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행공포 비채 모던 앤 클래식 문학 Modern & Classic
에리카 종 지음, 이진 옮김 / 비채 / 2017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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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비행기가 이륙을 감행할 때, “손가락은(그리고 발가락은) 얼음장으로 변하고 위는 흉곽 사이로 뛰어오르고 코끝 온도는 손끝 온도와 똑같이 급강하하고 젖꼭지는 브래지어 속에서(이 경우엔 드레스 속에서라고 해야 옳으리라. 브래지어를 하지 않았으니까) 일어나 거수경례를 하고, 짧은 굉음의 순간, 나의 심장과 기체의 엔진이 힘을 합쳐 공기 역학의 법칙이 결코 허망한 미신이 아님을 증명하려 애쓰지만 그게 허망한 미신이란 걸 가슴속 깊이 알고”(16쪽) 있으면서도 어쩔 수 없이 느껴야 하는 공포. 이것이 책의 제목 ‘비행공포’의 정체다. 교대역 바로 옆에서 농사를 짓다가 끝까지 땅을 팔지 않아 벼락부자가 된 이모부도 이놈의 비행공포 때문에 넘쳐흐르는 현금에도 불구하고 해외여행 한 번 못 갔다. 그래 어떤 증세인지 안다. 어쨌건, 중국계 미국인이자 정신과 전문의 베넷 웡의 유대인 아내 이사도라 젤다 웡이 일인칭 소설의 화자이자 주인공이며, 이제 부부동반으로 천재 정신분석학자 프로이트의 고향, 오스트리아 빈에서 열리는 학회에 참석하기 위해 비행기에 탑승, 이륙하는 순간 소설은 시작한다. 작가 에리카 종이 중국계 미국인 정신과 전문의 아랑 종의 법적 아내 에리카 ‘종’이란 이름으로 작품을 발표한 것은 맞다. 그렇다고 독자가 꼭 이 책을 작가의 자전적 서술이라 단정할 필요는 없다. 작품에 자신의 모습을 투영하지 않는 작가가 별로 없지만 오직 자신의 경우만 가지고 작품을 쓰는 소설가는 더욱 없을 것이니까. 나는 그냥 페미니즘 소설, 그것도 초기 페미니즘 소설로 읽었다. ‘초기’ 페미니즘 소설이라고 하니 그냥 그런가보다, 하실 수 있지만, 천만의 말씀. 우리나라에서는 21세기가 열리면서야 이브 엔슬러의 희곡에 의한 연극 제목 <버자이너 모놀로그>로, 부산에서 열린 페미니즘 축제, “버자이너 페스티벌” 등으로 표현이 가능했던 단어가 아주 우습게 등장한다. 속어도, 비어도 아니지만 어딘가 모르게 날 것으로 그냥 꺼내 쓰기에는 쑥스럽다고 여기는 단어. 나도 굳이 독후감에서 그 단어를 사용하지는 않겠다. 여성이 자신의 외음부를 총칭하는 단어를 거리낌 없이 쓰는 것, 그것 하나 가지고도 이제 여성은 자신의 몸을 사랑하고 자랑스럽게 생각하기 시작했다는 선언일 수도 있다.
 우리나라 페미니즘 소설들과 비교를 해보면(굳이 비교할 필요까지는 없겠지만 읽으면서 이런 것들이 자연스럽게 떠올랐다) 대한민국 페미니즘 소설 다수에서는 집에서 가정폭력에 시달리고, 밖에선 성폭력에 가차 없이 유린당하는 여성이 나타나는 반면, 이 소설에선 등장하지 않는다. 물론 ① 주인공 이사도라를 약 한 달 동안 성적 파트너로 이용하는 남성과 ② 밤기차 안에서 성폭행을 ‘시도’하려는 남자도 등장하기는 하지만 우리나라 페미 작품과 비교하면 이도 나지 않은 정도. 작품을 발표한 시기가 1973년. 미국에서도 여성의 권리가 충분히 확장된 수준이었다고 할 수 없었던 시기여서 그랬는지 모르지만, 아직도 여성은 남성에게 종속되어 있는데, 작가는 분명하게 이야기하고 있지 않으나, 가장 중요한 요인은 가장 큰 것이 경제적 종속이고 그 다음이 아직 변하지 않은 사회적 가치관이었던 것처럼 보인다. 이사도라 웡은 시집을 한 권 낸 등단시인이며, 대학에서 간간히 강의도 하면서 잡지에 기고도 한다. 정신분석 학회에 부부동반으로 참석할 수 있었던 것도 전문의의 부인이란 자격으로서가 아니라 학회를 취재하여 기사로 내기 위해서였다. 수입이 있다고 하더라도 50분에 40달러를 내고 정기적으로 정신분석을 받는 돈은 거의 전부 남편이 충당해왔다. 진료비로 1970년대 초반 기준 일 년에 수천달러라는 돈은 시집의 인세와 쥐꼬리만 한 강의료 가지고는 어림도 없는 일이었을 거다. 여기에 이사도라의 유대인 가족 문화도 한 자리 한다. 언니 랜디는 본인이 유대인이면서 아랍인과 결혼해 모로코에 살며 언제나 임신 중이거나 수유중인 상태로 아홉 명의 자녀를 두었다. 두 여동생 역시 마찬가지로 각각 다른 인종과 결혼해 아이를 키우고 있어서, 그때까지의 사회 규범인 결혼과 자녀 양육을 당연한 것으로 따르고 있다. 결혼과 이에 따르는 출산, 수유, 육아, 그리고 하우스키핑은 당연히 여자와 여자의 일과 여자의 독립과 여자의 발전에 극적인 장애물로 기능할 것으로, 아직 두 번밖에 결혼하지 않았지만 이런 사회적 보편가치는 임신을 해본 경험이 없는 이사도라를 수시로 압박하고 있는 것.
