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저녁이 저물 때
예니 에르펜베크 지음, 배수아 옮김 / 한길사 / 2018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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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년에만 에르펜베크의 책을 세 권 읽었다. <카이로스>가 2024년에 부커-인터내셔널 상을 받았다고 해서 관심을 두었는데 정작 인상깊게 읽은 책은 <그곳에 집이 있었을까>였다.

  딱 내 마음에 맞는 작품을 읽었다. 20세기 오스트리아-헝가리 지역, 그러니까 중부와 동유럽 지역의 현대사를 지낸 한 아기, 소녀, 청년, 중년, 노년의 이야기. 시대는 프란츠 요제프 1세 시절, 1902년 봄과 여름 사이에 태어난 여자 아이.

  아이는 스페인이 아니라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의 갈리시아에서 열여덟 살의 유대인 어머니와 가톨릭 교도 즉 유럽 원주민 아버지 사이에서 맏이로 난다. 유대 어머니가 갓 태어났을 때 이 가정의 비극이 시작했다. 유대 어머니의 어머니, 그러니까 1902년에 난 아이의 어머니. 이것은 변하지 않는 사실이니, 그녀와 남편이 거실에 있고 아이는 보모가 아이방에서 돌보고 있을 무렵 어수선한 기척이 나 창 밖을 내다보니 집 밖 사람들이 무리 지어 달리면서 고함을 질렀다. 순간 덧문도 닫지 않은 1층 창문에 첫번째 돌이 날아 들어왔다. 남편이 문을 살짝 열고 내다보니까 그곳에 평소 친하게 지내던 안드레이가 있어 그를 불렀더니 안드레이는 못 본 척해버렸다. 두번째 돌이 유리창을 깨고 날아들어 그녀의 머리를 스쳐 지나가 남편이 부모한테 졸업선물로 받은 괴테 전집 9권 책등에 맞았다. 그래서 조금 상처를 입은 괴테 전집 9권은 <모든 저녁이 저물 때>가 끝날 때까지 계속 등장한다.

  이어 안드레이와 청년들이 집 현관문 앞에 들이닥쳐 도끼질을 하기 시작한다. 부부는 피신할 수밖에 없다. 2층 아기방을 두드렸다. 보모는 문을 걸어 닫은 채 아이의 부모에게 아이를 건네주는 것도, 아기방으로 들어오는 것도 거부했다. 긴박한 순간에 부부는 할 수 없이 2층과 지붕 사이의 다락방으로 피신했고, 그 순간 도끼질에 산산조각이 난 현관문을 박차고 청년들이 들이닥쳐 집안을 사정없이 박살내기 시작했다.

  다락방에 숨었다 해도 발각나 폭행을 당할 것이 틀림없어 부부는 맨손으로 천장을 뚫기 시작했다. 그리하여 조금 구멍을 낸 사이에 다락방까지 다가온 청년들이 문짝을 도끼질했다. 겨우 뜯어낸 지붕으로 먼저 아내를 올려보낸 남편이 점프를 했고, 순간 다락방의 방문이 도끼질 두어번에 조각이 나버렸으며 뛰어오른 남편의 팔을 붙잡은 그녀가 힘을 주어 끌어올리는 바로 그때, 안드레이와 함께 들이닥친 청년이 남편을 향해 거침없이 도끼를 휘둘러 그를 산산조각을 내버렸다. 그녀가 죽을 힘을 다해 남편의 팔을 끌어올렸다. 그리고 쑥, 남편의 팔만 아내가 있는 지붕 위로 불쑥 솟아오르고 그냥 고기 덩어리가 된 나머지 부분은 2층 창문에서 거리로 내던져졌고, 지나가던 행인 아무도 관심을 두지 않았다. 바로 이 순간에 유대인 과부가 된 여인은, 아이에게, 훗날 1902년에 난 아이에게, 아버지는 어느 날 집을 나가서 영영 돌아오지 않았다고, 아마도 미국으로 갔을 거라고, 미국 아니면 파리나 베를린에서 살고 있을 거라고 이야기했다. 아이는 평생 그런 줄 알고 살았다.


  이 아이가 갓난 아이였을 때, 아버지가 사실 미국에도, 파리에도, 베를린에도 가지 않고 유대인 거주지역 안에 있는 집에서 안드레이를 비롯한 폴란드 청년들에게 난도질을 당한 채 죽어버린 다음 어머니가 남편의 상점을 이어 운영했는데, 아이가 점점 자라 당연한 듯 상점에서 일을 도왔을 것이다. 열여섯 살이나 열일곱 살이었을 때, 갈리시아 지방 칼 루드비히 철도의 35km 구간을 책임지는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의 최하위 그러니까 11등급 철도 공무원 청년이 상점에서 유대인 여주인의 딸을 알게 되었고 그녀에게 청혼했다. 청년은 매우 가난했으며 그럼에도 살기 위하여 이곳저곳에 빚을 질 수밖에 없었는데, 혹시 결혼하면 유대인 여인이 내줄 혼인 지참금으로 빚을 갚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희망이 없는 건 아니었다. 정작 오직 법률적으로만 결혼하는 날, 청년에게 축하한다는 말이 없는 거야 뭐라 할 수 없어도, 주변에 침묵이 퍼지는 걸 확인하는 일은 편하지 않았다. 그건 보편적으로 종말과 관련한 ‘무엇’이라고 해석할 수도 있었다.

  그의 아버지는 법률혼 때도, 아기 그러니까 아버지의 손녀가 출생했을 때도 오지 않았다. 길이 너무 멀고 돈이 많이 든다고만 했다. 아내, 그러니까 아버지가 미국이나 아니면 파리, 베를린으로 떠난 줄 알고 있던 아이가 커서 혼인을 한 여자의 외할아버지도 오지 않았다. 손녀가 이교도와 결혼하는 날. 그는 길을 떠나 손녀를 축복하는 대신, 아직 멀쩡히 살아있는 신부를 위해 죽은 자를 애도하는 의례인 시바를 치루고 있었다. 조상의 신이 보자면 그녀 또한 이미 생사의 경계를 넘어선 것이기 때문에.


  이 젊은 부부가 법률적으로 혼인을 하고, 아홉달이 지나 딸을 낳고 나서, 이제 아빠가 된 청년은 자기 주변에 침묵만 깔린 것을 확실히 알아챌 즈음해서, 아내가 가져온 지참금으로 자기 빚을 다 갚을 수도 없고, 최하위인 11등급 공무원에서 10등급으로 승진 심사를 통과하는 것도 거의 불가능하게 되었다는 것도 충분히 이해할 수밖에 없었다.

