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사람들
박솔뫼 지음 / 창비 / 2021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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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솔뫼. 데뷔 17년. 짧은 장편 <을>로 제1회 자음과모음 신인문학상을 타 등단. 우와, 벌써 마흔한 살. 세월 빠르다. 또래 우리나라 작가들 가운데 눈 여겨 보고 있는 작가 중 한 명. <을>과 《사랑하는 개》를 재미있게 읽었다. 이번이 다섯 번째 박솔뫼니까 이 정도면 팬을 자처해도 좋겠지? 그런데 이 두 권의 책을 당신한테 추천하는 건 아니다. 독자마다 호오의 차이가 심할 것 같아서. 다행히 나는 딱 맞아, 특히 《사랑하는 개》가 내 취향이라 이이에게 좀 집중하게 됐다.


  《우리의 사람들》 표제작 <우리의 사람들>을 제일 재미있게 읽었다. 두 번 읽었다. 이 작품에 집중해보자. 첫 대목에 나오는 문장.


  “사진작가가 주카이숲에 간다고 하여 모두 따라가기로 한 것이다. 일정은 새벽 두시에서 오후 여섯시까지였고 전날 밤늦게까지 술을 마셨기 때문에 밤을 새우고 출발할 수 있을까 그 상태로 여섯시까지 버텨낼 수 있을까 그렇게 다들 갈까 말까 하다가 결국 그냥 안 가기로 하였고…” (p.9)


  주카이숲에 따라가기로 했다가 그냥 안 가기로 한 사람은 화자 ‘나’의 친구들.

  이어서 같은 문단에 친구들의 이야기를 들은 ‘나’가 등장한다.


  “나는 나대로 혼자 방 침대에 누워 텔레비전을 보다가 숲에 가지 않기로 했다는 이야기를 들었는데 차를 마시다 커피를 마시다 쏟아지는 햇빛을 보다 그러나 친구들이 숲에 갔을 것이라는 생각도 했다.” (p.9~10)


  이어서 ‘나’는 친구들이 들어갔다가 여차하면 길을 잃을 정도로 깊은 숲인 주카이숲을 간 친구들을 연상 또는 상상한다. 그리고 ‘나’는 여전히 싱글이지만 만일 ‘나’가 부산 중구에 산다면, 이라고 가정하고 그랬다면 결혼을 일찍 하고 당연하다는 듯이 애도 두 명” 있겠지, 라는 생각을 한다.

  다음 문단은 “12월 31일에서 1월 1일로 넘어가는 밤을 온양관광호텔에서 보내는 것이 좋았다.”로 시작한다. 부산은 박솔뫼의 여러 책에 등장하는 장소. 온양도 서울, 부산 다음으로 박솔뫼가 애정하는 것처럼 보인다. 특히 부산 골목골목 거의 다 아는 것이 부산의 매력에 단단히 빠진 것 같다. 이 책에서도 다른 소설집에서와 마찬가지로 부산과 부산 지리, 부산 사람들이 자주 등장한다.

  《사랑하는 개》에 실린 <여름의 끝으로>에서도 한 번 써먹은 적이 있는데, 만일 사람이 동면冬眠한다면, 하는 가정. 《우리의 사람들》에서는 두 번 나온다. 인간의 저 먼 조상들이 동면을 했을 거라고 주장하는 사람의 말을 들었지만 믿지는 않는다. 그럼에도 좀 그랬으면 좋겠다. ‘나’는 추운 걸 견디기 힘들고 더운 여름을 좋아해서. 그럼에도 부산, 온양, 동면은 연이어 읽는 것이 이 책을 읽을 때 특별한 거치적거림을 주지는 않는다.


  화자 ‘나’가 친구들이 사진작가와 더불어 주카이숲으로 가는 상상을 하는 분량, 그러니까 ‘나’의 상상이 만만치 않다. H와 사진작가가 번갈아 운전하는 차를 타고 주카이숲을 향해 가다가 담배를 피우기 위하여 차를 멈추고 밖에 나가 있는 동안, 붉은 털을 가진 짐승을 발견한다. 늑대라는 말도 있고 들개, 여우가 아닐까 하는 의견도 있지만 절대로 곰은 아닐 거라는 데 모두 의견을 같이 한다.

  드디어 주카이숲에 도착해 깊은 숲 속으로 떠난다. 이때 친구 가운데 하나인 ‘하나’의 눈에 자꾸 붉은 털의 여우가 들어온다. 이게 정말 붉은 여우인지, 아니면 하나의 생각, 상상, 아니면 환각인지는 끝까지 모른다.


  그러니까 박솔뫼는 확실하게 정해진 것을, 그 반대로 되었다면이라는 가정 또는 상상을 해서 마치 그게 진실인 양 스토리를 만들었다.

  자신이 만일 부산에 살기로 결정하고, 정말 부산에 살았다면, 이라는 가정/상상도 재미있다.

  12월 31일과 1월 1일 사이를 아산에 있는 온양관광호텔에서 묵으며 아산시장에 들러 칼국수를 먹고(이 집 진짜로 유명한 집이다. 나는 안 가봤지만), 시장 안의 헌책방에 가서 책 구경한 다음에, 떡볶이, 튀김을 사 전철을 타고 서울로 오는 일정을, 매년 하고 있는 것처럼 말하더니 알고 보면 그것도 아니다. 올해에는 연극연출가 사쿠라이 다이조와 그의 극단인 “야전의 달” 멤버를 만나기 위해 일본 후지노에 갔다. 그래서 친구들이 주카이숲에 가는 상상을 할 수 있었던 것.

  이렇게 막 헝클어진 구성의 작품을 읽다가 만일 독자가 조금 다른 생각을 하면 그 순간 작가가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 무척 헷갈리게 된다. 저절로 그렇게 된다. 그러나 실망하지 마시라. 이게 진짜 박솔뫼의 매력이다.


  일본 후지노에 가면서 ‘나’는 책 한 권을 가지고 간다. 로제 마르탱 뒤 가르가 쓴 <티보가의 사람들 1>. 이 작품의 1권을 우리는 흔히 <회색 노트>라고 하고, 이 1권만 번역해 단행본으로 나온 것도 상당히 많다. 뒤 가르의 모든 작품이 저작권 시효가 만료되어 번역물이 많다. 그러나 만일 <티보가의 사람들>을 읽으려면 1부만 읽고 치우지 말고 5권까지 다 독파하는 것이 훨씬 좋다. 내가 무척 좋아하는 작품이다.