 웡 부부가 빈에 도착해 학회에 참석하면서 뜻밖의 인물이 등장한다. 에이드리언. 영국 출신의 신경정신과 전문의로 프로이트 학회의 폐막 연설을 할 정도로 이름은 낸 의사인데, 현재 아내와 별거 중으로 아이 때문에 이혼은 하지 않되 각기 타인의 사생활엔 간섭하지 않고 살기로 약정을 맺었다는 인간이다. 이사도라가 학회 취재를 위한 행사장 입장을 두고 관련자와 다투고 있을 때 이를 유심히 바라보다 그날로 이사도라의 엉덩이를 양 손으로 꽉 쥐어 잡는 인물. 잘 생기고 자연스러운 복장에 더러운 발가락이 드러나는 샌들을 신은 영국인에게 엉덩이가 한 아름 쥐어 잡히자 이사도라는 단박에 놀라운 감흥으로 접어들기 시작한다. 한눈에 사랑에 빠져버린 것. 이 장면이 불쾌했다. 잘 생기고(돈 많고) 키 큰 남자는 만만해 보이는 여자의 엉덩이를 더듬어도, 더듬는 정도를 넘어 꽉 쥐어도 죄가 안 되는 컷. 저 뒤로 가면 친절하지만 별 볼일 없는 남자가 여자를 (지극히 간단한 접촉으로)밀어 뒤로 눕히는 건 절대 안 되는 컷. 그러나 그만 한다. 처음 본 남자에게 엉덩이가 잡히자 곧바로 성적 감흥이 오게 만들기 위해 작가는 첫 장章의 제목을 “꿈의 학회 또는 ‘지퍼 터지는 섹스Zipless Fuck’로 가는 길”이라 해놓고 처음 본 외판원이나 배추장수, 우체부와 섹스를 꿈꾸었다고 장치를 해둔 터이다. 친절하지만 별 볼일 없는 남자에 의해 일어날 수 있었던 ‘지퍼 터지는 섹스’는 이미 환상이 다 깬 상태였으니까. 섹스는 섹스이되 지퍼 터지는 섹스조차 상대를 가려서 가능한 법. 기준은? 기준 말고, 문제는 권력이다, 권력. 돈과 지위와 전망과 학식과 위트가 있는 별거남이 한낱 친절하기만 한 열차 검표원하고 같아? 하여간 갑자기 에이드리언을 사랑하게 된 이사도라. 어떻게 될까? 말 없고 진지하고 틀에 꽉 짜인 듯 빈틈없으면서도, 아내가 다른 남자와 몇 번의 불륜을 저지른 것은 잠시 동안의 일탈로 여기는(아, 남편이 얼마나 고통스러웠을까, 같은 건 절대 이사도라와 에리카 종의 관심사가 아니다) 웡 박사를 좇아 안정된 삶을 택할 것인가, 아니면 불안하기 짝이 없지만 자신의 욕망과 하고자 하는 의지를 따라 에이드리언을 따라 내일 따위는 아무 생각 하지 않고 오늘을 즐기며 유럽 전역을 유랑할 것인가. 답은 가르쳐 드린다. 이사도라는 당연히, 갑작스럽게 찾아온 열정을 좇는다.
 그러나. 에이드리언이라는 사내와 좋은 결말을 지으면 페미니즘 소설이 될 자격이 없겠지? 그렇겠지? 신뢰할 만한 남자가 여러 명 등장하면 여성주의 소설로는 안 될 터이니. 여기까지는 다 생각할 수 있는데, 그럼 다음은 어떻게 될까? 이사도라는 무소의 뿔처럼 고개를 발딱 세우고 뚜벅뚜벅 걸어갈 수 있을까? 자, 1973년에 초판이 나온 작품임을 감안하시고, 직접 읽어서 확인하시라. 이사도라가 에이드리언을 따라 그의 고물 승용차에 오를 때, 이사도라의 핸드백 속엔 현재 호적상 남편 베넷 웡의 통장과 연계된 아메리칸 익스프레스 카드와 여행자 수표책이 있었다는 거. 이게 마음에 들지 않았다. 뭐, 시대가 1970년대 초니까.

