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대한 신 브라운 / 하나님의 자녀들은 모두 날개가 있네
유진 오닐 지음, 이형식 옮김 / 지만지드라마 / 2026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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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음. 이 두 편은 유진 오닐이 쓴 작품에 국한하자면 망작일세. 다른 극작가가 썼으면 훌륭한 작품이겠지만 천하의 오닐의 경우에 그렇다는 말이다. 아, 오해하지 말기. 내가 최근에 본 연극이 몇 십 년 전 일이다. 이런 문외한이 하는 말이니 1도 믿지 않아야 마땅하다.

  <위대한 신 브라운>에서는 노골적으로 탈, 마스크가 나오고, <하나님의 자녀들은 모두 날개가 있네>에서도 조현병이 심각한 여자 주인공 엘라는 콩고 탈을 보고 경끼를 일으키는 장면이 나온다. 엘라의 진짜 탈은 그깟 콩고 탈이 아니라 흑인, 백인으로 세상을 가르는 인종의 문제, 그 문제에 함몰하여 빠져나올 줄 모르는 엘라 본인이 쓴 탈이다. 라고 나는 주장한다.


  <위대한 신 브라운>에는 두 명의 탈 쓴 이가 나온다. 주인공 윌리엄 브라운. 애칭 빌리. 그리고 디온 앤서니. 두 명 다 출중한 젊은이들.

  디온의 아버지 앤서니 씨는 큰 건축회사 사주. 몽상가이면서 예술적 기질이 넘치는 디온은 자신의 내면을 지배하는 약한 자아를 감추기 위하여 매사 냉소적이고 자신감이 넘쳐 세상을 조롱하는 듯한 가면을 가슴에 달고 다닌다. 빌리는 자기 아버지 브라운 씨가 앤서니 씨의 도급업자로 시작해 동업자의 말석에 끼워주어서 그런지 디온에 대하여 열등감 비슷한 것을 가지고 있고 사실 실력도 디온에 미치지 못한다. 그래서 빌리는 자신감 넘치는 야심찬 모습의 탈을 지니고 있다.

  두 등장인물은 늘 가슴에 달고 다니는 탈을 썼다 벗었다 하며 극을 이끌고 있다. 벌써 인물들을 열거하니 누가 더 우위에 있게 될 줄 딱 드러난다. 당연히 빌리. 속이야 어떻든 간에 겉으로 자신만만해서 신뢰감을 주는 빌리가 자연스레 성공해 앤서니 씨의 회사를 인수하고 사명을 “브라운 앤드 선”으로 고쳐버렸다. 이 동안 솜씨 좋고 머리도 좋은 디온은 빌리도 사랑해마지않는 마거릿과 결혼해 날이면 날마다 술과 도박에 미쳐 자기 재산을 홀라당 말아먹어 버렸다.

  착한 마거릿이 디온에게 좋은 말로 앞으로 우리는 어떻게 먹고 살 거냐고 바가지를 살짝 긁는다. 디온은 진짜 싫었지만 빌리에게 가서 자리를 얻으려 한다. 그래서 마거릿이 빌리에게 가 자리를 부탁하고, 디온의 실력이면 속으로는 모셔오고 싶어할 정도라, 빌리는 버선발로 달려가 디온을 모셔온다. 디온의 직업? 건축사.

  일찍이 고등학교 시절, 빌리는 마거릿의 그림자만 봤다 하면 선 자리에서 꼿꼿하게 얼어붙을 정도로 짝사랑했다. 그게 지금도 그렇다. 좋아했지만 고백하지 못했다. 마거릿이 예술가 기질이 넘치면서 어딘가 우울하게 보이는 디온한테 반해 디온과 사귀었고 결혼까지 했다. 빌리는? 탈을 쓴 빌리의 모습을 좋아하지 않았다. 그럼 어떻게 해서든지 디온의 탈을 빌리가 쓴다면? 당연히 마거릿은 빌리를 디온으로 알고 남편이니까 뭐든지 다 해준다.

  여기까지 얘기해도 뭔가 일이 생기겠지? 맞다. 생긴다. 살인? 흠. 너무 나갔다. 그건 아니고 빌리의 집, 빌리의 응접실에서 세상 살 기력이 모두 빠진 디온이 팍 고꾸라져 죽었다. 심근경색이나 뭐 비슷한 거겠지. 여태 디온의 가슴에 매달려 있던 그의 탈. 그걸 빌리가 낚아챈다. 빌리는 디온의 시신을 세상 사람들이 알지 못하게 처리해야 할 충분한 이유가 있다. 위에서 말했지. 빌리가 디온의 탈을 쓰면 마거릿, 십대 시절부터 자신의 몸뚱이와 다른 한 부분을 꼿꼿하게 만들었던 마거릿이 자신을 남편 디온으로 알아본다고. 그래서 디온의 탈을 쓰고 마거릿의 집으로 찾아가고 뭐 그렇다.


  탈(mask) 이론. 윌리엄 버틀러 예이츠가 주장한 건데, “마스크는 시인의 분기된 자아”로 시에 나타나는 시인의 비밀스러운 자아와 구분해야 하는 것 정도로 이해하면 되겠다. (한국 예이츠 저널, 2019)

  그러니 이 작품의 탈은 예이츠의 주장하고는 별개로 차라리 척 러셀이 감독하고 천재적인 코미디언 짐 캐리가 주인공을 한 영화 <마스크>의 스탠리 입키스와 더욱 유사하다. 탈을 쓰면 자신의 속마음, 실체와는 전혀 다른 인격으로 행위하고, 타인들도 자신을 완전히 타인으로 봐주는 것.

  세상 사람 다 탈을 쓰고 살지만 아무래도 좀 과하다.


  <하나님의 자녀들은 모두 날개가 있네>는 흑인 남자와 백인 여성으로 이루어진 부부 이야기이다.

  백인들이 견디기 힘들어하는 것 가운데 하나가 흑남백녀 간의 혼인. 반대로, 즉 백남흑녀는 그나마 있을 수 있는 일이라고 봐준단다. 물론 지금 시절이 아니고 20세기 때 이야기다. 1967년에 스탠리 크레이머 감독이 메가폰을 잡고 당대 특급 배우들인 스펜서 트레이시, 캐서린 햅번, 시드니 포이티어가 출연한 명작 <초대받지 않은 손님>이 나왔을 당시에도 흑남백녀의 혼인을 두고 난리가 벌어졌다고 들었다. 작품 속에서도 백인 아가씨의 부모, 스펜서 트레이시와 캐서린 햅번이 상당히 진보적 성향의 부부지만 열네 살이나 더 많은 흑인 홀아비 박사님을 사위감으로 데려왔을 때 처음엔 당황하고 이어서 결혼에 찬성하지 않았던 장면이 기억에 남는다.

  하물며 이 희곡을 발표한 것이 <초대받지 않은 손님>이 나오기 42년 전인 1925년이었으니 당시에는 어떠했을지 안 봐도 비디오.