  그런데 이 작품 <우리의 사람들>에서 <티보가의 사람들 1>이 어떤 스토리와 연결이 되는지 결국 알아내지 못했다. 그냥 그 책을 가져가서 다 읽지 못했으며, 작중 주인공 자크의 형 앙투안느(전편을 읽으면 당연히 자크 못지 않은 주인공이다. <회색 노트>에 국한하면 “주인공의 형”이 맞다)이 티보의 친구 다니엘의 어머니 테레즈 혹은 퐁타넹 부인에게 호감을 갖는 장면을 특히 강조한다.

  <화색 노트>를 읽는 독자들은 흔히 자크의 청소년기/사춘기의 열정과 방황에 초점을 맞추지만 하여간 박솔뫼가 특이하기는 하다. 이 <티보가의 사람들 1>은 뒤에 붙은 다른 단편에서 <회색 노트>로 다시 등장한다.

  내가 <티보가의 사람들>을 좋아해서 길게 썼지, 정작 말하고 싶은 것은, 이 책에서 박솔뫼는 유난히 다른 작품과 책의 내용을 인용하여 그것과 연결되는 사람들을 취재하고 탐색하고 자기 주장을 한다. 이건 내가 전에 읽은 책에 국한해 말해 《겨울의 눈빛》의 한 단편에서 고리 원자로 사건에 관한 부산주민들의 불안을 묘사하는 것을 연상하게 했다. 당연히 그럴 수 있지만, 확실히 이런 모습은 내가 좋아했던 박솔뫼의 다분히 포스트모던한 초기 작품과 다르다. 즉 박솔뫼의 작품이 변하고 있다는 뜻. 그런데, 그런 작품은 다른 작가도 쓸 수 있고, 쓰고 있다. 나는 여전히 이이의 <을>과 《사랑하는 개》, 특히 《사랑하는 개》 같은 작품을 좋아하며 기다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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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목련 2026-07-09 09:3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리뷰를 읽으면서 이 소설집을 구매한 것 같아 찾아보았는데 구매했더군요. 표제작을 읽다 멈춘 것 같아요. 근데 또 박솔뫼의 소설집 <영릉에서>를 샀습니다. ㅠ.ㅠ

Falstaff 2026-07-09 15:16   좋아요 0 | URL
뭐 인생입죠. ㅋㅋㅋ
저는 다른 분께 박솔뫼 추천하지 않는답니다. 이이야말로 독자하고 뭔가 맞아야 읽지 안 그러면 참 곤란하겠더라고요.
 
일광유년
옌롄커 지음, 김태성 옮김 / 자음과모음 / 2021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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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열두 번째 옌롄커. 이제 물리기 시작한다.

  <일광유년>의 무대는 옌롄커의 작품 속에서만 등장하는 바러우 산맥의 깊숙한 산골마을. 때는 중화인민공화국 건국 초기부터 1980년대 중반까지. 옌선생의 소설 속 시간과 장소가 거의 대동소이하다. 심지어 등장인물, 이라기보다 무대가 되는 마을의 촌민들도 어째 비슷하다.

  <레닌의 키스>는 촌 구성원들 거의 대부분 장애인. <딩씨 마을의 꿈> 마을 사람들은 비위생적인 주사바늘을 사용해 매혈을 하는 바람에 거진 에이즈 환자, <해가 죽던 날>에서는 집단 몽유를 하는 마을 사람들이 등장한다. <일광유년>은? 주민들이 오랜 세월 물속 불소함량이 규정보다 17배 이상 높은 물을 마셔서 40세 생일 이전에 목구멍 막힘 현상이 발생해 조기 사망하는 운명을 갖고 태어났다. 아마도 근대 중국에서 한 번 있었던 일을 옌롄커가 바러우 산맥 속 가상 마을 산싱촌에 적용했던 거 같다.

  <레닌의 키스>, <직렬지>, <사서>는 1950년대의 극심한 한발로 고생하는 장면이 나온다. 이 작품에서도 마찬가지다. 즉 <일광유년>에서 산골마을 산싱촌의 가장 중요한 이슈는 메뚜기 떼의 습격으로 시작한 전대미문의 한발을 극복하는 일과 주민들의 수명을 마흔 이상, 쉰, 예순을 넘어 일흔, 여든까지 살 수 있게 만드는 과업이다.

  작품의 주인공들도 비슷하다. <물처럼 단단하게>의 가오아이쥔, <작렬지> 밍량, <사서>의 주인공 아이, <레닌의 키스>는 류잉췌. 이들 모두 출세 또는 아무리 보잘것없는 권력이라도 그것을 얻기 위한 일이라면 눈이 뒤집힌다. <일광유년>의 쓰마란(司馬藍)을 비롯해 그의 아버지 쓰마샤오샤오(司馬小小)를 필두로 역대 산싱촌의 촌장들은 자신이 촌장이 되기 위하여 별의 별 쇼를 다 한다. 쓰마란은 이럴 적부터 사랑해마지않던 연인 란쓰스 대신 현직 촌장의 비쩍 마르고 못생긴 딸 두주추이와 혼인한다.

  그러니까 옌롄커의 바러우 산맥 속 작은 산골마을을 무대로 하는 작품의 특징이 <일광유년>에 다 들어 있다는 말인데, 옌렌커 소설 읽기에 열심이었던 독자는 바로 그것 때문에 <일광유년>이 중국 근현대사의 궁상스러움에 관한 한 종합선물세트 정도로 읽혔다는 말씀.

  또 있다. 옌롄커와 비슷한 연배의 중국 작가들 가운데 우리나라에 번역 소개된 작품들 거의 대부분, 예컨대 찬쉐 같은 골 아픈 포스트모더니스트와 츠쯔젠처럼 서정적 여성 작가들 말고는 어쩌면 그렇게 소재와 스토리와 등장인물이 비슷비슷한지, 내가 지금 옌롄커를 읽고 있는지, 류전윈인지, 또는 거페이나 위화, 쑤퉁인지 막 헷갈리는 거였다. 당연히 건국 이후 기근과 문화혁명을 소년기에 거친 영향 때문에 그렇겠지만 중국 소설 가운데 우리나라에 인기있는 작품 좀 읽었다 하는 독자 입장에서는 이제 물린다. 그리하여 젊은 중국 작가들을 읽기 시작했는데, 전혀 다른 세계관과 시각을 갖고 작품을 쓰며, 옌롄커 시절의 작가들과 비교해 조금도 꿀리지 않는 필력을 보이고 있어 나름 부러웠다.