 이 시대에 페미니즘 소설에 관해 독후감, 즉 감상문을 쓰는 것이 쉽지는 않다. 진정한 페미니스트께선 이 감상문을 읽고 허튼 소리라고 크게 화 낼 소지가 다분히 있는 것도 안다. 하지만 용서하시라. 에리카 종도 작품 속에서 나 같은 남자인간에 대하여 이렇게 써 놓았으니.


 "실제로 문학을 좋아하는 남자는 종종 개자식으로 판명되곤 한다. 아니면 한심한 놈이거나." (16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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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자냥 2019-04-16 10:3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는 이 책이 70년대는 몰라도 지금 읽기에는 그리 새롭지 않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그 당시로서는 놀라웠을 것 같지만 지금 읽기엔 글쎄요... 지퍼 터지는 섹스 및, 여성의 성기를 시도때도 없이 자연스럽게 언급한다고 해서 그게 반드시 여성 해방을 뜻하지는 않는다는 생각이 들었던 것 같아요. 암튼 이 책은 뭐랄까 소문난 잔치에 먹을 거 없었던 느낌이었습니다...

Falstaff 2019-04-16 10:42   좋아요 1 | URL
옙. 마지막 장면이 실망이었거든요. 1970년대 당시 기준으로도 페미 소설을 빙자한 그냥 대중 소설 같았습니다. 대중 소설이나 장르 소설을 무시하지 않는데, 대의를 빙자한 건 좋아할 수 없어요.
저도 에리카 종은 쫑 쳤습니다! ^^
 
진 리스 - 한잠 자고 나면 괜찮을 거예요, 부인 외 50편 현대문학 세계문학 단편선 32
진 리스 지음, 정소영 옮김 / 현대문학 / 2018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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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이의 작품을 보면 <제인 에어>를 비틀어 20세기 감각에 맞게 재구성한 <광막한 사르가소 바다>를 제외하고는 모두 공통적인 정서를 가지고 있다. 영국의 식민지 서인도제도에서 4분의 3 백인, 같은 말로 4분의 1 흑인으로 태어나 식민지 시민으로 성장하다 런던으로 유학 중 아버지의 죽음으로 인하여 갑자기 들이닥친 피부색, 식민지 출신, 여성, 가난이라는 굴레로 좌절하고, 방황하는 자포자기의 모습이 작품 안에서 공통적으로 보인다는 것이다. 사실 그래봤자 <한밤이여, 안녕>, <어둠 속의 항해>와 이번에 읽은 단편집에 불과하니 섣부른 결론일 확률이 높지만.
 이들 작품 속 주인공들은 공교롭게도, 또는 필연적으로 작가의 삶과 매우 유사한 환경에 처해 있다. 그리하여 이 책에 수록된 51편의 단편소설은 전반적으로 우울한 안개 속을 정처 없이 걷는 것 같다. <한밤이여, 안녕>의 무대는 프랑스 파리. 영국에서의 삶에 지쳐 도피하듯 파리의 삼류호텔에 세 들어 사는 여인 소피아를 등장시켜, 자신을 고독의 심연에 그냥 내버려 두라고 절규함으로써 오히려 지독한 고독에 빠진 자신을 구해달라고 SOS를 타전하는 광경을 절절하게 그려냈듯이, 단편집의 앞부분에선 무대를 파리를 비롯한 프랑스로 설정한 작품들이 일군을 이룬다. 말이 51편의 단편소설이지 그렇게 많은 작품들의 내용을 조금이나마 소개할 기억력은 내게 없어서, 그저 작품의 무대는 앞에서 얘기했듯 파리, 런던 및 (실제로 리스가 한 시절 몸담았던 전국 순회극단의 배우노릇을 하느라 다녀본)영국의 지방도시, 오스트리아 빈, 그리고 당연하게 서인도제도, 이렇게 다섯 곳에 국한한다.
 장소에 관계없이 작중 중심인물은 언제나 사회적 약자. 당시 기준으로 제대로 대접을 받지 못하던 인간 마네킹, 순회극단 삼류배우, 살롱에서 노래하는 가수, 환자, (간혹 남자나 친구에게 신세를 지는)실업자, 노인, 서인도제도의 소녀 등이다. 한 번에 많은 단편을 읽어, 이 가운데 좋은 작품도 많고, 너무 짧거나 중복되는 것들도 있는데 그걸 다 이야기할 기운이 없다. 그래 좋은 책의 감상문을 제대로 적을 수 없는 것이 유감이지만, 그렇다고 쓸데없이 길게 늘여 쓰는 것도 헛된 일일 것.
