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굴 소년의 우울한 죽음
팀 버튼 지음, 윤태영 옮김 / 새터 / 1999년 12월
평점 :
구판절판
「눈이 많은 소녀」
어느 날 공원에서 우연히 소녀를 만났습니다. 그리고 나는 깜짝 놀랐습니다. 소녀의 눈이 너무나 많았기 때문입니다. 그녀는 정말 예뻤습니다. (그리고 충격적이었습니다.) 나는 그녀의 입술을 찾아냈고 우리는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우리는 수많은 이야기를 했습니다. 꽃에 대해, 그녀의 시 쓰기 수업에 대해, 그리고 그녀가 안경을 썼다면 일어났을지도 모를 일들에 대해. 그렇게 많은 눈을 가진 소녀를 만난 것은 행운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녀가 주저앉아 통곡할 때에는 나도 흠뻑 젖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이 작고 얇은 책의 모든 에피소드들은 다 이러하다. 기괴한 신체를 가진 소년, 소녀들의 탄생과 그들의 우울한 삶, 죽음에 대한 이야기들로 말이다. 그것도 친절한 팀 버튼 제 삽화와 함께 함으로써 그 그로테스크함에 한층 강도를 더해주고 있다.
팀 버튼의 괴팍스런 상상력을 마음껏 즐길 수 있는 책이지만, 워낙에 각 에피소드들의 분량이 너무도 짧아서 독자가 개입할 여지를 충분히 남겨주고 있다. 그래서 오히려 그 여백을 통해서 또 다른 상상을 하다보면은 새로운 읽기를 통해 새로운 해석이 가능할 것만 같다.
소년 소녀들이 주인공이고 환상적이며 어렵지 않은 수준의 문체를 볼 때, 분명 동화라고 할 수 있는데 그냥 동화가 아닌, '그로테스크 동화'이다. 동화가 인간의 유년기를 담는 이야기이므로 원초적인 공포와 상상의 세계를 많이 그릴 수 있는데, 이 동화는 한 번 더 꼬고 뒤틀려서 만든 동화이다.
'아이'라는 존재는 성인(成人)에 비해서 불충분한 존재이다. 성인이라는 완성된 형태를 가정해 둘 때, 아이는 결핍된 존재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기본적으로 이 책의 모든 이야기의 주인공은 어른이 아니라 소년/소녀가 된다. 모든 이야기에서 신체적 결함과 장애와 이상을 가진 소년, 소녀들은 어른/정상인들에게 타자화되고 핍박받고 상처받고 좌절당한다. 타자화된 인간이나 아직 미숙하다라고 사회적으로 지적 받게 되는 아이들은 자신을 정상/완성된 인간에 비해 병신스러움을 지닌, 자아로 인식한다.(범죄자들처럼) 그러므로 이 이야기들의 주인공은 아이가 아니라 아이化된 어른일 수도 있고, 아이와 어른의 구분이 아니라 중심과 주변의 이야기가 될 수도 있는 것이다.
이 때 가장 문제시되는 것은 이들 '기괴한 아이'의 사랑 문제이다. 이들은 홀로 '살아내야' 하며, 홀로 놀아야 한다. 다가서면 서로에게 고통이 되는 관계가 되기 때문이다. 심지어는 이들 사이의 사랑마저도 어긋난다. '마른 가지 소년과 성냥 소녀의 사랑'에서 불꽃이 튀자 그 순간 소년의 온몸이 불타고 말았던 것처럼. 그나마 이들 '암울한' 이야기에서 「눈이 많은 소녀」가 기억에 남았던 이유는 마지막 구절에 있다. '그러나, 그녀가 주저앉아 통곡할 때에는 나도 흠뻑 젖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라는 말에서 서로에게 전염되어지는 슬픔이 절망적이기는 하지만 소통과 교감의 시작으로, 희망의 시작으로 보였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