  그럼에도 아이는 점점 자라 벌써 세상에 나와 여덟 달이 되고 처음으로 겨울을 맞았고, 그리고, 죽었다. 자다가 담요가 두꺼웠나, 똑바로 누워 재웠는데 사레가 들었나, 아팠는데 그것을 몰랐나. 그렇게 죽었다. 유아돌연사. 그건 지금도 잦은 빈도로 일어난다.

  아이의 엄마, 아버지가 미국으로 간 줄 알며 산, 아니면 파리나 베를린으로 떠난 줄 알고 산 엄마는 그냥 아이가 죽은 것이 아니라, 등에 책가방을 메고 집은 나설 어린 여자 아이, 열살 먹어 쉬지 않고 조잘대는 꼬맹이, 청년들의 눈길을 한 없이 즐기는 처녀애, 그리고 늙은 여자가 될 자기 딸이 흙 세 줌과 함께 땅에 눕혀지고 그 위에 흙을 부은 거였다. 그렇게 땅 속에 죽은 아이를 묻고 돌아온 젊은 엄마는 유대인 관습에 따라 현관문 앞에 벽에 등을 기댄 채 그녀의 할머니한테 유일하게 물려받고 싶어했던 발 받침대, 어린 시절 할머니의 옛날 이야기를 들을 때면 늘 앉곤 하던 발 받침대를 옆에 두고 꼬박 일곱 날을 기대 앉아 있을 것이었다.

  아이가 죽었나, 싶었을 때, 그녀는 집안의 물이란 물은 모두 바깥으로 쏟아버렸다. 죽음의 검은 천사가 검을 물에 담아 씻을 테니까. 담요로 거울을 덮고 모든 창문을 열어 놓았다. 아기의 영혼이 되돌아오지 않고 영원히 날아가 버릴 것이기 때문에. 그런데도 아기는 가버렸다. 그런데도 여전히 젖이 돌아 가슴이 뭉쳤다. 땅 속에 묻혀버린 아이를 위한 젖. 너무 많이 갖고 있는 젖 때문에 그녀도 죽어버리고 싶었다. 만일 가능하다면 조상들의 신과 거래하여 자신의 생명과 그녀의 몸에서 태어난 생명을 교환하기를 간절히 원했지만 신은 그녀가 건넨 것을 결코 받으려 하지 않았다.


  그러나, 소설은 모든 가능성을 포함한다. 여기서 막간극이 벌어진다.

  만약 예를 들어, 아이가 죽어가던 순간 그날 밤에 어머니나 아버지가 창문을 열어젖히고, 바깥 창틀에 쌓인 눈을 한 줌 퍼다가 아기의 옷 속으로 밀어 넣었더라면, 그 순간에 창을 열고 은은하게 빛나는 눈을 바라보거나, 추위에 오그라든 창틀이 삐걱대는 소리를 듣기만 해도 그런 영감이 떠올랐을 수 있었을 텐데, 만일 정말로 창틀에 소복하게 쌓인 눈을 한 줌이라도 퍼다가 아기의 가슴 그러니까 심장 부위에 밀어 넣어 자극을 했더라면 아마도 아기는 불현듯 다시 숨을 쉬기 시작했을 것이고, 어쩌면 소리를 지르며 울었을지도 모르는데, 둘 가운데 뭐가 됐든 아기의 심장은 다시 뛰기 시작하고, 아기의 피부는 온기를 회복하면서 눈은 아기의 가슴에서 녹아버렸을 것이다.

  다만, 만약이다. 만약 그러했더라면.

  작가는 결심한다. 창작자의 권한으로 만약이었던 것을 실제로 그렇게 되었다, 라고 결심해버린다. 그리하여 때는 1918년. 아이는 16년 전인 1902년에서 1903년으로 넘어가는 겨울에 죽은 것이 아니라 1918년에서 1919년 사이의 겨울, 오스트리아-헝가리는 제1차세계대전에서 패배해 전 국민이 곤궁의 골짜기로 떨어졌을 무렵, 이제 극도로 좁아진 오스트리아의 수도 빈으로 전근해 온 아버지를 따라 여전히 고도의 위용을 자랑하지만 조금의 식량을 얻기 위하여 밤새도록 배급소 앞에서 줄을 서야 하는 도시에서 살고 있다.

  그러나 아이는 결코 행복하지 않다. 이 나이가 아이의 어머니가 아버지를 처음 만나 사랑을 시작했던 시기. 그렇다고 아이에게 당연히 연인이 생기는 건 아니다. 패전해 곤궁에 떨어진 왕년의 제국 도시 빈에는 스페인 독감이 돌아 아이의 절친한 친구도 죽어버리고, 도시에서 넘쳐나는 빈에서 운구용으로 쓰이던 전차를 타고 공동묘지로 향한다. 죽은 친구의 애인, 전장에서 독가스를 마시고 돌아온 남자를 연모하던 아이는, 남자에게 온몸을 던졌음에도 받아들여지지 않고, 일 주일을 견딘 후에, 1919년 1월 26일, 23시 17분경, 알저 거리 4번지, 북위 48.21497도, 동경 16.35231도, 빈 종합병원 앞에 멈춘 택시 안에서, 우연히 만난 의대 3학기에 재학 중인 페르디난트 G. 씨로 하여금 서로 합의된 내용에 따라, 아이의 관자놀이에 권총을 갖다 대고, 정확히 그 순간 개 짖는 소리가 들려오자, 마치 짖는 소리에 화답하듯, 정말로 방아쇠를 당겨버리게 해서, 죽었다.


  이렇게 아기는, 소녀는, 젊은 여성은, 중년 부인은, 노인은 다섯 번의 삶을 20세기의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 비엔나, 프라하, 모스크바, 동베를린을 거쳐 역사를 관통한다.

  무엇보다 문장, 글이 매혹적이다. 배수아의 가필이 있었는지 그건 모르겠지만, 전에 인상깊게 읽은 <그곳에 집이 있었을까>를 떠올리게 만드는 빼어난 글과 20세기, 한 문장도 허투루 읽지 못하게, 그렇게 몰입하게 되는 작품. 이런 걸 뭐라 해야 하나? 아름답다고? 비슷한 느낌이다.