 편편이 가슴을 적시는 것들이다. 사셔서 나처럼 무식하게 한 번에 처음부터 끝까지 읽지 마시고, 두었다가 생각나면 한두 편씩 음미해가며 읽는다면 진짜 제대로 된 감상을 하실 수 있을 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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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자냥 2019-04-15 09:5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그래서 저는 아직 절반 정도까지만 읽었습니다! 하하하. 현대문학단편선은 한꺼번에 몰아 읽는 것보다 폴스타프 님 말씀처럼 하루에 한두편씩 읽는 게 더 좋더라고요.

Falstaff 2019-04-15 10:04   좋아요 0 | URL
정말 탁월한 선택을 하신 겁니다!
 
한 톨의 밀알 - 개정판 일루저니스트 illusionist 세계의 작가 25
응구기 와 시옹오 지음, 왕은철 옮김 / 들녘 / 2012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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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피의 꽃잎들>, <십자가 위의 악마>에 이어 세 번째 읽은 시옹오의 작품. 내용으로 보아 <한 톨의 밀알>을 먼저 읽었으면 좋았을 뻔했다. 먼저 읽은 두 장편은 케냐가 영국으로부터 독립을 쟁취한 이후 정치적으로 완전하지는 못할지언정 해방을 맞았으나, 경제·문화적으로는 여전히 영국의 예속 하에 머무는 반半식민 상태 신생독립국에서 자행되는 초보국가 특유의 부패와 독재 등에 관한 내용이었다면, <한 톨의 밀알>은 1963년 12월 12일, 바야흐로 독립, 토속어로 ‘우후루’를 쟁취한 날 앞뒤로 며칠 동안을 그리고 있다. 그러면서 책의 상당한 부분을 프래시백, 회상을 통한 식민 통치하 농민 반란군이자 독립군인 마우마우 단團에 속했던 젊은이 세 명, 키히카, 기코뇨, 카란자, 그리고 그저 평범한 청년 농군이었다가 수용소에서 폭행당하는 임신한 여성을 도와주는 바람에 곤욕을 치러 지역의 영웅이 된 인물 무고의 행위를 회상하는 구성으로 되어 있다. 16세기에 시작된 유럽인들 간의 침탈 전쟁 끝에 1895년부터 68년에 걸친 영국에 의한 식민통치를 경험한 케냐. 이후 신생독립국의 치명적인 함정인 독재와 부패, 거기다가 아프리카 특유의 종족 간 갈등과 자연재해 등으로 40여 년을 시달리며 오늘에 이른다. 한 국가 또는 국민이 ‘민족주의’를 권리로 주장할 수 있는 단계는 식민 또는 반半식민 상태에서 진정한 독립을 쟁취하기 위한 투쟁을 벌일 때뿐이다. 우리나라에서도 80년대 중반까지 여전한 반半식민 상태, 또는 독재자와 매판 자본가들에 의해 통치를 받고 있다고 생각해 민족주의를 내세웠었고 그건 한편으로 정당했다. 물론 이런 상태에서 상당부분 벗어난 지금도 여전히 민족주의를 주장하는 건 난센스이자 자주 파렴치한 일일 터이지만.
 그리하여 이 책 <한 톨의 밀알>은 다분히 민족주의적이다. 회상 장면은 마우마우가 활약하던 50년대 중반까지 거슬러 올라가, 행동 대원이자 현재 기코뇨의 아내 뭄비의 오빠였던 키히카가 백인 경찰서장 토마스 롭슨을 권총 두발로 암살해버리고 숲으로 도망친 일을 시작점으로 한다. 책의 후반부에 키히카가 어떤 방법으로 암살에 성공하는지 자세하게 묘사가 되기도 하는데, 그게 중요한 것이 아니라, 누가 키히카와 마우마우단을 배반하여 영웅 키히카를 식민당국에 고발해 교수형을 당하게 만들었는지, 이제 다시 63년 남반구의 여름, 보슬비가 내리려 하는 12월 12일을 무대로 배신자를 처벌하려 한다.
 이 정도 이야기해도 스포일러까지는 되지 않을 것. 기코뇨와 카란자 둘은 키히카의 여동생 뭄비를 연모하고 있었다. 어느 날 쇠뱀, 즉 기차를 구경하기 위해 정거장까지 케냐의 자랑거리인 장거리 경주를 했는데 정거장까지 뛰어 도착한 선수는 카란자 한 명. 나머지 둘은 그 시간 동안 숲 속에서 서로의 몸을 탐닉하느라 시간 가는 줄 몰랐고, 나중에 부부가 된다. 경찰서장 암살 사건 이후 목수 기코뇨는 마우마우 단원으로 의심받아 6년에 걸쳐 수용소로 보내지고 촌락도 백인과 백인에 고용된 동족에 의하여 불에 홀랑 타버려 터를 옮겨 새로 집을 짓고 살아야 했다. 와중에 기코뇨의 땅은 당국에 접수되어 먹고 살 일이 까마득한 상태. 이럴 때 카란자는 배를 바꿔 타고 자신이 마우마우 단원이었음을 고백하고 백인에게 충성을 맹세한 끝에 흑인으로선 높은 수준의 경찰권을 확보하게 되면서 간혹 뭄비와 시어머니한테 먹을거리를 던져주고는 했다. 4년가량이 지나 기코뇨의 석방이 확정되었다는 소식을 전해줄 당시 뭄비는 카란자의 아이를 임신했고 아들을 낳았고, 아이가 아직 젖을 떼지 못했을 즈음 드디어 기코뇨가 집으로 돌아온다. 더 이상의 스토리는 밝힐 수 없다.
