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배가 하얀 이유 초승달문고 4
구마다 이사무 글 그림, 양미화 옮김 / 문학동네 / 2003년 12월
평점 :
절판


만화에 나오는 동물들을 유심히 보면, 그들의 배는 하얀 동그라미로 그려져 있는 걸 보게 된다. 펭귄이라면 몰라도, 딴 놈들은 왜 그럴까? 아무 생각 없이 보면 마냥 귀엽게만 느껴지는 그들의 하얀 배에는 처절도록 아름답고 슬픈 이야기가 담겨 있다!?

이 어린이책 표지엔 대가리 크고 다리 짧고 통통하게 생긴 고양이 놈이 서 있다. 웃기게 생긴 얼굴을 한 주제에 뭔가 진지한 표정. 정치성과는 별 상관없어 보이는 노란 조끼를 들추어내는데, 두두둥! 거기에 커다란 하얀 똥배가 보인다. 한참 다이어트 중인 고양이일까? “내 배가 하얀 이유”라는 무언가 교훈적일 거란 암시를 주는 책 제목이 그런 황당한 상상으로 나를 이끈다. 운동을 하지 않으면 하얀 똥배가 뽈록~ 나오는구나, 라고 어린이들에게 알려주려는 걸까? 아니면 원래 멋진 왕자님인데 마녀나 흑마술사에게 저주를 받은 걸까? 웃기게 생겨먹은 고양이 꼴을 봐선 왕자님 같지는 않아 보이는데...


이 고양이 놈의 이름은 톰이다. 고양이 톰은 못 말리는 게으름뱅이다. 늦잠 자는 걸 좋아하고, 친구들이랑 한 약속도 매번 늦는다. 그래서 친구들은 톰을 ‘따’시켜버렸다. 그러자, 톰은 “나는 버림받은 고양이처럼 혼자 남겨졌다.”라고 시인처럼 멋지게 탄식한다. 그러나 능청스럽고 몽상가 기질을 타고난 톰은 혼자서 생각해 본다. 우이~씨, 난 나쁜 놈은 아니라고! 어제 꼭 봐야할 만화 영화가 있었고, 물고기한테 밥도 줘야했고, 장난감도 치워야했고, 목욕탕에서 수영이랑 잠수 연습도 해야 했으며, (헉헉,) 공룡 그림책도 봐야했고, 만화도 그려야했다. 자기 변명을 끝낸 톰은 친구들 화를 풀어주기 위해 나무열매를 따러 숲 속으로 머나먼(?) 여행을 떠난다. 온갖 산전수전 끝에 열매를 따러 나무에 올라선 톰은 실수로 사다리를 놓쳐버린다. 그때부터 또 톰의 밑도 끝도 없는, 설상가상의 몽상은 시작되는데... 그 우울한(?) 몽상까지 나를 너무도 닮은 톰. 나는, 그런 톰에게서 미워할 수만은 없는 따스한 형제애를 느껴버리고 말았다! 어쨌든, 몽상이 끝나고 톰은 조심스레 나무 아래로 기어내려오는데, 에구머니나! 그만 쭉 미끄러져버리고 말았다. 아아아, 내 친구 고양이 톰의 하얀 똥배의 비밀은 그렇게 탄생한 것이었던~ 것이었던~ 것이었슴다!


옮긴이도 책을 우리말로 옮기는 동안 깔깔거리며 웃었다는 어린이책, 『내 배가 하얀 이유』는 일단 재미가 있어 좋습니다. 아무리 유익하고 교훈적인 책이라도, 재미가 없는 책이라면, 어른들은 결코 어린이들에게 읽으라고 강권할 수 없습니다. 깔깔거리며 읽으면서도 교훈이 들어있어야 좋은 어린이책이라고 할 수 있겠지요. 게으름뱅이 고양이 톰은 실수투성이에 몽상가이긴 하지만, 친구들을 위해 열매를 따기 위해 고생을 하고, 또 그렇게 고생해서 딴 열매를 잼으로 만들어서(나무에서 미끄러져서 찌그러짐;;) 친구들과 나눠먹습니다. 착한 왕자님도 예쁜 공주님도 아니지만 아이들에게 더 친근하고 호소력 있는 캐릭터이지요. 이렇게 멋진 어린이책이 있다니 책과는 사이가 좋지 않던 저의 어린 시절이 불쌍해지는군요. …다만, 귀엽고 웃기게 잘 그려져 매력적인 삽화가 모두 컬러로 인쇄되었더라면 어린이들의 눈을 더 즐겁게 해줄 수 있을 텐데, 하는 아쉬움이 조금 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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