  에르펜베크, 이제 이이의 단행본은 한 권 남았다. 아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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헨리 슈거 ㅣ 로알드 달 베스트 단편 3
로알드 달 지음, 허진 옮김 / 교유서가 / 2021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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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홉 편의 단편소설을 실은 소설집.

  로알드 달이 <찰리의 초콜릿 공장>을 쓴 어린이 소설 작가인 줄 알면서도 읽기 시작한 건 개브리얼 제빈의 작품 <섬에 있는 서점>에서 특별한 단편소설 작가로 소개하고 있기 때문이었다. 출판사 “교유서가”의 로알드 달 베스트 단편 시리즈 1번 《맛》을 읽어보니까 흥미가 돋았다. 재미있고 특색있는 대중소설가가 쓴 단편들. 특히 도박이나 내기 같은 장면은 달만큼 인상적으로 묘사하기 힘들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특징적이었다. 그래서 로알드 달 베스트 단편 시리즈 세 권을 올해 안에 모두 읽어 보기로 작정을 했고, 순서가 헷갈리는 바람에 2번을 건너뛰고 3번 《헨리 슈거》를 먼저 읽었다.


  한 번에 탁, 말해 버리면, 전작만 못하다. 시리즈에 번호 1을 괜히 주는 게 아니었나비여?

  《맛》은 이야기했듯이 내기와 도박 장면이 참 근사했다. 물론 《헨리 슈거》에도 표제작 <헨리 슈거의 놀라운 이야기>에서 도박장, 카지노 장면이 나오고, 주인공 헨리 슈거가 무려 3년에 걸친 요가 수행으로 투시력을 확보해서 기껏 한다는 일이, 누가 로알드 달 아니랄까봐, 카드 뒷장만 본 채 어떤 카드인지 알아 맞히는 거라서 평생 카지노에 들락날락하며 1억 파운드가 넘는 돈을 버는 이야기가 나오기는 한다. 그러나 아홉 단편의 맥은 조금 허황된 이야기들, <찰리의 초콜릿 공장>을 어른 판으로 만든 것 같은 느낌을 지울 수 없다.

  어른 판이라고? 그렇다. 어른 판이라면 당연히 허리 아래 이야기를 피할 수 없지? 그리하여 맨 앞에 실은 <로제트 부인> 속 로제트 부인은 피도 눈물도 없는 포주. 게다가 주인공도 아니다. 스태그, 스터피, 윌리엄. 이렇게 세 명의 영국 전투기 조종사들이 2차 세계대전 중에 독일공군과 격추전을 성공적으로 마무리하고 휴가를 받아 이집트 카이로로 놀러가서 카이로의 이름난 포주 로제트 부인을 찾아가 벌이는 활극. 활극도 시거를 입에 문 채 총 쏘고 말 달리는 활극이 아니고, 로제트 부인의 유곽으로 쳐들어가 세계각국의 국적을 가지고 있는 열네 명의 아가씨를 해방시키는 이야기. 해방이라 해서 정말로 해방, 즉 매춘업 업종을 바꾼다는 게 아니라 그저 로제트 부인의 무지막지한 폭리로부터 해방일 뿐이기는 하다. 뭐 스토리 전개는 나름대로 재미있기는 하다. 그걸로 끝이라서 문제지만.


  또다른 허리 아래 이야기로 <대역전>이 있다. 크게 개구멍이 나 있는 산울타리 덤불을 사이에 이웃한 두 가정. 제리-사만다 부부와 화자 ‘나’인 빅-메리 부부.

  사건은 제리-사만다 부부가 파티를 여는 날 밤에 시작한다. 빅이 보기에 사만다가 그렇게 어여쁠 수가 없다. 관상을 보니 사만다 역시 남자를 무척 밝히는 스타일이기는 한데 절대로 가정을 파탄으로 몰고 갈 성격이 아니다. 그래서 유혹할 수 없다. 불행하게도 사만다의 남편인 제리와도 절친 사이다. 그러니 친구의 아내와 한 침대에 오르는 건 정말 안 될 일이다.

  하지만 세상에 안 될 일이 또 뭐가 있을꼬?

  빅, 이 개 아들 놈은 발상 전환 모드에 들어간다.

  통박을 굴려보니까 절친 제리가 빅의 어여쁜 아내 메리한테 매우 높은 수준으로 끌리고 있는 거 같다. 그럼에도 자기와 같은 이유로 함부로 껄떡대지 못하고 있는 듯한 눈치. 앗따, 바로 이거다.

  빅이 제안한다. 마치 자기 직장 동료 가운데 누군가가 실제로 저지른 일을 들은 것처럼. 바로 스와핑.

  스와핑은 스와핑인데 두 부부, 즉 네 명의 합의하에 짝을 바꾸는 것이 아니라, 새벽 한 시에 옆집 남자 둘이 서로 침대를 바꾸어 들어가 한 시간 동안 한 번씩 하고 두 시에 다시 원위치하는 것. 이 과정에 돌입하고 정말로 그런 일을 벌이는 분량이 만만치 않은데 그걸 다 소개하고 싶은 마음은 없다. 하여간 제리와 빅은 그렇게 한다. 화자가 빅이니까 책에는 빅과 사만다의 침대 장면만 살짝 나온다. 아참, 먼저 말했어야 했는데, 제리의 물건이 빅보다 훨씬 크고, 빅이 아래로 휘어져 있는 반면 제리는 위로 휘어졌으며(이건 다른 작품에서 나오는 이야기였나?), 지속 시간도 비교하자면 무척 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서로 미리 이야기를 주고받아, 여자들이 눈치채지 못하게 최대한으로 빅은 제리의, 제리는 빅의 침대 루틴을 지키기로 했음에도, 그게 마음대로 되는 게 아니라서 어느 새 자기 루틴으로 방사를 치루었는데, 처음엔 뻣뻣하던 사만다의 몸이 나중에 배배 꼬이면서 좋아, 좋아, 좋아, 좋아, 이렇게 ‘좋아’를 네 번 외친 다음에, 아이구 미국인들이란, 뒷처리도 하지 않고 다시 잠에 빠져버린다. 아, 드러. 아니, 드러운 건 아니지만, 거 좀 척척하니 찝찝하지 않아?

  문제는 다음 날 아침을 먹고 식탁에서 벌어진다. 화자 빅과 메리의 대화. 흠. 이건 알려드릴 수 없지.