  주인공은 흑인 청년 짐 해리스와 백인 여성 엘라 다우니. 장소는 뉴욕.

  둘은 초등학교 시절부터 동네 친구다. 아직 열 살도 되지 않았을 때 무대의 막이 올라간다. 어려서 아직 사춘기도 맞지 않은 짐과 엘라는 나름대로 첫사랑을 한다. 동네의 흑백 아이들도 나름대로 친하게 지내고, 찬하다기보다 허물없이 지낸다. 아이들은 짐과 엘라가 서로 좋아하는 것을 보고 그 나이에 맞게 놀려대고, 엘라는 애들한테 바락 화를 내니, 구석에서 그 모양을 바라보던 어떤 할애비가 이랬다지?

  “그런데 참, 이번 기집애는 여간 잔망스럽지가 않아.”

  하지만 고등학교를 졸업할 때, 엘라 눈에는 도무지 짐이 차지 않았다. 예쁜 백인 여자애가 집에 돈 많고 똑똑해서 장래 변호사를 지망할지라도 흑인 남자애를 좋아하기는커녕 말 한 마디라도 나누고 싶겠냐고. 이미 사춘기를 훌쩍 지난 무렵인데. 엘라 역시 보통의 백인 여자애와 다를 바 없어 이미 백인 권투선수 쇼티한테 몸과 마음, 줄 건 다 준 눈치다. 당시에 가장 인기있던 스포츠가 복싱. 복싱의 인기는 이후 60년이 넘게 간다. 쇼티도 동네 여자애들은 다 건드린 모양이다. 이 가운데 하나가 엘라였을 뿐.

  세월이 더 가면 엘라가 낳은 쇼티의 아이가 죽었다. 아이가 죽자마자 쇼티는 엘라를 모른 척해버렸다. 갑자기 자유로워진 쇼티는 다른 아가씨를 찾아가고, 절망하는 엘라 앞에 나타난 남자가 바로 더러운 흑인 짐. 짐 크로 해리스. 왜 하필이면 짐의 두번째 이름으로 ‘크로’를 붙였는지 거 참.

  짐은 고등학교 시절에 유급을 한 번 먹은 것처럼 연달아 변호사 시험에 낙방중이다. 분명히 다 아는데 막상 시험장에 가서 답안을 쓰려면 머리 속에서 정답이 서로 막 헝클어져 조리있는 답안을 작성하는 데 실패하고 만다. 매번 그랬다. 뭐 그럴 수 있지. 이럴 때 엘라를 만났고, 엄마와 누이동생 해티가 반대하는대도 불구하고 결혼해버린다. 그리고 곧바로 프랑스로 이민을 떠난다. 둘은 결혼 전에 미국 안에서는 흑남백녀가 도저히 살 수 없을 거 같아 그런 건 하나도 허물이 되지 않는 나라로 떠나 살 것이라고 약속한 바 있다.

  그러면 잘 살 것 같지? 파리에도 미국인은 득실거렸고, 거기서도 흑남백녀는 완전히 왕따를 당했으며, 따라서 엘라는 집 밖으로 한 걸음도 나가지 않은 채 홀로 극한의 우울증에 시달리기 시작했다. 파리를 떠나 시골로 가도 마찬가지였다. 아예 방안에 틀어벅혀버린 엘라. 이러다 사람 하나 잡을 거 같아서 이민 2년 만에 다시 귀국길에 오른다.

  이미 정상궤도를 벗어난 엘라. 이제 유진 오닐은 자기 전공분야를 만났다. 약간 정신질환이 있는 여성. 그것도 혼인한 여성을 오닐만큼 잘 묘사하는 작가는 세상에 없으리라. 그리고 이건 비극으로 이어질 수밖에. 애초 오닐을 읽으면서 해피 엔드는 기대 난망이겠지만.

  이 드라마가 사랑 이야기? 사랑을 못 이루게 하는 인종 문제? 그럴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다. 나는 심리적 궤멸을 향해 오랜 시간을 치닫는 불행한 여성의 궤적, 그리고 그것 때문에 희생당하는 주변 인물, 즉 오닐과 오닐의 어머니가 용해된 플라스크 속 액체인 듯했다. 뭐 그랬다는 거다. 믿을 필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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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자 밟기 ㅣ 비채 모던 앤 클래식 문학 Modern & Classic
루이스 어드리크 지음, 이원경 옮김 / 비채 / 2014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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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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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54년생 어드리크는 1972년 다트머스 대학에 입학했는데 이때 아홉 살 연상의 인류학자, 작가, 원주민 연구 프로그램 책임자인 마이클 도리스의 수업을 듣는다. 그리고 그와 사랑에 빠진다. 이후 동부 존스 홉킨스 대학에서 가방끈을 늘리는 동안 도리스의 뉴질랜드행 등 두 사람은 멀리 떨어져 있었다. 그래도 문학적 파트너십으로 단편소설을 함께 쓰며 연인의 관계를 돈독히 해 1981년 결혼에 이른다.

  이때 도리스가 한부모가정 자격으로 입양한 세 자녀가 있었고, 어드리크와의 사이에도 세 명의 자녀를 두었다. 태아 알코올 의존 증후군이 있는 입양한 첫째는 23세에 차에 치어 사망했다. 4년 후에는 입양 셋째 사바가 아버지 도리스를 아동학대 혐의로 고소했고, 이 사건으로 부부는 별거에 들어가 다음해인 1996년에 이혼했다. 1997년에는 마이클 도리스가 자살했다. 이후 입양 딸이 도리스가 평소 자신을 성적으로 학대했으며 루이스 어드리크 또한 학대를 방관했다고 증언했다.

  <그림자 밟기>를 읽고 루이스 어드리크를 위키피디아 검색해보니, 이 책이 어드리크 부부와 입양한 삼남매 이야기 가운데 성적 학대를 제외하고 픽션을 더해 쓴 소설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원주민 출신 인류학자, 작가 대신 적어도 미국 내에서는 잘 나가는 화가로 바꾸고, 남편에 의한 아내에 대한 가스 라이팅을 더 구체화한 작품으로.


  작품의 주인공은 아이린과 길버트 부부. 길버트는 작품 속에서 약칭 ‘길’이라고 불린다.

  만일 내 생각대로 루이스 어드리크가 위 세 입양아와 부부 사이를 소재로 소설을 썼다면 아이린은 자신을 모델로 한 치파웨족 인디언. 길은 클라스마족, 크리족, 자기 땅이 없는 몬태나 치페와족이 뒤섞인 혈통이라 미국 당국으로부터 원주민 등록이 미루어지고 있는 1/4 원주민이다. 원주민 등록을 하면 미국 정부와 원주민 협약 상 각종 혜택을 받을 수 있고 심지어 대학에 진학할 때에도 우선권을 보장받을 수 있다. 길은 그걸 받지 못한다. 그래도 그림을 그리고, 비싼 값에 미국 전역으로 팔려 경제적으로는 어려운 것 없이, 부자는 아니지만 콜로라도에서 궁상스럽지 않게 살고 있다.

