짧은 이야기 긴 사연
로제 그르니에 지음, 김화영 옮김 / 문학동네 / 2013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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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1 독립만세사건이 있던 1919년에 프랑스 지중해 연안 칸 말고, 파리에서 서북서 쪽에 있는 캉에서 태어난 작가, 저널리스트, 라디오 애니메이터. 19년생이면 2차 세계대전이 터진 1939년에는 전쟁하기 딱 좋은 나이였던 스무살. 소설집 《짧은 이야기 긴 사연》에도 전쟁 발발 직후 곧바로 징병 대기하는 청년이 등장한다. 그러나 프랑스는 전쟁이 터진 다음해, 난공불락의 마지노 방어선을 우회 돌파한 독일군에 의하여 1940년 6월에 파리가 함락되는 치욕을 겪고, 같은 달 22일에 페텡이 항복을 선언, 어쨌든 그르니에는 총 한 방 쏘지 않고 전쟁을 통과한다. 물론 나중에 좀 험한 꼴은 당했다지. 44년에 프랑스 저항군 활동도 하고 뭐 그랬던 모양이다. 그럼에도 전쟁 중에 소르본에서 가스통 바슐라르한테 배웠다 하니 전쟁 중에 20대 젊은 남성이 그 정도면 호강했다고 봐도 되지 뭐. 애먼 미국 젊은이들이 프랑스 땅에 들어와 픽픽 죽어간 걸 생각하면 말이지.

  열세 편의 단편소설을 실으면서 편집도 자간, 행간 널럴하게 해 쉽게 읽힌다. 본문이 194쪽에서 끝나 분량도 많지 않다. 그래서 단편소설과 꽁트의 중간 정도, 분량이나 장르 양쪽을 감안해서 중간 정도의 작품도 제법 있다. 즉 부담 없이 읽을 수 있는 작품집.


  이 책을 출간한 2012년에 이이는 벌써 아흔 두셋. 한 해에 열세 편의 소설을 화르륵 불 태우듯 썼다고 보기 힘들지만, 어쨌든 80대 후반과 90대 초반에 쓴 작품을 모은 책이라 봐야겠다. 책을 다 읽고 생각해보니 노 작가들이 쓴 작품은 대개 노인들의 기억 속 자잘한 삶의 흔적을 픽션 또는 반half픽션-반half다큐멘터리 형식인 경우가 많은데, 이 책도 그렇지 않은가, 실제 경험한 또는 기억한 과거의 것들 것에 픽션을 가미해, 줄리언 반스의 표현대로, 하이브리드 픽션으로 쓴 건 아닌가 싶었다.

  근데 문제는, 내가 좋아하는 스타일이 아니라는 점. 웃기게도, 이 책을 번역한 사람이 김화영. 이상하게 김화영 선생이 번역한 책을 읽고 좋은 독후감感을 느낀 적이 별로 없다는 거. 이번에도 “옮긴이의 말”이 웃기다.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프로방스 학파의 일원이면서, 자기 자랑을 화려하게 펼치는 데 빈틈이 없다. 또다른 프로방스 학파 최현무, 필명 최윤이 <부영사> 해설을 통해 독자를 ‘오독을 마다하지 않는’ 집단으로 단칼에 선을 그어 버린 것처럼 악마 같이 거만한 '소위' 프로방스 학파 선생들. 다행히 이젠 전부 다 꼰대 가운데 꼰대가 되어 버렸다. 세월 만세!

  분명히 말하자. 나는 김화영 선생의 번역의 질에 대해 왈가왈부하는 게 아니다. 그가 번역한 책 가운데 내가 즐겁게 읽은 책이 전혀 기억나지 않아서 그렇다는 거다. “옮긴이의 말”도 워낙 인상깊게 웃겼던 것도 많고. 어느 작품인지 정확하게 기억나지 않는데, 역자 후기 타이틀에 왜 자기가 페테르부르크 역전 시계탑 앞에 앉아 급하게 역자 후기를 쓰고 있다는 얘기를 하냐고? 솔직히 나는 김화영이 좀 밉다.


  여든 후반, 아흔 초반에 쓴 짧은 픽션. 애초에 큰 걸 바라지 않았다. 기대가 크지 않았고, 딱 생각했던 것만큼의 차분한 픽션들 모음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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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치백 - 2023 아쿠타가와상 수상작
이치카와 사오 지음, 양윤옥 옮김 / 허블 / 202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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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79년에 일본 도쿄 남쪽, 가나가와현에서 나서 그곳에서 중학교까지 다녔다. 선천성 근병증으로 인한 척추측만증을 앓고 있는데, 이게 하도 심각해 뼈 혹은 근육이 호흡기관을 압박하는 모양이다. 정확한 거 아니다. 소설과 위키피디아 내용을 읽고 짐작하는 것뿐이다. 코를 통한 호흡이 힘들어져 결국 목의 인후에 구멍을 내 카테터와 부속 장비를 삽입해 그곳으로 호흡을 한다. 이건 근(육)병증 뿐만 아니라 중환자들 대부분의 경우도 마찬가지. 나 어릴 적 동네에 한국전쟁 참전한 노병 한 분이 평생 이런 상태로 살았다. 근병일 경우에는 필터링을 거치지 않은 외부 오염 공기가 곧바로 호흡기 점막과 접촉해 담, 즉 가래가 많이 낀다. 와병중인 환자는 석션 장치로 얇은 고무관을 기관지와 폐 입구까지 밀어 넣어 제거하지만, 아치카와는 기침 같은 것을 통해 스스로 가래 배출을 했던 것 같다. 이 장면이 소설에 몇 번 등장한다.

