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양이 요람
커트 보니것 지음, 김송현정 옮김 / 문학동네 / 2017년 10월
평점 :
품절


 

 보니것을 보니것으로 만든 건 그의 나이 스물두 살 삼 개월 때 겪었던 드레스덴 폭격이었을 것. 코넬 대학 생화학과에 다니던 보니것이 참전한 것까지는 좋았는데, 그의 대표작 <제5 도살장>에서 보면 대략 1944년에 독일군 포로가 되어 드레스덴 수용소에 머물던 중, 미국과 영국 양군에 의하여 1945년 초에 네 번에 걸친 폭격으로 2만5천 명의 사망자가 생긴 현장을 목격하게 된다. 사상자의 수는 각종 통계에 따라 다른 바, 출판사 책 소개에는 15만 명의 시민이 몰살당했다고 하지만 여기저기 검색해본 결과, 15만 명은 나치의 선전 내용과 유사하고 실제로 2만에서 3만 사이로 보인다. 3만, 하니까 우습게 보이시지? 평균 신장이 160cm라고 가정할 때 드레스덴 폭격 때 죽은 이들 3만 명을 똑바로 뉘어놓으면 무려 48킬로미터. 남산 둘레길을 여섯 번 돌고도 10리 더 간다. 평균 몸무게가 50kg이면 1,500톤에 이르고. 그 많은 사람들을 다 모아 땅에 묻을 수 없었을 터라, 쥐와 새와 개의 식욕도 부패의 속도를 견디지 못해 숱한 선량한 민간인들이 악취를 풍기며 절지동물문 곤충강의 한 종인 파리와 박테리아의 희생물이 되었을 것이다. 이때의 경험을 바탕으로 쓴 것이 <제5 도살장>.
 이제 보니것은 이 책 <고양이 요람>에서 코넬 대학의 델타 입실론 회원이자 자유기고가로 먹고사는 ‘존’이란 흔한 이름의 화자 ‘나’를 등장시켜 당대 최고의 과학자로 일찍이 노벨 물리학상 수상자 필릭스 호니커 박사의 주변에 접근하기에 이른다. 애초에 허구 인물인 필릭스 호니커 박사는 네덜란드 이민자로, 최초의 원자폭탄의 아버지라고 불리는 사람들 가운에 한 명이다.
 아시다시피 미국과 영국은 승전이 거의 확정된 상태인 1945년 2월, 독일 고전문화의 보석이었던 드레스덴에 무차별 폭격을 퍼부어 찬란한 문화유적을 완전히 황폐화시켰으며, 태평양 전쟁이 거의 끝나갈 무렵인 8월 6일에 히로시마 상공 580미터에서 ‘꼬마Little Boy’를 터뜨림으로 해서 한 방에 대량 살상을 감행해버렸다. 그래 독일에선 3만 명이, 히로시마에선 초기 폭발 때 7만 5천, 후유증으로 또 7만 5천, 합해서 모두 15만 명의 사망자가 생기기에 이른다. 드레스덴 현지에서 전쟁의 참혹함을 몸소 경험하여 체험적 반전주의자가 됐음직한 커트 보니것은 이번엔 한 방에 15만을 죽일 수 있는 원자폭탄, 그걸 개발한 과학자를 추적하기로 결심한다. 책 뒤의 해설에 따르면 전쟁 후 보니것이 먹고살기 위해 형의 권유로 제너럴 일렉트릭(내 전 직장이기도 해서 회사 이름을 거론하는 게 좀 켕기기는 하지만)의 홍보 담당자로 일할 때, “과학기술은 본질적으로 인간에게 유용하게 쓰여야 하지만 사용자의 의도에 따라 (중략) 과학기술이 진보할수록 이류 절멸의 가능성도 커진다. 그러나 GE에서 만났던 과학자의 다수가 진실을 향한 순수한 열정만 가득했을 뿐 자신들의 도덕적 책임에 대해서는 무신경”(344쪽) 하다는 것을 알고, 과학자들의 연구심, 때론 전지구의 절멸까지 결과할 수 있는 진실의 발견에 관해 책을 쓰기에 이르렀던 거다.
