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롤드 핀터 전집 2
해롤드 핀터 지음, 이현주 옮김 / 평민사 / 2005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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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해롤드 핀터는 1930년에 동런던에서 동유럽 출신 유대인 가족의 외동아들로 태어난 아쉬케나지이다. 청소년 시절인 1942년부터 48년까지 6년 동안 동 런던에 있는 해크니 문법학교에 다니며 영어, 연극, 운동에 두각을 나타냈다고 한다. 졸업 후에 왕립연극아카데미에 입학하지만 중도에 때려 치운다. 아마도 징집영장을 받았고, 이에 군대에 가지 않겠다는 양심선언을 해 징역의 갈림길에서 고민을 했던 것 같다. 다행히 벌금형만 받고 끝낸 다음에 다시 몇몇 연기 학교에서 배우 수련을 받으면서 배우와 극작가를 겸한다. 인생의 절정기를 향해 질주하는 시기가 와서 자연스레 사랑도 하고, 결혼도 몇 번 하고, 아이도 낳고, 연극도 적극적으로 해서 실질적으로 데뷔작이라 할 수 있는 <생일 파티>를 공연해 대박을 친다.

  핀터가 비록 런던에서 태어났지만 유대인이라는 정체성 때문에 그리 편하게 살지는 못했다. 영국 역시 골수 우익을 중심으로 반유대주의가 팽배해 있었다. 런던 사람들이 “히틀러한테도 배울 게 있다니까!” 하며 반유대주의를 주장하는 장면은 소설책에서도 몇 번 나왔을 정도였으니. 핀터도 해크니 거리에서 이들한테 린치를 당한 적이 있었다. 그리고 독일 폭격기에 의한 공습. 이런 폭력을 당한 경험 또는 상처는 핀터의 작품 속 특유의 “폭력과 공포, 위협” 같은 요소를 갖게 만들었단다.

  좋다. 근데 문제는 이이의 작품이 영국의 국가대표급 “부조리 연극”이라는 거다. 부조리극이라는 것을 알고, 오히려 그래서 절판된 핀터의 책을 도서관에서 구해 읽어본 것인데, 사실 “부조리극” 딱 한 가지 조건만 가지고도 실제 공연을 보지 않은 독자가 작품을 이해하기가 무지하게 힘들 터, 여기에 핀터 특유의 폭력과 공포, 위협을 팍팍 가미한 “희극”이기까지 했다는 건 꿈도 꾸지 못했다. 정직하게 얘기해서, 나는 두 희곡을 읽으며 이것이 희극, 코미디일 것이라고는 생각도 못하고 읽었다. 그래서 왜 이렇게 재미가 없을까, 도무지 영국의 국가대표급 부조리극은 아닐 거 같은데, 뭐 이렇게 궁시렁거리다가 작품을 다 읽고 해설을 들춰보니, 아이쿠, 다시 읽어야겠구나, 뒤통수 팍, 얻어맞은 거 같았다. 그렇다고 진짜로 다시 읽어볼 정성까지는 없고, 이미 읽은 것을 뇌 속에서 재배치했을 뿐이니 그게 얼마나 합당하지 않은 감상일지 도무지 감도 잡히지 않는다. 그리하여 이 노벨 문학상에 빛나는 극작가의 작품에 대한 독후감은, 아 어떡하지? 안 쓸 수도 없고, 그래 생각나는대로 조금만 써볼 터이니 읽는 분들도 그냥 가비얍게 훅 한 번 읽고 지나가시라.


  희곡 두 편이 실렸다. <벙어리 웨이터 Dumb Waiter>와 <핫하우스 Hothouse> <벙어리 웨이터>를 위주로 쓰겠다. 앞쪽에 실리기도 했고, 조금 더 주목받은 작품이다. 1960년 1월에 햄프스테드 연극 클럽에서의 초연이 끝나자마자 영국왕실의 요청으로 왕립극단이 3월에 다시 공연했을 정도로 주목받았나 보다. 우리나라 청와대에서는 연극 공연 안 하지? 하긴 대통령이 뭐간디, 가서 보면 되지.

  먼저 “벙어리 웨이터”가 뭘까? 장소는 지하실 방. 지하실의 특징은? 창문이 없다는 거. 즉 들어온 문이 아니라면 이곳에서의 탈출이 아예 불가능한 장소라는 의미다. 벽쪽에 침대가 두 개 놓여 있다. 그래서 등장인물도 단 두명이다. 벤과 구스.

  벤은 왼쪽 침대에 누워 신문을 보고 있고, 구스는 오른쪽 침대에 앉아 다분히 부조리 연극 답게 이유 없이 신발끈을 묶었다가 풀고, 풀었다가는 구두 속에서 난데없이 성냥갑을 꺼내기도 하고 담배갑을 꺼내기도 한다. 부조리극 좀 읽어본 독자는 전혀 당황하지 않는다. 성냥과 담배 정도는 아무것도 아니다. 기관단총이나 장갑차 정도가 신발 안에서 나와야 이게 뭐지, 할 수준이지 그것 가지고는 뭐.

  이들이 이 지하실 방에 들어와 뭔가 먹기도 했던 것 같다. 인간이라는 포유류는 무엇을 먹으면 일정 분량의 잉여분을 몸 밖으로 배출해야 한다. 그래서 구스가 무대 왼쪽에 있는 화장실에 들어가 퍼더덕 푸닥거리 해산을 한 번 하고, 매화타령을 했으니 쪼그려 쏴 식 수세식 변기의 줄을 당겼고, 줄을 당겼지만 물이 쏟아지지는 않았다. 구스가 난처한 얼굴을 하고 다시 등장한다. 찜찜하겠지? 그래서 또 화장실에 들어가 줄을 내리는 소리가 들리지만 이번에도 물은 쏟아지지 않는다. 이런 낭패가.


  여기까지 읽었는데도, 독자는 전혀 눈치를 채지 못했다. 이 두 출연자들의 직업이 무엇인고 하니, 살인청부업자다. 벤이 신문기사를 구스한테 알려주는데도 불구하고. 어떤 기사인가 하면, “87세의 노인이 길을 건너려고 한 거야. 그런데 차들이 너무 많았지. 알았어? 노인은 그 길을 어떻게 건너야 될지 알 수가 없었다는군. 그래서 화물 자동차 아래로 기어갔다는 거야. 화물 자동차가 출발했고 그를 치었대.”

  이런 식으로 주로 죽는 이야기. 사람에 국한하지 않는다.

  “8살짜리 어린애가 고양이를 죽였어! 이 일을 어떻게 생각해, 응? 8살짜리 어린애가 고양이를 죽이다니! 남자아이가 죽였대? 여자아이였어. 여자아이가 어떻게 죽였어? 그 아이는― 쓰여져 있지 않은 걸”

  “잠깐만 기다려봐. 이렇게 쓰여 있어 ― 11살 된 여자아이의 오빠가 공구실에서 그 일을 목격했다.”