  33세 때인 2012년에 가나가와의 요코하마에 있는 야스 학원 대학에 특수학생으로 입학해서 2019년에 와세다 대학 e-스쿨 인문 및 환경과학과에 편입, 언제인지는 모르겠는데 졸압했다. 2023년에 단숨에 써내려간 소설 <헌치백>이 “문학계” 신인상을 받아 소설가로 데뷔했으며, 그걸로 모자라 그해 아쿠타가와 상을 받아 일약 스타의 반열에 올랐다고, 책의 앞날개에 쓰여 있다.


  내가 왜 이 책을 읽었는가 하면, 현대 일본 작가들의 작품 가운데 마음에 드는 걸 도무지 찾을 수 없어서. 일본에서도 유명한 문학상인 아쿠타가와 상을 받은 작품이면 그래도 방귀 한 번 제대로 뀌었다고 볼 수 있으니, 그거 한 번 찾아보자, 싶어서 골랐다. 이것 말고 또 골라 놓은 아쿠타가와 수상작품이,

  구단 리에, <도쿄도 동정탑>

  아사히나 아키, <도롱뇽의 49재>

  마쓰나가 K. 산조, <베리에이션 루트>

  다카야마 하네코, <슈리의 말>

  이 정도인데, 지금 <헌치백>을 읽고 정말 이것들을 읽어야 하는지, 말아야 하는지 망설이고 있는 중이다. 이키가와가 그동안 SF, 판타지 등 장르문학과 라이트 노벨을 쓰다가 비장한 마음으로 처음 집필한 순문학이 <헌치백>이라는데, 그건 알겠고, 하지만 내 기준에는 맞지 않는 것을 어찌하랴. 암만해도 골라 놓은 네 권의 책 가운데 딱 한 권만 더 읽어봐야 하겠다.

  일본도 대단한 문화 강국이다. 그런데 많고 많은 작가들 중에서 내 입맛에 맞는 현대소설 작가 찾기가 이리도 힘들다. 비단 위에 나열한 작가/작품이 아니더라도 특별히 소개하고 싶은 작가나 작품 있으면 귀띔해주시면 좋겠다.


  <헌치백>의 주인공 이자와 샤카도 책을 쓴 작가 이치카와 샤오와 같은 병을 앓고 있는 장애인이다. 부모가 별세하면서 재산 전부를 이자와 샤카가 물려 받았다. 엄마는 죽기 전에 원룸 맨션 한 동을 통째로 개조한 장애인 시설 그룹홈 <잉글사이드>를 만들어 샤카한테 증여했다. 각각의 원룸은 다섯 평짜리 방, 주방, 화장실, 욕실로 되어 있고, 샤카 말고 당연히 다른 환자도 입주해 지내고 있다. 이 가운데 몇 명은 원룸에서 밖으로 나오지 못할 정도의 중증. 아마도 침대에서 일어나지도 못할 듯하다.

  샤카도 자기 발을 딱딱한 바닥에 딛고 몸을 움직여 본지 30년은 되는 거 같다. 전동 휠체어를 타고 다니며, 근육병증 때문에 얼굴이 오른쪽으로 돌아가지 않아 왼편을 보는 데 익숙해져 있다. 특별한 장애가 없는 독자 나는 이해하기 힘든, 특정한 장치로 종이책을 읽고, 글도 쓴다.

  작품의 첫 장면은 포르노 바로 직전까지 수위를 올린 일본의 성 해방구역 “해프닝바” 잠입 수기로 시작한다. 3층에 있는 룸으로 두 명이 아니고, 세 명도 아니고, 다섯 명이 들어가 두 쌍이 성 또는 유사 성행위를 벌인다. 나머지 한 명은 기록자. 웬만하면 조금 인용해볼까, 했다가 차마 그러지 못하겠다.

  이 장면은 그냥 한 시절 이런 글을 청탁 받아 써서 잔돈 푼이나 만졌으며, 원래 부잣집 딸로 태어나 못해도 수십억엔의 재산을 가지고 있어, 잠입수기로 번 돈은 자선단체에 기부한다. 같은 장애인이라도 저 유럽, 오스트리아의 크리스티네 라반트하고는 달라도 많이 다르다.


  이치가와 샤오가 주인공 이자와 샤카의 입을 통해 세상에 알리고 싶어하는 것은, 물론 하나 둘이 아니겠지만, 책에 접근할 수 있는 권리와, 여성으로 임신했다가 임신중단을 해보고 싶은 마음.

  앞의 것은 종이책에 과하게 집중되어 있어서 근병증인 샤카는 읽기가 매우 곤란하는 것이고, 헌치백이며 호흡을 기관지를 뚫어 카테터를 이용해 해야 하지만 남들과 같이 섹스도 하고 임신도 하고, 출산은, 출산은, 출산은 차마 바라지 못하겠지만, 그렇다면 대신 중절수술이나마 받아보고 싶다는 거. 그래서 다시 태어나면 세상에서 가장 비싼 창녀가 되고 싶을 정도라는 것.

  작가의 마음이 이럴진대 어찌 독자가 책을 읽으며 가벼울 수 있을까.

  그러나 표현이 과하다. 경쾌하면 조금 언짢았을까? 예를 들면 천쓰안처럼. 이이가 쓴 <제일 가까운 장애인 화장실이 어디죠?> 같이.

  장애의 정도는 훨씬 덜 하지만 샤카와 마찬가지로 전동 휠체어를 타고 다니는 중국 여성 청즈가 엘리베이터 앞에서 기다리고 있는데 키 큰 젊은 여성이 청즈를 내려다보더니 아무 생각 없이 한 마디 한다.

  “다리가 참 가느시네요….”

  청즈, 대답하기를,

  “네. 다 열심히 운동한 결과랍니다.”