  아이린은 19세기 아메리카 원주민을 그린 화가 조지 캐틀린에 대한 논문을 마무리하고 있다. 결혼 후 아이 셋을 얻어 첫째가 특히 과학에 천재가 있어 대학 강의를 듣는 13세 플로리언, 둘째가 원주민적 삶과 생존에 관심이 많은 11세 딸 리엘, 막내가 6살배기 아들 스토니. 이 가운데 둘째 리엘은 배 아파 난 딸이 아니라 친척이라고 했으니 입양한 모양이다. 입양과 관계없이 동등하게 키운다. 하지만 리엘은 부모와의 사이에 얇은 막 같은 것을 느끼고 있는 듯하다.


  실제 생활에서 전남편 도리스가 어드리크보다 결코 적지 않은 나이인 아홉 살이 더 많다. 아이린과 길 부부도 정확한 차이를 드러내지 않지만 나이 차이가 좀 있다. 모임에서 길이 아이린을 만났고, 둘은 첫눈에 호감이 생겼으며, 길은 아이린에게 모델을 해달라고 제안했다. 이때 아이린은 대학에 다니고 있을, 다니기 시작할 때였는데 학비는 집이나 정부로부터 지원을 받더라도 당장 돈이 아쉬워 그렇게 하기로 했다.

  아무리 화가 앞에서 예술을 위한 일이라 하더라도 남자의 시선이 머무는 공간에서 누드로 있기가 쉽지 않았다. 그래도 길은 아이린에게 다가와 피부, 윤곽선, 머릿결, 젖꼭지를 유심히 바라볼 뿐 손끝 하나 대지 않았다. 그렇게 시작했다. 길을 처음 보는 순간 호감이 있었던 데다가 훌륭한 매너까지 가지고 있는 걸 확인했으니 그를 사랑하지 않을 수 없었던 아이린. 이들은 머지않아 연인관계로 접어들고, 원래는 에드워드 호퍼를 연상시키는 화풍으로 인디언보호구역과 풍경으로 시작했다가 아이린을 만나고 아이린의 초상과 인물화로 성공의 길을 걷기 시작했다.

  다만 말이 초상화이지 아이린의 모든 모습이 다 그림으로 그려져 미국 각지를 돌며 전시를 하고 있었던 거다. 당연히 다수의 누드도 들어 있고, 그냥 포즈만 취하지 않고, 샤워하는 아이린, 누워 엑시터시를 감각하는 아이린, 술이 꽐라가 되어 충혈된 눈과 풀린 몸가짐의 아이린, 섹스 후의 젖은 몸을 적나라하게 벌리고 있는 아이린, 엉덩이 사이에 꽃 한 송이를 꽂고 엎드린 아이린, 하복부와 벌린 허벅지 마치 <세상의 탄생>과 흡사한 특별 부위만 노출한 아이린. 이런 그림만 있다는 게 아니라 이런 그림들도 아이린의 초상 시리즈에 포함되어 있다. 그것들이 인터넷 검색만 하면 누구나, 언제, 어디서도 볼 수 있다. 실제로 큰아들 플로리언은 어머니의 초상화를 잔뜩 검색해 보고 있다가 아이린에게 들켜 화들짝 놀라 삭제하기도 했다.

  “괜찮아. 그림인데 뭐. 그러나 보지 않았으면 좋겠구나.”

  아이린이 할 수 있는 말은 이 정도였다.


  길은 확실히 화가로의 재능이 있다. 하지만 재능은 그를 천천히 따분한 인간으로 만들기 시작했고, 정말 인생의 따분함을 느끼기 시작하자 감정을 만회하기 위하여 더 일에 몰두했고, 성공과 관계없이 과로로 녹초가 된 밤에는 처음에는 가끔, 그러다가 차츰 자주 과음을 하기 시작했다. 부창부수라, 아이린도 길을 따라 어느덧 술을 많이 마셨고, 당연히 알코올 의존증을 겪게 되었으며 이것으로 남편을 지치게 만들었다.

  남편을 지치게 만드는 범 가운데 하나. 일찍이 첫 아이 플로리언을 낳은 1994년. 길은 아이를 키우면서 기념이 될 만한 일기를 써보라고 두꺼운 표지의 빨간색 일기장을 사주었다. 아직까지 쓰고 있다. 몇 권이 되겠지. 똑 같은 빨간색 표지의 일기장. 이 가운데 최근에 쓰고 있는 건 오랜 서류를 모은 캐비닛의 뒤쪽에 보관하고 있다. 아이린은 속으로 말한다.

  “당신은 오랜 수색 끝에 이 일기장을 발견했을 거야. 내가 바람 피우는지 알아내려 읽었을 거고.”

  상대가 바람 피우는지 배우자가 의심한다면 다 된 부부다. 이 집도 그렇다. 부부가 차츰 권태로워지고 술을 마시기 시작하고, 그래서 상대를 지치게 만들면 별 생각이 다 들게 되리. 그리하여 남편 길은 (어드리크의 전남편 도리스처럼)아이린과 아이들을 몇 번 때렸고 (그러나 리엘을 성추행하지는 않았으며), 이건 미국 법에 어긋나는 일이라 경찰에 고발하기 전에 심리상담사에게 상담을 받았다. 이후 손찌검은 하지 않지만 살면서 큰 소리 한 번 치지 않을 수 없고, 위협적인 몸짓 역시 한 번 하지 않을 수 없었을 터인데, 결국 다시 한번 큰아들 플로리언의 머리통을 후려갈길 예정이다.

  이미 가정, 특히 부부 사이는 다 된 것으로 판단한 아이린은, 남편 길이 읽고 있다고 확신하는 빨간 색의 일기장에 소설 한 편을 쓴다. 세 아이 전부 아버지가 다른 남매. 특히 막내는 부부가 프랑스 여행 중에 만난 남자와의 베드씬까지 상세하게 적어 놓았다. 사실이 그렇냐고? 천만에. 아이린이 딱 한 번의 혼외정사로 혼인의 순결을 깨뜨리긴 했지만 안간힘을 다해 그 실수를 잊고 살려 애쓰며 살고 있다. 길은 성격이 지랄 같아서 문제이고 신경정신적으로 작지 않은 결함이 있는 것이 사실이지만 적어도 혼인의 순결을 지키고 있는 것처럼 보이며, 오히려 자신의 순결함이 배우자의 그렇지 못함을 캐려고 하는 집착의 원인으로 작용하는 것처럼 보인다.

  하여간 이렇게 해서 길은 아이린이 씨 다른 아이 세 명의 자녀를 만들었다고 확신하지만, 어떻게 아느냐, 그걸 알게 된 내력은 결코 밝힐 수 없다. 아내가 쓴 일기를 읽었다고 자백해야 하니까.