  <일광유년>은 도서관 관심도서 목록에 1년, 1년이 뭐야, 한 2~3년 담고 있다가, 그래도 옌 선생인데 싶어 읽었다. 더 솔직하게 말하자면 옌롄커 소설의 종합선물세트인 줄은 몰랐고, 960쪽에 달하는 속칭 벽돌책이라 어느 날인지 모르게 보름에 한 번 희망도서가 쏟아져 틈새 독서로는 좀 버거웠기 때문이었다. 이제 독후감 써 놓은 것도 많아 이 책을 비롯해 벽돌 또는 두 권짜리 장편도 읽어야겠다, 싶기도 했고. 문제는 술이다. 술을 덜 마시니까 시간이 남아 좀처럼 주체하지 못하고 책만 파게 된다. 아무래도 꾸준하게 알코올을 들이켜야 책 읽는 것도 적당하게 할 수 있을 거 같다.

  이거 뭐야, 아직 작품 이야기 시작도 안 했는데 서론이 이렇게 길었다고? 좋은 얘기 하나도 없으면서? 그럼 시작해보자.


  역시 바러우산맥 속 깊숙하게 자리한 인구 2백명가량의 작은 마을 산싱촌. 우리말로 하면 삼성촌(三姓村)이다. 란, 두, 쓰마(藍, 杜, 司馬) 이렇게 세 성씨로 구성된 씨족마을이다. 작품 속에 등장하는 첫 촌장이 두과이즈. 이후 쓰마샤오샤오, 란바이수이로 이어진다. 즉, 두, 쓰마, 란 씨 집안에서 돌아가며 촌장을 맡았는데, 란바이수이 다음 촌장이 책의 주인공 쓰마란이다. 두씨 집안은 쓰마란의 윗대 두옌이 별 볼일 없지만 촌에서 기중 문자를 읽고 쓸 줄 알아 촌의 상급 단위인 현의 주방장으로 진출해 이른바 공직에 오른다. 일이 바쁘지 않으면 현과 산싱촌 사이의 통신원 역할도 하게 되어 촌 사람 입장에서는 촌장에 아주 조금 미치지 못하는 권세를 틀어쥐기 시작해, 그의 아들 두바이에게 통신원 자리를 물려주어 굳이 촌장 자리에 연연할 필요가 없어졌을 지도 모른다.

  앞에서 말했듯이 상신촌의 가장 중요하고 절박한 이슈는 기근 탈출과 주민들을 마흔 살 너머 살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것이었다.

  최초의 처방은 두과이즈 촌장 시절에 쓰마샤오샤오가 얻어온다. 지나가는 길에 명 짧은 산싱촌에 거쳐 간 꼬부랑 할아버지가 동네 아이들의 눈에 들어왔다. 마을에 그렇게 늙게까지 산 사람이 없어 아이들은 옛이야기로만 듣던 흰 수염의 산신령을 닮은 쪼글쪼글한 노인을 처음 보는 거라 몽땅 몰려나가 구경을 하고, 한 아이 쓰마란이 동네로 뛰어가 아버지한테 이를 전했다. 쓰마샤오샤오가 곧바로 노인을 쫓아가서 묻기를, “노인장은 어떻게 이리 오래 사십니까?” 흰 수염의 노인이 답하기를 “잘은 모르지만 집안 대대로 유채꽃을 키워 유채 나물, 잎, 유채기름을 늘 먹었는데 그것 때문인 듯하오.”

  쓰마샤오샤오가 이 말을 촌장 두과이즈한테 전해, 유채꽃 심기를 권유했지만 두존장의 나이 벌써 서른여덟, 얼마 가지 않아 꼴딱, 죽어버린다.


  사랑하는 여인이 있어도 촌장이 되고 싶은 마음에 두과이즈의 딸과 혼인한 쓰마샤오샤오는 촌장이 되자마자 유채 심기를 독려했다. 음식이 약이고 독이다. 유채 열매와 기름을 먹기만 하면 마흔을 넘어 쉰, 예순은 물론이고 일흔, 여든까지 살 수 있다고 큰소리 뻥뻥치며 들판 가득 유채를 심게 했다.

  그러나 몇 년 후, 거대하고 거대한 메뚜기 떼가 바러우 산맥 일대는 물론이고 산둥 일대를 휩쓸어버리는 바람에 주식인 옥수수는 물론이고 유채까지 몽땅 거덜이 났다.

  이때가 두옌의 말에 의하면 갑자년이라는데(p.762) 좀 이상하다. 20세기의 갑자년은 1924년하고 1984년이라 전혀 맞지 않는다. 아무래도 허구같다. 중국의 메뚜기 습격으로 시작한 기근이 펄 벅의 <대지> 1부에서 보듯이 1920년대에 확실히 있었지만 <일광유년>의 시대적 배경하고는 맞지 않는다.

  하여간 그리하여 유채로 만수무강은 다음으로 하고 당장 생존하는 것이 크고 큰 위협이라, 읽기 참혹한 장면이 마구 등장한다. 어린 아이 가운데 장애가 있는 아이를 내다 버리고, 이 아이들이 굶어 죽어 까마귀 밥이 되고, 어른들이 까마귀를 잡아 포식을 해 크게 배탈이 나서, 소금을 얻기 위하여 현의 화상병원으로 가 돈 많은 환자에게, 장가든 남자 어른의 허벅지 피부를 도려 파는 것 등등. 질린다.

  쓰마샤오샤오는 결국 기근을 극복하고 목구멍에 죽음의 그림자가 덥쳐 서른 후반의 나이로 죽는다.


  이어서 촌장이 된 란바이수이는 촌민들의 조기 사망 원인을 땅의 악한 기운으로 자란 곡식으로 보고 400무畝(약 400마지기, 약 8만평)의 계단식 전답을 개간하려 한다. 근데 기근에 살아남은 촌민이 다 합해 백명 조금 넘는데 이걸 어떻게 하나? 쓰마란의 꾀를 빌어 현의 루주임에게 별의 별 아부와 성접대를 통해 현 주민들을 대거 투입해 2백무 정도의 계단식 전답을 만들기는 한다.

  그러나 개간한 땅에 심은 곡식을 먹어도 주민들은 여전히 마흔이 되기 전에 죽어버려, 란 촌장의 야심찬 프로젝트는 실패로 마감한다.


  마지막 촌장이 주인공 쓰마란.

  쓰마란도 비슷한 생각을 한다. 곡식이 아니면 물이다. 물을 갈아 마시면 마흔을 넘어 일흔, 여든까지 살 수 있는 게 확실하다. 이렇게 믿었다. 주민들도 어릴 때부터 싹수가 보이던 쓰마란 촌장이 하는 말이니 틀림없을 것이고, 자기들이 생각해도 그럴듯하다.