  그러면 여자가 갑자기 알아차리고 입을 막으며 놀란 눈을 하는 거다. 어때, 이렇게 가볍게 치고 나가는 거 하고, 젊은 중증환자 돌보미 남자에게 1억5천5백만 엔을 줘 임신 한 번 해보려 하는 것하고?

  그냥 해본 말이다. 나는 이제 비장한 게 별로 좋지 않아서, 그래서 천쓰안이 더 좋아지게 된 지도 모른다. 다들 자기 취향대로 가는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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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자냥 2026-07-27 09:4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도 요즘 일본 현대 작가들 소설 읽을 때마다 지뢰여서... ㅋㅋㅋ 소개드릴 사람이 딱히 떠오르지 않네요. <정욕> 쓴 작가 아사이 료, <인 더 메가처치>까지는 읽어볼까 싶어요. 믿음이나 구원? 신앙에 관한 이야기 같아서 좀 관심이 갑니다.

Falstaff 2026-07-27 16:03   좋아요 0 | URL
아, 치매예요, 치매. 알라딘 비밀번호를 잊다니... 이게 가당한 일입니까? ㅎㅎㅎ
일본 현대, 말고 요즘 소설가들한테 기대가 컸는데 아휴, 적응하기가 쉽지 않네요.
얘기하신 책들 찬찬히 읽어보겠습니다. 크게 기대하지 않고 읽는 게 좋겠지요? 그렇게 하겠습니다. ㅎㅎㅎ
 
수림 - 어두침침하고 우울하게 내리는 긴 장맛비
백민석 지음 / 예담 / 2017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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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월 정말 빠르다. 가장 최근에 읽은 백민석이 벌써 8년 전 이야기. 도서관 서가를 거닐면서도 백민석의 책을 보면, 읽은 지 얼마 되지 않은 기분이 들어 아무 생각없이 지나쳐왔건만, 지금 독후감을 쓰려고 보니, <공포의 세기> 독후감을 쓴 것이 벌써 두세 달 모자라는 8년 전, 2018년이다.

  사실 그래봐야 백민석의 책은 꼴랑 두 권 밖에 읽지 않았다. 제일 처음에 읽은 《장원의 심부름꾼 소년》이 하도 머리에 남아서 그저 늘 본 거 같은 생각이 들었을 지도 모른다. 지금은 그것도 10년 전 이야기라 스토리는 거의 날아갔고 작중 aw라는 이름의 도련님만 딱 남았다. 여기서 aw가 뭔지 모르시지? 난 안다. 근데 말 못한다. 옛 인터넷 동무님께서 비밀댓글로 알려주신 것을 밝힐 수 없다.


  《수림愁霖》은 단편소설 아홉 편을 모은 소설집이라고 읽어도 좋고, 서로 인연이 닿는 사람을 좇아가는 연작 장편으로 읽어도 좋다. 연작인 건 확실하다. 그러니까 이 책을 읽을 때는 제일 앞에 실린 것부터 순서대로 차근차근 읽어야 하지, 사정 때문에 중간에 실린 것부터 팍 읽어버리면, 뭐 큰일이야 있겠느냐만 그래도 덜 좋을 것 같다.

  소설집의 첫 작품 제목이 표제작 <수림愁霖>. 고려대한국어대사전에는 수림을 “어두침침하고 우울하게 내리는 긴 장맛비”라고 설명했고, 예담 출판사도 이 해석을 책 표지에 박아놨다. 그냥 단어 그대로 “수심에 찬 긴 장마”라고 해도 좋을 것 같은데. ‘수愁’에 어두침침하다는 뜻은 없잖아?


  한자어 수愁는 근심, 시름을 말한다. 네이버는 뜻 풀이에서 이 愁가 가을 秋 아레 마음 심心을 붙였는데, 왜 가을이 되면 시름이 깊어질까? 라고 의문을 제기했다. ①가을걷이가 끝나면 관청에서 세금을 걷으러 오니까 ②곧 닥칠 겨울 날 생각해서. 그래서 가을은 결실의 계절이며 수심의 계절이라고 설명했지만 내가 주장하는 바, ③곡식을 거두어 함포고복 한 번 하려할 때를 딱 맞춰서 오랑캐와 향토 비적들이 쳐들어오니까, 이게 빠졌다. 그래 겨울에 쳐들어온 오랑캐한테 절세 미녀를 바치고 억지로 고비사막 밑으로 끌려간 왕소군은 봄이 되자 춘래불사춘春來不似春 노래를 했겠지. 근데 愁는 문자가 어떻게 해서 생겼느냐는 다음으로 하고, 참 아련하게 쓸쓸한 말 아닌가 싶다. 앞에다 슬플 애哀 자 하나 붙이면 뭐 앙가슴이 찢어지지. 애수.

  서론이 길다. 소설집 읽고 독후감 쓰면 대개 분량이 짧더라고. 그래서 지나가는 말을 좀 붙였다.


  《수림愁霖》이 책의 제목이며 제일 앞에 배열한 작품의 제목이기도 하다. 게다가 연작 소설. 책 속의 모든 이야기는 이 단편 <수림>에서 시작한다.

  <수림>의 주인공은 확실하게 그렇다, 라고는 나오지 않지만 한 시절에 바바리맨(책에서는 판초맨) 경력이 있는 것 같은 성추행범 전과자. 정확하게 설명하면 밀폐 또는 공개 장소에서 한 여성에게, 또는 밀폐나 공개 장소건 간에 여러 여성에게 자기 생식기를 훌렁 내놓고 성적 요구를 했다는 죄목으로 빵에 다녀오셨다. 단란한 가정의 가장이었지만 당연하게 이혼당했고, 아내는 아이가 성추행범 아버지를 두었다는 흔적을 없애기 위해 남자의 접근권을 인정하지 않았다. 그는 아들을 만나기 위하여 소송을 걸어야 했다. 그러나 한 달에 한 번 아이를 만나고 있으면 주변 20미터 안에 전 아내, 아이의 엄마가 자기가 바라보고 있음을 눈치챌 수 있게 기척을 낸다.

