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욘 티히의 우주 일지 민음사 스타니스와프 렘 소설
스타니스와프 렘 지음, 이지원 옮김 / 민음사 / 2022년 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

  이 책은 읽지 말든지, 읽더라도 꽤 오랜 시간이 지난 다음에 읽는 것이 좋지 않았을까 싶다. 스타니스와프 렘의 많은 팬들은 우리나라 출간 기준으로 《이욘 티히의 우주 일지》를 먼저 읽고 약 1년 후에 《사이버리아드》를 읽었을 것이다. 그리하여 먼저 《이욘 티히…》를 통해 스페이스 유머의 진수를 만끽해 상대적으로 후속작인 《사이버리아드》는 덜 재미있는 책이라는 느낌이 들었을 것 같다. 나는 읽는 순서가 뒤바뀌었다. 그래서 《이욘 티히…》보다 《사이버리아드》를 더 재미있고, 훨씬 더 “황당한 즐거움”을 느끼면서 읽었다고 기억한다. 그래서 아쉽다. 이 책도 한 5년 정도 더 지난 다음에 읽었으면 훨씬 좋았지 않나 싶어서. 나름대로 이 책을 언제 읽을까, 궁리하다가 지금 순서에 읽어야 성탄절 딱 열 달 전인 2월 25일, 성모님이 동정의 몸에 예수 그리스도의 씨톨을 착상한 성임절, 기쁘다 구주 배셨네, 더 쉽게 얘기해서 내 생일날 아침에 업로드 할 수 있을 것이라, 아예 노골적으로 날짜를 꼽아 읽었다. 심보가 고약했으니 책이 오히려 더 재미가 적었는지도 모르겠다. 하여간 세상에 마음대로 되는 일이 없다니까. 남들 다 맞는 로또도 한 장 안 맞아요!


  독후감을 쓰기 전에 이욘 티히가 누구인지 알고 시작하는 편이 좋겠다.

  전 은하계에 알려진 저명한 우주여행가이며, 먼 은하계 여행선의 선장, 운석과 행성 사냥꾼, 지치지 않는 열정의 연구자이며 8만 3개에 이르는 지구 유사 행성의 발견자, 큰곰자리와 작은곰자리 대학교의 명예박사, 작은 행성 보호 단체 및 유수 단체의 회원이며 은하수 및 성운 훈장 수훈자로 지구별의 역사를 수놓은 소수의 위대한 모험가 클럽의 일원이다.

  그는 알려진 것만 해서 스물여덟 번의 우주 모험을 떠났으며, 그때마다 일지를 작성해 모두 스물여덟 편의 《우주 일지》, 우주 사전 및 간략한 보기로 구성한 부록을 포함해 전체 4절판으로 87권에 달하는 방대한 작품을 남겼지만 이를 제대로 편집하기란 대단히 어려운 일이라 쉽게 공개되지는 못할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후대의 학자들이 그렇다고 티히의 업적을 암흑 속에 방치해두는 건 곤란하다고 판단해 이 가운데 열두 편의 우주일지를 선별, 요약해 공개한 것이 오늘 독후감을 쓰는 《이욘 티히…》이다.

  그런데 오랜 세월 출간되지 않는 바람에 여러 위작 판본까지 나오는 등 티히의 명성을 실추시키기도 했다. 실제로 26번째 일지는 확실히 위작인 것이 판명되어 원본에서도 삭제되었다고. 심지어 《이욘 티히…》는 실제로 이욘 티히가 자기 손으로 쓴 일지가 아니라 Lunar Excursion Module(LEM)이라고 하는 인공지능이 장착된 기계가 쓴 것이라는 의견도 있단다. 아이고머니나. 근데 모르긴 해도 LEM, 렘, 스타니스와프 렘이 쓴 게 맞는 것 같기도 하다.


  그래 이 책 《이욘 티히…》에서는 티히 선장의 일지 열두 편과 나이 들어 쓴 것으로 보이는 회고록의 회상 네 편, 인공 지능을 가진 우주 생명체 창조의 꿈을 아주, 아주 조금 이룬 <디아고라스 박사> 이야기와 <우주를 구하자>는 대 우주 호소문을 실었다. 당연히 열두 편의 일지는 위에서 말한대로 원본 일지를 몽땅 싣지 않고 축약한 것으로 보이며, 은하계 안과 밖을 광속 이상의 속도로 누비고 다닌 선장 입장에서는 좀스럽게도 한갓 행성인 지구별의 여러 잡스러운 체제와 문학과 철학과 정치와 기타 등등을 비유해 놓은 것처럼 읽힌다.