  박완서의 단편에도 이런 이야기가 나온다. 놀랍지? 현관을 마주보고 있는 아파트의 두 남자. 하루는 어울려서 떡이 되도록 술을 퍼마시고 아뿔싸, 의도치 않게 오직 헷갈려서 서로 상대방의 현관을 열고 들어간다. 이미 밤은 깊어 두 집의 여사님들은 벌써 잠에 떨어진 상태. 그래 두 남자는 약속이나 한 것처럼 주섬주섬 옷을 벗고 침대 속으로 파고 들어 아내(인줄 아는 옆집 여자)의 몸을 더듬다가 위로 올라가 일을 치룬다. 그런데 놀랍기도 하지. 두 남자가 비슷한 수준의 상투적 전희에 이어 거의 비슷한 속도와 유지 시간, 그리고 아주 정확하게 같은 방식의 뒷처리 후에 잠에 빠지더라는 거. 박완서 시절이니까 천민자본주의의 절정기에 물화, 정형화된 가정의 단면을 비튼 소설이다.

  반면에 미국 가정을 무대로 하는 영국인 소설가 로알드 달은 그렇지 않다. 사회성이 쏙 빠진 흥미 본위의 절반 대중소설. 그래서 재미로 치면 조금, 아주 조금 윗길이기는 하지만 기대하지 마시라. 절대 결말을 일러드리지는 않을 터이니.


  그런데도 이 책을 <찰리의 초콜릿 공장> 류라고 하는 것은, 그로테스크한 환상이랄까, 하여튼 그 비슷한 묘사가 넘치기 때문이다. 그게 소년시절을 지나고 있는 시절이라면 재미있고, 놀랍고, 빨려들면서 읽을 수 있겠지만, 대가리 다 커서 이제 인생에서 유별날 것이 별로 없다는 걸 아는 성인이라면, 이게 무슨 허황되고 헛된 이야기야, 타박을 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하여간 나는 그랬다.

  그럼에도 시간 죽이는 데는 끝내줄 거 같다. 여행길이라면 즐겁게 가방에 넣고 가라고 추천. 당신의 정서함양을 위한 교양도서는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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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대한 신 브라운 / 하나님의 자녀들은 모두 날개가 있네
유진 오닐 지음, 이형식 옮김 / 지만지드라마 / 2026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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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음. 이 두 편은 유진 오닐이 쓴 작품에 국한하자면 망작일세. 다른 극작가가 썼으면 훌륭한 작품이겠지만 천하의 오닐의 경우에 그렇다는 말이다. 아, 오해하지 말기. 내가 최근에 본 연극이 몇 십 년 전 일이다. 이런 문외한이 하는 말이니 1도 믿지 않아야 마땅하다.

  <위대한 신 브라운>에서는 노골적으로 탈, 마스크가 나오고, <하나님의 자녀들은 모두 날개가 있네>에서도 조현병이 심각한 여자 주인공 엘라는 콩고 탈을 보고 경끼를 일으키는 장면이 나온다. 엘라의 진짜 탈은 그깟 콩고 탈이 아니라 흑인, 백인으로 세상을 가르는 인종의 문제, 그 문제에 함몰하여 빠져나올 줄 모르는 엘라 본인이 쓴 탈이다. 라고 나는 주장한다.


  <위대한 신 브라운>에는 두 명의 탈 쓴 이가 나온다. 주인공 윌리엄 브라운. 애칭 빌리. 그리고 디온 앤서니. 두 명 다 출중한 젊은이들.

  디온의 아버지 앤서니 씨는 큰 건축회사 사주. 몽상가이면서 예술적 기질이 넘치는 디온은 자신의 내면을 지배하는 약한 자아를 감추기 위하여 매사 냉소적이고 자신감이 넘쳐 세상을 조롱하는 듯한 가면을 가슴에 달고 다닌다. 빌리는 자기 아버지 브라운 씨가 앤서니 씨의 도급업자로 시작해 동업자의 말석에 끼워주어서 그런지 디온에 대하여 열등감 비슷한 것을 가지고 있고 사실 실력도 디온에 미치지 못한다. 그래서 빌리는 자신감 넘치는 야심찬 모습의 탈을 지니고 있다.

  두 등장인물은 늘 가슴에 달고 다니는 탈을 썼다 벗었다 하며 극을 이끌고 있다. 벌써 인물들을 열거하니 누가 더 우위에 있게 될 줄 딱 드러난다. 당연히 빌리. 속이야 어떻든 간에 겉으로 자신만만해서 신뢰감을 주는 빌리가 자연스레 성공해 앤서니 씨의 회사를 인수하고 사명을 “브라운 앤드 선”으로 고쳐버렸다. 이 동안 솜씨 좋고 머리도 좋은 디온은 빌리도 사랑해마지않는 마거릿과 결혼해 날이면 날마다 술과 도박에 미쳐 자기 재산을 홀라당 말아먹어 버렸다.

  착한 마거릿이 디온에게 좋은 말로 앞으로 우리는 어떻게 먹고 살 거냐고 바가지를 살짝 긁는다. 디온은 진짜 싫었지만 빌리에게 가서 자리를 얻으려 한다. 그래서 마거릿이 빌리에게 가 자리를 부탁하고, 디온의 실력이면 속으로는 모셔오고 싶어할 정도라, 빌리는 버선발로 달려가 디온을 모셔온다. 디온의 직업? 건축사.

  일찍이 고등학교 시절, 빌리는 마거릿의 그림자만 봤다 하면 선 자리에서 꼿꼿하게 얼어붙을 정도로 짝사랑했다. 그게 지금도 그렇다. 좋아했지만 고백하지 못했다. 마거릿이 예술가 기질이 넘치면서 어딘가 우울하게 보이는 디온한테 반해 디온과 사귀었고 결혼까지 했다. 빌리는? 탈을 쓴 빌리의 모습을 좋아하지 않았다. 그럼 어떻게 해서든지 디온의 탈을 빌리가 쓴다면? 당연히 마거릿은 빌리를 디온으로 알고 남편이니까 뭐든지 다 해준다.

  여기까지 얘기해도 뭔가 일이 생기겠지? 맞다. 생긴다. 살인? 흠. 너무 나갔다. 그건 아니고 빌리의 집, 빌리의 응접실에서 세상 살 기력이 모두 빠진 디온이 팍 고꾸라져 죽었다. 심근경색이나 뭐 비슷한 거겠지. 여태 디온의 가슴에 매달려 있던 그의 탈. 그걸 빌리가 낚아챈다. 빌리는 디온의 시신을 세상 사람들이 알지 못하게 처리해야 할 충분한 이유가 있다. 위에서 말했지. 빌리가 디온의 탈을 쓰면 마거릿, 십대 시절부터 자신의 몸뚱이와 다른 한 부분을 꼿꼿하게 만들었던 마거릿이 자신을 남편 디온으로 알아본다고. 그래서 디온의 탈을 쓰고 마거릿의 집으로 찾아가고 뭐 그렇다.