  하지만 돈이 없다. 그래서 쓰마 촌장은 산싱촌 남자들도 가만히 있을 수 없어 남자들을 모아 허벅지 피부를 팔게 했더니 도시로 나가 피부를 팔고, 도시 구경을 한 남자들은 촌의 수로 공사를 위해 바치는 것이 아니라 자기 집안 식구들을 위해 촌장의 요구를 무시하고 방 셋짜리 기와집을 올려버린다.

  이에 낙담해 세월을 죽이다가, 서른아홉 살이 되어 곧 죽을 처지에 달했을 때, 다시 주민들을 소집해 인정사정없이 수로 공사를 재개한다. 이번에도 돈이 없다. 그래서 어릴 때부터 첫사랑 란쓰스에게 땅에 고개를 박으며 부탁한다. 도시에 가서 인육장사를 해달라고. 인육장사? 매춘을 말한다. 이 장면도 옌롄커 세대의 인기있는 작가들이 많이 사용해 질리는 건 마찬가지. 하여간 쓰스는 도시로 진출, 터미널 근처에 방을 얻어 맹렬하게 몸을 팔고, 에초 자기와 약혼했던 촌장에게 돈을 보내 소규모 운하에 필요한 각종 기구와 폭탄 같은 것을 살 수 있게 한다.

  가진 고생과 역경과 주민의 희생을 무릅쓰고 촌장 쓰마란의 나이 서른아홉살도 막바지에 이른 날, 드디어 수로 공사를 완공, 링인천의 물을 끌어오는 데 성공하지만, 어떻게 됐을까? 안 알려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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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낮의 불운 - 2024 공쿠르 단편소설상 수상작
베로니크 오발데 지음, 이세진 옮김 / 다산책방 / 2026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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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도로 보면 파리 중심가에서 오른쪽 마른 주의 르페뢰쉬르마른에서 1972년에 태어난 편집자 겸 소설가. 2000년에 데뷔했다니 연륜이 짧지 않다. 문학상도 숱하게 받았고 특히 《한낮의 불운》으로 2024년 공쿠르 단편소설상을 받아 상금 10유로를 챙겼다.

  단편소설 여덟 개를 실은 책. 다 재미있게 읽었다. 공쿠르-단편소설상을 받을 만하다, 라고 생각했다. 그렇다고 정치하고 치밀한 문장이나 특정한 주제를 던지는 무게감 있는 작품이라는 뜻은 아니다. 주로 비극인데 그리 큰 비극도 아니고, 비극마저 경쾌하다.


  예를 들어 제일 앞에 실린 <오귀스트 바라카가 겪은 낭패들>을 보자. 원래 이름은 오귀스트 팔랑캥. 오귀스트의 아버지는 장거리 항해하는 선장, 스스로 자기를 선장이라고 말하는 대신 장기 노선 파일럿이라 한 걸로 봐서, 그리고 오귀스트야말로 훗날 장거리 노선의 선장이 되었으면 좋다고 한 걸로 봐서, 선장은 아니고 그나마 중요한 뱃사람 가운데 한 명이었던 듯하다. 아버지는 한 번 항해를 나갔다하면 몇 달씩 세계 각국을 돌아다니느라 집을 비웠고, 이런 남편을 견디고 사는 여자도 그리 많지 않은 법이라서, 오귀스트의 어머니는 아프리카에서 바다에 접하지 않은 나라 잠비아로 날라버렸다. 그러면서 오귀스트를 데려갔느냐? 아니다. 그래 오귀스트는 아버지를 따라 배를 타고 세계만방의 많은 도시에 있는 숱한 학교를 1년 이상 머문 적 없이 하여간 뭉개고 다녔다. 그래서 사회성이라고는 1도 없는 우울하고 과묵한 성격으로 고착되어 오직 하나 큰 관심을 둔 건, 사물의 소리에 대한 것이었다. 그는 늘 작은 녹음기와 마이크를 들고 별의 별 것을 다 녹음하며 즐거움을 찾았던 것.

  장소가 어디인지는 밝히지 않았는데 오귀스트의 열여덟 번째 생일을 하루 앞둔 날, 아버지가 정말로 기상천외한 방식으로 죽음을 맞았다. 단편소설이라 그게 어떤 식인지는 말해드리지 않는다. 하여간 그랬고, 성인이 되는 열여덟 번째 생일날 아버지를 장사 지냈으며, 이제, 여태 잠비아에서 산파학을 가르치는 어머니는 아들 오귀스트가 열여덟 살, 성인이 된 만큼, 다시는 잠비아에 와서 함께 살자는 말을 농담으로도 하지 않았다. 대신 나중에 돈을 좀 보내주긴 했다. 조금이 아니라 적지 않은 현금을.

  아버지가 가히 우화 비슷한 죽음을 맞이한 다음에 음향기사 국가고시를 쳤다. 근데 떨어졌다. 우연히 오귀스트 팔랑캥이라는 동명이인이 있어 사실은 우리의 주인공이 합격했건만 합격처리가 이름 같은 작자한테 넘어가 이를 올바르게 돌려놓는 데만 반년이 걸렸다는 거 아닌가. 하여간 그렇게 기사 자격증을 땄다. 이때 우울증 비슷한 것이 도져 마음의 평정을 찾기 위해 여행을 떠났다가 현지 등산객들과 술집에서 한 잔 하다, 불운의 여신은 결코 오귀스트를 배신하지 않아서, 잔뜩 술이 취해 오줌을 누기 위해 밖에 나가 묘지의 비석에다 몸을 기댄 순간, 묘석이 넘어지면서 오귀스트의 발가락을 짜부라뜨려 이 가운데 두 개를 절단해야 했다. 하여간 가지가지로 잘 안 되는 인간이다.

  아버지 역시 주식과 채권을 약간 남겨주었다. 근데 아버지가 게을러 팔지 않았던 것이 연일 상한가를 기록해 지금은 결코 작지 않은 돈으로 바뀌어 있었고, 이 돈과 어머니가 보내준 아프리카 돈을 합해 자신의 음향 스튜디오를 하나 꾸미려 마음먹었다. 이때 만난 사람이 부동산업체에서 가장 양심적인 중개인인 에바 코파. 딸과 살고 있는 돌아온 싱글이며 오귀스트보다 한 예닐곱 살 정도 많다. 에바가 오귀스트의 마음에 딱 맞아 떨어지는 파리 시내의 한 섬 같은, 그럴 정도로 조용한 사무실을 소개했다. 에바는 별로 돈이 많지 않다. 딸도 키워야 한다. 부동산 사무실에서 실적 부족으로 늘 쫑코를 먹기도 한다. 그러나 오귀스트를 탁 보니까 에바 눈에 짠하게 보인다. 오귀스트가 오히려 이렇게 좋은 집을 합리적으로 얻을 수 있다니 이렇게 운이 좋은 게 이상할 정도이다. 왜 에바 코파가 계약서 내밀기를 머뭇거릴까, 좀 의아할 정도.