  노인의 죽음. 여자아이가 고양이를 죽인 일을 벤이 마치 중요한 사건인양 구스에게 설명을 해주는 것도 사실 항용 있을 수 있는 일이라서 여기까지 진도가 나갔건만 형광등 비슷한 독자인 나는 이들의 직업이 청부살인자인 줄도 몰랐고, 이 드라마가 심지어 “희극” 코미디인 줄도 몰랐다. 그러니 이게 재미가 있을 수 있겠느냐고. 만일 정말 무대극이었다면 배우들이 나누는 대사의 억양이나 말투, 발음 같은 것도 있고, 무엇보다 행위의 과장 같은 걸로 벌써 몇 번의 웃음을 참지 못했을 것이다.

  역시 희곡은 드라마를 보는 행위가 선행되는 것이 좋을 수 있다. 아, 그러나 내가 사는 촌구석에서 해럴드 핀터의 작품이 무대에 오를 날이 있기는 있을까? 땅 팔고 (땅? 땅도 있어? 아, 그건 없어서 못 팔겠다), 아파트 팔고, 주식 팔고, 기타 등등 다 팔아서 서울 18평 아파트 전세라도 들어갈까?


  궁상은 이만큼 떨었으면 됐고, 이제 본격적으로, 벙어리 웨이터 Dumb Waiter가 뭘까? 벽에 달린 작은 엘리베이터. 주로 음식을 주문하고, 주문한 음식을 주방에서 만들어 올려 보내거나 내려 보낼 때 쓰는 작은 음식 이송용으로 쓴다. 저번에도 얘기했는데, 앨리 스미스의 <호텔 월드>에서 아르바이트 여학생이 장난으로 거기 들어갔다가 줄이 끊어지는 바람에 추락사하는 그런 거. 동네 웬만한 2층짜리 중국집 가도 짜장면, 탕수육. 이거 타고 올라온다.

  살인청부업자 벤과 구스한테도 이 벙어리 웨이터라는 엘리베이터를 타고 명령지가 도착한다. 이럴 때마다 두 킬러들은 신경이 곤두서겠지? 근데 엉뚱하게도 벙어리 웨이터 말고 무대 오른쪽의 방문 아래로 봉투 하나가 미끄러져 들어온다. 밀봉된 봉투. 벤의 지시에 따라 봉투를 뜯어보는 구스.

  뭐가 들었어? 성냥이야. 성냥? 응. 이리 줘봐.

  아까 구스가 신발끈을 묶었다가 풀었을 때 신발 속에 성냥갑이 들었었다. 그걸 어떻게 알았는지 등장하지 않는 빅보스 또는 자신들의 정보를 알아낸 적들이 성냥 몇 개비를 봉투에 담아 준 거다. 빅보스라면 큰 문제는 아닌데 만일 이들이 성냥갑만 있고 성냥개비는 없다는 걸 알고 마치 적선하듯 성냥개비 열 개를 준 거라면? 이거 심각한 일이다. 희극에서 말이지. 긴장해야 하는 게 당연할 정도로 불안과 폭력의 공포를 느껴야 마땅하다. 코미디니까. 근데 문제는 아직도 독자인 내가 이 드라마가 코미디인 줄 눈치채지 못하고 있었다는 거.

  이런 상황이니 극이 재미있고 없고 따지기 전에, 도대체 지금 두 등장인물이 어떤 내용을 연기하고 있고, 무엇을 주장하고 있는지도 전혀 모르겠는 거다. 지금 이들이 머물고 있는 지하 안가가 버밍엄이라서 축구팀 웨스턴빌라와 토트넘 훗스퍼의 시합을 볼 수 있는지 없는지 이런 것만 따따부따 하고 있다가 난데없이 성냥개비 열 개라니.


  그래, 그래. 다시 읽어보면 재미있을 수도 있기는 하겠다. 좋아, 시간도 많은데 그렇게 해보지 뭐. 하지만 그렇다고 독후감도 다시 쓰겠다는 건 아냐. 같은 책을 읽고 느낀 걸 다시 쓰는 일이 여간 피곤하지 않거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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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욘 티히의 우주 일지 민음사 스타니스와프 렘 소설
스타니스와프 렘 지음, 이지원 옮김 / 민음사 / 2022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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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책은 읽지 말든지, 읽더라도 꽤 오랜 시간이 지난 다음에 읽는 것이 좋지 않았을까 싶다. 스타니스와프 렘의 많은 팬들은 우리나라 출간 기준으로 《이욘 티히의 우주 일지》를 먼저 읽고 약 1년 후에 《사이버리아드》를 읽었을 것이다. 그리하여 먼저 《이욘 티히…》를 통해 스페이스 유머의 진수를 만끽해 상대적으로 후속작인 《사이버리아드》는 덜 재미있는 책이라는 느낌이 들었을 것 같다. 나는 읽는 순서가 뒤바뀌었다. 그래서 《이욘 티히…》보다 《사이버리아드》를 더 재미있고, 훨씬 더 “황당한 즐거움”을 느끼면서 읽었다고 기억한다. 그래서 아쉽다. 이 책도 한 5년 정도 더 지난 다음에 읽었으면 훨씬 좋았지 않나 싶어서. 나름대로 이 책을 언제 읽을까, 궁리하다가 지금 순서에 읽어야 성탄절 딱 열 달 전인 2월 25일, 성모님이 동정의 몸에 예수 그리스도의 씨톨을 착상한 성임절, 기쁘다 구주 배셨네, 더 쉽게 얘기해서 내 생일날 아침에 업로드 할 수 있을 것이라, 아예 노골적으로 날짜를 꼽아 읽었다. 심보가 고약했으니 책이 오히려 더 재미가 적었는지도 모르겠다. 하여간 세상에 마음대로 되는 일이 없다니까. 남들 다 맞는 로또도 한 장 안 맞아요!


  독후감을 쓰기 전에 이욘 티히가 누구인지 알고 시작하는 편이 좋겠다.

  전 은하계에 알려진 저명한 우주여행가이며, 먼 은하계 여행선의 선장, 운석과 행성 사냥꾼, 지치지 않는 열정의 연구자이며 8만 3개에 이르는 지구 유사 행성의 발견자, 큰곰자리와 작은곰자리 대학교의 명예박사, 작은 행성 보호 단체 및 유수 단체의 회원이며 은하수 및 성운 훈장 수훈자로 지구별의 역사를 수놓은 소수의 위대한 모험가 클럽의 일원이다.

  그는 알려진 것만 해서 스물여덟 번의 우주 모험을 떠났으며, 그때마다 일지를 작성해 모두 스물여덟 편의 《우주 일지》, 우주 사전 및 간략한 보기로 구성한 부록을 포함해 전체 4절판으로 87권에 달하는 방대한 작품을 남겼지만 이를 제대로 편집하기란 대단히 어려운 일이라 쉽게 공개되지는 못할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후대의 학자들이 그렇다고 티히의 업적을 암흑 속에 방치해두는 건 곤란하다고 판단해 이 가운데 열두 편의 우주일지를 선별, 요약해 공개한 것이 오늘 독후감을 쓰는 《이욘 티히…》이다.