  다시 취직한 회사에서 과장급 사원으로 근무하고 있으며, 사람이 좀 굼뜨지만 일처리나 인간관계에 모자람은 없이 둥글둥글하니 잘 살고 있다. 지역사회 봉사활동 커뮤니티에 가입을 해 주로 몸으로 때우는 일을 하며 보람을 느끼고 있다. 이 모임에서 심한 우울증을 앓고 있는 여자를 만나, 여자가 수시로 연락을 해 그나마 친하게 지내지만 결코 딱 그어버린 선을 넘지는 않는다. 자기도 자신이 성적 이상심리가 있으며 그것이 쉽게 사라지지 않는다는 것, 언제 갑자기 폭발할 지 모른다는 것을 잘 인식하고 있기 때문에 정기적으로 신경정신과 개업의를 방문하여 심리상담을 받고 있다.

  나름대로 열심히 살고 있지만 이이의 나날과 정서와 실제의 날씨는 언제나 비가 추적추적 내린다.


  두번째 작품 <비와 사무라이>의 주인공은 <수림>에서 남자와 함께 봉사활동을 다닌 젊은 유부녀. 서른은 넘은 것 같다. 우울증이 심해 혹시 무슨 일을 저지를까봐 남편이 좀 더 환경이 좋은 한강변 아파트로 무지하게 무리해서 이사했다. 부부는 서로 상의하고 합의하여 아이는 조금 더 있다 가지기로 해, 단둘이서 산다.

  시작하자마자 여자는 15층 아파트 베란다에서 빨래를 널다가 창문을 활짝 열고 베란다 난간에 손을 얹고, 배를 대고, 허리를 굽힌다. 난간을 바르쥐고 점점 더 길게 허리를 펴니, 이제 베란다 바닥에 붙어 있는 여자의 신체는 오른쪽 발가락 두 개밖에 없다. 둔치로 내려가는 공원을 보려 한다. 정확하게는 공원에 노숙인들이 있는지 없는지 보기 위하여. 또는 개나리나 목련이 피어 있는지 보려고. 개나리와 목련 가운데 어느 꽃이 먼저 피더라? 궁리하면서.

  남편은 정확한 사람이다. 아침에 시간되면 일어나 정확하게 출근해서, 칼퇴근 후에 집에 들어오면 오후 7시에서 7시 20분 사이. 야근은 아예 생각도 하지 않고 잔업이라는 것도 없다. 부서 회식 같은 특별한 일이 있어도 1차에서 밥만 딱 먹고 빠져나온다. 7시 10분. 평균 귀가시간. 앞뒤 오차 10분. 귀가 시간은 정규분포. 남편은 겁난다. 갑자기 아내를 잃을까봐. 그래서 봉사도 하고, 건전한 단체이니 남자를 포함한 건전한 다른 사람들과도 교류해보라 권한다.

  하지만 독자 눈에는 아무래도 조금은 가식 같기도 하다. 봉사단체에서 같이 일한 남자와 함께 셋이 저녁 식사를 한 적도 있지만 속이 마냥 편하지는 않았겠지.


  세번째 작품 <검은 눈>. 시작하자마자 서산의 갈숲에 SM5를 끌고 들어가 수면제를 왕창 먹고 잠들기 전에 번개탄을 피워 자살한 남자가 등장한다. 이이가 누구냐 하면, 바로 앞 <비와 사무라이>에서 심각한 우울증에 걸린 여자의 전 애인. 죽은 사람은 지금 이혼 숙려기간이다. 딸 둘과 함께 서산에 왔다가 딸들은 부두에서 놀라 하고 자기는 차를 끌고 들어가 죽어버렸다. 원래는 함께 죽으려다 자기 혼자 죽었는지, 처음부터 자기 혼자 죽기로 하고 죽기 전에 딸들과 마지막 소풍을 간 건지는 아무도 알지 못했다. 앞에서도 우울증 여자하고 문자 연락을 가끔 했지만 서로 중요하게 생각하지는 않는다.

  현 직업은 소설가.

  부모를 가장 크게 엿먹이는 방법은 게이가 되는 거라고 보니것은 말했다. 게이가 될 깡다구가 없으면 예술에 종사하겠다고 작정을 하는 게 제일 좋은 대안이란다. 이런 진실을 지금 소설을 쓰는 이 남자의 애인은 안다. 애인은 시를 쓰는 시인. 일찌감치 시인으로 등단해서 한 시절엔 천재 소리를 들었지만 지금은 강사 자리도 하나 얻지 못했다. (책의 뒤편으로 가면 문창과 2학년 시 강사는 한다.) 하지만 소설가 남자한테는 그것도 부모 속을 썩일 방법이 아니다. 직장을 얻기는커녕 평생 돈을 벌지 않아도 아무 상관없는 부르주아의 자제. 커다란 오피스텔에 혼자 독신을 유지하며 사는 건 틀림없이 이 오피스텔에 들어와 기꺼이 자기 침대를 덥혀줄 여자들한테 과시할 목적이다.

  하지만 이런 도련님들도 지극히 조심해야 할 것이 있으니, 결코 사랑하지 말 것. 그러나 소설가 남자는 불행하게도 시인 여자를 사랑했으며, 시인 여자는 매우, 매우 야물딱지게 소설가 남자를 걷어 찼다. 걷어 찬 이유는 내 입으로 말할 수 없다. 직접 확인하시기를.