  에바가 마침내 표준 계약서를 내밀고 내일 만나서 최종적으로 사인을 하자고 제안한다.

  우리의 오귀스트는 결국 계약을 하고, 계약서에 사인을 하자마자, 자기가 집을 본 날이 하필이면 지하철 노동자들이 파업을 시작한 날이었음을, 원래대로라면 2분에 한 번씩 지하철이 지나가며 지축을 흔드는 진동과 소음에 진저리를 쳐야 한다는 걸 알게 된다.

  그러나 세상이 늘 그런 거라고 여기지 말자. 소설은 이렇게 끝난다.

  “에바와 오귀스트도 장차 이 일을 그런 식으로 얘기할 것이다. 몇 년 후에, 둘이서 손을 꼭 잡고, 꽃가지 무늬가 있는 거실 소파에 앉아서.”


  웬일로 단편소설의 결말을 다 알려주느냐고? 이유가 있지. 다음 순서의 단편 <당신은 성공으로 빛나고 있네요>의 주인공이 이번에 에바 코파다. 운전면허 없이 사는 파리 여성. 그래 지하철 파업의 와중에, 지하철 파업인 줄 알았더니 이게 총파업이라서 버스 운전수들도 파업을 하는 바람에 극히 적은 인력의 대체근무자들이 평소에 비하면 아주, 아주 드문 운행 간격으로 운행하는 만원, 콩나물 시루 같은 버스에 타고 집에 가는 에바 코파. 아직 앞에 실린 단편의 결말부처럼 꽃가지 무늬의 거실 소파에 앉아 오귀스트와 손을 잡고 무드까지 잡을 시절은 아니라서, 버스가 급정거할 때마다 다른 승객의 가슴팍에 코를 문대야 한다.

  어릴 적에는 포뮬러 원 경기장에서 깃발을 흔드는 레이싱 걸이나 풍선에 바람을 넣는 사람이 되고 싶었지만 결국 결코 무대에 올리지 못할 희곡을 쓰는 덜 떨어진 극작가를 만나 사랑을 하고 딸을 낳고, 그와 헤어진 다음에 한 푼도 딸의 양육비도 못 받아 부동산 중개일을 해야 하는 처지. 원래는 술을 마시지 않던 에바는 남자를 따라 저녁마다 술을 마시기 시작했고, 좀 지나서는 낮에도 한 잔씩 했으며 조금 더 시간이 흐른 다음에는 오전에도 마셨다. 신의 가호가 있어 남자와 헤어진 다음에 에바는 그 순간부터 술을 딱, 끊었다. 장하다, 에바.

  이렇게 시작해, 더 어린 과거에 고사리를 연구하던 아버지 이야기 등등 시시콜콜한 것이 나오다가 드디어 딸 이야기가 나온다. 그럼 척, 알겠지? 다음 순서에 실릴 작품의 주인공이 에바의 딸이 되리라는 것을? 그건 그거고, 하여튼 딸이 공부는 애저녁에 글러먹었다는 것을 이미 유치원 다니던 시절부터 알아챘다. 그래도 다 살아지는 게 인생이라, 딸이 중학교 다닐 때, 갑자기 딸 스스로 자기가 부엌에서 음식 만드는 걸 좋아하고, 만들기만 하면 온갖 잡다하기만 했지 전혀 어울릴 것 같지 않은 재료들을 섞어 만든 것이 제법 맛있다는 걸 알고, 인문계 고등학교 대신, 요리 특성화 학교, 그것도 파리에서 제일 좋으니까 세계에서도 굴지의 요리학교라고 알려진 특성화 고등학교에 진학했다.

  딸의 이름은 마르그리트. 근데 중학교 다닐 때 자기는 마르그리트가 싫다고 ‘보브’라는 남자 이름으로 불러달라고 주장하기 시작했다. 에바는 싫은데 다른 사람들은 전혀 싫지 않거나 관심 없는 눈치다. 하다못해 아이의 빌어먹을 아버지도 마찬가지다. 마르그리트건 보브건 간에 딸이 실습실에서 열심히 작업을 하고 있던 중에 상급 남학생이 성추행 같은 쪽이 아니라, 도무지 선배 알기를 우습게 아는 버릇을 고친다는 핑계로 동선, 즉 보브의 길을 막기도 하고 뭐 그랬는데, 이 보브가 참다 못해 귀싸대기를 날려, 그만 학교에서 잘려 버렸다.

  허, 참. 오귀스트도 그렇고 에바도 그렇고 어떻게 엎어져도 코가 깨지는 대신 뇌진탕이냐는 말이지.

  이렇게 여덟 편의 단편소설이 전부 조금씩 연결되어 있는 재미있는 책. 크게 바라지 않을수록 더 재미있게 읽을 수 있으며 주목할 것은 이야기 속 삶의 우중충함이 신록의 잎사귀에 떨어지는 봄 햇살처럼 파박거린다는 점. 다 제쳐두고 그것에만 관심을 두고 읽어도 괜찮을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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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미트리오스의 가면 ㅣ 열린책들 세계문학 248
에릭 앰블러 지음, 최용준 옮김 / 열린책들 / 202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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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39년은 세계사가 한 번 휘까닥 뒤집힌 해이다. 원조 스파이물 작가 에릭 앰블러한테도 아직 전쟁이 터지지는 않았지만 자기 인생에 획기적 일이 연달아 터졌으니 그중 하나가 이 작품 <디미트리오스의 가면>을 출간한 것이고, 둘째가 앞으로 19년을 부부로 살 여인과 첫번째 결혼을 했다는 것이며 마지막 세번째가 몇 주 전에 독후감을 쓴 <공포로의 여행>을 탈고했다는 거였다. 왜 첫째가 <디미트리오스의 가면>이냐 하면, 이 제목은 영국에서 출간한 책의 제목이고, 미국에서는 <디미트리오스의 관coffin>인데, 이게 5년 후, 앰블러의 작품 가운데 세번째로 영화로 만들어져 개봉해 앰블러는 남은 세월동안 적어도 먹고사니즘에 관한 한은 걱정 1도 없이 그저 열나 스파이 소설만 쓰기만 하면 되게 해주었다는 거였다.