 앞에 읽었던 시옹오의 두 장편소설과는 다른 시기를 선택해 작품을 만든 만큼, 신생독립국의 국민으로, 식민모국의 지배자가 아닌 피부색이 같은 동족에 의한 압제는 등장하지 않는다. 대신 독립 케냐의 적장자 시옹오는 과거의 케냐를 통치했던 백인들은 에누리 없이 악마, 흡혈귀로 표현하는데 서슴지 않는다. 그리고 사실 백인들보다 더 미울 수 있는 인간들이 그들에 밀착해 일신의 영달을 위해 독립을 위해 투쟁하는 사람들을 핍박하는 배신자일 것이다. 몇 명의 배신자 그룹을 만드는 것까지는 그냥 보통사람들이 생각하는 것과 다르지 않다. “서정성과 비극성의 조화”라는 제목의 옮긴이 말에 의하면 이야기의 구조가 조지프 콘래드의 소설 <서구인의 눈으로>와 유사하다고 하는데, 그런 건 그냥 그렇구나 하고 넘어가면 되고, 내가 느낀 아쉬운 점은 시옹오가 멋을 과하게 부리느라 (이해 안 될 건 없지만)자신의 평화로운 삶에만 집착하는 한 인간에게 맥베스의 관을 입히고 그의 용기에 은연히 갈채하게 만들었을 수도 있다는 것. 명백한 배신자이자 경찰력을 이용해 동족의 처형을 숱하게 저질러온 카란자의 청산을 미루어두었다는 것 등이다. 여기서 생각이 삐끗해서 이렇게 주장하는 이유를 더 보탠다면 치명적 스포일러가 될 것이라 더는 설명할 수 없지만 하여간 그렇다는 말씀. 아무리 근 70년 동안 식민 상태에 머물렀다 하더라도 배신은 배신일 뿐이다. 작은 배신이라도 저지른 사람들은 비록 대중이나 법에 의한 처벌은 받지 않더라도 스스로 아픈 반성과 자책이라도 뒤따라야 하는 것 아닐까. 케냐나 대한민국이나 식민 통치를 경험했던 민족은 다 마찬가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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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olcat329 2019-07-24 22: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시옹오의 작품은 이 작품으로 시작하는게 좋군요!

Falstaff 2019-07-25 09:16   좋아요 1 | URL
예. 그렇게 생각합니다.
<십자가 위의 악마>는 김지하의 <오적>에 영향을 받은 것 같고요, 그래서 박경리 문학상을 수상하지 않았나 싶습니다. 당시 원주 시내엔 시옹오 사진이 막 붙고 현수막도 날리고 그랬다더군요. ^^
 
관객모독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306
페터 한트케 지음, 윤용호 옮김 / 민음사 / 201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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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을 오후에 읽고, 집에 가서 독후감을 써야지, 했다가 술친구들한테 납치당해 각자 소주 두 병, 연태 고량주 500cc 짜리 한 병씩 마시고 좀비 됐다. 어제 오전엔 당일배송 시킨 쥐포 구워 맥주 500cc 마시면서 유료 TV로 <극한직업> 두 번 보고, 마누라 점심 약속 있다고 나간 사이 해장으로 또 소주 한 병 깠다. 암만해도 알코올 의존증이 날이 갈수록 심해지는 거 같다. 그거 아시는가, 알코올 의존증이 있는 사람 스스로도 술을 안 마시고 싶어 한다는 슬픈 진실. 근데 그게 안 된다. <극한직업> 두 번째 보니 처음 볼 때보다 디테일한 장면들을 더 잘 볼 수 있어서 무척 재미있었다. 코미디 우습게 아는 분들 보면 참 존경스럽다. 난 코미디 좋아하는데, 진정한 코미디 속에는 진정한 슬픔이 섞여있기 때문이다. 생애 처음으로 구치 가방에다 고액권을 채워 아내에게 건네준 마포서 마약반 고반장. 깜짝 놀란 아내 김지영이 갑자기 (짧은)머리를 휙 풀어헤치며, 나 씻고 올게, 라고 허리가 부러지게 웃기지만 세상에서 보답이라고 그거 하나밖에 없는 슬픈 대사를 하더라.
 근데 내가 지금 <관객모독>의 독후감을 쓰는 거야, 아니면 내 독후감을 구경하러 오신 분들을 모독하기 위해 헛소리만 지껄이고 있는 거야.