  탈(mask) 이론. 윌리엄 버틀러 예이츠가 주장한 건데, “마스크는 시인의 분기된 자아”로 시에 나타나는 시인의 비밀스러운 자아와 구분해야 하는 것 정도로 이해하면 되겠다. (한국 예이츠 저널, 2019)

  그러니 이 작품의 탈은 예이츠의 주장하고는 별개로 차라리 척 러셀이 감독하고 천재적인 코미디언 짐 캐리가 주인공을 한 영화 <마스크>의 스탠리 입키스와 더욱 유사하다. 탈을 쓰면 자신의 속마음, 실체와는 전혀 다른 인격으로 행위하고, 타인들도 자신을 완전히 타인으로 봐주는 것.

  세상 사람 다 탈을 쓰고 살지만 아무래도 좀 과하다.


  <하나님의 자녀들은 모두 날개가 있네>는 흑인 남자와 백인 여성으로 이루어진 부부 이야기이다.

  백인들이 견디기 힘들어하는 것 가운데 하나가 흑남백녀 간의 혼인. 반대로, 즉 백남흑녀는 그나마 있을 수 있는 일이라고 봐준단다. 물론 지금 시절이 아니고 20세기 때 이야기다. 1967년에 스탠리 크레이머 감독이 메가폰을 잡고 당대 특급 배우들인 스펜서 트레이시, 캐서린 햅번, 시드니 포이티어가 출연한 명작 <초대받지 않은 손님>이 나왔을 당시에도 흑남백녀의 혼인을 두고 난리가 벌어졌다고 들었다. 작품 속에서도 백인 아가씨의 부모, 스펜서 트레이시와 캐서린 햅번이 상당히 진보적 성향의 부부지만 열네 살이나 더 많은 흑인 홀아비 박사님을 사위감으로 데려왔을 때 처음엔 당황하고 이어서 결혼에 찬성하지 않았던 장면이 기억에 남는다.

  하물며 이 희곡을 발표한 것이 <초대받지 않은 손님>이 나오기 42년 전인 1925년이었으니 당시에는 어떠했을지 안 봐도 비디오.

  주인공은 흑인 청년 짐 해리스와 백인 여성 엘라 다우니. 장소는 뉴욕.

  둘은 초등학교 시절부터 동네 친구다. 아직 열 살도 되지 않았을 때 무대의 막이 올라간다. 어려서 아직 사춘기도 맞지 않은 짐과 엘라는 나름대로 첫사랑을 한다. 동네의 흑백 아이들도 나름대로 친하게 지내고, 찬하다기보다 허물없이 지낸다. 아이들은 짐과 엘라가 서로 좋아하는 것을 보고 그 나이에 맞게 놀려대고, 엘라는 애들한테 바락 화를 내니, 구석에서 그 모양을 바라보던 어떤 할애비가 이랬다지?

  “그런데 참, 이번 기집애는 여간 잔망스럽지가 않아.”

  하지만 고등학교를 졸업할 때, 엘라 눈에는 도무지 짐이 차지 않았다. 예쁜 백인 여자애가 집에 돈 많고 똑똑해서 장래 변호사를 지망할지라도 흑인 남자애를 좋아하기는커녕 말 한 마디라도 나누고 싶겠냐고. 이미 사춘기를 훌쩍 지난 무렵인데. 엘라 역시 보통의 백인 여자애와 다를 바 없어 이미 백인 권투선수 쇼티한테 몸과 마음, 줄 건 다 준 눈치다. 당시에 가장 인기있던 스포츠가 복싱. 복싱의 인기는 이후 60년이 넘게 간다. 쇼티도 동네 여자애들은 다 건드린 모양이다. 이 가운데 하나가 엘라였을 뿐.

  세월이 더 가면 엘라가 낳은 쇼티의 아이가 죽었다. 아이가 죽자마자 쇼티는 엘라를 모른 척해버렸다. 갑자기 자유로워진 쇼티는 다른 아가씨를 찾아가고, 절망하는 엘라 앞에 나타난 남자가 바로 더러운 흑인 짐. 짐 크로 해리스. 왜 하필이면 짐의 두번째 이름으로 ‘크로’를 붙였는지 거 참.

  짐은 고등학교 시절에 유급을 한 번 먹은 것처럼 연달아 변호사 시험에 낙방중이다. 분명히 다 아는데 막상 시험장에 가서 답안을 쓰려면 머리 속에서 정답이 서로 막 헝클어져 조리있는 답안을 작성하는 데 실패하고 만다. 매번 그랬다. 뭐 그럴 수 있지. 이럴 때 엘라를 만났고, 엄마와 누이동생 해티가 반대하는대도 불구하고 결혼해버린다. 그리고 곧바로 프랑스로 이민을 떠난다. 둘은 결혼 전에 미국 안에서는 흑남백녀가 도저히 살 수 없을 거 같아 그런 건 하나도 허물이 되지 않는 나라로 떠나 살 것이라고 약속한 바 있다.

  그러면 잘 살 것 같지? 파리에도 미국인은 득실거렸고, 거기서도 흑남백녀는 완전히 왕따를 당했으며, 따라서 엘라는 집 밖으로 한 걸음도 나가지 않은 채 홀로 극한의 우울증에 시달리기 시작했다. 파리를 떠나 시골로 가도 마찬가지였다. 아예 방안에 틀어벅혀버린 엘라. 이러다 사람 하나 잡을 거 같아서 이민 2년 만에 다시 귀국길에 오른다.

  이미 정상궤도를 벗어난 엘라. 이제 유진 오닐은 자기 전공분야를 만났다. 약간 정신질환이 있는 여성. 그것도 혼인한 여성을 오닐만큼 잘 묘사하는 작가는 세상에 없으리라. 그리고 이건 비극으로 이어질 수밖에. 애초 오닐을 읽으면서 해피 엔드는 기대 난망이겠지만.