  우리나라에 앰블러의 작품 단행본이 네 권 나왔는데 <공포로의 여행>을 재미있게 읽어 <디미트리오스의 가면>을 읽은 지금, 이 정도면 앰블러는 그만 읽어도 괜찮겠다 싶다. 마침 내가 사는 도시의 모든 도서관에도 이 두 권 말고 다른 앰블러의 책이 없다.

  전에 읽은 <공포로의 여행>과 마찬가지로 이 책도 1939년 작품이니 아직 2차 세계대전이 발발하기 전에 집필한 작품. 아직 독일이 그렇게 무지막지한 만행을 저지를 악마 같은 체제인 줄 모르는 상태이지만 그래도 전쟁이 터지면 틀림없이 그 동네에서 먼저 화약 냄새가 퍼지기 시작하리라는 건 거의 확실하게 예상했을 터. 그래 <공포로의 여행>에선 독일에서 파견한 악당이 독일의 스파이였으나, <디미트리오스의 가면>의 주인공 디미트리오스는 스파이라기 보다 한 시절 스파이에 고용되어 동유럽(유고슬라비아) 고급 정치가에 대한 테러 같은 일도 서슴지 않았던 그냥 악당이라고 봐야겠다. 2차 세계대전이 터진 1939년에 출간했으면 작품은 1938년 정도에 쓰지 않았을까 싶다. 그러니 이 책은 스파이 소설이라기보다 그냥 추리 소설이다.


  작품의 주인공은 찰스 래티머. 영국의 작은 대학 정치경제학과 조교수이며 35세에 세 권의 전공 책을 출간한 나름대로 괜찮은 커리어를 쌓던 중에, 평소에 관심이 있던 추리소설을 한 번 써볼까 싶어 <피에 젖은 삽>을 탈고해 출판사에 보냈더니, 에그머니, 이게 대박, 이어서 쓴 세 권의 책이 연달아 히트를 치는 바람에, 아하, 이게 돈이 되네, 싶어 그길로 교수 및 학자의 길을 때려치우고 다섯 번째 책의 탈고를 위하여 아테네로 가 다음해에 탈고했다. 아테네의 물이 맞지 않았는지, 글을 쓰느라 과로를 해서 그랬는지, 무엇보다 <디미트리오스의 가면>을 쓰기 위해서였을 것이 분명하게 좀 아팠던 몸을 회복하기 위하여 증기선을 타고 더 남쪽에 있는 터키의 이스탄불로 갔다.

  이렇게 작품은 이스탄불에서 시작한다.

  작품 속에는 무수하게 많은 엑스트라가 등장한다. 독자는 이 많고 많은 출연진에 과연 누가 끝까지 작품 속에 등장할까, 촉각을 곤두세울 수밖에 없는데 아쉽게도 거의 없다. 그러니까 읽는 게 좀 피곤하다. 옛 왕족의 작은 궁전을 사 거기서 살며 시도때도 없이 파티를 즐기는 차베스 부인의 2박3일 파티에 초청받아 간 래티머. 그가 여기서 절대 정체를 알 수 없는 터키의 베후실력자이며 비밀경찰의 우두머리인 하키 대령을 만난다. 하키 대령으로 말할 것 같으면 후속작 <공포로의 여행>에도 출연해 주인공이자 대포 엔지니어 그레이엄에게 정보를 주고 지원도 해주는 인물이어서 눈에 익다. <… 여행>에서와 마찬가지로 대령은 추리소설을 좋아하고 심지어 직접 플롯을 짜둔 노트도 있어서 그걸 인기 추리소설가가 좀 봐주었으면 하는 희망을 안고 래티머를 데리고 자기 사무실에 갔다가 디미트리오스 마크로풀로스의 이야기를 알게 된다. 희대의 악당으로 ① 터키의 무화과 포장 인부로 일하던 중 살인강도, ② 불가리아 소피아에서 스탐볼리스키 총리 암살미수, ③ 터키 아드리아노플(현 에디르네)에서 케말 암살 시도, ④ 파리에서 마약 판매조직 결성 및 운영, ⑤ 크로아티아 자그레브에서 크로티아인 살해 등의 화려한 전력을 갖춘 자다.

  그런데, 날도 참 잘 맟추지. 이날을 딱 골라서 문제의 디미트리오스 마크로풀로스의 시신이 보스포루스 바다에 떠 있는 것을 지나던 어선이 발견해 신고했던 거다. 그러면 이미 디미트리오스의 상황은 끝난 거다. 데우스 엑스 마키나. 죽으면 그에 대한 모든 혐의와 수배와 기소 같은 건 종치는 법이니까. 하지만 하키 대령은 희대의 악당 얼굴을 아직 보지 못한 처지. 자기가 그를 담당하는 경찰은 아니지만 적어도 그의 파일을 보관하던 막후 실력자로 그의 시신을 직접 한 번 봐야 하겠다는데 그걸 누가 말려? 여기서 래티머가 하키 대령을 따라 디미트리오스의 시체 구경을 하지 않으면 소설이 되지 않는다. 그걸 아는 래티머는 바득바득 대령을 좇아 시체공시소로 가 죽은 사람을 구경한다.

  누구도 시신의 눈을 감겨주지도 않았고, 입도 조금 벌리고 있는 시신은 두툼한 입술과 주름진 처진 뺨을 지녔으며 외관만 가지고는 얼굴 뒤의 영혼을 판단할 수 없었다. 칼로 옆구리를 심각하게 찔려 죽었으며 후줄근한 그리스제 양복 속에 디미트리오스의 신분증이 들어 있었다.

  훗. 슬쩍 흘러나오는 웃음. 얼굴을 본 적도 없는 하키 대령이 양복 속에서 그의 신분증이 나왔다는 거 하나만 가지고 이 시체가 디미트리오스라고 단정하는 게 우습다. 대령이 래티머한테 보여준 파일에는 굉장히 흐려 거의 알아볼 수 없는 사진 한 장만 들어 있을 뿐인데 신분증이라는 종이 한 장 보고 모든 사건을 종결한다고? 하긴 뭐 90여 년 전에 쓴 추리소설이니까. 

  그럼 문제의 디미트리오스는 언제 나오느냐고? 이 책이 모두 15장으로 되어 있는데 13장의 마지막 장면에 처음 등장한다. 당연히 전혀 다른 외모, 무화과 포장 인부하고는 완벽하게, 완전히 다른 모습으로. “손에 모자를 들고, 세련된 검은색 프랑스 옷을 입고, 윤기 흐르는 흰 머리에 호리호리한 몸으로 꼿꼿이 서 있는 고결한 인간의 모습”(p.344)으로.