 희곡 <관객모독>은 지극히 당연하게도 대사로 되어 있다. 1978년에 우리나라 초연 당시 일종의 신드롬 현상이 벌어지기도 한 걸로 아는데, 워낙 오래 전이라 확실하지는 않다. 내 친구 가운데 (잘 생긴)하나가 좀 이상한 성격이라서 연극의 마지막에 관객들을 향해 확 물을 끼얹는 장면이 있다고 했던가, 욕을 한 바가지 했다고 하던가, 하여간 이런 변태 짓에 홀딱 빠져버렸던 기억이 있다. 내 친구가 미친놈이지, 물바가지 세례를 받고 욕을 얻어듣는 것이 좋아? 그것도 천금 같은 내 돈 내고 즐기려고 간 연극에서? 어쨌거나 나는 마음에 들지 않아 연극을 보지 않았다. (극)작가 페터 한트케도 20세기 중후반 독일 문학 판에서 실험적 소설, 희곡 등을 꾸준하게 발표한, 조금 골이 저린 인물이라 작품을 그리 즐겨 읽지는 않아왔다. 즉, 찾아서 읽을 정도는 아니었다는 말.
 하여간 이제, 늦게라도 희곡 <관객모독>을 읽어보니, 우리나라에서 관객을 향해 물이 가득 찬 양동이를 쏟아 붓는 건 원작 속에 없다. 그러니 우리의 대단한 연출가가 제대로 한국의 관객들을 모독하기 위한 방식을 생각해낸 것이다. 조금씩 도가 심해지다가 마지막 근처로 가면 아예 상스러운 욕설을 해댄다고 하는 것도, 원작에선 그것도 그리 험하지 않은 욕지거리로 되어 있다. 역시 세월이 가면 갈수록 세상살이가 험해지는 모양이다. 1960년대 식 욕설은 이제 거의 겸양의 언사로 여길 수준이라서?
 희곡은 세 부분으로 구성된다. 첫 번째로, 연극을 공연할 배우들에게 극작가 페터 한트케가 만든, “배우들을 위한 규칙들.” 나는 이 부분이 제일 재미있었다. 그러니 함께 몇 가지만 읽어보자.


 가톨릭 성당에서 신부와 신자들이 번갈아 올리는 기도를 귀 기울여 들을 것.
 축구장에서 외쳐대는 응원 소리와 야유 소리를 귀 기울여 들을 것.
 데모하는 군중들의 구호 소리를 귀 기울여 들을 것.
 안장이 땅을 향해 거꾸로 세워진 자전거에서 돌아가는 바퀴살이 조용해질 때까지 그 소리를 귀 기울여 듣고, 멈추어 설 때까지 바퀴살을 자세히 관찰할 것.
 (중략)
 롤링 스톤스가 부르는 「텔 미」란 노래를 귀 기울여 들을 것.
 기차들이 동시에 출발하고 도착하는 소리를 귀 기울여 들을 것.
 (중략)
 비틀스 영화들을 자세히 관찰할 것.
 최초의 비틀스 영화에서 링고 스타가 다른 사람들로부터 조롱당한 후 드럼 앞에 앉아 드럼을 두들기기 시작하는 그 순간의 미소를 자세히 관찰할 것.
 「서부에서 온 사나이」라는 영화에서 게리 쿠퍼의 얼굴을 자세히 관찰할 것.
 위의 영화에서 몸에 총을 맞고 폐허가 된 도시의 황량한 거리를 절뚝거리며 한참을 달려가다 쓰러지면서 날카롭게 고함을 지르는 벙어리의 죽음을 자세히 관찰할 것.
 (후략)

 

롤링 스톤스, <텔 미>


 그러니 이 드라마를 공연할 네 명의 배우는 몇날 며칠에 걸쳐 이런 모든 행위를 경험한 다음에야 대본을 외우기 시작해야 하는 것이, 지켜지지 않을 것이 뻔한, 배우들을 위한 규칙이다. 무대에는 딱딱한 나무 의자 네 개만 덩그러니 놓여 있고, 하다못해 조명도 무대와 객석이 같은 조도로 되어 있다. 무대 위의 네 명의 배우에게 처음부터 끝까지 어떤 지시사항도 없이 길고 긴 대사를 각기 적당히 나누어 얘기하라고 할 뿐. 근데 대사에 무슨 특별한 내용이 있을까봐 눈을 크게 뜨고 열심히 읽어봐도 뭐 그저 그런 이야기를 심각하게, 연출에 따라서는 그냥 지나가는 듯이 할 수도 있고, 심지어는 즐겁게 흥얼거리게 만들 수 있는 수준으로 적혀 있을 뿐이다. 이쯤에서 배우들을 위한 규칙이 팍 떠오르더라. 세상의 모든 소리와 모습 그대로, 배우와 관객의 경계도 없이 그냥 떠들어대는 거다. 드디어 세상에서 가장 오래된 문학의 장르가 해체되는 순간.


 여러분은 여기서 환영받으셨습니다. 감사합니다. 안녕히 가십시오.