  그런데 오랜 세월 출간되지 않는 바람에 여러 위작 판본까지 나오는 등 티히의 명성을 실추시키기도 했다. 실제로 26번째 일지는 확실히 위작인 것이 판명되어 원본에서도 삭제되었다고. 심지어 《이욘 티히…》는 실제로 이욘 티히가 자기 손으로 쓴 일지가 아니라 Lunar Excursion Module(LEM)이라고 하는 인공지능이 장착된 기계가 쓴 것이라는 의견도 있단다. 아이고머니나. 근데 모르긴 해도 LEM, 렘, 스타니스와프 렘이 쓴 게 맞는 것 같기도 하다.


  그래 이 책 《이욘 티히…》에서는 티히 선장의 일지 열두 편과 나이 들어 쓴 것으로 보이는 회고록의 회상 네 편, 인공 지능을 가진 우주 생명체 창조의 꿈을 아주, 아주 조금 이룬 <디아고라스 박사> 이야기와 <우주를 구하자>는 대 우주 호소문을 실었다. 당연히 열두 편의 일지는 위에서 말한대로 원본 일지를 몽땅 싣지 않고 축약한 것으로 보이며, 은하계 안과 밖을 광속 이상의 속도로 누비고 다닌 선장 입장에서는 좀스럽게도 한갓 행성인 지구별의 여러 잡스러운 체제와 문학과 철학과 정치와 기타 등등을 비유해 놓은 것처럼 읽힌다.

  그런데 문제는 독후감 초장에 얘기했듯이, 만일 이 책 《이욘 티히…》를 《사이버리아드》에 앞서 읽었다면 무릎을 치며 가갈갈갈 웃으며 재미나게 읽었을 것을, 눈으로는 분명 희극적 장면임에도 불구하고 《사이버리아드》에서 이미 LEM 식 코미디 촌편에 익숙해 있어서 머리로는 훨씬 덜 재미있었다는 거. 어떤 장면에서는미국이 만든 달 탐사 모듈, 렘LEM이 인간들이 재미있게 읽어주기 바라면서 썼을 콩트를 오히려 심각하게 읽고 싶어 하는 걸 감지했을 정도이다.


  예를 들어 숱한 사람들이 영생을 원하지? 몸의 영생은 미친 놈들이나 바라는 거고 영혼의 영생. 정말로 사람한테 영혼이라는 것이 있다면 그렇다는 얘긴데, 삶은 시궁창 속에서 지옥 같은 날들로 고통스럽게 지내지만, 사는 동안에 진심으로 주님한테 귀의해 끊임없이 십일조 바쳐가며 기도하기만 하면 영혼이 천국에 올라가 그곳에서 영생하리라는 꿈을 꾸지 않나? 아니라고? 당신은 아니더라도 실로 많은 사람들이 예수천국을 바라며 영혼의 영생을 기원한다는 걸 부정하지는 못하리라, 안 그려?

  좋아, 좋아. 그럴 수 있다. 그런데 내가 달 탐사 모듈 LEM에게 들은 다음에 잘 써먹는 구절을 다시 한번 쓰자면, 단위야 어떻게 되든 10의 600제곱 크기의 공간을 염두에 두고 티히의 우주일지를 대신 써준 LEM은, LEM이 본격적으로 창작하기 시작하는 25세기에, 한 엉뚱한 인간, 디캔더 교수가 영혼수집 기계를 만들어 실제로 자기 마누라의 영혼을 뽑아 주먹만 한 티타늄 상자에 집어넣어 티히네 집으로 가져왔다는 거다. 그래 티히에게 제안하기를, 이렇게 인간한테 영혼을 추출해 놓으면 실제로 인간의 오랜 꿈인 영혼의 영생을 이룰 수 있지 않느냐, 그러니 이를 상업화하면 대박을 칠 터, 안타깝게도 자기 호주머니가 비었으니 티히 선생이 자금을 대고 추후 이익금의 49퍼센트를 취하시라, 제안을 한다. 그가 티히에게 자기가 이룬 성취를 말한다.


  “저는 전 시대를 통틀어서 가장 뛰어난 사상가들이 목표했던 바를 성취했을 따름입니다. 티히, 당신도 그런 걸 읽으신 적이 있을 텐데요…, 종말, 끝 앞에서의 공포, 가장 풍부히 무엇이든 열매 맺을 수 있는 정신의 소멸… 오랜 생애의 끝에 말입니다. 누구나 이걸 되풀이하고 있죠. 그들의 소원은 바로 영원과 대면하는 것입니다. 제가 바로 그 접점을 만들었죠. 티히, 어쩌면 그들은요…? 가장 뛰어난 인물들, 천재적인 사람들은 어떻겠습니까?” (p.462~463)


  티히의 생각은 이렇다. 영혼이 영원히 영생한다면, 불과 3만년 후에 닥쳐 인류 멸종을 확정시킬 대 빙하기도 이 불쌍한 영생의 영혼들이 목격을 해야 할 것이고, 그래도 우주 공간에서 사라지지 못하고 남아, 태양이 팽창해 지구를 불덩이로 만들고, 급기야 태양이 자신의 중력으로 지구를 확 빨아들여 휘리릭 소멸시키는 꼬라지도 보아야 할 터이다. 우주선 선장만 몇 십 년 했던 이욘 티히는 기가 차지도 않는 거였다. 30에서 50억년 후 태양이 폭발하여 왜성으로 찌그러진 다음에도 여전히 우주를 떠돌 영혼은 암흑 천지에 영하 2백도에 육박하는 찬 공간을 유영해야 하는, 그러면서도 결코 소멸되지 않는 불쌍한 유령일 터인데, 디캔더 교수님, 그래도 괜찮으시겠어요?

  이욘 티히는 딱 잘라 대답한다.

  “사람들은 영생을 갈구하지 않습니다. (중략) 그냥, 단순하게, 죽고 싶지 않은 것뿐이에요. 그냥 살고 싶은 겁니다”(p.464)


  이런 것 말고도 다양하고 교묘하게 인간의 문화와 문명과 체제를 비틀어버린다. 이렇게 재미있는 텍스트를 불쌍하게도 전에 읽었던 작품 때문에 제대로 느끼지 못하고 마는 독자가 비단 나 한 명일까? 그렇기를 바란다. 다들 나보다는 훨씬 재미있게 읽기 바란다.

  난 그저 노래나 한 번 더 부르고 독후감을 끝내야겠다.

  “기쁘다 구주 배셨네. 만백성 찬송하여라!”