  다음 작품은 시인 여자가 강사가 되고, ‘나른 보이’라는 별명을 갖는 남자 제자를 만난다. 그 다음 작품의 주인공은 나른 보이의 조현병이 가볍지 않은 어머니, 또 그 다음엔 나른 보이의 어머니와 아마도 <수림>의 남자에게 심리 상담을 해주는 신경정신과 전문의.

  다시 그 다음엔 신경정신과 전문의와 원조교제를 하는 별명 ‘링고’ 여고생. 또 다음엔 링고네 학교와 옆 학교에 출몰하는 판초맨. 그리고 다시 장맛비. 장마, 긴 장마. 습한 날씨와 구름과 심지어 바다의 용오름까지. 글을 습기차고, 답답하고, 우울하고, 뭔가 맺혀있고, 비장하다. 워낙 입 거칠기로 호가 난 백민석 답게 묘사 역시 적나라하다. 많이는 아니고 조금 적나라하다.

  잘 읽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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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 유언
안드레이 마킨 지음, 이재형 옮김 / 무소의뿔 / 2016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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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리 이틀 동안 마킨의 책 두 권을 읽는다. <어느 삶의 음악>을 읽으며 이야기를 연결하고 분위기를 잡는 방식이 그럴 듯하고, 좀 잦은 듯한 부사의 사용도 읽기 좋을 수 있다는 발견, 그리하여 읽다가 도중에 개가실에 내려가 이 책 <프랑스 유언>을 집어왔다.

  그러나 <어느 삶의 음악> 보다 어렵게 읽힌다.  본문이 371쪽에서 끝나는 보통의 분량이건만 다 읽기 위하여 꼬박 이틀을 썼다. 안드레이 마킨은 말한다.


  “나는 어떤 사람들의 간질을, 또 다른 사람들의 천식과 코르크 붙인 방을, 또 어떤 사람들의 지하묘소보다 더 깊은 유배를 인용했다.” (p.336)


  지하묘소보다 깊은 유해는 모르겠는데, 도스토옙스키와 프루스트의 문장과 분위기를 가져왔다, 적어도 지표로 삼았다, 라는 고백이다. 나는 여기에 한 명을 덧붙이고 싶다. 움베르토 에코. 그가 쓴 <로아나 여왕의 신비한 불꽃>.

  <로아나 여왕…>에서 고서적상 주인인 주인공 얌보는 1차 뇌졸중에 걸려 이를 회복하기 위해 어린 시절을 보낸 솔라라의 시골집으로 간다. 그곳에는 1930년대와 40년대, 얌보의 유년과 소년 시절에 할아버지가 수집해 놓은 온갖 책, 잡지, 신문, 우표, 과자깡통 같은 것을 발견한다. 이 잡동사니 속에 얌보의 눈에 띄는 것이 만화책 <로아나 여왕…> 등을 비롯한 소년 시절에 읽었던 책, 잡지, 장난감. 뇌졸중 발병 후 아내는 물론이고 자식들과 그들의 배우자, 아이도 못 알아보던 얌보는 새삼스레 이것들을 읽어보며 조금씩 옛 시절을 회상한다.


  <프랑스 유언>의 스토리를 엮어가는 주인공 화자는 학교 친구들이 ‘프란추즈’라는 별명으로 불렀던 30대 작가. 당연히 책을 쓴 안드레이 마킨과 적지 않은 부분이 비슷할 것이다. 마킨의 외할머니가 프랑스 여성이었던 것과 같이 프란추즈의 외할머니도 20세기 초에 노르베르 가문과 알베르틴 르모나 가문의 결합을 통해 프랑스에서 출생해, 어린 시절을 파리에서 보냈다. 샤를로트 르모니에. 작품의 실질적 주인공이다. 1910년 정도에 태어나 의사 아빠를 따라 러시아에서 소년시대를 보내고, 엄마 알베르틴과 함께 파리에서 10대 시절을 지낼 때 러시아에서 혁명이 발발해 소비에트 시대가 개막했다.

  엄마 알베르틴은 딸 샤를로트를 파리에 남겨 놓고 자기 혼자 남편이 있는 러시아 동쪽 타이가 근처로 떠났다. 파리에 홀로 남은 샤를로트 역시 별로 가진 것 없이 무작정 어린 시절을 보낸 동시베리아를 향해 엄마를 찾아간다. 소련 영내로 들어오자마자 이동하기가 쉽지 않다. 사람이 많다는 말로 표현할 수 없을 만큼 살인적 밀도의 열차를 타고, 그나마 제때 도착하는 경우가 거의 없어 하염없이 걸어서, 절반, 아니 삼분의 일 정도의 거리는 걸어서 멀고 먼 동시베리아, 그곳에 도착해 엄마를 만났다. 그리하여 책의 서두 부분에, 외할머니는 “러시아의 눈 내리는 광활한 평원 위에서 길을 잃고 헤매던 프랑스 여인”이라고 썼다. 그가 파리에서 시베리아까지 가는 동안 두 발로 걸은 거리가 아무리 못해도 할머니 주소지인 볼가강 동쪽에서 파리까지 거리만큼 될 거란다. 그러나 시베리아에서 어렵게 만난 엄마 알베르틴은 딸에게 말했다.

  “내가 이곳에서 매일 기도했던 것은, 네가 절대로 이곳에 오지 않게 해달라는 거였단다.”


  ‘나’, “프랑스 놈”의 소련식 비칭인 프란추즈가 기억하는 것은 할머니 샤를로트가 볼가강 동쪽에 있는 깡촌 중의 깡촌 ‘사란짜’ 마을에 살면서부터. 프란추즈는 누나와 함께 여름이 되면 사란쨔의 할머니 집에서 방학을 보냈다. 이때가 열 살 정도.

