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정일의 독서일기 범우 한국 문예 신서 79
장정일 지음 / 범우사 / 1994년 11월
평점 :
구판절판


장정일의 글들은 여전히 마력적이다. 확실히 그는 독자를 책 속으로 빨아들이는 흡인력이 있다. 장정일의 독서 편력기를 모아둔 이 책은 그 마력적인 글쓰기가 어디에서 비롯되었는지를 조금은 해명해 준다. 시, [삼중당문고]에서 밝혔듯이 장정일에게 독서는 곧, 삶 그 자체였다. 이 책도 그렇다. 책이 일기로, 일기가 책 속으로 고스란히 녹아 들어간다.

이 책을 읽으면서, 좋은 책은 좋은 책을 소개하는 책이어야 한다는 생각을 했다. 한 권의 책이 그 책 속에서 또 다른 좋은 책을 소개하지 않는 책은 닫힌 책이다. (70쪽)

라고 말한다면, 이 책은 좋은 책이다. 나는 몇몇 권의 좋은 책의 목록을 장정일에게서 건네 받을 수 있었다. 메이저 출판사의 책들이나 신간 중심이나, 베스트셀러 중심으로 읽지는 않는 그의 독서 패턴에 따르자면, 그 몇몇 권의 수는 적은 편이 아니다.

여기 실린 장정일의 독서후기들은 대체로 독설에 가깝고, 그런 독설이 시원하고 유쾌하다. 그런 가시 돋친 독서후기(그에 따르면 '나름대로의 '저자후기'') 가운데, 때때로 발굴해낸 책 속의 보물들도 구경할 수 있다. 정말 그런가, 보자 :

또 그의 오두막으로 매일 찾아와 그의 작업을 구경하는 원주민 청년이 있었는데 고갱이 판화 도구를 그의 손에 주며 조각해볼 것을 권고하자 청년은 매우 놀란 표정을 짓고 그것들을 되돌려주며, '나는 '쓸모있는 인간'이라는 뜻의 말들을 아주 단순하고 진실되게 토로하는 것이었다.' (폴 고갱의 타이티 체류기 <노아 노아>의 에피소드, 225쪽)

평론가들이란 주로 강자의 편에 서 있기를 좋아했다. 그것은 문학 이론이나 문단 상황 모두가 기득권을 가진 쪽에 이롭게 되어 있기 때문이기도 했지만 텍스트가 없으면 아무짝에도 소용없는, 직업 자체의 근본적 요인이 그들에게 새로운 작품이나 작가에 대해 보수적인 성향을 가지게 했기 때문이다. 그들은 작품에 대한 자신들의 생각보다 그들의 우두머리가 교시를 내리기만 기다렸다가 그 교시를 분석하고 원용하는 획일적인 위계 질서를 가지고 있어서 문단 내에서는 어느 집단보다 보수성이 강할 수밖에 없었다. [이처럼] 극우파로 이루어진 평단이라고는 하지만 좌파 평론가들이 없는 것은 아니었다. 그들은 직업적인 평론가라기보다 시나 소설 같은 창작 작업을 함께 하는 축이었다. 대학교수가 되기 위해 평론가의 직함을 따는 경향을 보이는 극우파들이 문학이론과 지도교수의 눈에 들기 위해 아부를 하고 있는 것에 비해 좌파들은 순수하게 작품 자체를 평가하려고 했다. 좌파는 수적인 면에서 다수를 차지하고 있지만 오합지졸에 불과한 실정이었다. 그들은 주관적인 비평 기준을 가지고 있을 따름이므로 그들 상호간의 응집력은 애초에 기대할 만한 것이 못 되었다. 개인적이고 산발적인 비평으로 작품의 가치를 보장해줄 수는 없었다(이진우, <적들의 사회>, p.176) (270∼171쪽)

이 책의 마지막 독서후기에 실린 것이다. 이진우의 목소리를 빌려서 그가 대신 적어 놓은 말은 생각할 거리를 만들어준다. 그가 이 책 어디에선가 밝히지 않았던가. 그는 평론가가 될 수 없을 것이라고. 또, <아담이 눈뜰 때>에서 19살 아담은 대학에서 영문학을 배우고 번역문학가나 평론가의 길 대신 작가가 될 수 있을까, 하는 의심을 품으며 재수 끝에 합격한 영문과 등록을 포기하지 않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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