  "Exultate, Jubil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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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물고기 묘보설림 4
왕웨이롄 지음, 김택규 옮김 / 글항아리 / 2018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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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왕웨이롄, 이 중국인 작가의 중국식 이름은 ‘윌리엄’이다. 그래서 중국 내에서는 왕웨이롄 또는 왕 윌리엄으로 불리고 밖에서는 윌리엄 왕이라고들 하는 모양이다. 1982년생 중국 작가. 태어난 곳이 어딘가는 검색하는 자료마다 조금씩 다른 정보를 제공하고 있다. 중국의 대표 검색 센터 바이두는 산시성 시안시 후이구라고 썼고, 중국학 센터와 위키피디아에는 칭하이성 옌현에서 낳았다고 했다. 별거 아닌 거 같은데 뭐하러 이런 걸 따지느냐 하면, 《책물고기》에 첫번째로 실렸으며 이이를 스타 작가로 발돋움시킨 대표 단편 가운데 한 편인 <소금이 자라는 소리를 듣다>의 배경이 칭하이성의 차카염호 부근이기 때문이다. 차카염호. 해발 3천미터 이상 높이의 청정 소금호수. 사람들이 볼 수 있는 색은 푸른 하늘과 흰 소금이 전부. 물 속을 들여다보면 동시에 흰색과 파란색을 볼 수 있겠지. 건조한 공기와 높은 염도로 인해 풀과 나무가 별로 자라지 않는다. 식물이 없으니 동물도 없다. 정말 없는 건 아니고 흔히 동물이라 말하는 것들은 여간해서 눈에 띄지 않는다는 의미.

  왕웨이롄은 이곳에서 나서 더링하, 시닝, 시안에서 자라고 대학은 저 남쪽 수천 킬로미터를 내려가 광저우시 중산대학에 입학, 인류학과 중문학을 공부했다. 지금은 광저우를 중심으로 여러 대학과 문학단체에서 찍은 다양한 명함을 가지고 다니는 거 같다. 북부인 출신으로 남쪽 지역인 광저우에서 자리잡는 애환을 그린 <아버지의 복수>와, 역시 북쪽에서 유학온 여학생과의 첫사랑과 재회 이야기를 쓴 중편소설 <베이징에서의 하룻밤> 같은 작품이 이런 배경에서 나왔으리라.


  첫 작품 <소금이 자라는 소리를 듣다>를 읽으며 탁 드는 생각이 글을 참 섬세하고 깔끔하게 쓴다, 하는 거였다. 앞에서 말했듯 해발 3천미터가 넘는 고지대의 황야. 말로만 황야가 아니라 진짜 황야. 늘 청명하고 눈이 부시다 못해 여차하면 시력을 상실할 수도 있을 정도로 강하고 청명한 햇살이 비치지만 봄이면 손톱을 내려다보지 못할 정도의 황사가 몰아치기도 하는 아름다운 지옥. 그래도 소금호수가 있어 사람들은 소금을 채취하고, 소금산업 덕에 마을도 생기고, 술집도 생기고, 노래방도 생겼지만 그렇게 자연과 함께 사람마저 황폐해버리고 말게 되는 곳. 문화가 없어 건전하게 즐길 거리 역시 찾지 못한 주민들이 제일 쉽게 찾게 되는 즐거움이 술이었던 모양이다. 게다가 중국 북서부 고원이니 춥기는 오죽이나 추웠을까? 하지만 술 마시는 자, 결코 실수를 피하지 못하리니 애초부터 불행을 담보하고 알코올로 목젖을 적시는 것이라.

  주인공 ‘나’는 아내 샤링에게 한눈에 반해 훗날 소금채취선을 운행하는 샤오마와의 경쟁을 물리치고 결혼에 이른다. 행복한 부부에게 항용 그러하듯이 곧 샤링은 임신을 했으나, 사실인지 아니면 주민들이 하는 말에 불과한지 모르지만 지역에 팽만한 높은 염도가 사람에게 독이 되어 샤링은 유산을 했고, 이후 부부의 사이는 급격하게 냉각되고 말았다. 이런 시기가 계속되던 몇 년 후, 고등학교 동창생 샤오딩이 연인과 함께 이곳에 며칠 들른다.

  ‘나’는 몇 년 전 술 마시고 기억이 없는 상태에서 사람 좋은 자오형과 거의 매일 대취하곤 했다가, 그와 함께 술을 마신 날 그만 자오형이 소금호수에 빠져 죽은 일을 기억하지 못한다. 우정을 나누었지만 졸업 후 시간이 꽤 흘러 이제는 조금 서먹한 친구 샤오딩은 대도시에서 이름이 나지는 않았어도 그럭저럭 자리를 잡아가는 화가로 지내고 있으며, 탄광 채탄부 생활과 젊은 시절의 황음으로 간이 많이 안 좋아 술을 거의 마시지 못한다. ‘나’ 역시 자오형의 죽음 이후에 거의 술을 끊었다. 하지만, 하여튼 드러운 동양인의 술 접대 문화. 이들은 오랜만에 만나 소금 호수 구경을 가고, 채취선 샤오마까지 어울려 오랜만에 대취한다. 사고는 없었다.

  샤오딩과 함께 온 선글라스의 아름답고 매혹적인 여인 진청. ‘나’와 진청 사이에 본격적이지는 않지만 어찌 서로의 눈길이 오가지 않을 수 있었을까. 며칠 후 샤오딩과 진청은 떠나고, 이때 진청과 아내 샤링이 가까이 지낸 것이 전환점이 되었는지 부부는 다시 사이가 좋아져 두번째 임신을 한다. 샤링은 전과 같은 슬픈 일을 당하지 않기 위해 친정으로 몸을 피하고 몇 달 후 사내 아이를 순산한다. 그동안 ‘나’와 진청은 몇 번의 편지 왕래가 있었고, ‘나’는 필요없는 오해를 피하기 위하여 편지를 불태우는데 아내는 이제 소금호수에서의 일을 그만 두고 친정이 있는 도시에 와서 자리를 잡자고 말한다.


  별스럽지 않은 서술이지만 문제는 문장이다. 섬세하고 청징하며 깔끔한 문장들. 그것들이 만든 문단. 확실히 중국 소설도 한 세대가 흘렀구나. 지난 달에도 딩옌을 읽었다. 이들에게는 각자 적응하지 못하는 벽이 있었지만 선배작가들처럼 좌우, 빈부, 지배/피지배, 혁명/반동의 벽이 아니다. 이들은 확실하게 현대인이며, 문화적으로 문명인들이다. 하늘의 별 만큼이나 많은 중국 작가들 가운데 특별히 글이 좋아 나라 밖에까지 번역 소개하는 것이겠지만 현대 중국 작가의 글을 읽을 때마다 깜짝 놀라는 일이 한두번이 아니다. 왕웨이롄, 윌리엄도 마찬가지이기는 하다. “마찬가지이기는 하다”라고 말하는 건 뭔가 조금의 이의가 있다는 뜻.