  할머니 집에는 아이 눈으로 보기에 보물창고가 있다. 어린 이탈리아 소년 얌보의 옛집에 다락방이란 보물창고가 있었듯이. 할머니와 프랑스에서부터 근 5천km를 함께한 트렁크와 퐁네프 가방.

  작은 퐁네프 가방부터 이야기하자. 그 속에는 몇 개의 기름종이에 싼 봉투가 있었다. 프란추즈와 누나는 할머니의 주의가 소홀한 틈을 타, 어린이들 특유의 호기심으로 ‘페캉’ ‘라로셀’ ‘비욘’ ‘베르됭’이라 겉면에 쓰여 있는 봉투를 풀어본다. 독자는 쓰인 글씨만 보고도 그것들이 프랑스에서 가져온 흙과 자갈, 돌멩이라는 걸 즉각 알지만, 아이들은 이런 보잘것없는 것들이 왜 다른 곳도 아니고 보물상자인 퐁네프 가방에 들어 있는지 이해할 수 없다. 그래서 함부로 꺼내 가지고 놀다가 (조금 후에 알게 될)제일 중요한 베르됭의 조약돌을 화단 풀숲으로 던져버렸다. 몇 천km 서쪽으로 가고 또 가야 도착할 샤를로트의 고향 프랑스에서 가져온 돌. 작품 중후반에 알게 되지만, 소련에서 만난 소련인 남편 피오드르 할어버지보다 먼저 만나 사랑한 프랑스인 연인이 건넨 베르됭 기념품.

  큰 여행가방에는 지나간 시절의 신문과 신문 스크랩, 사진첩 같은 것들이 들어 있다.

  오래 묵어 인화지 색깔도 변한 사진 속 인물들. 그 중의 하나.

  연미복 남자들과 야회복 여자들 사이에서 두툼한 털모자와 큼지막하고 칙칙한 솜저고리 차림으로 양털 담요에 싸인 아기를 가슴에 안고 선 여자. 처음 보는 사람이다. 프란치즈가 할머니한테, 이 여자가 누구예요, 묻지만, 할머니는 때마침 방안으로 들어온 두 겹의 박각시나방으로 화제를 돌려 프란추즈는 답을 듣지 못한다. 어린아이 답게 금방 호기심이 수그러들기도 했지만. 그 여자의 정체는 결말 부분에 밝혀진다.

  이어서 신문 기사들. 프랑스의 벨 에포크 시대의 화제들. 이 가운데 초점 하나. 1896년 러시아의 니콜라이 2세 초청 방불. 펠릭스 포르 프랑스 대통령과 황제가 나란히 찍은 사진. 2년 조금 지나 강력한 프랑스의 최고 권력자인 대통령이 다른 곳도 아닌 엘리제 궁에서 정부 마르가르트 스타네이의 품 속에서 사망한 일 등등.

  중요한 건 가족들 사진과 1910년 파리 대홍수로 파리가 물에 잠긴 사건이었다. 시내에서 이동을 하기 위하여 작은 보트를 타야 했던 시절. 그리하여 파리는 물 속으로 가라앉게 되는 것이고, 저 소련의 끝도 없는 벌판이 시작되는 시베리아 초입 할머니 집에 간 아이한테는 파리가 잠긴 도시 아틀란티스가 될 수 있었다. 이는 프랑스 뇌이-쉬르-센이 고향인 샤를로트 할머니한테는 결코 다시 돌아갈 수 없는 곳을 의미한다.

  할머지 집에서 자잘한 것들을 찾아내 외가 가문의 흔적을 연상하는 것. 이게 움베르토 에코의 <로아나 여왕의…>를 연상시켰다는 거다.


  2부는 프란추즈가 조금 더 자라 사춘기에 접어들었을 때.

  이때부터 읽기가 쉽지 않다. 건초열에 시달리는 유달리 예민한 청년 마르셀의 사색처럼 길고 긴 문장은 아니지만 앞에서 말한 내용, 전쟁이 끝나고 홀로 시베리아로 떠난 엄마 알베르틴을 쫓아 그 험한 길을 10대 후반의 젊은 샤를로트가 열차도 타고, 지나가는 마차도 얻어 타고, 더 먼 길을 걸어서 도착하는 장면. 알베르틴의 남편이자 샤를로트의 아버지의 불행한 마지막. 하긴 당시를 살던 남자들 가운데 험한 죽음을 맞지 못한 사람이 워낙 흔했지만, 단지 프랑스인, 적국에서 소련으로 침입한 스파이라는 누명을 쓰고, 씌우지 않으면 안 됐던 시절. 결국 내게 기억에 남는 것은 프루스트처럼 사색의 확장이 아니라 샤를로트의 생애 스토리였던 거다.

  3부는 본격적인 사춘기 속을 헤매는 프란추즈가 핵심이다. 물론 샤를로트의 지난 시절은 여전히 도저하게 흐르지만. 프란추즈는 볼가강변에 정박한 폐선 선창을 통해 생전 처음 사람의 교접 장면을 목격하고, 댄스 파티에서 만난 여자 아이를 만나 동정을 상실한다. 그리고 할머니 댁. 아마도 샤를로트 할머니를 마지막으로 만난 일이 될 것이라고 생각하는 프란추즈. 그는 4부에서 10년이 지난 후 드디어 소련에서 벗어나 프랑스에 정치망명자로 남는다. 아틀란티스에 온 것. 이제는 여든 살이 넘었을 할머니, 여전히 프랑스를 그리워할 것이 틀림없는. 그러나 프란추즈가 그걸 어떻게 알아. 소련의 큰 도시도 아니고 사막의 끝자락이자 키르기스탄을 거쳐 몽골까지 펼쳐진 초원이 시작되는, 오직 적막만 흐르는 외로운 곳에서 결코 떠나고 싶어하지 않은 할머니 마음을.