  이 드라마가 사랑 이야기? 사랑을 못 이루게 하는 인종 문제? 그럴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다. 나는 심리적 궤멸을 향해 오랜 시간을 치닫는 불행한 여성의 궤적, 그리고 그것 때문에 희생당하는 주변 인물, 즉 오닐과 오닐의 어머니가 용해된 플라스크 속 액체인 듯했다. 뭐 그랬다는 거다. 믿을 필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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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자 밟기 ㅣ 비채 모던 앤 클래식 문학 Modern & Classic
루이스 어드리크 지음, 이원경 옮김 / 비채 / 2014년 6월
평점 :
절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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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54년생 어드리크는 1972년 다트머스 대학에 입학했는데 이때 아홉 살 연상의 인류학자, 작가, 원주민 연구 프로그램 책임자인 마이클 도리스의 수업을 듣는다. 그리고 그와 사랑에 빠진다. 이후 동부 존스 홉킨스 대학에서 가방끈을 늘리는 동안 도리스의 뉴질랜드행 등 두 사람은 멀리 떨어져 있었다. 그래도 문학적 파트너십으로 단편소설을 함께 쓰며 연인의 관계를 돈독히 해 1981년 결혼에 이른다.

  이때 도리스가 한부모가정 자격으로 입양한 세 자녀가 있었고, 어드리크와의 사이에도 세 명의 자녀를 두었다. 태아 알코올 의존 증후군이 있는 입양한 첫째는 23세에 차에 치어 사망했다. 4년 후에는 입양 셋째 사바가 아버지 도리스를 아동학대 혐의로 고소했고, 이 사건으로 부부는 별거에 들어가 다음해인 1996년에 이혼했다. 1997년에는 마이클 도리스가 자살했다. 이후 입양 딸이 도리스가 평소 자신을 성적으로 학대했으며 루이스 어드리크 또한 학대를 방관했다고 증언했다.

  <그림자 밟기>를 읽고 루이스 어드리크를 위키피디아 검색해보니, 이 책이 어드리크 부부와 입양한 삼남매 이야기 가운데 성적 학대를 제외하고 픽션을 더해 쓴 소설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원주민 출신 인류학자, 작가 대신 적어도 미국 내에서는 잘 나가는 화가로 바꾸고, 남편에 의한 아내에 대한 가스 라이팅을 더 구체화한 작품으로.


  작품의 주인공은 아이린과 길버트 부부. 길버트는 작품 속에서 약칭 ‘길’이라고 불린다.

  만일 내 생각대로 루이스 어드리크가 위 세 입양아와 부부 사이를 소재로 소설을 썼다면 아이린은 자신을 모델로 한 치파웨족 인디언. 길은 클라스마족, 크리족, 자기 땅이 없는 몬태나 치페와족이 뒤섞인 혈통이라 미국 당국으로부터 원주민 등록이 미루어지고 있는 1/4 원주민이다. 원주민 등록을 하면 미국 정부와 원주민 협약 상 각종 혜택을 받을 수 있고 심지어 대학에 진학할 때에도 우선권을 보장받을 수 있다. 길은 그걸 받지 못한다. 그래도 그림을 그리고, 비싼 값에 미국 전역으로 팔려 경제적으로는 어려운 것 없이, 부자는 아니지만 콜로라도에서 궁상스럽지 않게 살고 있다.

  아이린은 19세기 아메리카 원주민을 그린 화가 조지 캐틀린에 대한 논문을 마무리하고 있다. 결혼 후 아이 셋을 얻어 첫째가 특히 과학에 천재가 있어 대학 강의를 듣는 13세 플로리언, 둘째가 원주민적 삶과 생존에 관심이 많은 11세 딸 리엘, 막내가 6살배기 아들 스토니. 이 가운데 둘째 리엘은 배 아파 난 딸이 아니라 친척이라고 했으니 입양한 모양이다. 입양과 관계없이 동등하게 키운다. 하지만 리엘은 부모와의 사이에 얇은 막 같은 것을 느끼고 있는 듯하다.


  실제 생활에서 전남편 도리스가 어드리크보다 결코 적지 않은 나이인 아홉 살이 더 많다. 아이린과 길 부부도 정확한 차이를 드러내지 않지만 나이 차이가 좀 있다. 모임에서 길이 아이린을 만났고, 둘은 첫눈에 호감이 생겼으며, 길은 아이린에게 모델을 해달라고 제안했다. 이때 아이린은 대학에 다니고 있을, 다니기 시작할 때였는데 학비는 집이나 정부로부터 지원을 받더라도 당장 돈이 아쉬워 그렇게 하기로 했다.

  아무리 화가 앞에서 예술을 위한 일이라 하더라도 남자의 시선이 머무는 공간에서 누드로 있기가 쉽지 않았다. 그래도 길은 아이린에게 다가와 피부, 윤곽선, 머릿결, 젖꼭지를 유심히 바라볼 뿐 손끝 하나 대지 않았다. 그렇게 시작했다. 길을 처음 보는 순간 호감이 있었던 데다가 훌륭한 매너까지 가지고 있는 걸 확인했으니 그를 사랑하지 않을 수 없었던 아이린. 이들은 머지않아 연인관계로 접어들고, 원래는 에드워드 호퍼를 연상시키는 화풍으로 인디언보호구역과 풍경으로 시작했다가 아이린을 만나고 아이린의 초상과 인물화로 성공의 길을 걷기 시작했다.

  다만 말이 초상화이지 아이린의 모든 모습이 다 그림으로 그려져 미국 각지를 돌며 전시를 하고 있었던 거다. 당연히 다수의 누드도 들어 있고, 그냥 포즈만 취하지 않고, 샤워하는 아이린, 누워 엑시터시를 감각하는 아이린, 술이 꽐라가 되어 충혈된 눈과 풀린 몸가짐의 아이린, 섹스 후의 젖은 몸을 적나라하게 벌리고 있는 아이린, 엉덩이 사이에 꽃 한 송이를 꽂고 엎드린 아이린, 하복부와 벌린 허벅지 마치 <세상의 탄생>과 흡사한 특별 부위만 노출한 아이린. 이런 그림만 있다는 게 아니라 이런 그림들도 아이린의 초상 시리즈에 포함되어 있다. 그것들이 인터넷 검색만 하면 누구나, 언제, 어디서도 볼 수 있다. 실제로 큰아들 플로리언은 어머니의 초상화를 잔뜩 검색해 보고 있다가 아이린에게 들켜 화들짝 놀라 삭제하기도 했다.

  “괜찮아. 그림인데 뭐. 그러나 보지 않았으면 좋겠구나.”