  아이린의 고민. 이혼을 원하지만 진심으로 바라지는 않는다. 자신이 바람을 피웠다고 남편이 믿게 빨간 표지의 일기책에 불륜 소설을 쓰지만 정작 이혼하면 먹고 살 일이 걱정이다. 그렇다고 조지 캐틀린에 관한 논문에 열심인 것도 아니다. 박사가 되어야 취직할 수 있다며 이혼에만 집착할 뿐 이혼 후 아무 계획이 없다. 남편이 자기가 불륜행각을 벌였다고 믿게 만들려고 일기장을 통해 가스라이팅을 감행한다. 아빠한테 얻어맞아 혹이 난 플로리언의 이마 사진을 찍었지만 보관만 할 뿐 사용하지 않는다. 그러니 결말이 그 꼴이 나는 거다. 어떤 꼴인지 알려드리지 않겠지만.

  남편 길이 왜 자신의 외도를 의심하게 되었을까에 관한 묘사는 1도 없다. 신경정신적 질환인 편집증, 즉 의처증이라는 말도 하지 않는다. 그러니 어쩌면 아이린이 벌인 단 한 번의 외도를 알고 있을 지도 모른다. 내 추측은 알고 있다는 데 한 표. 이혼 경력이 있는 루이스 어드리크는 전적으로 아이린 편이다. 그걸 읽는 독자들도 어드리크의 문장에 현혹되어 전적으로 복장이 터진다. 뻥!


  그러면 아이린의 진짜 모습은? 은행 창고에 있다. 미니애폴리스의 웰즈 파고 은행. 안전보관소 데스크에서 신분증을 제시하면 안내원이 지하 층의 은빛 창살을 열고 보관함 앞까지 데려다 준다. 그러면 아이린이 핸드백에서 자신의 열쇠를 찾아 보관함을 꺼내 열쇠를 비틀어 그 속에서 파란 공책을 꺼내 책상에 놓고, 자신은 의자에 앉아 진짜 자신의 일기를 쓰기 시작한다.

  이렇게 책은 남편이 보라고 쓰는 열린 빨간 일기와 진짜 자신의 내면을 밝히는 닫힌 파란 공책으로 구분한다.

  망조가 든 가정. 심리상담사 앞에서 씨 다른 아이들 때문에 대판 부부싸움을 하고, 그날 밤 길은 창문 밖으로 자신이 그리고 있는 모든 그림을 던져버린다. 피 같은 술병도. 그것이 쌓인 눈 속에 퍽퍽 꽂혔으니 다음날 우연히 이 집 앞을 걸어갈 노숙인이 있다면 얼마나 횡재 같았을까? 그리고 다음 날 길은 자진해서 신경정신과에 입원한다. 집안에 평화가 찾아오지만 수입은 발생하지 않는다.

  몇 달 후, 길이 퇴원해 집에 돌아온다. 신경이 죽은 듯한 길은 오랜만에 가족 동반해 6월의 호숫가로 피크닉을 떠나고, 소설 <그림자 밟기> 역시 대단원을 향해 막바지 스타트에 들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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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7년에 쓴 잡문. 8월 4일에 헨리 제임스가 쓴 <비둘기의 날개> 독후감을 올릴 예정이다. 읽는 내내 <여인의 초상>이 막 떠올랐다. 그래서 생각난 김에 옛 노트 자락을 들췄다. 언제나 그렇듯이 전에 써 놓은 걸 다시 읽는 일은 꽤 창피한 일이다.





 원어 제목이 <The Portrait of a Lady>. 이 책을 읽어가면서 상권의 중간쯤 들어가면 책의 한글 제목은 당연하게 수정해야 한다고 주장할 수밖에 없다. <한 여인의 초상>으로. <여인의 초상>과 <한 여인의 초상>은 당연히 다르다. 주인공 여인이 이사벨 아처라는 이름의 재색을 겸비한 미국 태생 여자로 앞으로 긴 세월을 영국에 살게되고, 그러나 모든 여자를 대표하지 못한다. 따라서 당연히 <한 여인의 초상>이라고 해야 하는데..... 요새 나한테 미운털이 콱 박혀있는 출판사 창비가 이런 짓 하나는 정말 잘해서 정말로 <한 여인의 초상>이라고 제목을 달고 똑같은 책을 찍었다. 비슷한 것이 모파상이 쓴 <여자의 일생>. 그것도 원어로는 <한 인생> 또는 <어떤 인생>이지만 일본어로 번역하면서 <여자의 일생>으로 했다가 그냥 굳어져 우리나라도 덩달아 <여자의 일생>으로 굳어졌다고 들었다. (아마 예전 메모에도 그렇다고 썼을걸?)

 내가 왜 굳이 별거 아닌 것 가지고 서두를 떼냐하면, 이 이사벨 아처가 젊은 시절에. 이종사촌이 자기 아버지한테 받아야 하는 상속금 가운데 7만 달러를 본인은 모르는 것으로 하고, 이사벨이 상속받게 해주는데, 이걸 읽으면서 나는, 정말로 처절하게 "나한테는 왜 곧 죽어버릴 돈 많고 자식없는 이모부나 삼촌이 없느냔 말이다!"라고 절규했으며 애먼 마누라한테도 "혹시 나 모르는 너네 삼촌 가운데 돈 많고 장가 안 든 양반 안 계시냐?"고 했다가 타박만 오지게 먹어버리고 말았다.

 7만 달러가 그까짓 것 얼마나 되냐고? 계산해드리지. 때는 1850년대. 기분 좋게 1860년이라고 가정하여 그때 돈 7만 달러가 지금 돈으로 얼마쯤 될까, 라는 것을 계산하기 위해 150년 전이라고 뚝 잘라 생각하자. 그 동안의 평균 이자율을 4%로 본다. 고전을 읽어보면 유럽 각국에서 이자율은 아예 4%로 고정된 것 같다. 영국, 프랑스, 독일, 러시아를 가리지 않고 어떻게 하나같이 연 4%인지. 20세기 초반과 중반 전쟁시기를 거치면서 무지막지한 이자율을 보인 적도 있지만 겸손하게 그냥 4%로만 보겠다. 환율 또한 겸손하게 1달러 당 1,000원으로 하자. 그럼 마이크로소프트 엑셀 파일을 여시라. 그리고 이렇게 입력해보시라.

 +70,000*(1.04^150)*1,000

 (입력 했으면 enter)​

 그때 돈 7만 달러는 지금 우리 돈으로 최하 251억원과 같은 수준이다.