 연극은 이렇게 끝난다. 관객은 정말 끝났는지 아닌지 멍해 있는데, 스피커를 통해 우레와 같은 갈채 소리와 휘파람 소리가 들리는 것으로 보아, 정말 연극이 끝났음을 알아차릴 수 있을 뿐. 연극의 다양한 시도 가운데 하나로 보면 될 일. 무슨 큰 일, 기가 막힌 전기 등으로 꾸밀 필요도, 찬양할 이유도 없다. 관객들은 연극 <관객모독>을 보고 즐기거나, 재미있다고 말하거나, 충격적인데, 라고 놀라는 척하거나, 연극 역사의 한 획을 긋는 구변극을 개척하는 작품이라고 아는 척을 하면 되는 거다. 심지어 물바가지를 뒤집어쓰고 나서 거 참 시원하다, 감탄을 해도 무방할 것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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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양이 요람
커트 보니것 지음, 김송현정 옮김 / 문학동네 / 2017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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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보니것을 보니것으로 만든 건 그의 나이 스물두 살 삼 개월 때 겪었던 드레스덴 폭격이었을 것. 코넬 대학 생화학과에 다니던 보니것이 참전한 것까지는 좋았는데, 그의 대표작 <제5 도살장>에서 보면 대략 1944년에 독일군 포로가 되어 드레스덴 수용소에 머물던 중, 미국과 영국 양군에 의하여 1945년 초에 네 번에 걸친 폭격으로 2만5천 명의 사망자가 생긴 현장을 목격하게 된다. 사상자의 수는 각종 통계에 따라 다른 바, 출판사 책 소개에는 15만 명의 시민이 몰살당했다고 하지만 여기저기 검색해본 결과, 15만 명은 나치의 선전 내용과 유사하고 실제로 2만에서 3만 사이로 보인다. 3만, 하니까 우습게 보이시지? 평균 신장이 160cm라고 가정할 때 드레스덴 폭격 때 죽은 이들 3만 명을 똑바로 뉘어놓으면 무려 48킬로미터. 남산 둘레길을 여섯 번 돌고도 10리 더 간다. 평균 몸무게가 50kg이면 1,500톤에 이르고. 그 많은 사람들을 다 모아 땅에 묻을 수 없었을 터라, 쥐와 새와 개의 식욕도 부패의 속도를 견디지 못해 숱한 선량한 민간인들이 악취를 풍기며 절지동물문 곤충강의 한 종인 파리와 박테리아의 희생물이 되었을 것이다. 이때의 경험을 바탕으로 쓴 것이 <제5 도살장>.
 이제 보니것은 이 책 <고양이 요람>에서 코넬 대학의 델타 입실론 회원이자 자유기고가로 먹고사는 ‘존’이란 흔한 이름의 화자 ‘나’를 등장시켜 당대 최고의 과학자로 일찍이 노벨 물리학상 수상자 필릭스 호니커 박사의 주변에 접근하기에 이른다. 애초에 허구 인물인 필릭스 호니커 박사는 네덜란드 이민자로, 최초의 원자폭탄의 아버지라고 불리는 사람들 가운에 한 명이다.
 아시다시피 미국과 영국은 승전이 거의 확정된 상태인 1945년 2월, 독일 고전문화의 보석이었던 드레스덴에 무차별 폭격을 퍼부어 찬란한 문화유적을 완전히 황폐화시켰으며, 태평양 전쟁이 거의 끝나갈 무렵인 8월 6일에 히로시마 상공 580미터에서 ‘꼬마Little Boy’를 터뜨림으로 해서 한 방에 대량 살상을 감행해버렸다. 그래 독일에선 3만 명이, 히로시마에선 초기 폭발 때 7만 5천, 후유증으로 또 7만 5천, 합해서 모두 15만 명의 사망자가 생기기에 이른다. 드레스덴 현지에서 전쟁의 참혹함을 몸소 경험하여 체험적 반전주의자가 됐음직한 커트 보니것은 이번엔 한 방에 15만을 죽일 수 있는 원자폭탄, 그걸 개발한 과학자를 추적하기로 결심한다. 책 뒤의 해설에 따르면 전쟁 후 보니것이 먹고살기 위해 형의 권유로 제너럴 일렉트릭(내 전 직장이기도 해서 회사 이름을 거론하는 게 좀 켕기기는 하지만)의 홍보 담당자로 일할 때, “과학기술은 본질적으로 인간에게 유용하게 쓰여야 하지만 사용자의 의도에 따라 (중략) 과학기술이 진보할수록 이류 절멸의 가능성도 커진다. 그러나 GE에서 만났던 과학자의 다수가 진실을 향한 순수한 열정만 가득했을 뿐 자신들의 도덕적 책임에 대해서는 무신경”(344쪽) 하다는 것을 알고, 과학자들의 연구심, 때론 전지구의 절멸까지 결과할 수 있는 진실의 발견에 관해 책을 쓰기에 이르렀던 거다.