  물론 소설이니까 가능한 이야기겠지만, 그럼 작가 찰스 래티머는 왜 이미 죽은, 죽었다고 완전하게 인식한 디미트리오스의 지나간 흔적을 찾게 되었을까? 그의 직업은 추리소설 작가. 하지만 소설은 완벽하게 작가의 머리 속에서 만들어 실제로 사람들이 저지르는 흉악범죄와 많은 차이가 날 수밖에 없다. 그걸 번히 아는 래티머는 이번에 자신이 소설에 흔히 등장하는 탐정이 되어, 이미 죽었으니까 위험이 별로 없는 악당 디미트리오스의 행적을 좇아볼 생각을 한다.

  근데 이것도 좀 어이가 없는 것이, 래티머는 다섯번째 추리소설을 탈고하기 바로 직전, 이걸 가까운 시간 안에 완성하여 런던의 출판사로 보내야 한다. 유명 작가라도 웬만하면 출판사가 원한 마감 시한은 맞춰주어야 하는 법이라서. 다음으로, 디미트리오스의 행적이라면 터키의 이스탄불에서 시작해 스미르나, 소피아, 아드리아노플 등을 증기선을 타고 다니려면, 그것도 1등실만 써야 가오가 올라가는 위대한 영국의 작가가 과연 얼마나 많은 지출을 해야 할까? 그리고 결정적으로 래티머가 가고 싶은 곳에는 자신이 직접 아는 사람이 없다는 거다. 따라서 첫번째 방문지인 스미르나에 무턱대고 도착한 래티머는 현지에서 <공포로의 여행>처럼 러시아혁명 때문에 터키로 집단 망명한 백군 러시아인 코페이킨과 마찬가지로 백계 러시아인 출신 통역사 표도르 미시킨에 거의 완전히 의존한다. 다음 행선지인 불가리아 소피아에서는 프랑스 신문사 소속인 그리스 사람 마루카키스에게도 마찬가지. 이들에게 접근할 수 있는 건 그저 앞에서 만난 사람들의 추천장 한 장.

  여기에 한 명 추가. 스미르나에서 소피아까지 가는 야간 침대열차에서 만난, 아마도 폴란드 사람인 것처럼 보이지만 국적불명인 50대 볼품없는 늙은이 피터스. 이이가 등장하자 나는 조금 긴장했다. 혹시 이 사람이 디미트리오스가 아닐까? 정답은 그의 모습과 연락처를 알고 있는 예전 디미트리오스의 수하. 디미트리오스가 파리에서 크게 마약 장사를 하고 있을 때, 터키에서 대량의 마약을 관에 실어 들여온 인간이다. 그래서 이 작품의 미국판 제목이 <디미트리오스의 관>이 된 것.

  이제 할 말을 거의 다 했다. 조금 더 하면 틀림없이 스포일러가 될 것.

  등장인물이 많다. 그리고 숱하게 가명을 쓴다. 인물마다 하여간 무진장 스토리가 많다. 작품 전개에 별로 관계가 없을 듯해도 할 말은 다 하고 지나간다. 그러다보니 읽다가 막 신경질날 때가 많다. 그걸 참고 읽을 만하지도 않다. 왜 이 책이 영미 독자한테 인기를 끌었을까? 이게 다 의심스러울 정도.

  독자서평에 좋은 평가가 많다. 그러니까 내가 읽기에 그랬다는 말이니 허접한 독후감 하나 달랑 읽고 이 책을 멀리할 필요는 1도 없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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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트로파 벨라돈나
예니 에르펜베크 지음, 박민수.김은정 옮김 / 북스캔(대교북스캔) / 2004년 9월
평점 :
절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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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에르펜베크는 서늘하다. 한겨울 산길을 혼자 차를 운전해 간다. 이리저리 굽이길이 많아 속도를 내는 건 자살행위와 비슷하다. 짧은 오르막과 짧은 내리막이 연속되더니 이번에는 한참 올라간다. 경사가 완만해지는가 했더니 그 자리가 곧바로 내리막을 시작하는 곳이었다. 달이 훤했던 것 같지만 숲이 깊어 달빛이 닿지 않아 상향등을 켜도 제대로 보이는 게 없다. 갑작스러운 회전 길. 그나마 완만한 우회전이라 그저 가던 대로 간다. 그러다 도로 오른쪽에 허연 물체가, 흰 옷을 입은 여성이 있는 것처럼 갑자기 벌떡 일어나더니 사납게 와락 달려들 것 같다. 얼른 속도를 내 지나치며 슬쩍 보니까, 비닐 하우스에서 찢어져 나온 비닐의 제법 큰 조각이었다. 급하게 물체를, 흰 옷 입은 여성(처럼 보였던 것)을 피하려다 하마터면 작지 않은 사고를 낼 뻔했다.

  이런 경험은 한 번씩 해봤을 터. 이 책을 읽은 감상하고 비슷하다. 그렇게 서늘하다.


  열 개의 단편소설을 실은 소설집. 짧은 해설까지 150쪽의 부담없는 분량이지만 절판이다. 도서관에도 없다. 지난 달에 에르펜베크의 장편소설 <모든 저녁이 저물 때>를 하도 인상 깊게 읽어 그날로 헌책방 뒤져 2년 만에 내돈내산했다.

  이이의 이름 Jenny Erpenbeck를 우리말로 “제니 에르펜베크”라고 썼으면 지금 절판된 구간이고, 신간은 “예니 에르펜베크”라 쓴다. 안 그러겠지만 혹시 헛갈릴까봐 짚고 간다.

  이 책으로 이제 예니 에르펜베크의 우리말 번역 단행본은 다 읽는다. 나머지 작품들도 빨리 번역해 나왔으면 좋겠다.


  표제작 <아트로파 벨라돈나>는 식물의 학명이다. 사람들은 그저 아름다운 여인, 벨라돈나belladonna라고 부른다. 가지과 식물이라 가지 비슷한 열매를 맺는다. 왜 “아름다운 여인”이냐 하면 열매에 환각작용을 일으키는 독소가 있어서 열매를 먹으면 공동이 확장되어 눈이 크게 보여서 더 예뻐 보이는 것처럼 느낀다. 당연히 많이 먹으면 일시적인 시각장애를 일으키고 더 많이 먹으면 위험하고, 그래도 더 많이, 더 많이 꾸역꾸역 먹으면 다른 모든 음식물처럼 배 터져 죽는다.