 머리 좋고 얼굴 예쁘다는 걸로 이종사촌 마음에 들어 가만히 앉아서 251억원이 하늘에서 뚝 떨어진 여자 얘기다. 나한테 251억 말고 200억 원만 있고, 하루에 백만원 씩 쓰면서 30년 동안 살 수 있다고 가정하면, 제일 먼저 마누라한테 92억원을 뚝 떼주고 그만 살자고 하겠다. 그럼 마누라도 여보 당신과 살면서 생전 이렇게 고마운 일은 여태 없었수, 하며 즐겁게 제 갈 길로 갈 거 같지 않은가. 그 다음 날부터 난 정신 없을 거다. 하루에 백만원씩 써제끼느라고.

 그래, 물론 안다. 세상은 60억년 전에 지구가 생겼을 때부터 단 한 번도 공평한 적이 없어서 나한테는 그런 일이 죽어도 일어나지 않을 것이란 걸. 맞아, 어찌 왕후장상의 씨와 내 씨가 같을 수 있겠는가.


 위에서 이렇게 썼다고 해서 이 책 <여인의 초상>이 그저 그런 소설이라고 생각하면 정말 오산. 미국인이지만 생의 많은 부분을 영국에서 산 헨리 제임스가 쓴 귀신 나오는 소설 <나사의 회전>이 전혀 생각나지 않을 참 재미있는 소설이다. 근 1,000 쪽을 넘어가는 긴 책을 정말 단숨에 읽게하는 작가의 신공이 놀랍다. 다만 내가 이렇게 갑자기 하늘에서 돈벼락을 맞은 신디(폭킹)렐라 얘기는 참 좋아하지 않는지라 나하고 궁합이 맞았다 할 수 없지만 그래도 이 재미난 책을 폄훼할 마음은 조금도 없다.

 아, 나도 죽을 때는 이사벨 아처의 이모부처럼 근사하게 죽고 싶은데. 돈을 많이 남겨서가 아니다. 죽는 모습이 정말 품위있게 폼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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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넬로페 2026-06-08 11:3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무덤까지 돈을 가져갈 수 없을지언정
요즘 세상엔 삼촌과 고모가 조카에게 남겨주지 않는 것 같습니다. 예전 소설들 읽으면 그들이 꼭 재산을 남겨주더라고요. 그런 낭만이 좋아요.

Falstaff 2026-06-08 15:54   좋아요 1 | URL
우리나라는 예부터 조카들한테는 자진해서 절대 안 준 걸로 압니다. ㅋㅋㅋ 제 집구석만 하더라도 장자 상속이라 맏아들 아니면 국물도 없었거든요. 그런 집구석에서 둘째 아들의 둘째 아들의 둘째 아들의 둘째 아들로 태어났으니 아휴.. 바랄 게 애당초 없었거든요. 그래서 제 둘째 아들한테는 조금 주고 갔으면 좋겠는데 뭐 벌어 놓은 것이 없어서 그저 마음 뿐입니다. ㅎㅎㅎ
 
기역은 가시 히읗은 황토 ㅣ 창비시선 529
김용만 지음 / 창비 / 202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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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빠른 56년 잔나비띠 시인. 임실 덕치마을의 가난한 농가에서 6남매 가운데 셋째로 났는데, 그 험한 시절에 아이들한테 손찌검 한 번 안 하고 큰소리 한 번 안 치는 천생 지게 같은 아버지와, ‘양글이’라는 별호를 단 작은 체수와 화려한 입담이 야무졌던 어머니 덕분에, 가난 때문에 고생은 했을지라도 하여간 우애는 좋게 살았던 모양이다.

  학교는 전주의 영생대학 국문과에 들어가 학교 이름이 바뀌어 전주대학 국문과를 졸업하지 않았을까 싶다. 졸업한 후에 희망대로 학교 교사가 되지 못했으니 그저 되는대로 책도 읽고, 시도 써보고 이것저것 하면서 살았겠지. 그러다 서른살이 오고 서울로 올라갔다. 거기서 고향 아는 사람들을 따라 아파트 현장일도 하고, 잡지사에도 잠깐 다녀보고, 구로노동자문학회에 들어가 본격적으로 문학공부를 시작했다고, 세계일보와의 인터뷰 기사에서 말했다. 그래서 이이의 농사짓는 시 속에 간혹 노동시도 섞여 있다.

  1990년, 35세 때 부산노동자문학회에 속한 간호사와 결혼해 이후 줄곧 부산에서 살았다. 아무 연고도 없는 부산지역에서 일하기가 쉽지 않아 그저 너댓 명 두고 철물 가공업을 하는 작은 가게 소위 마찌꼬바에 들어가 성실하게 일을 배우기 시작해 무려 30년을 넘게 그렇게 산다. 시간은 쏜살같이 날아간다. 그렇게 영세 철물 가공공장 노동자로 30년 넘게 지내다가 은퇴를 하루 앞둔 2016년 12월 24일에 야구장 철망 보수작업을 하다가 휴대전화를 받으니, 아이쿠, 위암이란다.

  마침 전에 누이동생이 소개해 사 둔 완주 위봉산 자락에 텃밭이 달린 작고 낡은 집이 있어서 치료와 항암 과정을 마친 후 그곳에 들어가 지금껏 거기서 농사짓고 산다.

  시업은 1987년에 실천문학을 통해 등단해 2026년에 두번째 시집 《기역은 가시 히읗은 황토》을 냈다. 데뷔 후에 첫 시집을 발표하고 그 속에 마저 하지 못한 이야기를 이 시집에 담았다.


  사는 게 다 그렇다. 이스라엘이 미국 대통령을 꼬드겨 페르시아 전쟁을 일으킨 것보다 손톱을 바투 깎아 나물 무칠 때마다 기름이니 된장이니, 청양고추 다진 것들이 닿을 때의 아리고 아린 손끝을 더 괴로워하는 거. 사는 거, 징그러운 거.



  가시



  산초나무 가시 하나

  외약손 손가락에 박혔다

  일주일간 함께 지냈다

  손톱 밑 가시라더니

  돋보기 쓰고도 보이지 않는

  이 작은 가시 하나

  받아줄 수 없어

  괴로워하다니

  엄살떨다니

  결국 곪아터지다니  (p.10 전문)



  짧으면서도 할 말 다했다. 둘째 행 “외약손”은 왼쪽 넷째 손가락이 아니라 그냥 왼손의 사투리. 작은 가시 박이면 거 참 신경 쓰이지. 돋보기를 써도 안 보일 정도로 작은데 따끔따끔하면 그걸 그냥 놔둬? 부처님이네. 나는 일단 가시 박인 부위 전체를 알코올 소독하고 손톱깎이로 따끔거리는 부위 전체를 막 후벼 파서 없애 버리는데 이것도 사람마다 다른 모양이다. 뭐 내 성질이 좀 별나서 그러겠지.

  위암 환자인 김용만이 농사도 잘 짓는다. 아무래도 어려서 농사꾼의 아들로 태어나 자기도 지어본 가락이 있어 도시 사람들보다 적응하기 수월했겠지. 그래도 농사는 힘든 일이다. 나 아는 농촌 출신 도시 사람은, 세계적으로 흉작이 와 식량무기화 수준이 오지 않는 한 다시는 농사 짓지 않겠다는 사람도 있다. 그만큼 힘든 일이다. 김용만이 감자 농사도 좀 했던 모양이다.