 연구에 전념할 때는 누구의 전화나 면회도 사절하고 오직 맡은 프로젝트에 전념을 다 하는 필릭스 호니커 박사한테 무대포로 쳐들어왔던 인물이 한 명 있었으니 미 해병대 장군. 해병대원들은 독립전쟁 시절부터 2차 세계대전, 한국전쟁에 이르기까지 징글징글하게 징글징글한 것이 있었으니 상륙전 당시의 개펄 위에서 뛰어가거나 기어가는 것. 그것도 엄청나게 무거운 장비를 밀고, 끌고 가는 일이었다. 그리하여 호니커 박사더러 진흙 위를 자유롭게 뛰어다닐 수 있는 방법이 없겠느냐, 한 번 연구해봐라, 라고 바득바득 우겨댔다. <고양이 요람>의 가장 큰 스토리는 여기서 시작한다. 외래어 좀 써보자. 이 시니컬하고 니힐한 작가 보니것의 머릿속에서 드디어 과학적 해법이 떠올랐다. 그의 아이디어는 호니커 박사의 행동으로 체화되어 ‘아이스 나인’이란 물체를 발명하는데, 이 아이스 나인이 뭔가 하면 물의 녹는점을 45도까지 올리는 촉매 비슷한 것. 그래 손톱 밑에 끼워둘 수 있을 정도의 양을 인천 앞바다에 뿌리면 한반도에선 개펄 전체가 계절에 관계없이 꽝꽝 얼어버려 탱크를 타고 밀어붙일 수 있는 환경이 된단다. 그걸 발명한 호니커 박사는 어느 날 흰색 고리버들 의자에 편하게 앉아 아주 극미량을 자기 입술에 발라 순식간에 꽝꽝 얼어버린 주검으로 발견된다.
 여기서 끝나면 재미가 없다. 호니커 박사에겐 2남 1녀가 있는데, 많은 양을 만들어놓은 ‘아이스 나인’을 삼등분해 서로 보관하고 있던 것. 맏이로 키 크고 못생긴 딸 앤절라는 미남에다가 매력적이기까지 한 남편과 결혼하기 위한 예물로 이것의 일부를 제공했고, 아버지를 닮긴 했지만 인류공헌을 위한 과학 대신 축소모형을 천재적으로 만드는데 재주가 있는 첫째 아들 프랭크는 오해를 받아 범죄자로 몰려 서인도 제도의 작은 나라에 망명해서 독재자 대통령의 과학부 장관이 되면서 일부를 그에게 양도했으며, 난쟁이 막내 뉴트는 우크라이나 출신의 난쟁이 창녀이자 소련의 스파이인 진카와 몇 밤을 지내기 위해 아이스 나인을 나누어 주어버렸던 것. 문제는 아이스 나인을 살포하게 되면 섭씨 45도가 넘는 곳에서만 물을 구경할 수 있는 점. 그것 뿐 아니라 액체 상태일지라도 그것을 섭취하게 되면 몸속으로 들어간 아이스 나인의 소립자들이 작동을 해서 인간, 짐승, 곤충, 식물, 하여간 모든 생명체의 몸을 꽝꽝 얼려버린다는 것. 인류 절멸이 문제가 아니라 극히 일부의 바이러스를 제외한 행성의 모든 생명체가 절멸되는 순간이 올 수 있는 일이다. 그걸 미국과 소련, 그리고 서인도제도 적도 부근의 지질히 가난한 한 섬나라가 세계 최강의 무기를 갖고 있다는 사실이다. 어때, 으스스하시지?
 그러나 보니것의 작품을 읽는 진짜 재미는 그의 니힐한 세계관을 구경하는 동시에 인류사적 위기 시점을 시니컬하게 바라보는 특유의 익살과 유머에 있다. 근데 ‘고양이 요람’이 뭐냐고? 해보셨을 것. 우리나라 말로 ‘실뜨기’다. 두 명이 마주 앉아 긴 실로 원을 만들어 두 손을 사용해 여러 가지 모양을 만드는 놀이. 그게 전 세계적으로 역사도 무척 길단다. 이렇게 제목을 지은 건, 1945년 8월 6일, 미국의 B29 폭격기 ‘에놀라 게이Enola Gay)'호에서 리틀 보이를 투하할 바로 그 시간에 미국 인디애나주 인디애나폴리스의 한 집에서는 원자폭탄의 아버지 필릭스 호니커가 그의 막내아들이자 난쟁이인 뉴트와 실뜨기, 즉 고양이 요람 놀이를 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호니커의 당시 상대가 ’난쟁이‘ 막내 뉴트인 것과 히로시마 상공 580 미터에서 터진 원자폭탄의 이름이 ’리틀 보이‘인 것이 서로 좀 관계가 있는 것 같지? 이건 직접 확인하시라. 내가 여태 이야기한 것들은 다 모아봐야 스토리 전체와 재미의 10퍼센트도 되지 않을 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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