  아이린이 할 수 있는 말은 이 정도였다.


  길은 확실히 화가로의 재능이 있다. 하지만 재능은 그를 천천히 따분한 인간으로 만들기 시작했고, 정말 인생의 따분함을 느끼기 시작하자 감정을 만회하기 위하여 더 일에 몰두했고, 성공과 관계없이 과로로 녹초가 된 밤에는 처음에는 가끔, 그러다가 차츰 자주 과음을 하기 시작했다. 부창부수라, 아이린도 길을 따라 어느덧 술을 많이 마셨고, 당연히 알코올 의존증을 겪게 되었으며 이것으로 남편을 지치게 만들었다.

  남편을 지치게 만드는 범 가운데 하나. 일찍이 첫 아이 플로리언을 낳은 1994년. 길은 아이를 키우면서 기념이 될 만한 일기를 써보라고 두꺼운 표지의 빨간색 일기장을 사주었다. 아직까지 쓰고 있다. 몇 권이 되겠지. 똑 같은 빨간색 표지의 일기장. 이 가운데 최근에 쓰고 있는 건 오랜 서류를 모은 캐비닛의 뒤쪽에 보관하고 있다. 아이린은 속으로 말한다.

  “당신은 오랜 수색 끝에 이 일기장을 발견했을 거야. 내가 바람 피우는지 알아내려 읽었을 거고.”

  상대가 바람 피우는지 배우자가 의심한다면 다 된 부부다. 이 집도 그렇다. 부부가 차츰 권태로워지고 술을 마시기 시작하고, 그래서 상대를 지치게 만들면 별 생각이 다 들게 되리. 그리하여 남편 길은 (어드리크의 전남편 도리스처럼)아이린과 아이들을 몇 번 때렸고 (그러나 리엘을 성추행하지는 않았으며), 이건 미국 법에 어긋나는 일이라 경찰에 고발하기 전에 심리상담사에게 상담을 받았다. 이후 손찌검은 하지 않지만 살면서 큰 소리 한 번 치지 않을 수 없고, 위협적인 몸짓 역시 한 번 하지 않을 수 없었을 터인데, 결국 다시 한번 큰아들 플로리언의 머리통을 후려갈길 예정이다.

  이미 가정, 특히 부부 사이는 다 된 것으로 판단한 아이린은, 남편 길이 읽고 있다고 확신하는 빨간 색의 일기장에 소설 한 편을 쓴다. 세 아이 전부 아버지가 다른 남매. 특히 막내는 부부가 프랑스 여행 중에 만난 남자와의 베드씬까지 상세하게 적어 놓았다. 사실이 그렇냐고? 천만에. 아이린이 딱 한 번의 혼외정사로 혼인의 순결을 깨뜨리긴 했지만 안간힘을 다해 그 실수를 잊고 살려 애쓰며 살고 있다. 길은 성격이 지랄 같아서 문제이고 신경정신적으로 작지 않은 결함이 있는 것이 사실이지만 적어도 혼인의 순결을 지키고 있는 것처럼 보이며, 오히려 자신의 순결함이 배우자의 그렇지 못함을 캐려고 하는 집착의 원인으로 작용하는 것처럼 보인다.

  하여간 이렇게 해서 길은 아이린이 씨 다른 아이 세 명의 자녀를 만들었다고 확신하지만, 어떻게 아느냐, 그걸 알게 된 내력은 결코 밝힐 수 없다. 아내가 쓴 일기를 읽었다고 자백해야 하니까.

  아이린의 고민. 이혼을 원하지만 진심으로 바라지는 않는다. 자신이 바람을 피웠다고 남편이 믿게 빨간 표지의 일기책에 불륜 소설을 쓰지만 정작 이혼하면 먹고 살 일이 걱정이다. 그렇다고 조지 캐틀린에 관한 논문에 열심인 것도 아니다. 박사가 되어야 취직할 수 있다며 이혼에만 집착할 뿐 이혼 후 아무 계획이 없다. 남편이 자기가 불륜행각을 벌였다고 믿게 만들려고 일기장을 통해 가스라이팅을 감행한다. 아빠한테 얻어맞아 혹이 난 플로리언의 이마 사진을 찍었지만 보관만 할 뿐 사용하지 않는다. 그러니 결말이 그 꼴이 나는 거다. 어떤 꼴인지 알려드리지 않겠지만.

  남편 길이 왜 자신의 외도를 의심하게 되었을까에 관한 묘사는 1도 없다. 신경정신적 질환인 편집증, 즉 의처증이라는 말도 하지 않는다. 그러니 어쩌면 아이린이 벌인 단 한 번의 외도를 알고 있을 지도 모른다. 내 추측은 알고 있다는 데 한 표. 이혼 경력이 있는 루이스 어드리크는 전적으로 아이린 편이다. 그걸 읽는 독자들도 어드리크의 문장에 현혹되어 전적으로 복장이 터진다. 뻥!


  그러면 아이린의 진짜 모습은? 은행 창고에 있다. 미니애폴리스의 웰즈 파고 은행. 안전보관소 데스크에서 신분증을 제시하면 안내원이 지하 층의 은빛 창살을 열고 보관함 앞까지 데려다 준다. 그러면 아이린이 핸드백에서 자신의 열쇠를 찾아 보관함을 꺼내 열쇠를 비틀어 그 속에서 파란 공책을 꺼내 책상에 놓고, 자신은 의자에 앉아 진짜 자신의 일기를 쓰기 시작한다.

  이렇게 책은 남편이 보라고 쓰는 열린 빨간 일기와 진짜 자신의 내면을 밝히는 닫힌 파란 공책으로 구분한다.

  망조가 든 가정. 심리상담사 앞에서 씨 다른 아이들 때문에 대판 부부싸움을 하고, 그날 밤 길은 창문 밖으로 자신이 그리고 있는 모든 그림을 던져버린다. 피 같은 술병도. 그것이 쌓인 눈 속에 퍽퍽 꽂혔으니 다음날 우연히 이 집 앞을 걸어갈 노숙인이 있다면 얼마나 횡재 같았을까? 그리고 다음 날 길은 자진해서 신경정신과에 입원한다. 집안에 평화가 찾아오지만 수입은 발생하지 않는다.

