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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낮의 불운 - 2024 공쿠르 단편소설상 수상작
베로니크 오발데 지음, 이세진 옮김 / 다산책방 / 2026년 3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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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도로 보면 파리 중심가에서 오른쪽 마른 주의 르페뢰쉬르마른에서 1972년에 태어난 편집자 겸 소설가. 2000년에 데뷔했다니 연륜이 짧지 않다. 문학상도 숱하게 받았고 특히 《한낮의 불운》으로 2024년 공쿠르 단편소설상을 받아 상금 10유로를 챙겼다.
단편소설 여덟 개를 실은 책. 다 재미있게 읽었다. 공쿠르-단편소설상을 받을 만하다, 라고 생각했다. 그렇다고 정치하고 치밀한 문장이나 특정한 주제를 던지는 무게감 있는 작품이라는 뜻은 아니다. 주로 비극인데 그리 큰 비극도 아니고, 비극마저 경쾌하다.
예를 들어 제일 앞에 실린 <오귀스트 바라카가 겪은 낭패들>을 보자. 원래 이름은 오귀스트 팔랑캥. 오귀스트의 아버지는 장거리 항해하는 선장, 스스로 자기를 선장이라고 말하는 대신 장기 노선 파일럿이라 한 걸로 봐서, 그리고 오귀스트야말로 훗날 장거리 노선의 선장이 되었으면 좋다고 한 걸로 봐서, 선장은 아니고 그나마 중요한 뱃사람 가운데 한 명이었던 듯하다. 아버지는 한 번 항해를 나갔다하면 몇 달씩 세계 각국을 돌아다니느라 집을 비웠고, 이런 남편을 견디고 사는 여자도 그리 많지 않은 법이라서, 오귀스트의 어머니는 아프리카에서 바다에 접하지 않은 나라 잠비아로 날라버렸다. 그러면서 오귀스트를 데려갔느냐? 아니다. 그래 오귀스트는 아버지를 따라 배를 타고 세계만방의 많은 도시에 있는 숱한 학교를 1년 이상 머문 적 없이 하여간 뭉개고 다녔다. 그래서 사회성이라고는 1도 없는 우울하고 과묵한 성격으로 고착되어 오직 하나 큰 관심을 둔 건, 사물의 소리에 대한 것이었다. 그는 늘 작은 녹음기와 마이크를 들고 별의 별 것을 다 녹음하며 즐거움을 찾았던 것.
장소가 어디인지는 밝히지 않았는데 오귀스트의 열여덟 번째 생일을 하루 앞둔 날, 아버지가 정말로 기상천외한 방식으로 죽음을 맞았다. 단편소설이라 그게 어떤 식인지는 말해드리지 않는다. 하여간 그랬고, 성인이 되는 열여덟 번째 생일날 아버지를 장사 지냈으며, 이제, 여태 잠비아에서 산파학을 가르치는 어머니는 아들 오귀스트가 열여덟 살, 성인이 된 만큼, 다시는 잠비아에 와서 함께 살자는 말을 농담으로도 하지 않았다. 대신 나중에 돈을 좀 보내주긴 했다. 조금이 아니라 적지 않은 현금을.
아버지가 가히 우화 비슷한 죽음을 맞이한 다음에 음향기사 국가고시를 쳤다. 근데 떨어졌다. 우연히 오귀스트 팔랑캥이라는 동명이인이 있어 사실은 우리의 주인공이 합격했건만 합격처리가 이름 같은 작자한테 넘어가 이를 올바르게 돌려놓는 데만 반년이 걸렸다는 거 아닌가. 하여간 그렇게 기사 자격증을 땄다. 이때 우울증 비슷한 것이 도져 마음의 평정을 찾기 위해 여행을 떠났다가 현지 등산객들과 술집에서 한 잔 하다, 불운의 여신은 결코 오귀스트를 배신하지 않아서, 잔뜩 술이 취해 오줌을 누기 위해 밖에 나가 묘지의 비석에다 몸을 기댄 순간, 묘석이 넘어지면서 오귀스트의 발가락을 짜부라뜨려 이 가운데 두 개를 절단해야 했다. 하여간 가지가지로 잘 안 되는 인간이다.
아버지 역시 주식과 채권을 약간 남겨주었다. 근데 아버지가 게을러 팔지 않았던 것이 연일 상한가를 기록해 지금은 결코 작지 않은 돈으로 바뀌어 있었고, 이 돈과 어머니가 보내준 아프리카 돈을 합해 자신의 음향 스튜디오를 하나 꾸미려 마음먹었다. 이때 만난 사람이 부동산업체에서 가장 양심적인 중개인인 에바 코파. 딸과 살고 있는 돌아온 싱글이며 오귀스트보다 한 예닐곱 살 정도 많다. 에바가 오귀스트의 마음에 딱 맞아 떨어지는 파리 시내의 한 섬 같은, 그럴 정도로 조용한 사무실을 소개했다. 에바는 별로 돈이 많지 않다. 딸도 키워야 한다. 부동산 사무실에서 실적 부족으로 늘 쫑코를 먹기도 한다. 그러나 오귀스트를 탁 보니까 에바 눈에 짠하게 보인다. 오귀스트가 오히려 이렇게 좋은 집을 합리적으로 얻을 수 있다니 이렇게 운이 좋은 게 이상할 정도이다. 왜 에바 코파가 계약서 내밀기를 머뭇거릴까, 좀 의아할 정도.