  <베이징에서의 하룻밤>의 두 주인공이자 문학청년 ‘자화’와 ‘루제’는 세월이 흘러 자화는 애초에 염두에 두지 않았지만 루제의 영향을 받아 작가이자 광저우 지방의 교수가 됐고, 의과대학을 다니던 루제는 시인이 되고 싶었으나 결국 의대를 졸업한 후 베이징에서 의학박사까지 하고도 종합병원에서 병원 사무일을 하고 있다. 이들은 졸업한 후 10년 동안 만나지 않았다가 그동안 루제가 이혼을 하고 마음에 여유가 생기자 자화에게 한 번 왔다 가라고 초청 비슷하게 한 것. 아직 미혼 상태를 유지하던 자화는 당연히 베이징에서의 뜨거운 하루를 염두에 두고 도착해, 이제 30대가 된 완벽한 성인이자 인생의 절정기를 달리는 자유로운 남녀가 지난 시절을 회상하고, 현재를 즐기고 기약없는 약속은 하지 않는, 그런 내용이다. 이야기의 반을 훨씬 넘는 분량이 이들이 갓 대학에 입학한 청춘 시절의 풋풋한 연애와 이별인 것은 당연하다.

  그런데 어제 미시마 유키오의 독후감을 쓰면서 짧게 말했듯이 미시마는 글을 쓸 때 독자를 염두에 두는 게 아니라 그냥 저절로 미문이 쏟아져 나오는데 반해서, 글 좋은 왕웨이롄은 어떻게 써야 글이 아름답고 깔끔하게 읽힐까, 이걸 고민하며, 고민까지는 아니더라도 습관적으로 염두에 두고 쓴 글 같다는 거다. 그리고 우습게도 왕웨이롄은 바로 이 작품 <베이징에서의 하룻밤> 속에서 맹렬하게 습작에 몰두하고 있는 루제의 습작을 읽고 비슷하게 말한다. 루제가 읽는 사람을 너무 의시하면서 글을 쓴다고.

  둘이 헤어진 뒤에 자화는 루제의 SNS에 수시로 들어가 루제가 미니홈피에 올린 시를 읽고, 자기가 방문한 흔적을 지운다. 누구나 이런 경우 한 번씩 있지? 그래서 나는 그냥 이쯤에서 문단을 마감했으면 좋겠다 싶은데, 작가는 그럴 마음이 없어 보였다. 그래서 계속한다.

  “(자기가 방문한 흔적을 지운) 그 이유는 무엇을 들키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그것 말고도 더 중요한 이유가 있었는데, 그것은 바로 그녀의 시가 갈수록 안 좋아지고 전에는 눈에 확 띄었던 재기가 번잡한 수사에 가려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녀는 여전히 글을 쓸 때 남의 눈을 의식했다. 마음속의 열정이 부족해질수록 더 스스로를 치장했고 그것이 오히려 글을 망쳤다. 그는 그런 그녀가 안타까웠다.”  (p.253)

  위 인용을 읽어보니까, 나를 포함한 누구나 타인이 쓴 글을 읽으면서 이런 생각을 할 수 있지만, 자기가 쓸 때에는 이걸 눈치채기가 힘든 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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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블홀릭 2026-02-26 10: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잘 읽었습니다. 왕웨이롄은 현재 광저우에 있는 중산대학 중문과 교수가 돼서 잘 살고 있답니다.

Falstaff 2026-02-26 15:47   좋아요 0 | URL
잘 읽어주셔서 고맙습니다.
 
미시마 유키오 - 우국·한여름의 죽음 외 22편 현대문학 세계문학 단편선 41
미시마 유키오 지음, 양윤옥 옮김 / 현대문학 / 202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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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중편 분량의 <한여름의 죽음>과 23편의 단편소설을 실었다.

  문장이 날아 다닌다. 그저 미문을 생산하는 것이 아니라, 다른 작가들처럼 글 한 줄을 생각해내기 위하여 온갖 궁상을 떨면서 문학하는 삶의 고난 운운하지 않고, 그저 저절로 섬세한 미문이 흘러나오는 거 같다. 내일 독후감을 올릴 중국의 젊은 작가 왕웨이롄도 문장이 아름답기는 하나 작정하고 작가가 미문을 생산해 독자가 그렇게 느낄 수 있게 만들려고 애쓴 결과물을 읽는 기분이 든다. 같은 미문이라도 독자가 읽을 때는 이렇게 다르다. 미시마처럼 저절로 경탄스러운 미문을 만들 수 있는 극소수의 작가에게 영재, 천재의 수식을 붙이는 거겠지.


  미시마 유키오의 작품을 쓴 시기별로 모았다. 그리하여 제일 앞에 실린 단편이 <꽃이 한창인 숲>. 얼핏 하이쿠 같은 느낌이 드는 제목이지만, 내용은 에세이와 소설의 중간 형식이다. 조금 인용해보겠다.


  “추억은 이미 지나간 삶의 빈 허물에 지나지 않는 게 아닐까. 그것이 미래에 과실果實 역할을 하는 경우가 있다고 해도 이미 현재를 잃어버린 쇠락한 인간을 위한 것뿐이지 않은가, 하는 식으로. 열병 같은 젊음은 그런 생각에서 무턱대고 긍정을 찾아내려는 경향을 보이게 마련이다.” (<꽃이 한창인 숲> p.9)


  이 작품을 썼을 때 미시마 유키오의 나이 16세. 43페이지에 달하는 단편소설을 16세 소년이 썼다는 것도 작가의 비범을 드러내는 것이지만 부르주아 가족의 풍부한 경제적 문화적 누림과 이의 세습에도 불구하고 이런 가족 특유의 건조함 같은 것을 대단한 수준의 유려함으로 묘사했다. 당시가 고등학교 1학년 때였는데, 국어 교사가 미시마의 이 작품을 읽고 자신도 동인으로 활동하고 있는 잡지에 소개해, 즉각 연재를 했으니, 미시마 유키오의 문단 데뷔는 1941년, 그의 나이 16세 때였다.

  우리나라에도 시작은 이이와 비슷한 사람들이 몇 명 있다. 1960년대에 많았는데, 당시에는 전국 규모의 고등학생 문사들을 대상으로 문학작품 경연을 많이 해 당선과 가작을 휩쓰는 몇 명은 이미 서로의 얼굴과 주소를 알아 성인이 되기 전에 서로 서신을 왕래하기도 했다. 당연히 시인 소설가가 된 이들은 문단에서도 지역과 학교를 달리하건만 형제급으로 친해 통음을 불사해가며 문학과 시절의 개똥철학을 나누면서 성장했다는, 이제는 전설이 된 이야기가 전해 내려온다. 1970년대에도 《학원》, 《학생중앙》 같은 잡지에서 소설 공모를 했다. 지금 기억나는 것이 염상섭처럼 교실에서 개구리 해부를 하는 단편이었다. 아마도 성X여사대부고 김X원이라는 여학생이 장원을 했던 걸로 기억한다. 이이는 대학을 졸업하고 신문사에 들어가 더 이상 소설은 쓰지 않은 걸로…. 나도 한때 총기있던 10대 시절에 읽어서 기억하고 있는 것뿐이다. 훗날 버스 정류장에서 우연히 두어번 보기도 했지만. 그게 다니까 별스러운 생각하지 마시라.

