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산당선언 책세상문고 고전의세계 21
칼 마르크스 & 프리드리히 엥겔스 지음, 이진우 옮김 / 책세상 / 2002년 10월
평점 :
구판절판


솔직히 얘기하자면, <공산당선언>을 읽지 않고 청년기를 지나칠 자신이 없었다. 청년기에 맑스를 읽지 않으면 바보라던데 바보가 되긴 싫었다. 그런데 읽고 나서도 여전히 바보일 수밖에 없다. 자신이 살던 세계를 해석하고 그 해석을 바탕으로 세계를 변혁하고자 한 맑스와 엥겔스의 실천적 사유들은 나를 한없이 작은 존재로, 바보로 만들어버린다.

작은 문고본이지만, 맑스와 엥겔스가 함께 쓴 「공산당선언」과 엥겔스의 「공산주의의 원칙」, 그리고 「공산당선언」의 중판 및 번역본들의 서문과 역자의 해제 「철학자 마르크스, 공산주의에서 공생주의로」가 실려 있어 충실한 느낌을 준다. 맑스를 처음으로 만나보기 원하는 독자에게는 최상의 선택이 아닌가 싶다.

맑스는 그 자신의 말마따나 맑스주의자가 아니었지만, 그를 살아있는 텍스트로 제대로 읽기엔 교조주의자가 너무 많다. “마르크스는 ‘이념 속에서 현실’을 탐구했던 플라톤을 비판하면서 ‘현실 속에서 이념’을 찾고자 했던 아리스토텔레스처럼 이러한 의도를 통해 스스로를 독일 관념론과 차별화했다.”(119쪽)고 한다. 맑스를 하나의 굳어버린 관념형이 아닌 살아있는 ‘지금 여기’의 텍스트로 읽는 게 필요하지 않을까. 역자에 따르면, 이제 아무도 공산주의를 공포스런 ‘유령’으로 생각하지 않는다고 한다. 맑스의 두뇌가 초고속으로 돌아가던 시절에 비해서 작금의 세계는 더욱 복잡하고 난감한 편이다. 어느 누구도 쉽게 세계를 도식화해서 해석하고 실천적 대안을 명쾌하게 제시하지 못한다. 그러나 “노예는 한번에 팔려간다. 프롤레타리아는 매일, 매시간 자신을 팔아야 한다.”(67쪽)는 엥겔스의 목소리는 여전히 크게 울린다. 자신을 팔지 않고 살 수 있는 사람이 몇이나 되겠는가.

사회과학적 안목이 부족한 나로선 지금이 어째서 20대 80의 사회인지 신자유주의가 어떻게 인간들의 목을 조르고 있는지 구체적으로 파악하지 못한다. 그럼에도 <공산당선언>은 통쾌한 전복적 사유로 세계를 찬찬히 재음미해볼 것, 을 요구한다.

“너희는 우리가 사적 소유를 청산하려 한다고 경악한다. 그러나 너희의 기존 사회에서 사적 소유는 구성원의 10분의 9에게는 이미 폐지되었다. 사적 소유가 10분의 9에게는 존재하지 않는 까닭에 사적 소유가 존재할 수 있는 것이다. 다시 말해 너희는 사회의 압도적 다수의 무소유를 필수 조건으로 전제하는 소유를 우리가 폐지하려 한다고 비난하고 있는 것이다.”(36쪽)

다시 한번 붉은 유령이 뜨거운 피와 살을 빌려 부활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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