 연구에 전념할 때는 누구의 전화나 면회도 사절하고 오직 맡은 프로젝트에 전념을 다 하는 필릭스 호니커 박사한테 무대포로 쳐들어왔던 인물이 한 명 있었으니 미 해병대 장군. 해병대원들은 독립전쟁 시절부터 2차 세계대전, 한국전쟁에 이르기까지 징글징글하게 징글징글한 것이 있었으니 상륙전 당시의 개펄 위에서 뛰어가거나 기어가는 것. 그것도 엄청나게 무거운 장비를 밀고, 끌고 가는 일이었다. 그리하여 호니커 박사더러 진흙 위를 자유롭게 뛰어다닐 수 있는 방법이 없겠느냐, 한 번 연구해봐라, 라고 바득바득 우겨댔다. <고양이 요람>의 가장 큰 스토리는 여기서 시작한다. 외래어 좀 써보자. 이 시니컬하고 니힐한 작가 보니것의 머릿속에서 드디어 과학적 해법이 떠올랐다. 그의 아이디어는 호니커 박사의 행동으로 체화되어 ‘아이스 나인’이란 물체를 발명하는데, 이 아이스 나인이 뭔가 하면 물의 녹는점을 45도까지 올리는 촉매 비슷한 것. 그래 손톱 밑에 끼워둘 수 있을 정도의 양을 인천 앞바다에 뿌리면 한반도에선 개펄 전체가 계절에 관계없이 꽝꽝 얼어버려 탱크를 타고 밀어붙일 수 있는 환경이 된단다. 그걸 발명한 호니커 박사는 어느 날 흰색 고리버들 의자에 편하게 앉아 아주 극미량을 자기 입술에 발라 순식간에 꽝꽝 얼어버린 주검으로 발견된다.
 여기서 끝나면 재미가 없다. 호니커 박사에겐 2남 1녀가 있는데, 많은 양을 만들어놓은 ‘아이스 나인’을 삼등분해 서로 보관하고 있던 것. 맏이로 키 크고 못생긴 딸 앤절라는 미남에다가 매력적이기까지 한 남편과 결혼하기 위한 예물로 이것의 일부를 제공했고, 아버지를 닮긴 했지만 인류공헌을 위한 과학 대신 축소모형을 천재적으로 만드는데 재주가 있는 첫째 아들 프랭크는 오해를 받아 범죄자로 몰려 서인도 제도의 작은 나라에 망명해서 독재자 대통령의 과학부 장관이 되면서 일부를 그에게 양도했으며, 난쟁이 막내 뉴트는 우크라이나 출신의 난쟁이 창녀이자 소련의 스파이인 진카와 몇 밤을 지내기 위해 아이스 나인을 나누어 주어버렸던 것. 문제는 아이스 나인을 살포하게 되면 섭씨 45도가 넘는 곳에서만 물을 구경할 수 있는 점. 그것 뿐 아니라 액체 상태일지라도 그것을 섭취하게 되면 몸속으로 들어간 아이스 나인의 소립자들이 작동을 해서 인간, 짐승, 곤충, 식물, 하여간 모든 생명체의 몸을 꽝꽝 얼려버린다는 것. 인류 절멸이 문제가 아니라 극히 일부의 바이러스를 제외한 행성의 모든 생명체가 절멸되는 순간이 올 수 있는 일이다. 그걸 미국과 소련, 그리고 서인도제도 적도 부근의 지질히 가난한 한 섬나라가 세계 최강의 무기를 갖고 있다는 사실이다. 어때, 으스스하시지?
 그러나 보니것의 작품을 읽는 진짜 재미는 그의 니힐한 세계관을 구경하는 동시에 인류사적 위기 시점을 시니컬하게 바라보는 특유의 익살과 유머에 있다. 근데 ‘고양이 요람’이 뭐냐고? 해보셨을 것. 우리나라 말로 ‘실뜨기’다. 두 명이 마주 앉아 긴 실로 원을 만들어 두 손을 사용해 여러 가지 모양을 만드는 놀이. 그게 전 세계적으로 역사도 무척 길단다. 이렇게 제목을 지은 건, 1945년 8월 6일, 미국의 B29 폭격기 ‘에놀라 게이Enola Gay)'호에서 리틀 보이를 투하할 바로 그 시간에 미국 인디애나주 인디애나폴리스의 한 집에서는 원자폭탄의 아버지 필릭스 호니커가 그의 막내아들이자 난쟁이인 뉴트와 실뜨기, 즉 고양이 요람 놀이를 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호니커의 당시 상대가 ’난쟁이‘ 막내 뉴트인 것과 히로시마 상공 580 미터에서 터진 원자폭탄의 이름이 ’리틀 보이‘인 것이 서로 좀 관계가 있는 것 같지? 이건 직접 확인하시라. 내가 여태 이야기한 것들은 다 모아봐야 스토리 전체와 재미의 10퍼센트도 되지 않을 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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