “삼인칭을 주어로 삼는 문장을 만들 수가 없”는 그이기에 모든 상처 난 풍경들은 김훈 내면의 풍경이고 언어의 풍경이다. 미문의 힘으로 움직이는 김훈이라는 풍경은, “무의미한 것들에 의미를 가량하는 자들의 시선이 닿을 때, 무의미한 것들은 사물성의 벽에서 풀려나 언어의 사슬을 끊어버리고 날아오르기 시작한다.(58)”라는 그 자신의 메아리를 듣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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