  나는 오빠가 좋다. 오빠? 정확하게 말하면 엄마와 가장 친한 친구아줌마의 아들이다. 이른바 엄친아. 생일이 조금 빨라 편의상 오빠라 한다. 그냥 ‘형제’ 개념이다. Bruder. 어려서부터 서로 알고 살았다. 온갖 스토리가 다 있다. 한 싱크대에서 한 엄마(또는 엄마의 가장 친한 친구)가 두 아이를 목욕시킨 것부터 시작해 늘 같이 놀고, 밥 먹고, 가끔 다투기도 했지만 아주, 아주 가끔 다투었고, 같은 초등학교를 졸업했으며, 같은 중학교, 고등학교를 거쳤다. 그러면서 오빠가 진짜 형제Bruder 같은 순간도 있었으나 사춘기에 접어들면서 남매사이에서는 결코 느끼지 못할 야릇한 페로몬을 방사하기 시작했다. 엄마들은 모르는.

  아이들이 점점 커져 이제 하이틴이 되었을 때, 우연히 캠핑 이야기가 나왔고, 엄마와 엄마의 친구 아줌마는 나와 오빠, 단 둘이서 국경 넘어 캠핑 가는 것을 허락했다. 이제는 성접촉의 권리를 인정한 모양이다. 동네에서 가까운 국경 역에서 만나기로 한 둘. 가보니 오빠는 벌써 나와 있다. 둘은 국경을 넘었다. 캠핑장에 도착했고, 텐트를 치고, 숲에 밤이 와 잠을 잔다는 명목으로 텐트 안에 들어와 각자 자기 슬리핑백 속으로 들어갔다.

  나는 별의 별 생각이 다 든다. 이제부터 어떤 일이 벌어질까? 물론 반 아이들의 경험담을 충분하게 들어서 구체적인 순서도 알고 있기는 하지만 정말 두 사람이 그런 절차와 이상한 방법으로 사랑을 확인할 수 있는 것인지는 아직도 모르겠다. 그건 직접 해봐야 아는 걸까? 하여간 명목상 둘은 잠을 자는 상태를 시작했다. 결코 잠들지 않은 잠자는 상황. 시간이 갈수록 잠은 오히려 저 바깥 쪽으로 물러가기만 한다. 그러나 오빠와 나 사이의 아주 좁은 공간에는 시간이 갈수록 점점 더 두꺼운 장벽이 쌓이는 것 같다. 오빠 역시 숨소리만 간간히 낼 뿐 깨어 있다는 조금의 기미는 보이지 않는다. 오빠도 내가 말짱한 정신으로 깨 있다고 여기지는 못할 것이다.

  그렇게 날이 밝았다. 흔히들 말하는대로 손만 잡고 잔 것도 아니고, 손도 안 잡고 그냥 잤다. 그런데 오빠가 이상하다. 탁, 보니 열이 펄펄 끓는다. 우리한테는 휴대전화도 없다. 그래 다른 캠프에 가서 연락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 구조요청을 했고, 엄마의 친구 아줌마가 차를 몰고 우리를 데리러 왔다. 그렇게 잘 하면 딱지를 뗄 수 있는 기회가 날아갔다. 나는 여전히 오빠를 사랑한다.

  몇 주가 지나고, 엄마는 도무지 언짢은 소식을 들려준다. 오빠한테 애인이 생겼다는 거다. 말도 안 돼. 근데 말이 되는 것 같다. 들은 말로 찢어진 셔츠에 찢어진 청바지를 입고 다니건만 그렇게도 예쁘단다. 찢어진 옷 사이로 보이는 속살도 무척이나 매력적으로 보인다니 모르긴해도 포스가 남다른가 보다. 엄마 심부름으로 엄마 친구 아줌마 집에 갔을 때, 오빠는 자기 방에서 나오지 않았고, 오빠 방에는 오빠 말고 찢어진 청바지를 입고 다니는 오빠의 애인도 있다고, 아줌마가 말해주었을 때는 속상했다.

  두 가족이 함께 영화를 보러 극장에 갔는데, 입구에 엄마 친구 아줌마와 오빠, 오빠의 애인이 서서 우리를 기다렸다. 오빠의 애인이 참 예뻤다. 나도 못난 축은 아니지만 오빠의 애인하고는 비교하기 민망하다. 엄마는 오빠네 가족을 집으로 불러 저녁 한 끼를 먹기로 했다. 당연히 오빠의 애인도 오겠지.

  그녀도 왔다. 우리집은 숲에 면했고, 일정 구간은 우리 땅이다. 그녀와 나는 저녁을 먹기 전에 숲으로 들어갔다. 야생 블랙베리와 사과를 따 먹어보라고 했다. 맛있게 잘 먹는다. 살구도 따 주었더니 역시 잘 먹고 씨앗만 툭 뱉는다. 나는 더 깊은 숲 속으로 들어가 그녀에게 벨라돈나를 하나 따 주고 먹어보라 했다. 특별한 맛은 없지만 먹었다. 분명히 먹었다. 나는 벨라돈나를 따고, 따고, 또 따서 치마 가득 건네준다. 다 먹으라고. 다 처먹고 죽어버리라고.


  <아트로파 벨라돈나>가 제일 재미있지는 않다. 독일 여성 작가들이 단편소설을 참 매력적으로 쓴다. 일찍이 내가 사랑에 빠졌다고 고백한 유디트 헤르만도 있다. 예니 에르펜베크도 헤르만하고 비슷한 분위기의 전혀 다른 내용의 단편을 쓴다.

  근데 아쉬운 건, 이 책의 역자가 두 명이라는 거. 박민수와 김은정.

  누가 감히 이들의 독일어 실력을 입에 올리랴. 그건 말할 필요도 없다. 그러나, 작품이 다 균일하게, 즉 비슷한 품질로 읽히지 않는다. <A>는 원래 작가의 문장이 그런지 역자의 번역문, 즉 우리말이 그런지 여간해 읽히지 않아 나로 하여금 버벅거리게 만든다. <B>는 그렇지 않고 매끄럽다. 분명히 에르펜베크 또는 두 명의 역자, 아니면 독자, 이렇게 네 명 가운데 한 명에 문제가 있다는 뜻이기도 할까? 어쨌거나 참 맵씨있는 작품 모두를 즐기지 못한 것은 아쉽다. 살다 보면 그럴 수도 있는 거지 뭐. 내 탓이겠지. 내 탓이오, 내 탓이오, 내 큰 탓이로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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