  감자 캤다



  묵정밭 감자 캤다

  약도 안 하고

  퇴비만 넣었더니

  감자가 고르지 않다

  그래도 첨 농사치고는 솔찬하다

  앞집과 옆집, 또랑 건너 최씨 아재

  산 밑 할머니, 주말에나 왔다 가는 이층집 나눠주고

  대전 해숙이, 형님네, 명희네

  한봉지씩 보내고 나니

  잔챙이만 남았다

  괜찮다 잘 짓든 못 짓든

  나누는 것도 농사다


  나는 학교 다닐 때 언제나 앞줄에 섰다

  그래도 기죽지 않고 잘 살았다

  큰 놈은 잔챙이가 키운다  (p.12 전문)



  김용만이 6남매, 4남2녀. 해숙이와 명희가 여동생. 그리고 형님네. 형이 둘 있다. 맏이한테는 ‘큰형님’이라 올림말을 한다. 그냥 형님은 둘째, 자기 바로 윗형이다. 서울 사는 김용구. 큰형님은 시골에 살아(p.90) 굳이 농사 지은 거 보낼 필요 없다. 초등학교 선생이지만 시골 사는 건 시골 사는 거니까. 누구냐 하면 이름 좀 알린 섬진강 시인 김용택. 대전 해숙이는 바로 아래 동생. 군산 복숙이는 둘째 여동생. 그러면 명희는 남해 사는 막둥인가? 아니면 막둥이의 딸? 뭐 이집 족보를 대강 추리하면 이렇다. 시인의 아내는 아직 부산에 살아 자기도 주민등록이 부산으로 되어 있다가, 나중에 아내마저 은퇴하고 완주 산골로 올라와, 너는 만날 남의 시만 읽고 자기 시집은 한 권 내지도 못하느냐, 하면서 바가지 득득 긁는다. 그렇게 산다. 그래서 시인들아, 나 한테 시집 좀 보내지마, 울상을 하기도 하며. 늙어서 귀엽게.

  두번째 시집이라도 등단 후 발표하지 않고 그냥 써 둔 시들이 많았겠지. 그래서 아직 부산 살며 아들 동해, 딸 도연이와 살 때 지은 시도 몇 편 들어 있다.



  기분 좋은 밤



  아내 퇴근이 늦는 밤이면

  가끔 우리는 저녁을 시켜 먹는다

  짜장면 하나

  짬뽕 곱빼기 하나

  전화해놓고

  신이 난 동해는

  베란다 창가에 붙어 있고

  아빠 돈 있느냐고

  도연이는 자꾸 묻는다


  아들딸 앞에 두고

  국수 가락 잘라주며

  소주 두어잔 받아 마시는

  기분 좋은 밤


  아내가 가끔은 늦어도 좋다  (전문. P.20)



  김용만은 영세 공장의 주임이고 아내는 간호사. 맞벌이하는 집이다. 시를 가만 읽어보면 평소에 이집 안주인, 여자는 돈벌이도 하면서 온갖 가사를 전담하는 모양이다. 엄마가 늦게 와서 어쩌면 아빠가 그냥 밥 짓고 차려주기 귀찮아서 짜장면 시켜 먹었을 수도 있지만, 밥은 당연히 여자가 하는 거라 엄마 기다리기 싫어 주문음식을 먹는 것일 수도 있다. 이왕이면 첫번째 경우였으면 더 좋겠다. 이왕이면 아내도 좀 늦게 퇴근해 집에 들어왔을 때 네 식구가 함께 먹었으면 좋겠다. 동해는 짜장면 먹고, 아빠와 도연이는 짬뽕 나누어 먹고, 엄마가 탕수육 한 접시 홀랑 다 먹었으면 더 좋았을 그림.

  이렇게 살다가, 은퇴 며칠 앞두고 위암 진단. 이어서 치료. 그리고 완산으로 낙향. 홀로 낙향했다.



  선글라스



  혼자서도 살림 잘하고 산다며

  아내가 선글라스 하나 사줬다

  도수 들어간 비싼 걸로

  그런데 산중에 사니

  자랑할 사람이 없다

  그래서 소양이랑 산책 갈 때 쓰고 간다

  산길 오르며 감나무에게

  산길 내려오며 참나무에게 자랑한다

  그래도 사람이 아니어서

  좀 시시하다  (p.68 전문)



  부산 살 때 가끔 시인이 아내 대신 밥도 짓고, 반찬도 만들고, 국이나 찌개도 끓여 밥상 좀 차렸겠지? 혼자 병 고친다고 완산 산골에 들어가 있는 남편한테 비싼 선글라스도 사 가져오는 거 보니까. 다행이다. 그래야지. 이러다가…. 아내마저 은퇴하고 이제 남편 곁으로 왔다. 설마 아주 오지는 않았겠지. 천생 도시 사람이 단번에 시골살이 할 수야 없겠지. 여전히 부산 살며 완주에는 왔다갔다 하겠지.



  차마



  퇴직하고 산골 내려와

  아내 곤히 잠든 밤

  홀로 깨어 서늘히 시집 읽는다

  밤새 눈 내려 쌓이고

  언제 그랬냐는 듯

  하늘에 별들 깊다

  문밖을 나서려다

  눈 귀한데 살다 온

  아내 위해 차마

  마당에 내려서지 못했다  (p.96 전문)



  부산 아줌마인 아내라서 평생 눈구경이 몇 번 없었을 거라, 잠 깨어 숫눈 가득 펼쳐진 마당을 처음 밟아보라는 늙은 남편의 마음이 곱네. 아내도 이 마음 꼭 알아주었으면 더 좋겠다.

  근데 어라, 이제는 완주 완산에서 부부가 아주 사는 모양이네? 이런 시를 쓰는 거 보니까.



  핑 다녀오세요, 했다



  아내가 십이일간 유럽 여행을 갔다

  나는 안 갔다

  나는 유럽보다 봄이 오는 우리 마을, 내 작은 집이

  더 좋다

  긍게 안 갔다

  그래서 늦은 밤 터미널에 아내 내려주고

  핑 다녀오세요, 했다  (p.101 전문)



  오늘은 시인의 가정사를 한 스토리로 해서 독후감을 써 보았다.

  이런 장면보다 좋은 시들이 훨씬 많다. 그걸 다 읽어드리지는 못하겠고, 딱 한 수만 소개하자.



  산길에서



  다시 또 봄은 왔는데

  어떻게 앉아만 있냐

  겨우내 녹슨 호미 걸어놓고

  어찌 책만 보냐

  저 앞산 진달래

  산벚꽃 팡팡 터지는데

  환장 없이 앉아만 있냐

  매급시 가슴 울렁이는데

  내게 진정하라니

  그게 할 소리냐  (p.61 전문)



  8행의 “매급시”는 “맥 없이”의 사투리이기도 하고 시어이기도 하다. <선글라스>에서 시인과 함께 산책을 나간 ‘소양이’는 시인이 기르는 시고르자브종 강아지.