  그런데 문제는 독후감 초장에 얘기했듯이, 만일 이 책 《이욘 티히…》를 《사이버리아드》에 앞서 읽었다면 무릎을 치며 가갈갈갈 웃으며 재미나게 읽었을 것을, 눈으로는 분명 희극적 장면임에도 불구하고 《사이버리아드》에서 이미 LEM 식 코미디 촌편에 익숙해 있어서 머리로는 훨씬 덜 재미있었다는 거. 어떤 장면에서는미국이 만든 달 탐사 모듈, 렘LEM이 인간들이 재미있게 읽어주기 바라면서 썼을 콩트를 오히려 심각하게 읽고 싶어 하는 걸 감지했을 정도이다.


  예를 들어 숱한 사람들이 영생을 원하지? 몸의 영생은 미친 놈들이나 바라는 거고 영혼의 영생. 정말로 사람한테 영혼이라는 것이 있다면 그렇다는 얘긴데, 삶은 시궁창 속에서 지옥 같은 날들로 고통스럽게 지내지만, 사는 동안에 진심으로 주님한테 귀의해 끊임없이 십일조 바쳐가며 기도하기만 하면 영혼이 천국에 올라가 그곳에서 영생하리라는 꿈을 꾸지 않나? 아니라고? 당신은 아니더라도 실로 많은 사람들이 예수천국을 바라며 영혼의 영생을 기원한다는 걸 부정하지는 못하리라, 안 그려?

  좋아, 좋아. 그럴 수 있다. 그런데 내가 달 탐사 모듈 LEM에게 들은 다음에 잘 써먹는 구절을 다시 한번 쓰자면, 단위야 어떻게 되든 10의 600제곱 크기의 공간을 염두에 두고 티히의 우주일지를 대신 써준 LEM은, LEM이 본격적으로 창작하기 시작하는 25세기에, 한 엉뚱한 인간, 디캔더 교수가 영혼수집 기계를 만들어 실제로 자기 마누라의 영혼을 뽑아 주먹만 한 티타늄 상자에 집어넣어 티히네 집으로 가져왔다는 거다. 그래 티히에게 제안하기를, 이렇게 인간한테 영혼을 추출해 놓으면 실제로 인간의 오랜 꿈인 영혼의 영생을 이룰 수 있지 않느냐, 그러니 이를 상업화하면 대박을 칠 터, 안타깝게도 자기 호주머니가 비었으니 티히 선생이 자금을 대고 추후 이익금의 49퍼센트를 취하시라, 제안을 한다. 그가 티히에게 자기가 이룬 성취를 말한다.


  “저는 전 시대를 통틀어서 가장 뛰어난 사상가들이 목표했던 바를 성취했을 따름입니다. 티히, 당신도 그런 걸 읽으신 적이 있을 텐데요…, 종말, 끝 앞에서의 공포, 가장 풍부히 무엇이든 열매 맺을 수 있는 정신의 소멸… 오랜 생애의 끝에 말입니다. 누구나 이걸 되풀이하고 있죠. 그들의 소원은 바로 영원과 대면하는 것입니다. 제가 바로 그 접점을 만들었죠. 티히, 어쩌면 그들은요…? 가장 뛰어난 인물들, 천재적인 사람들은 어떻겠습니까?” (p.462~463)


  티히의 생각은 이렇다. 영혼이 영원히 영생한다면, 불과 3만년 후에 닥쳐 인류 멸종을 확정시킬 대 빙하기도 이 불쌍한 영생의 영혼들이 목격을 해야 할 것이고, 그래도 우주 공간에서 사라지지 못하고 남아, 태양이 팽창해 지구를 불덩이로 만들고, 급기야 태양이 자신의 중력으로 지구를 확 빨아들여 휘리릭 소멸시키는 꼬라지도 보아야 할 터이다. 우주선 선장만 몇 십 년 했던 이욘 티히는 기가 차지도 않는 거였다. 30에서 50억년 후 태양이 폭발하여 왜성으로 찌그러진 다음에도 여전히 우주를 떠돌 영혼은 암흑 천지에 영하 2백도에 육박하는 찬 공간을 유영해야 하는, 그러면서도 결코 소멸되지 않는 불쌍한 유령일 터인데, 디캔더 교수님, 그래도 괜찮으시겠어요?

  이욘 티히는 딱 잘라 대답한다.

  “사람들은 영생을 갈구하지 않습니다. (중략) 그냥, 단순하게, 죽고 싶지 않은 것뿐이에요. 그냥 살고 싶은 겁니다”(p.464)


  이런 것 말고도 다양하고 교묘하게 인간의 문화와 문명과 체제를 비틀어버린다. 이렇게 재미있는 텍스트를 불쌍하게도 전에 읽었던 작품 때문에 제대로 느끼지 못하고 마는 독자가 비단 나 한 명일까? 그렇기를 바란다. 다들 나보다는 훨씬 재미있게 읽기 바란다.

  난 그저 노래나 한 번 더 부르고 독후감을 끝내야겠다.

  “기쁘다 구주 배셨네. 만백성 찬송하여라!”

  "Exultate, Jubilate!"


.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