  그럼에도 우리나라에는 미시마 유키오 같은 이가, 이렇게 말하면 욕 좀 얻어듣겠지만, 없다. 쓰기만 하면 저절로 미문이 쏟아지는 작가. 결코 독자의 취향을 고려하지 않고 썼음에도 저절로 그렇게 되는 글을 무한생산할 수 있는 왕재수. 솔직히 이 정도면 왕재수 아냐? 살리에리가 모차르트를 얼마나 왕재수처럼 보았을지 이해가 간다니까? 물론 위에 인용한 16세 시절의 문장이 미문이라는 뜻은 아니다. 본격적인 감수성과 미문과 생각지도 않는 묘사가 나오려면 조금 더 시간이 흘러야 한다.

  16세의 유키오 군과:

  “그는 고양이의 매끄러운 머리가 자신의 턱을 문지를 때, 옅은 노란 빛으로 아른거리는 나른한 관능의 세계를 접한 듯한 느낌이 들었다. 그의 인간적 관심을 조금도 요구하지 않는 듯한 한순간의 몽롱한 관능적 세계” (<귀현> p.410)

  라는 수사 사이에는 10여년을 넘는 세월이 놓여 있다.


  근데 내 경우에, 일천한 문학적 (사시斜視일 지도 모르는)시각을 갖고 있는 아마추어 독자의 의견을 솔직하게 말하자면, 미시마 유키오는 문장. 그것이 전부다. 그것 때문에 이이가 쓴 소설의 내용이 내 마음에 맞는 경우가 단 한 번도 없었음에도 불구하고 읽는다. 사서 읽고, 도서관에 희망도서 신청해서 읽는다. 웃기게도 마음에 지독하게 들지 않지만 읽다가 때려 치우는 법도 없다.

  저 1970년대 초중반이었을 터인데, 안방 한 가운데를 뒹굴던 <금각사>가 내가 처음 읽은 미시마 유키오. 중대가리처럼 박박 깎은 중딩이 <금각사>를 읽으면서 재미를 알았겠어? 그냥 읽어 치운 거겠지. 하나도 기억나지 않고, 지금도 그렇지만 굳이 다시 읽고 싶지도 않다.

  《미시마 유키오》를 읽은 것도 그의 문장, 특별히 단편소설의 문장을 읽고 싶었기 때문이 1번이었고, 다음은 <우국>과 <우국> 속의 문장이 얼마나 찬란하길래 한 시절 우리나라의 국가대표급 소설가로 이름을 높였던 이가 글 도둑질을 해갔을까, 궁금했기 때문이다.

  표절 사건이 있을 당시 조정래인가가 인터뷰해서 영숙이가 한 중요한 잘못 중에 하나를 하필이면 “군국주의자의 작품”을 따 온 행위라고 말해 조금 의아하게 생각한 적이 있다. 그러면 먼저 애초에 그걸 우리말로 번역한 노시인의 앞선 작업을 비난하는 것이 맞지 않을까? 노시인이 자기보다 맏 누님 뻘, 숙모 뻘이라 슬쩍 뺀 것일까? 뭐 이렇게 생각하기도 했고, 


  <우국>. 읽다가 웃겨 죽을 뻔했다. 1961년 작품. 그의 나이 36세 때. 지독한 군국주의 시대. 전 국민을 집단으로 가스라이팅하여 일본의 경우 뻑 하면 할복자살의 명예를 얻으라 강요해대는 바람에 별것도 아닌 일로 자기 배를 갈라 창자가 쏟아지고 날카로운 군도에 창자벽이 찢어진 틈으로 물똥과 가스가 분출되어 더럽게 죽는 행위. 이걸 무사의 명예라고 생각하는, 아니지, 생각하게 만든 오랜 세월의 유구한 전통, 명예라는 이름의 가스라이팅 또는 최면. 대장, 큰창자가 찢기면 그냥 똥이 나오지 물똥이 아니라고? 웃기네. 대장에 도착하는 소화물은 액체에 가까운 죽상 상태. 대장이 하는 역할이 이 소화물에서 물을 뽑아 리사이클 하는 거다. 그래서 배변을 오래 참으면 물이 빠져나가 변비가 생기는 법. 창자를 가르면 물똥 나온다. 당연히 지독한 가스하고. 가스는 복강에도 팽만해 있어서 배를 찌른 순간부터 냄새가 코를 찔렀을 것이다. 미시마 유키오도 그랬고 다케야마 신지 중위도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다케야마 신지 중위는 자기 친구들 모두 1936년의 쿠데타에 가담했으면서도 자신은 막 결혼한 신혼인지라 죽지 말고 깨나 더 볶으라는 뜻으로 거사계획을 알려주지 않은 걸 아쉬워했다. 3일간 사태를 관망하던 다케야마는 내일 아침 자기가 병력을 지휘하여 친구들에 의한 구데타를 진압하는 작전에 투입될 것임을 알고 집에 돌아와, 목욕하고, 지상에서 마지막 술 한 잔 마시고, 아내 레이코와 한번 하고, 격렬하게 또 한 번 하지만 죽을 힘은 남길 정도로만 하고, 다시 목욕하고, 옷 갈아 입고, 군도를 꺼내 흰 천으로 칼 아래쪽을 둘둘 말아, 무릎을 꿇고 자기 왼쪽 옆구리를 푹 찌르고나서 얼마나 아픈지 억지로 칼날을 오른쪽까지 부욱 그은 다음, 뒤로 넘어가, 이젠 정신이 거의 나갔음에도 할복의 마지막 화룡점정을 하기 위해 칼을 뽑아 자기 목에 대고 그대로 쑤욱 밀어버린다.

  개 같은 교육을 받은 군국주의자 다케야마 중위는 그렇게 개처럼 죽었다고 치고, 자기만 죽으면 됐지, 왜 결혼 초야부터 꽃 같은 아내 레이코에게도 군인의 아내가 가야 할 길 운운해서, 마치 자기가 죽으면 레이코도 따라서 자결을, 철도 없고, 철도 들지 않은 친정 엄마가 시집갈 때 품에 넣어준 단도를 꺼내 자기 목, 울대와 양 빗장뼈 사이의 옴폭 파인 곳을 푹 찔러 죽게, 또다른 가스라이팅을 하느냐고. 물론 무대가 1936년 군국주의 파시즘이 하늘을 덮던 시절이라 그럴 수 있다고 쳐도, 미시마 유키오가 이 작품을 쓴 시기가 1961년, 아직 페미니즘이란 단어가 출현하지는 않았지만 “여성해방”이란 기치가 여성들의 손에 들린 시기였건만 어찌 일편의 개심도 없이 여성인 아내를 노예처럼 자기 묘에 함께 파묻을 부장인附葬人인 듯 아내가 죽겠다는 것에 그렇게도 흐뭇해 할 수 있는가 말이지. 확실히 미시마 유키오가 개자식이었던 건 맞는 모양이다. 문장만 죽여주는 개자식. 개가 쓴 글을 훔쳐 자기가 쓴 것처럼 시치미 뚝 떼고 작품에 써먹은 우리나라 그녀도 참 멋있어, 그지?