  엇다 모르겠다. 딱 한 수만 더 읽어드리겠다.



  고백



  또랑 건너

  최씨 아재네

  비닐하우스 집 짓고

  콘크리트 쳤다

  온종일 땅 고르고

  터 닦아 레미콘 받았다

  수고했다며 십오만원 주길래

  한동네 살며 그럴 수 없다

  손사래 친 후

  대문 나서기도 전 후회했다


  오만원이라도 받을 것을  (p.16, 전문)



  30년 넘게 철물 가공, 용접 같은 영세 공장 노동일을 했으니 손끝이 맵겠지. 비닐하우스 짓고 콘크리트 타설하는 건 일도 아니었을 겨. 그래 하루 종일 일 해주고 막걸리 잔도 좀 얻어먹었으니 같은 동네에서 같은 사투리 쓰는 사람끼리 됐다, 이런 마음이었겠지. 그러나 그럼에도 섭섭한 건 어떡해. 속으로 그랬겠지. 내가 염병을 한다고 손사래까지 쳤어, 그래. 뭐 사는 일이 다 그런 거여. 십오만원 준다고 그걸 덥석 받아오면 또 이게 사달이 나거든. 거기서 다시 오만원이나 십만원은 돌려주면서, 집에 돼지고기에 쐬주 한 병 사가려면 이걸루다 충분허요, 하면 좋았을 것을, 그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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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학비재 2026-06-06 12:0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섬진강 시인 김용택으로 잠시 착각,착각을 변명하자면,김용택도 임실 덕치에서 나고 자라 현재도 거기살고 있고 꼬마치들 몇 명 되지도 않는 핵교 선상으로 평생 지냈고,,근디 옛날에는 대한민국 3대 오지 중 하나인 동상면 인근 위봉 폭포 자락에 자리 잘 잡으셨네요 지금은 거기도 한옥 마을이 들어서 상전벽해라 할까요,,

Falstaff 2026-06-06 19:50   좋아요 0 | URL
착각하실 수 있지요. 본문에 썼듯이 ‘용만‘이 ‘용택‘의 친동생이거든요.
 
조연 여배우 ㅣ 묘보설림 19
등구운 지음, 이기선 옮김 / 글항아리 / 202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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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83년생 타이완의 배우, 모델 겸 작가. 국립정치대학에서 한국어학과 광고학을 복수전공하고 영국 에식스대학 드라마 스쿨에서 연기 전공으로 석사학위를 받았다. 우리나라 전지현이 타이완에서 코카콜라 광고를 찍으러 갔을 때 172cm, 52kg에 신체 사이즈 32/24/35를 유지하던 등구운이 전지현의 대역으로 출연한 적이 있다고. 많은 연극, 드라마, 영화, 광고에 출연한 배우인데 내가 원래 연얘가 중계를 거의 듣지 않는 편이라 어느 정도 스타였는 지는 모르겠다.

  하여간 한국어를 전공해서 그런지 자기 이름 鄧九雲도 타이완 발음 ‘덩주윈’ 대산 우리 발음인 ‘등구운’으로 읽어달라고 스스로 부탁해서 작가 이름을 박은 것이라 한다. 우리말 외에 타이완 사람이 자주 그렇듯이 만다린어는 기본이고 법으로 국가언어 가운데 하나로 지정한 영어도 모국어 수준에 일본어도 우리말 정도는 할 줄 안다.

  위키피디아에는 등구운이 영국의 에식스대학 드라마 스쿨에서 연기 석사를 취득했다하고, 중국의 바이두 백과는 영국의 이스트 15 연기학교를 졸업했다고 하는데, 이스트 15가 에식스 대학에 포함되어 있는 기구인지는 모르겠다. 하여간 영국에서 학위를 따 왔음에도 타이완으로 돌아오니 작업도 들어오지 않고, 기껏 얻어걸린 드라마에 출연중 사고가 나 스태프 한 명이 죽는 바람에 촬영 중단이 되어버린 일화가 나온다. 이것도 아마 픽션이겠지.

  위키피디아 등구운 페이지에는 “이 항목에는 인생 경험에 대한 정보가 부족합니다. 기사에 대한 정보를 확장해주세요.”라는 당부의 말이 적혀있다. 젊은 작가들이 자기 사생활을 드러내지 않는 경향이 있는데 하물며 여배우는 더 하겠지. 그것도 인기 관리의 전략일 수 있으니 더는 모른 척하자.


  두 자매. 황청黃澄과 황첸黃茜. 띠동갑이다. 165cm, 56kg의 외양을 자랑하는 미인 동생 황청은 자기보다 더 잘생긴 것 같은 나이 차 많이 나는 언니 황첸한테 업혀 자랐다. 말이 그렇다는 거다. 그렇게 언니 겸 이모 겸 엄마 노릇도 해가며 살았다. 집안에 네 가족이 찍은 사진이 있다. 엄마, 황청을 안은 황첸, 아빠 순으로 앉아서 찍은 사진에서 엄마는 왼쪽, 아빠는 오른쪽, 황첸은 아래쪽에 눈을 두고, 카메라 렌즈를 똑바로 바라보는 건 황청밖에 없었다. 아버지는 황청이 여섯 살 때 사라졌다. 엄마 입에서는 한 번도 아버지 이야기를 듣지 못했고, 언니한테는 십년 이상이 훌쩍 지나간 후에, 그 인간이 술을 엄청 퍼마셨으며, 집을 나간 이후에도 자기한테만 몰래 와서 돈을 얻어가고는 했단다.

  황청이 본인은 그리 예쁘다고 생각해본 적이 없는데, 입술이 좀 짝짝이처럼 생긴 바람에, 대학시절에 일본배우 OO을 닮았다는 이야기가 소문이 나서, 그 소문을 들은 방송국에서 찍어간 적이 있었다. 몇 주 후에 일본 배우가 광고 촬영차 타이안을 방문했을 때 조명을 맟추어 볼 대역을 요구하여 22시간 동안 8천 위안을 받기로 하고 대역을 맡았다. 커피숍 한 달 알바비를 하루에 받을 수 있는데 안 할 이유가 없지 싶어서. 그러네 내리쬐는 태양 아래서 손만 나올 대역배우 자격으로 황청이 남자 배우의 뺨을 때리는 장면을 찍어야 했다. 한 번도 본 적 없는 남자의 왼쪽 뺨을 오른손으로 후려 갈리니 미안하기도 하고, 얼마나 아플까 싶기도 해서, 아프지 않으세요, 얼마나 아프세요, 막 이런 말을 해야 했는데, 남자배우는 그 역시 조그마한 소리로 괜찮습니다. 더 실감나게 세게 때리셔도 됩니다. 그래서 다시 촬영을 시작했을 때는 정말 실감나게, 빨리 끝내는 것이 덜 때리고 덜 맞는 일이다 싶어 마구마구 후려쳤지만 감독이 컷을 외칠 때마다 얼굴이 부은 남자가 서둘러 냉찜질을 하면서도 황청을 향해, 손바닥이 아프지는 않았느냐고, 이렇게 묻는 것이 인상적이었다. 이름도 모르는 남자가.

