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양 한림신서 일본현대문학대표작선 26
다자이 오사무 지음, 유숙자 옮김 / 소화 / 2002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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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류철균에 의하면, 다자이 오사무는 강은교, 최승자에게 영향을 준, 허무주의의 대가라고 한다. 해서, 찾아 읽어보니 『사양(斜陽)』은 제목 그대로 저무는 태양을 그려내고 있다. 몰락하는 것들의 아름다움. (그러고 보니, 장정일이 그의 독서일기에서 고급문학은 몰락의 정서를 다루고 통속문학은 신데렐라류의 얘기를 다룬다, 라는 비슷한 말을 했던 게 생각난다.)

전후(戰後) 일본의 몰락 귀족 일가의 이야기를 다룬, 이 소설은 그 절망 안에, 또는 절망 곁에 예술과 퇴폐와 사랑과 혁명을 섞어 내거나 엮어내고 있다. 그런데 소설을 성실히 읽지 않아서인지 자꾸만 다자이 오사무와 소설 속의 '그들'이 겹쳐 보인다. 특히 마약 중독으로 삶을 마감한 나오지의 유서는 차라리, 다자이 오사무 자신의 진심을 담은 것이 아닌가, 싶다. 다자이 오사무를 잘 모르는 나는, 나오지와 그의 삶이 자꾸 경계선이 지워지는 것이다.

귀족이란 자의식과 그에 따른 '민중의 벗'이 될 수 없는 괴로움. 이것은 나오지의 유서를 통해 직접적으로 진술되기도 하고, '당신 동생 나오지도 귀족치곤 꽤 괜찮은 남자지만, 가끔 어쩌다 도저히 상대해 줄 수 없을 만큼 건방진 데가 있지. 나는 시골 농부의 아들이라, 이런 개울가를 지날 때면 어김없이 어릴 적 고향 개울에서 붕어를 낚던 일이며 송사리를 잡던 기억들이 생각나 몹시 그리워지곤 해.'(177쪽)라고 가즈코에게 말하는 소설가 우에하라의 입을 통해서 드러나기도 한다. '계급'은 확실히 인간을 질식시킨다. 민중에게 악수 받지 못한 슬픈 귀족이나, 그들에게 악수를 청하는 귀족이 있다는 사실을 모르는 민중 모두에게.

…허나, 이런 부질없는 생각이 뭐 중하랴. 실은, 이 소설에서 가장 빛나는 부분은, '인간은 모두 다 똑같다. (…) 이 신기한 말은 민주주의와도, 또한 맑시즘과도 무관합니다. 그건 틀림없이 주막에서 못생긴 남자가 미남자를 향해 내뱉은 말입니다. 단순한 초조감입니다. 질투입니다. 사상이고 뭐고 있을 리 없습니다.'(186쪽)라는 나오지가 쓴 유서의 한 대목! 이건 몰락 태양의 블랙유머이다, 최승자의 시에서도 발견되는. ('유사 유서'인) '죽음의 문학'은 무덤을 파두고 쓴 글이라 너무도 무거운 뼈저림이 느껴진다. 한편, 삶과 세상을 등진 예비-주검의 한없이 가벼운 한기(냉소)도 동시에 느껴진다. 그게 사양의 미학? 이상, 독서 과제 완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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