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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시마 유키오 - 우국·한여름의 죽음 외 22편 ㅣ 현대문학 세계문학 단편선 41
미시마 유키오 지음, 양윤옥 옮김 / 현대문학 / 2025년 11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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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편 분량의 <한여름의 죽음>과 23편의 단편소설을 실었다.
문장이 날아 다닌다. 그저 미문을 생산하는 것이 아니라, 다른 작가들처럼 글 한 줄을 생각해내기 위하여 온갖 궁상을 떨면서 문학하는 삶의 고난 운운하지 않고, 그저 저절로 섬세한 미문이 흘러나오는 거 같다. 내일 독후감을 올릴 중국의 젊은 작가 왕웨이롄도 문장이 아름답기는 하나 작정하고 작가가 미문을 생산해 독자가 그렇게 느낄 수 있게 만들려고 애쓴 결과물을 읽는 기분이 든다. 같은 미문이라도 독자가 읽을 때는 이렇게 다르다. 미시마처럼 저절로 경탄스러운 미문을 만들 수 있는 극소수의 작가에게 영재, 천재의 수식을 붙이는 거겠지.
미시마 유키오의 작품을 쓴 시기별로 모았다. 그리하여 제일 앞에 실린 단편이 <꽃이 한창인 숲>. 얼핏 하이쿠 같은 느낌이 드는 제목이지만, 내용은 에세이와 소설의 중간 형식이다. 조금 인용해보겠다.
“추억은 이미 지나간 삶의 빈 허물에 지나지 않는 게 아닐까. 그것이 미래에 과실果實 역할을 하는 경우가 있다고 해도 이미 현재를 잃어버린 쇠락한 인간을 위한 것뿐이지 않은가, 하는 식으로. 열병 같은 젊음은 그런 생각에서 무턱대고 긍정을 찾아내려는 경향을 보이게 마련이다.” (<꽃이 한창인 숲> p.9)
이 작품을 썼을 때 미시마 유키오의 나이 16세. 43페이지에 달하는 단편소설을 16세 소년이 썼다는 것도 작가의 비범을 드러내는 것이지만 부르주아 가족의 풍부한 경제적 문화적 누림과 이의 세습에도 불구하고 이런 가족 특유의 건조함 같은 것을 대단한 수준의 유려함으로 묘사했다. 당시가 고등학교 1학년 때였는데, 국어 교사가 미시마의 이 작품을 읽고 자신도 동인으로 활동하고 있는 잡지에 소개해, 즉각 연재를 했으니, 미시마 유키오의 문단 데뷔는 1941년, 그의 나이 16세 때였다.
우리나라에도 시작은 이이와 비슷한 사람들이 몇 명 있다. 1960년대에 많았는데, 당시에는 전국 규모의 고등학생 문사들을 대상으로 문학작품 경연을 많이 해 당선과 가작을 휩쓰는 몇 명은 이미 서로의 얼굴과 주소를 알아 성인이 되기 전에 서로 서신을 왕래하기도 했다. 당연히 시인 소설가가 된 이들은 문단에서도 지역과 학교를 달리하건만 형제급으로 친해 통음을 불사해가며 문학과 시절의 개똥철학을 나누면서 성장했다는, 이제는 전설이 된 이야기가 전해 내려온다. 1970년대에도 《학원》, 《학생중앙》 같은 잡지에서 소설 공모를 했다. 지금 기억나는 것이 염상섭처럼 교실에서 개구리 해부를 하는 단편이었다. 아마도 성X여사대부고 김X원이라는 여학생이 장원을 했던 걸로 기억한다. 이이는 대학을 졸업하고 신문사에 들어가 더 이상 소설은 쓰지 않은 걸로…. 나도 한때 총기있던 10대 시절에 읽어서 기억하고 있는 것뿐이다. 훗날 버스 정류장에서 우연히 두어번 보기도 했지만. 그게 다니까 별스러운 생각하지 마시라.