  문장의 힘은 무섭다. 미시마 유키오의 문장도 더럽게 무섭다. 그리하여 참 재수없는 작품들을 모은 이 단편집, 별점을 주면 당연히 스토리는 별 하나나 둘. 하지만 문장 때문에 두개 또는 세개를 보태 네 개의 별점을 준다. 하지만 아무 의미 없다. 하늘은 어찌 이런 자에게 천재를 주었을까? 그저 아마추어 한 명의 생각일 뿐이다. 미시마 유키오도 이걸 알면 무덤에서 킬킬대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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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자냥 2026-02-23 10:2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ㅋㅋㅋㅋㅋㅋㅋㅋ 그거마저 안 줬으면 너무 안쓰러울 거 같아서 그랬나 봅니다. 문장 진짜... 하....

Falstaff 2026-02-23 15:54   좋아요 0 | URL
아까 도서관에서 폰 보고 ˝그거˝가 뭔지 생각하기 시작했는데요, 아직도 ˝그거˝가 뭔지 혹시 쇤네가 짐작하는 ˝그거˝인지 거 참....
휴대폰으로 답글 다는 게 익숙하지 않아서 속만 끙끙 앓았던 멍청 폴. ㅋㅋㅋ

잠자냥 2026-02-23 16:21   좋아요 0 | URL
아이참 천재적 재능이유 ㅋㅋㅋ 술 좀 깨슈 ㅋㅋㅋㅋㅋㅋㅋ
 
말라볼리아가의 사람들 (무선)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112
조반니 베르가 지음, 김운찬 옮김 / 문학동네 / 2013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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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반니 베르가. 누군지 몰랐다. 이 책이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112번을 달고 출간되었을 때, 이걸 사 읽을까 말까 잠깐 생각하다가 그만 뒀는데, 왜 그랬는지는 전혀 기억나지 않는다. 표지 보니까 그림이 좋아 당시 살까 말까 했던 게 생각났다. 책을 빌려 앞날개를 좀 읽어보니 1840년생. 아휴. 오래 전 사람이네. 에밀 졸라, 표트르 차이콥스키, 클로드 모네와 동갑이다. 이외에도 오귀스트 로댕과 알퐁스 도데도 40년생이란다. 그렇군.

  시칠리아에서 태어난 귀족의 후예이며 소부르주아. 스페인 동북부 아라곤의 베르가스 또는 바르가스 가문이 13세기 베르디의 <시칠리아의 저녁 기도> 시절에 이주해 왔다니까 무려 6백년이 넘게 시칠리아 귀족으로 살았다. 그럼 이주민이긴 해도 토박이인 거 맞지? 조반니 베르가는 폰타나비앙카의 남작이라는 칭호를 쓸 권리가 있었지만 할아버지가 이탈리아 통일을 위한 비밀조직 카르보나리의 일원이어서 그랬는지 자신의 성향이 좀 왼편이어서 그랬는지 하여간 칭호를 사용하지 않았다. 이이 보다 한 세대 후배이며 <표범: 민음사세계문학 456번>을 출간한 작가 주제페 토마시가 11대 람페두사 공작, 12대 팔마 공작을 칭한 것과 비교하면 그래도 마음에 든다.


  이 책을 읽으면서, 처음엔 당연히 전혀 몰랐던 건데, 익숙한 등장인물이 나오는 거였다. 당나귀가 끄는 마차로 주로 포도주를 운반하는 마부 알피오. 심지가 굳고 성실한 청년이다. 포도주가 가는 곳은 밀수꾼이나 포도주 생산업자로부터 (결혼하지 않은 신분이라는 의미로) 처녀가 운영하는 술집까지. 술집을 운영하면서 미장가(장가들지 않은) 청년과 홀아비, 간혹 유부남의 애간장을 녹이는 처녀 술집 주인 이름이 산투차. 무대는 시칠리아의 농촌. 좀 귀에 익지? 피에트로 마스카니가 작곡한 <시골의 기사도>. 흔히 <카발레리아 루스티카나>라고 불리는 오페라의 주인공들이다. 각주 21번에 설명하기를 ‘산투차’는 “성녀를 뜻하는 ‘산타’에 부정적인 뉘앙스가 담긴 접미사를 붙인 별명”이란다.

  베르가는 1860년에 연극 초연한 희곡 <카발레리아 루스티카나>를 썼고, 10년 후에 이걸 마스카니가 자신의 첫 오페라 작품으로 작곡해 공모전에서 1등 먹은 건 다 아시지? 아마도 세상에서 가장 유명한 베리즈모 오페라일 걸? 고 정여사도 무척 좋아하셨지. 편히 안식하시기를.

  그래서 위키피디아 검색해보니까, 조반니 베르가가 문학을 하기로 작정을 할 당시에 아빠 뒤마의 영향을 받았고, 같은 나이의 프랑스 작가들처럼 자연스럽게 자연주의 작품을 쓰게 되었으며, 그게 시칠리아의 거친 기질과 역사에 힘입어 벤데타 문화를 기반으로, 피바람부는 잔혹극인 베리즈모 장르를 만든 일단의 무리 가운데 한 명이란다. 이 모임 가운데 또 한 명 익숙한 이름이 있으니 작가이면서 작곡가이기도 해서 <메피스토펠레>를 쓴 아리고 보이토. 아이고, 깜짝이야.

  이탈리아 판 위키피디아 보면 베르가 페이지가 무지하게 장황하건만 우리야 이 정도면 충분할 듯. 이것도 너무 길었나?


  제목이 “말라볼리아가의 사람들”이니까 말라볼리아 댁네들이다. 시칠리아 동부 카타니아에 속하는 작은 마을 트레차를 무대로 하는 작품이지만 잘 나가던 한 시절엔 꽤나 떠르르르 했던 집안이었다고 주장한다. 그래봤자 대대로 착하고 훌륭한 바닷가 사람들이란다. 이상하지? 착하고 훌륭한 사람들이 떠르르르한 거 보셨어? 하여튼 작품의 막이 오르면 그래도 바닷가 어촌에서는 중상 정도의 괜찮은 집안이다. 본당 명부에는 ‘토스카노’라고 적혀 있는 걸로 봐서 이탈리아 중부 피렌체를 주도로 하는 토스카나에서 왔던 이들인가 보다. 물론 그냥 짐작이다

  이 가족은 가장 파드론 느토니와 아들/며느리인 바스티아노/롱가, 다섯 명의 손주들 느토니, 루카, 폴로메나, 알레시오, 로살리아로 구성되어 있다. 할아버지 파드론 느토니는 그냥 ‘파드론’이라고 하자. 맏손자 이름도 느토니라서. 커다란 모과나무가 있는 넓고 튼튼한 집에서 살며 낡은 고기잡이배 프로비텐차 호를 가지고 있다. 대대로 어부니까 어업이 생업이고 때에 따라 이것저것 가리지 않는다. 아이가 다섯, 모두 여덟 식구의 대가족이 먹고 살려면 일을 가릴 수 없다. 모과나무 집은 며느리 마루차 애칭 롱가가 시집올 때 지참금 대신 가져온 거라서 아직도 실소유주는 마루차 이름으로 되어 있다.