  물론 이 남자는 작품의 뒤쪽으로 가면 이제 이름을 날리는 유명 배우가 되어 황청과 커플을 이루어 드라마를 찍게 되는데, 드라마에서 두 명 다 커플 배역을 너무 자연스럽게 연기해, 진짜 커플로 소문, 스캔들이 나 그걸 은근히 즐기는 가짜 연인으로 지내기도 한다.


  아빠를 쫓아버린 엄마는 두 딸과 조용히 살고 있었다. 그러다가 아는 사람이 애하고 혼자 사는 사람끼리 만나 가정으로 이루어 볼 생각이 없느냐면서 한 남자를 만나보라고 권유했다. 린 선생. 엄마가 만나보니 큰 키에 섬세하고 자상한데다가 믿음직 한 것이 마음에 딱 들었다. 하지만 린 선생이 세 모녀가 사는 집에 와서 보니까 엄마가 아니라 첫째 딸 황첸이 마음을 아프도록 폭 찔러버린 거였다. 그리하여 린 선생은 황첸에게 잘 해주었는데 그것이 점점 커져 둘은 연인으로 발전해버렸다.

  황첸은 린 선생을 만날 때, 자주 동생 황청과 함께 외출했다. 황청의 나이가 아직 사리분별을 하지 못할 때라 엄마와의 관계는 어느 새 잊어버리고 그냥 린 선생이 황첸 언니의 애인, 그것도 내게 맛있는 아이스크림을 잘 사주는 좋은 애인이며, 다만 너무 좁은 자동차를 가지고 다니는 게 좀 불만인 남자 이상이 아니었다. 하여간 언니는 린 선생과 좋은 시간을 많이, 오래 보낸 모양이다. 그러면 탈난다. 탈 났다. 황첸의 배 속에서 린의 씨톨이 알을 만나 착상을 해버린 것. 린 선생은 할 말이 없어졌다. 그는 그냥 두고 볼 것이다. 만일 아이를 낳는다면 황첸과 가정을 이루면 되는 거고, 그렇게만 되면 세상에 부러울 것이 없다. 아직 혼인 전이니 여성이 임신중단애 관한 권리를 주장하면, 아이가 있는 돌싱남 입장에서 혼인 불가 통보로 이해하고 임신중단을 막을 수 없다. 이후 성실하게 뒤처리와 계속 연인의 관계를 이어갈 수 있으면 그게 차선이다.

  황첸은 어린 아이를 좋아했다. 낳고 싶었다. 그래서 고민, 고민을 하다가 더 이상 엄마 모르게 연인관계를 이어갈 수 없다고 판단하여 엄마한테 린 아저씨의 아이를 가졌다고 말했고, 어머니는 또 한 번 배반을 당했다고 생각했는지 재단 가위를 가져와 황첸의 머리카락을 여기저기 싹둑싹둑 잘라버렸다. 자기 방에 박혀 꼼짝도 하지 않던 황첸이 침대위에 모로 누워 물끄러미 동생 황청을 보더니 너도 잘라줄까? 했고, 황청이 자기만 긴 머리를 하고 있는 것도 좀 이상해 그러라고 했다. 그래서 황첸이 황청의 머리카락을 싹둑 잘라버렸는데, 이게 임신중절을 하기 전인지 한 뒤인지는 기억나지 않는다. 이 일 이후에 황첸은 엄마한테 질려 보따리를 싸 독립해 원룸으로 나가버린다.


  우리의 주인공 황청은 대역배우를 끝내고 소극장 연극 <불면증> 오디션에 참가, 섬세하고 신비로우면서 상상력을 자극하는 이미지를 원한다는 극단의 요구에 부응하여 합격한다. 세 명의 여주인공 사이에서 알게 모르게, ‘불순한 친한 척’ 속의 비틀림과 경쟁이 불타올랐고, 그렇게 연습을 해 드디어 초연의 막이 올라갔을 때, 관객석의 관객 절반 이상이 황첸 언니의 학교 연극반 동기들이었다. 황청은 친구도 초대하지 않았다. 친구들이 오지 않을까봐. 원래 성격이 이렇다.

  첫 공연이 끝나자 평소 황청과 황청의 연기를 시답지 않게 보던 단장조차 “오늘은 황청의 무대였어.”라고 촌평을 했을 정도의 성공.

  황첸도 무대 위의 동생을 보니 내면에서 뭔가 넓게 퍼져 나가는 듯한 모습이었고, 이제는 동생의 삶에 개입할 자격도 이유도 없다는 느낌이 들었다. 그저 관객으로 존재하기만 하면 되리라고. 근데 그게 쉬워? 12살 차이나는 동생, 그것도 어려서부터 자기한테 기대고 어리광도 부리고, 그러던 아이한테. 이 무렵 황첸은 ‘캉’이란 새로운 남자를 사랑하기 시작해, 작품이 진행될수록 결혼하고, 인공수정을 통해 아이를 낳으려고 애도 쓰고, 한 여자 아이를 입양한 후 캉의 시민권이 있는 미국에 가서 살다가 다시 타이완으로 돌아온다.

  이후 황청이 미인대회 2등상을 타고, 타이완에서 제일 유명한 기획사에 들어가 영화 조역을 따지만 대가로 영화감독의 손을 타게 된다. 당연히 황청만 모르는 지저분한 소문도 다 났겠지. 그리하여 결정한 것이 연기력을 확장하기 위해 연극의 본거지, 셰익스피어의 고장 영국으로 유학을 떠나는 거였다. 이게 등구운의 이력과 매치되는 부분이다. 여태 히트작 하나 없는 등구운이 무슨 돈으로 영국유학? 엄마 같은 언니 황첸과 부처님 가운데 토막 같은 부자 형부 캉이 뒤에서 팍팍 지원을 해준 덕분이다. 아, 나도 소싯적에 이런 누나, 매형 있었으면.


  영국에서 돌아온 황청. 이제 남은 건 황청이 스타, 아니면 적어도 상당한 수준의 작품의 배역을 한 번 멋있게 연기해보는 일. 그리고 가능하다면 연애에서도 성공을 해야겠지. 그렇게 될지 안 될지는 밝히지 않겠다. 연기는 인류가 행위했던 가장 오랜 예술 장르. 그것이 어떻게 예술이 되는지 궁금하신 분은 읽어 보시면 좋겠다. 글도 잘 쓰고, 가끔 등장하는 러브씬도 과하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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