그럼에도 우리나라에는 미시마 유키오 같은 이가, 이렇게 말하면 욕 좀 얻어듣겠지만, 없다. 쓰기만 하면 저절로 미문이 쏟아지는 작가. 결코 독자의 취향을 고려하지 않고 썼음에도 저절로 그렇게 되는 글을 무한생산할 수 있는 왕재수. 솔직히 이 정도면 왕재수 아냐? 살리에리가 모차르트를 얼마나 왕재수처럼 보았을지 이해가 간다니까? 물론 위에 인용한 16세 시절의 문장이 미문이라는 뜻은 아니다. 본격적인 감수성과 미문과 생각지도 않는 묘사가 나오려면 조금 더 시간이 흘러야 한다.
16세의 유키오 군과:
“그는 고양이의 매끄러운 머리가 자신의 턱을 문지를 때, 옅은 노란 빛으로 아른거리는 나른한 관능의 세계를 접한 듯한 느낌이 들었다. 그의 인간적 관심을 조금도 요구하지 않는 듯한 한순간의 몽롱한 관능적 세계” (<귀현> p.410)
라는 수사 사이에는 10여년을 넘는 세월이 놓여 있다.
근데 내 경우에, 일천한 문학적 (사시斜視일 지도 모르는)시각을 갖고 있는 아마추어 독자의 의견을 솔직하게 말하자면, 미시마 유키오는 문장. 그것이 전부다. 그것 때문에 이이가 쓴 소설의 내용이 내 마음에 맞는 경우가 단 한 번도 없었음에도 불구하고 읽는다. 사서 읽고, 도서관에 희망도서 신청해서 읽는다. 웃기게도 마음에 지독하게 들지 않지만 읽다가 때려 치우는 법도 없다.
저 1970년대 초중반이었을 터인데, 안방 한 가운데를 뒹굴던 <금각사>가 내가 처음 읽은 미시마 유키오. 중대가리처럼 박박 깎은 중딩이 <금각사>를 읽으면서 재미를 알았겠어? 그냥 읽어 치운 거겠지. 하나도 기억나지 않고, 지금도 그렇지만 굳이 다시 읽고 싶지도 않다.
《미시마 유키오》를 읽은 것도 그의 문장, 특별히 단편소설의 문장을 읽고 싶었기 때문이 1번이었고, 다음은 <우국>과 <우국> 속의 문장이 얼마나 찬란하길래 한 시절 우리나라의 국가대표급 소설가로 이름을 높였던 이가 글 도둑질을 해갔을까, 궁금했기 때문이다.
표절 사건이 있을 당시 조정래인가가 인터뷰해서 영숙이가 한 중요한 잘못 중에 하나를 하필이면 “군국주의자의 작품”을 따 온 행위라고 말해 조금 의아하게 생각한 적이 있다. 그러면 먼저 애초에 그걸 우리말로 번역한 노시인의 앞선 작업을 비난하는 것이 맞지 않을까? 노시인이 자기보다 맏 누님 뻘, 숙모 뻘이라 슬쩍 뺀 것일까? 뭐 이렇게 생각하기도 했고,
<우국>. 읽다가 웃겨 죽을 뻔했다. 1961년 작품. 그의 나이 36세 때. 지독한 군국주의 시대. 전 국민을 집단으로 가스라이팅하여 일본의 경우 뻑 하면 할복자살의 명예를 얻으라 강요해대는 바람에 별것도 아닌 일로 자기 배를 갈라 창자가 쏟아지고 날카로운 군도에 창자벽이 찢어진 틈으로 물똥과 가스가 분출되어 더럽게 죽는 행위. 이걸 무사의 명예라고 생각하는, 아니지, 생각하게 만든 오랜 세월의 유구한 전통, 명예라는 이름의 가스라이팅 또는 최면. 대장, 큰창자가 찢기면 그냥 똥이 나오지 물똥이 아니라고? 웃기네. 대장에 도착하는 소화물은 액체에 가까운 죽상 상태. 