  덩치가 크고 건장해 힘도 장사라서 동네사람들 한테 애칭 ‘바스티아나초’라고 불리는 아들 바스티아노는 아버지를 거역하는 법이 없는 우직한 성격이다. 며느리 롱가는 둘도 없는 훌륭한 주부. 근데 맏손자 느토니가 좀 문제다. 키 크고 덩치도 좋고 힘도 대단한데다가 어부 집안 맏이답게 배를 모는 솜씨가 장난이 아니지만 딱 한 가지, 스무 살이나 먹은 젊은 것이 게으르다. 게을러도 너무 게으르다. 둘째 손자 루카는 큰 아이하고 비하면 엄청나게 현명하고 사리도 밝고, 말도 잘 듣고, 언제나 좋은 의견을 내며 세상을 똑바로 살려고 애쓴다. 이런 아이들이 대개 명이 짧지? 이 작품에서도 예외는 아니다. 셋째 팔로메나, 약칭 ‘메나’는 언제나 베틀에 앉아 베를 짜는 성실하고 착한 딸. 그래서 별명이 아가타 성녀이다. 첫째부터 셋째까지는 연년생. 메나가 그래서 열여덟 살. 넷째 알레시오는 할아버지를 쏙 빼닮은 코흘리개. 할아버지를 닮았으니 당연히 일 잘하고, 성실하고, 잘 생기고 생활력 강한 청년으로 성장한다. ‘리아’라고 불리는 막내 로살리아는 아직 물고기인지 사람인지 잘 구별이 가지 않는 젖먹이지만 작품이 끝날 때는 한 미모 하는 바람에 불행을 피하지 못하는 캐릭터.


  조반니 베르가가 자연주의 또는 베리즈모 장르의 선구자니까 이 말라보리아 집안이 잘 될 수 없는 팔자를 타고 났다는 건 당연하다. 일단 불행이 찾아와야 실의와 일탈과 더 큰 상실이 잇따라 도래해 잔혹극이든, 막장 드라마든 생길 것이니까. 시간적 공간은 1860년대에 시작한다.

  가난한 시칠리아 섬에서도 작은 마을 트레차 주민들의 가장 큰 애로사항은 당연히 먹고 사는 일이다. 마을 주민 가운데 그나마 살기 괜찮은 사람들로 말할 것 같으면 교활한 면서기 돈 실베스트로, 약국 주인 돈 프랑코, 본당 주임신부 돈 잠마리아, 세관의 하급 관리 돈 미켈레, 그리고 농부는 농분데 주업이 농업인지 고리대금업인지 구분이 가지 않는 크로치피소. 이들과 비할 수는 없지만 그래도 오첩반상은 차려먹는 절름발이 티노. 이름 앞에 ‘돈’자 붙으면 그래도 함부로 악역을 시키기 꺼림칙하니까 말라볼리아 집안 사람들을 불행하게 만드는 인물은 셰익스피어 시대 이후로 늘 그랬듯이 고리대금 하는 구두쇠, 수전노 악당 크로치피소.

  1863년에 파드로의 맏손자 느토니가 해군에 징집된 사이 크로치피소가 파드론 느토니에게 잠두를 판다. 잠두? 蠶豆. ‘잠’이 누에. 그러니까 누에콩이다. 크로치피소가 직접 농사일을 하는 건 아니고 누나의 아들 그러니까 조카한테 통상적으로 주는 품삯의 절반도 안 되는 돈만 주고 일을 시키면서도 물 탄 포도주 한 모금도 안 먹이는 악당 가운데 악당이다. 이 해에 가뭄이 심하게 들어 누에콩 농사가 완전 망쳐버려 간신히 수확한 얼마 되지 않는 것도 알고는 먹지 못할 형편없는 것이었다. 근데 가뭄이 시칠리아만 그런 것이 아니라 전 이탈리아가 다 마찬가지여서 파드로는 누에콩을 사 저 북동 이탈리아 지역인 트리에스테로 가져가 팔면 꽤 돈이 남을 것이라는 계산이 나왔다. 근데 종자돈이 있나? 하여 다달이 갚기로 하고 살마 당 2온차 1리라, 헛갈리지? 그냥 거금을 들여 샀다고 여기면 된다. 근데 고리대금업자를 겸하는 인간이 그냥 물건을 넘길 수는 없다. 그리하여 파드로가 며느리 롱가의 재산인 모과나무 집을 담보로 누에콩을 사 온다. 40온차. 집 한 채 값이다. 촌 집이긴 하지만. 그리하여 잘생기고 건장하고 힘 센 아들 바스티아노가 크로치피소의 큰조카 메니코와 함께 낡은 프로비덴차 호에 올라 바닷길로 아드리아해를 바라보고 긴 항해를 떠난다. 어떻게 됐을까? 결론만 말해, 풍랑을 만나 좌초해 둘 다 죽었다. 이제 실제적인 가장을 잃은 말라볼리아 가족의 본격적인 비극이 막을 올린다.


  파드로가 크로치피소한테 가서 사정을 해 부활절까지 납기를 끌고, 어찌어찌 하고, 우여곡절 끝에 크로치피소는 또 한 명의 악당 오리다리라는 별명의 절름발이 티노에게 채권을 판 척해버린다. 자기 손에는 피 안 묻히겠다는 거지 뭐. 그래서 결국 집 뺏기고 작은 집으로 세 들어 나간다. 그나마 다행으로 맏손자가 제대해 돌아와 멸치를 잡아 돈을 만진다. 안 되는 집은 어떻게 해도 안 되는 법이라 잘 나가는 순간, 똑똑하고 성실한 둘째 아들 루카도 해군으로 나갔다가 프랑스와 전투 중에 전사해버리고 엄마마저 1866년이든가 콜레라 팬데믹 때 죽는다.

  여기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어릴 때 게을렀던 맏손자 느토니도 할아버지가 쇠약해지자 본성을 드러내기 시작해 일도 안 하고 어찌어찌 하다가 몇 년 동안 콩밥을 먹는 신세로 떨어지고 이 집구석은 날이 갈수록 태산만 앞에 나타나는데, 어떠셔? 좀 궁상맞겠지?

  하여튼 이런 건 말로 백 번 하는 것보다 한 번 직접 읽어보는 게 낫긴 한데, 아무래도 스타일이 좀 예스러워 읽어보시라고 적극 권하기도 뭐하고 그렇다. 이탈리아 문학사에서는 한 페이지를 장식할 듯한데 이게 지중해와 수에즈 운하, 인도양, 태평양을 건너 동아시아까지 오면 뭐 꼭 읽어볼 필요가 있을까 싶기도 하고…. 베리즈모 오페라 좋아하시는 분들은 읽어보시는 게 좋을 것 같기도 하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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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amoo 2026-02-20 09:3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이거...꽤 됐는데...읽다가 관뒀어요. 드럽게 재미없더라구요~~^^;;

Falstaff 2026-02-20 16:19   좋아요 1 | URL
ㅋㅋㅋ 이해합니다. 스타일이 너무 구식이라 베리즈모 팬 아니면 그리 반갑지 않을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