  이렇게 작품은 쓸쓸한 초원과 사막의 접경지대에서 시작했다가 끝을 맺는다. 프랑스 여인이 굳이 소련의 변방으로 와서 한 평생, 그것도 더 이상 파란만장할 수 없는 삶을 사는 이야기. 이것이 어떻게 읽으면 화려한 문장으로, 달리 보면 차분한 목소리로 이야기하고, 쓰여 있다.

  읽고 나서 보니, <프랑스 유언>이 공쿠르 상과 메디치 상을 동시에 받은 작품이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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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삶의 음악
안드레이 마킨 지음, 이창실 옮김 / 1984Books / 2024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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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57년생 닭띠 아저씨, 안드레이 야로슬라보비치 마킨. 이름 보면 딱 안다. 57년생이니까 소비에트 연방 크라스노야르스크에서 태어났다. 몽골 위, 훨씬 높은 위도. 예전 같으면 유배형 받아 가는 곳이다. 열 명 가면 여덟 명 죽고 두 명도 유배형이 끝나봤자 모스크바나 레닌그라드로 돌아가지 못하고 그곳에서 이동권이 제한된 주민으로 살다가 죽어야 하는 곳이다. 그래도 안톤 체호프가 자연 경관에 홀딱 반한 도시. 지도 보니까 눈대중해보니 모스크바에서 동쪽으로 4천km 이상 떨어져 있다.

  그래도 자란 곳은 모스크바 기준 남동쪽으로 7백km 이상 떨어진 펜자 시. 이이의 외할머니가 (지금 읽고 있는 다른 작품 <프랑스 유언>에 나오는 것과 같이) 프랑스 태생이어서 프랑스어도 러시아어만큼은 아니겠지만 능숙하게 사용할 수 있었다고. 마킨의 능숙한 프랑스어가 문제였다. 모스크바대학에서 문학박사 학위를 받은 후 교사 교환 프로그램을 명목으로 슬쩍 프랑스로 넘어가 정치적 망명을 신청해 그곳에서 눌러 산다. 도착하자마자 열나게 소설을 발표, 네번째 작품인 <프랑스 유언>을 발표해, 프랑스 문학사상 처음으로 1995년 한 해에 공쿠르상과 메디시상을 석권하는 기염을 토했다.

  검색을 하다가 내가 깜짝 놀란 것은, 안드레이 마킨이 프랑스 아카데미 회원인 아시아 제바르의 자리를 물려 받았다는 거였다. 아니, 제바르가 갔어? 2015년 78세의 나이로 영면했단다. 팬으로서 아쉬운 일이다. 그곳에서 안식하기를.


  <어느 삶의 음악>. 시작은 화자 ‘나’의 조국, ‘나’가 태어난 인구 2억4천만의 나라에 대한 신조어에 관해. 이 신조어新造語는 뮈헨의 철학자라고 불리는 알렉산더 지노비예프가 만든 말, ‘호모 소비에티쿠스’를 일컫는다. 이 용어야말로 러시아 사람과 러시아의 문제를 푸는 진정한 열쇠라고.

  ‘나’는 저 극동 지역에 볼일이 있어 갔다가 우랄의 한 도시에 들렀다. 이제 집이 있는 페테르부르크로 가는 열차를 타야 한다. 페테르부르크에 가려면 모스크바애서 환승을 해야 할 터. ‘나’는 열차 정거장의 대합실에 앉아 있다. 그러다 생각지도 못한 여성의 아름다운 목소리로 기차가 여섯 시간 연착할 거라는 방송이 나온다. 여섯 시간. 페테르부르크나 모스크바 시민이라면 어떻게 여섯 시간 연착을 이해할 수 있을까? 그러나 우랄 지역 사람들한테는 여섯 시간은커녕 여섯 날, 6주라도 얼마든지 기다릴 수 있을 것처럼 보인다. 대합실의 후줄근한 사람들은 오직 ‘나’ 빼고 아무 불만 없이 시간을 보내고 있다. 이게 전형적인 호모 소비에티쿠스. 전쟁이 나면 남자들은 전쟁터에 나가 총 맞아 죽고, 여자들은 먹을 것이 없어 굶어 죽어도 전쟁이 터진 거니까 그런가보다, 쥐도 새도 모르게 한 밤중에 잠자리에서 끌려가 무슨 이유인지도 모르고 즉결처분 당해도 그럴 수 있지, 하고 넘어가는 사람들. 그렇게 만든 유구한 역사. 세계사의 바깥에 자리한 나라. 비잔틴 제국의 뿌리 깊은 유산이며, 두 세기 동안 짊어진 타르타르의 멍에이고, 5세기에 걸친 노예상태와 혁명에 이은 스탈린 치하를 겪으며 저절로 습득하게 된 무념무상의 상태.


  기차를 기다리다 보니 어느덧 새벽 세시 반. 역사驛舍에 흘러드는 건반 소리에 ‘나’는 설핏 든 잠에서 깬다. 그 소리의 무심함에 이라니. 철학적 분노를 철저히 무용화 하는 소리. 그저 하나의 경계선일 뿐인 것. ‘나’는 그것을 따라 역사에 이어진 복도를 걸어 한 홀hall의 열린 문을 통해 안을 들여다본다.

  그랜드 피아노 앞에 앉은 남자. 의자 옆에 모서리를 니켈 도금한 짐 가방. 그는 건반을 누르지 않고 그 위를 손가락이 오가기만 한다. 아주 미세하게 손톱이 건반에 부딪는 소리가 들린다.