에바가 마침내 표준 계약서를 내밀고 내일 만나서 최종적으로 사인을 하자고 제안한다.
우리의 오귀스트는 결국 계약을 하고, 계약서에 사인을 하자마자, 자기가 집을 본 날이 하필이면 지하철 노동자들이 파업을 시작한 날이었음을, 원래대로라면 2분에 한 번씩 지하철이 지나가며 지축을 흔드는 진동과 소음에 진저리를 쳐야 한다는 걸 알게 된다.
그러나 세상이 늘 그런 거라고 여기지 말자. 소설은 이렇게 끝난다.
“에바와 오귀스트도 장차 이 일을 그런 식으로 얘기할 것이다. 몇 년 후에, 둘이서 손을 꼭 잡고, 꽃가지 무늬가 있는 거실 소파에 앉아서.”
웬일로 단편소설의 결말을 다 알려주느냐고? 이유가 있지. 다음 순서의 단편 <당신은 성공으로 빛나고 있네요>의 주인공이 이번에 에바 코파다. 운전면허 없이 사는 파리 여성. 그래 지하철 파업의 와중에, 지하철 파업인 줄 알았더니 이게 총파업이라서 버스 운전수들도 파업을 하는 바람에 극히 적은 인력의 대체근무자들이 평소에 비하면 아주, 아주 드문 운행 간격으로 운행하는 만원, 콩나물 시루 같은 버스에 타고 집에 가는 에바 코파. 아직 앞에 실린 단편의 결말부처럼 꽃가지 무늬의 거실 소파에 앉아 오귀스트와 손을 잡고 무드까지 잡을 시절은 아니라서, 버스가 급정거할 때마다 다른 승객의 가슴팍에 코를 문대야 한다.
어릴 적에는 포뮬러 원 경기장에서 깃발을 흔드는 레이싱 걸이나 풍선에 바람을 넣는 사람이 되고 싶었지만 결국 결코 무대에 올리지 못할 희곡을 쓰는 덜 떨어진 극작가를 만나 사랑을 하고 딸을 낳고, 그와 헤어진 다음에 한 푼도 딸의 양육비도 못 받아 부동산 중개일을 해야 하는 처지. 원래는 술을 마시지 않던 에바는 남자를 따라 저녁마다 술을 마시기 시작했고, 좀 지나서는 낮에도 한 잔씩 했으며 조금 더 시간이 흐른 다음에는 오전에도 마셨다. 신의 가호가 있어 남자와 헤어진 다음에 에바는 그 순간부터 술을 딱, 끊었다. 장하다, 에바.
이렇게 시작해, 더 어린 과거에 고사리를 연구하던 아버지 이야기 등등 시시콜콜한 것이 나오다가 드디어 딸 이야기가 나온다. 그럼 척, 알겠지? 다음 순서에 실릴 작품의 주인공이 에바의 딸이 되리라는 것을? 그건 그거고, 하여튼 딸이 공부는 애저녁에 글러먹었다는 것을 이미 유치원 다니던 시절부터 알아챘다. 그래도 다 살아지는 게 인생이라, 딸이 중학교 다닐 때, 갑자기 딸 스스로 자기가 부엌에서 음식 만드는 걸 좋아하고, 만들기만 하면 온갖 잡다하기만 했지 전혀 어울릴 것 같지 않은 재료들을 섞어 만든 것이 제법 맛있다는 걸 알고, 인문계 고등학교 대신, 요리 특성화 학교, 그것도 파리에서 제일 좋으니까 세계에서도 굴지의 요리학교라고 알려진 특성화 고등학교에 진학했다.
딸의 이름은 마르그리트. 근데 중학교 다닐 때 자기는 마르그리트가 싫다고 ‘보브’라는 남자 이름으로 불러달라고 주장하기 시작했다. 에바는 싫은데 다른 사람들은 전혀 싫지 않거나 관심 없는 눈치다. 하다못해 아이의 빌어먹을 아버지도 마찬가지다. 마르그리트건 보브건 간에 딸이 실습실에서 열심히 작업을 하고 있던 중에 상급 남학생이 성추행 같은 쪽이 아니라, 도무지 선배 알기를 우습게 아는 버릇을 고친다는 핑계로 동선, 즉 보브의 길을 막기도 하고 뭐 그랬는데, 이 보브가 참다 못해 귀싸대기를 날려, 그만 학교에서 잘려 버렸다.
허, 참. 오귀스트도 그렇고 에바도 그렇고 어떻게 엎어져도 코가 깨지는 대신 뇌진탕이냐는 말이지.
이렇게 여덟 편의 단편소설이 전부 조금씩 연결되어 있는 재미있는 책. 크게 바라지 않을수록 더 재미있게 읽을 수 있으며 주목할 것은 이야기 속 삶의 우중충함이 신록의 잎사귀에 떨어지는 봄 햇살처럼 파박거린다는 점. 다 제쳐두고 그것에만 관심을 두고 읽어도 괜찮을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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