  몇 달 후, 길이 퇴원해 집에 돌아온다. 신경이 죽은 듯한 길은 오랜만에 가족 동반해 6월의 호숫가로 피크닉을 떠나고, 소설 <그림자 밟기> 역시 대단원을 향해 막바지 스타트에 들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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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7년에 쓴 잡문. 8월 4일에 헨리 제임스가 쓴 <비둘기의 날개> 독후감을 올릴 예정이다. 읽는 내내 <여인의 초상>이 막 떠올랐다. 그래서 생각난 김에 옛 노트 자락을 들췄다. 언제나 그렇듯이 전에 써 놓은 걸 다시 읽는 일은 꽤 창피한 일이다.





 원어 제목이 <The Portrait of a Lady>. 이 책을 읽어가면서 상권의 중간쯤 들어가면 책의 한글 제목은 당연하게 수정해야 한다고 주장할 수밖에 없다. <한 여인의 초상>으로. <여인의 초상>과 <한 여인의 초상>은 당연히 다르다. 주인공 여인이 이사벨 아처라는 이름의 재색을 겸비한 미국 태생 여자로 앞으로 긴 세월을 영국에 살게되고, 그러나 모든 여자를 대표하지 못한다. 따라서 당연히 <한 여인의 초상>이라고 해야 하는데..... 요새 나한테 미운털이 콱 박혀있는 출판사 창비가 이런 짓 하나는 정말 잘해서 정말로 <한 여인의 초상>이라고 제목을 달고 똑같은 책을 찍었다. 비슷한 것이 모파상이 쓴 <여자의 일생>. 그것도 원어로는 <한 인생> 또는 <어떤 인생>이지만 일본어로 번역하면서 <여자의 일생>으로 했다가 그냥 굳어져 우리나라도 덩달아 <여자의 일생>으로 굳어졌다고 들었다. (아마 예전 메모에도 그렇다고 썼을걸?)

 내가 왜 굳이 별거 아닌 것 가지고 서두를 떼냐하면, 이 이사벨 아처가 젊은 시절에. 이종사촌이 자기 아버지한테 받아야 하는 상속금 가운데 7만 달러를 본인은 모르는 것으로 하고, 이사벨이 상속받게 해주는데, 이걸 읽으면서 나는, 정말로 처절하게 "나한테는 왜 곧 죽어버릴 돈 많고 자식없는 이모부나 삼촌이 없느냔 말이다!"라고 절규했으며 애먼 마누라한테도 "혹시 나 모르는 너네 삼촌 가운데 돈 많고 장가 안 든 양반 안 계시냐?"고 했다가 타박만 오지게 먹어버리고 말았다.

 7만 달러가 그까짓 것 얼마나 되냐고? 계산해드리지. 때는 1850년대. 기분 좋게 1860년이라고 가정하여 그때 돈 7만 달러가 지금 돈으로 얼마쯤 될까, 라는 것을 계산하기 위해 150년 전이라고 뚝 잘라 생각하자. 그 동안의 평균 이자율을 4%로 본다. 고전을 읽어보면 유럽 각국에서 이자율은 아예 4%로 고정된 것 같다. 영국, 프랑스, 독일, 러시아를 가리지 않고 어떻게 하나같이 연 4%인지. 20세기 초반과 중반 전쟁시기를 거치면서 무지막지한 이자율을 보인 적도 있지만 겸손하게 그냥 4%로만 보겠다. 환율 또한 겸손하게 1달러 당 1,000원으로 하자. 그럼 마이크로소프트 엑셀 파일을 여시라. 그리고 이렇게 입력해보시라.

 +70,000*(1.04^150)*1,000

 (입력 했으면 enter)​

 그때 돈 7만 달러는 지금 우리 돈으로 최하 251억원과 같은 수준이다.

 머리 좋고 얼굴 예쁘다는 걸로 이종사촌 마음에 들어 가만히 앉아서 251억원이 하늘에서 뚝 떨어진 여자 얘기다. 나한테 251억 말고 200억 원만 있고, 하루에 백만원 씩 쓰면서 30년 동안 살 수 있다고 가정하면, 제일 먼저 마누라한테 92억원을 뚝 떼주고 그만 살자고 하겠다. 그럼 마누라도 여보 당신과 살면서 생전 이렇게 고마운 일은 여태 없었수, 하며 즐겁게 제 갈 길로 갈 거 같지 않은가. 그 다음 날부터 난 정신 없을 거다. 하루에 백만원씩 써제끼느라고.

 그래, 물론 안다. 세상은 60억년 전에 지구가 생겼을 때부터 단 한 번도 공평한 적이 없어서 나한테는 그런 일이 죽어도 일어나지 않을 것이란 걸. 맞아, 어찌 왕후장상의 씨와 내 씨가 같을 수 있겠는가.


 위에서 이렇게 썼다고 해서 이 책 <여인의 초상>이 그저 그런 소설이라고 생각하면 정말 오산. 미국인이지만 생의 많은 부분을 영국에서 산 헨리 제임스가 쓴 귀신 나오는 소설 <나사의 회전>이 전혀 생각나지 않을 참 재미있는 소설이다. 근 1,000 쪽을 넘어가는 긴 책을 정말 단숨에 읽게하는 작가의 신공이 놀랍다. 다만 내가 이렇게 갑자기 하늘에서 돈벼락을 맞은 신디(폭킹)렐라 얘기는 참 좋아하지 않는지라 나하고 궁합이 맞았다 할 수 없지만 그래도 이 재미난 책을 폄훼할 마음은 조금도 없다.

 아, 나도 죽을 때는 이사벨 아처의 이모부처럼 근사하게 죽고 싶은데. 돈을 많이 남겨서가 아니다. 죽는 모습이 정말 품위있게 폼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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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넬로페 2026-06-08 11:3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무덤까지 돈을 가져갈 수 없을지언정
요즘 세상엔 삼촌과 고모가 조카에게 남겨주지 않는 것 같습니다. 예전 소설들 읽으면 그들이 꼭 재산을 남겨주더라고요. 그런 낭만이 좋아요.

Falstaff 2026-06-08 15:54   좋아요 1 | URL
우리나라는 예부터 조카들한테는 자진해서 절대 안 준 걸로 압니다. ㅋㅋㅋ 제 집구석만 하더라도 장자 상속이라 맏아들 아니면 국물도 없었거든요. 그런 집구석에서 둘째 아들의 둘째 아들의 둘째 아들의 둘째 아들로 태어났으니 아휴.. 바랄 게 애당초 없었거든요. 그래서 제 둘째 아들한테는 조금 주고 갔으면 좋겠는데 뭐 벌어 놓은 것이 없어서 그저 마음 뿐입니다. ㅎ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