컴퓨터 게임의 이해
최유찬 지음 / 문화과학사 / 2002년 1월
평점 :
절판


이 책의 제목을 다시 붙인다면, “컴퓨터 게임의 인문학적 이해”라고 붙일 수 있겠다. 겉 표지와 안쪽을 빠르게 넘겨 보면 게임 스크린 샷들이 많이 나와서 컴퓨터 게임에 대해서 가볍게 다룬 듯 보인다. 하지만 결코 내용은 그다지 쉽지 않다. 맨 처음 게임에 대해 이야기하면서 호이징하의 [호모 루덴스]를 인용하고 아리스토텔레스의 [시학], 노스럽 프라이의 [비평의 해부], 조동일의 [한국소설의 이론], 게오르그 루카치의 [소설의 이론] 따위의 책들이 수시로 등장한다.

글의 내용은 다분히 학술적이며 설명하는 말투가 게임에 대해 거의 모르는 사람에게 말하는 것 같다. 아마도 저자가 학술지에 발표했던 몇몇의 논문들을 엮어서 만든 책인 듯 싶다.

저자인 연세대 국문과 최유찬 교수는 교수 임용에 실패해 그 괴로움을 삭이느라 <삼국지2> 게임에 몰입하는데, 밤에 억지로 불을 끄고 자리에 누워도 중국의 지도가 머리 속으로 떠오르면서 어떻게 하면 천하통일을 할 지 고민하는 전형적인 게임 중독 상태가 된다. 그 이후에 박경리의 대하 소설 [토지]에 대한 논문을 작성해야 하는데 이 소설이 만만치 않은 분량임에도 불구하고 단 하나의 이미지로 환기되는 특이한 경험을 하게 된다. 그 경험은 삼국지 게임을 하면서 시간 구조보다 공간 구조를 중심으로 파악하는 습관에서 얻어지게 된 것임을 깨닫게 된다. 그 이후에 게임에 갖게 된 관심으로 이 책을 썼다고 한다.

일반적으로 게임은 오락이자, 예술로 정의할 수 있다. 독일의 실레겔은 예술 일반을 ‘아름다움’의 범주 아래에 포괄하는 관행에 이의를 제기하고 ‘흥미로움’을 대안으로 제시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41쪽) 이에 따르면 예술로서의 게임에 대한 접근은 설득력이 있는 것이다. 또한 저자는 하이퍼텍스트에 대해서도 언급하면서 게임의 체계적이고 인문학적 분석, 접근이 필요하다고 말하고 있다.

단지 게임에 대해 말했다는 것보다, 새로운 사회예술문화 현상에 대해서 인문학적 분석을 하는 것이 어떻게 가능한가에 대해서 보여줬다는 점에서 이 책의 가치가 빛난다. 또 새로운 사회예술문화 현상이 국문학을 비롯한 인문학 분야에 어떤 영향을 주는지에 대해서도 보여준다고 할 수 있다. 더 나아가서는 새로운 사회예술문화 현상이 인간의 인지에도 어떤 영향을 주는지에 대해서까지 생각할 거리를 던져주고 있다.

개인적으로 저자가 직접 <삼국지 2> 게임을 했던 경험과 이 게임에 대한 평을 부분부분 여러 곳에 걸쳐 쓴 것이 흥미로웠다. <삼국지> 2, 3, 6판을 비교하면서 그 변화 양상을 각각 “상징적 예술과 고전적 예술, 낭만적 예술 순서의 예술의 발전단계”와 일치(헤겔)하고 있다는 지적도 인상적이었다.(193쪽) 실체론적 세계 이해에서 관계론적 세계 이해로 나아간다는 것이다. 즉, <삼국지 2>에서는 장수들의 능력에 상관 없이 똑같이 만 명의 병졸을 거느릴 수 있다. 한편 <삼국지 3>에서는 장수의 능력과 직책에 따라 통솔 병력에 차이가 나고 군주의 세력이 자연 환경, 인문 환경에 따라 영향을 받는다. <삼국지 6>에서는 중국 민족 이외에 이민족이 등장하고, 황제도 일정한 역할을 하며, 장수들 간의 심리도 표현되고 있다는 것이다.

ㅡ 테트리스 게임에 대해서 서술한 부분 :
끊임없이 원래의 상태를 회복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는 점에서 일종의 질서회복운동이며 고향으로 돌아가고자 하는 ‘향수’, 자궁회귀 본능을 자극한다고 이야기되기도 한다. 이 게임에서도 일정한 수준의 이야기성을 찾아볼 수 있다. (7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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