  “군데군데 사이를 두다가 활기를 띠더니 조용한 흐름에 박차를 가하며 종내 열띤 분노의 달음박질을” 펼치는 광음의 열정. 소리 없는 피아노가 만들어내는 음악. ‘나’는 그것을 들을 수 있고, 노인의 손가락 뼈가 그렇게 투박한 것에 또 놀란다.

  그리고 그의 이마에서 관자놀이까지 세월이 표백한 깊은 흉터와 그의 눈물을 확인한다. 정말 눈물이 늙은 눈에서 방울졌을까? 모르겠다. 하지만 그런 것 같다.

  ‘나’는 피아노에 앉았던 노인에게 그가 한 타건 없는 피아노 연주를 보았다고 말할 수 없다.


  나는 여기까지 읽고, 우랄의 한 도시에서 썰렁하기 그지없으며 난방조차 변변하지 않는 강당에서 피아노 연주를 하고 모스크바 집으로 가는 늙은 남자 피아니스트 한 명이 떠올랐다. 스비아토슬라프 리히터. 아, 이 책이 리히터에 관한 것이구나. 그가 종종 그러했으니까. 러시아의 시골 변방을 다니면서 공연장이 크거나 작거나, 관객의 수준이 높거나 낮거나 관계없이 기꺼이 연주회를 하고 조용히 열차를 타고 돌아온 외로운 노인. 나도 그 시절에 녹음한 음질이 열악한 바흐 음반을 한 장 가지고 있다. 리히터가 작품에 본격적으로 등장하면 이제 음악 이야기가 쏟아질 거야. 이렇게 기대했다.

  기차가 도착했다. ‘나’는 대합실에서 여섯 시간 기다렸던 인파와 함께 승강장으로 뛰어갔지만 승객이 많아도 너무 많다. 이 정거장에 도착하기 전부터 이미 객석은 발 하나 꽂을 곳이 없다. 그래도 호모 소비에티쿠스들은 악다구니를 쓰며 객차 안으로 밀고 들어간다. ‘나’도 덩달아 어깨로 힘껏 밀어보지만 곧이어 객차 담당이 와서 이제 더 이상 못 탄다고, 내일 열차를 타라고 악을 쓴다.

  이때 피아노 노인이 그를 소리쳐 부른다. 오랜 연착 후에는 아주 오래되어 거의 고물이기는 하지만 종종 객차 끝에 스페어 객차를 다는 법이라며, 이번에도 그런 것일 뿐이니 자기를 따라오란다. 그래서 ‘나’는 피아노 노인과 구닥다리 삼등칸에 여유있게 앉아 모스크바까지 편안히 여행한다.

  그리고 이어서 노인의 삶을 잔잔하게 흘러나온다.

  “그 당시 난 내가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사람이라고 믿었다오.”


  1920년생의 노인. 아, 리히터 이야기가 아니구나. 여기서 알았다.

  극작가 아버지와 피아니스트 어머니의 외동 아들. 어머니를 탁했는지 어려서부터 피아노에 재질을 보여 학교와 음악원을 동시에 다녔다. 스무살이던 1941년, 이이는 5월의 소나기가 쏟아지는 것을 무릅쓰고 관청 앞의 게시판에 붙은 벽보를 보고 있었다. 벽보에 자기 이름, ‘알렉세이 베르그’가 들어 있는 것을 머리 속에 사진으로 찍어 놓았을 정도로 골똘하게. 1주일 후에 볼베어링 공장 문화원에서 첫번째 연주회를 연다는 알림.

  그러나 1920년생 소련 사람이 1940년까지 오는 길은 만만하지 않았다. 알렉세이도 마찬가지. 극작가지만 아마추어 바이올리니스트였던 아버지는 1937년 스탈린에 의한 대 숙청 기간에 부르주아 인텔리겐치아라는 혐의를 받을 것이 두려워 집안에서 내려오는 오래된 바이올린을 부엌 화덕에 집어넣어 불살라 버렸다. 가족의 친구이자 훌륭한 바이올린 협연자인 투카체프스키 사령관이 처형당해 부모는 극도의 불안에 떨고 있었던 시기.

  대숙청이 1937~38년까지를 말하지만 이후에는 숙청이 없었다는 의미는 아니다. 게다가 군 사령관의 친구이니 언제나 불안했을 터. 1940년 5월이 왔다. 알렉세이가 음악원에서 연주회를 위하여 마지막 연습을 마치고 집에 돌아오던 길에 같은 건물에 사는 노인이 초점이 맞지 않는 눈으로 그를 불렀다.

  “집에 가지 않는 것이 좋겠네. 어디 멀리 떠나.”

  이렇게 알렉세이 베르그의 앞에도 길고 긴 험한 여정이 도사리고 있었다. 어디로 도망할 수 있었을까? 들어가기는 쉽지만 결코 나올 수 없는 곳이 소비에트 연방이었는데. 그를 살린 것은 어처구니없게도 독일군이었다. 전쟁이 터지고 그는 역사의 폭풍에 자진해서, 고문과 유형을 피해, 살기 위하여 이미 죽은 소련군의 군복과 군화를 신고, 다른 이름으로 살기 시작하며 휩쓸리기 시작한다.

  이렇게 콘서트 피아니스트가 될 뻔한 노인 알렉세이 베르그의 한 평생을 담은 짧은 소설.

  기대했던 것과 달리 단 한 곡의 특정한 음악 이야기도 없었다. 제목 <어느 삶의 음악>은 알렉세이 베르그한테 음악이란 어떤 것인가를 의미한다. 그걸 차마 여기서 말할 수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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