대장이 하는 역할이 이 소화물에서 물을 뽑아 리사이클 하는 거다. 그래서 배변을 오래 참으면 물이 빠져나가 변비가 생기는 법. 창자를 가르면 물똥 나온다. 당연히 지독한 가스하고. 가스는 복강에도 팽만해 있어서 배를 찌른 순간부터 냄새가 코를 찔렀을 것이다. 미시마 유키오도 그랬고 다케야마 신지 중위도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다케야마 신지 중위는 자기 친구들 모두 1936년의 쿠데타에 가담했으면서도 자신은 막 결혼한 신혼인지라 죽지 말고 깨나 더 볶으라는 뜻으로 거사계획을 알려주지 않은 걸 아쉬워했다. 3일간 사태를 관망하던 다케야마는 내일 아침 자기가 병력을 지휘하여 친구들에 의한 구데타를 진압하는 작전에 투입될 것임을 알고 집에 돌아와, 목욕하고, 지상에서 마지막 술 한 잔 마시고, 아내 레이코와 한번 하고, 격렬하게 또 한 번 하지만 죽을 힘은 남길 정도로만 하고, 다시 목욕하고, 옷 갈아 입고, 군도를 꺼내 흰 천으로 칼 아래쪽을 둘둘 말아, 무릎을 꿇고 자기 왼쪽 옆구리를 푹 찌르고나서 얼마나 아픈지 억지로 칼날을 오른쪽까지 부욱 그은 다음, 뒤로 넘어가, 이젠 정신이 거의 나갔음에도 할복의 마지막 화룡점정을 하기 위해 칼을 뽑아 자기 목에 대고 그대로 쑤욱 밀어버린다.
개 같은 교육을 받은 군국주의자 다케야마 중위는 그렇게 개처럼 죽었다고 치고, 자기만 죽으면 됐지, 왜 결혼 초야부터 꽃 같은 아내 레이코에게도 군인의 아내가 가야 할 길 운운해서, 마치 자기가 죽으면 레이코도 따라서 자결을, 철도 없고, 철도 들지 않은 친정 엄마가 시집갈 때 품에 넣어준 단도를 꺼내 자기 목, 울대와 양 빗장뼈 사이의 옴폭 파인 곳을 푹 찔러 죽게, 또다른 가스라이팅을 하느냐고. 물론 무대가 1936년 군국주의 파시즘이 하늘을 덮던 시절이라 그럴 수 있다고 쳐도, 미시마 유키오가 이 작품을 쓴 시기가 1961년, 아직 페미니즘이란 단어가 출현하지는 않았지만 “여성해방”이란 기치가 여성들의 손에 들린 시기였건만 어찌 일편의 개심도 없이 여성인 아내를 노예처럼 자기 묘에 함께 파묻을 부장인附葬人인 듯 아내가 죽겠다는 것에 그렇게도 흐뭇해 할 수 있는가 말이지. 확실히 미시마 유키오가 개자식이었던 건 맞는 모양이다. 문장만 죽여주는 개자식. 개가 쓴 글을 훔쳐 자기가 쓴 것처럼 시치미 뚝 떼고 작품에 써먹은 우리나라 그녀도 참 멋있어, 그지?
문장의 힘은 무섭다. 미시마 유키오의 문장도 더럽게 무섭다. 그리하여 참 재수없는 작품들을 모은 이 단편집, 별점을 주면 당연히 스토리는 별 하나나 둘. 하지만 문장 때문에 두개 또는 세개를 보태 네 개의 별점을 준다. 하지만 아무 의미 없다. 하늘은 어찌 이런 자에게 천재를 주었을까? 그저 아마추어 한 명의 생각일 뿐이다. 미시마 유키오도 이걸 알면 무덤에서 킬킬대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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