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라볼리아가의 사람들 (무선)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112
조반니 베르가 지음, 김운찬 옮김 / 문학동네 / 2013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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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반니 베르가. 누군지 몰랐다. 이 책이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112번을 달고 출간되었을 때, 이걸 사 읽을까 말까 잠깐 생각하다가 그만 뒀는데, 왜 그랬는지는 전혀 기억나지 않는다. 표지 보니까 그림이 좋아 당시 살까 말까 했던 게 생각났다. 책을 빌려 앞날개를 좀 읽어보니 1840년생. 아휴. 오래 전 사람이네. 에밀 졸라, 표트르 차이콥스키, 클로드 모네와 동갑이다. 이외에도 오귀스트 로댕과 알퐁스 도데도 40년생이란다. 그렇군.

  시칠리아에서 태어난 귀족의 후예이며 소부르주아. 스페인 동북부 아라곤의 베르가스 또는 바르가스 가문이 13세기 베르디의 <시칠리아의 저녁 기도> 시절에 이주해 왔다니까 무려 6백년이 넘게 시칠리아 귀족으로 살았다. 그럼 이주민이긴 해도 토박이인 거 맞지? 조반니 베르가는 폰타나비앙카의 남작이라는 칭호를 쓸 권리가 있었지만 할아버지가 이탈리아 통일을 위한 비밀조직 카르보나리의 일원이어서 그랬는지 자신의 성향이 좀 왼편이어서 그랬는지 하여간 칭호를 사용하지 않았다. 이이 보다 한 세대 후배이며 <표범: 민음사세계문학 456번>을 출간한 작가 주제페 토마시가 11대 람페두사 공작, 12대 팔마 공작을 칭한 것과 비교하면 그래도 마음에 든다.


  이 책을 읽으면서, 처음엔 당연히 전혀 몰랐던 건데, 익숙한 등장인물이 나오는 거였다. 당나귀가 끄는 마차로 주로 포도주를 운반하는 마부 알피오. 심지가 굳고 성실한 청년이다. 포도주가 가는 곳은 밀수꾼이나 포도주 생산업자로부터 (결혼하지 않은 신분이라는 의미로) 처녀가 운영하는 술집까지. 술집을 운영하면서 미장가(장가들지 않은) 청년과 홀아비, 간혹 유부남의 애간장을 녹이는 처녀 술집 주인 이름이 산투차. 무대는 시칠리아의 농촌. 좀 귀에 익지? 피에트로 마스카니가 작곡한 <시골의 기사도>. 흔히 <카발레리아 루스티카나>라고 불리는 오페라의 주인공들이다. 각주 21번에 설명하기를 ‘산투차’는 “성녀를 뜻하는 ‘산타’에 부정적인 뉘앙스가 담긴 접미사를 붙인 별명”이란다.

  베르가는 1860년에 연극 초연한 희곡 <카발레리아 루스티카나>를 썼고, 10년 후에 이걸 마스카니가 자신의 첫 오페라 작품으로 작곡해 공모전에서 1등 먹은 건 다 아시지? 아마도 세상에서 가장 유명한 베리즈모 오페라일 걸? 고 정여사도 무척 좋아하셨지. 편히 안식하시기를.

  그래서 위키피디아 검색해보니까, 조반니 베르가가 문학을 하기로 작정을 할 당시에 아빠 뒤마의 영향을 받았고, 같은 나이의 프랑스 작가들처럼 자연스럽게 자연주의 작품을 쓰게 되었으며, 그게 시칠리아의 거친 기질과 역사에 힘입어 벤데타 문화를 기반으로, 피바람부는 잔혹극인 베리즈모 장르를 만든 일단의 무리 가운데 한 명이란다. 이 모임 가운데 또 한 명 익숙한 이름이 있으니 작가이면서 작곡가이기도 해서 <메피스토펠레>를 쓴 아리고 보이토. 아이고, 깜짝이야.

  이탈리아 판 위키피디아 보면 베르가 페이지가 무지하게 장황하건만 우리야 이 정도면 충분할 듯. 이것도 너무 길었나?


  제목이 “말라볼리아가의 사람들”이니까 말라볼리아 댁네들이다. 시칠리아 동부 카타니아에 속하는 작은 마을 트레차를 무대로 하는 작품이지만 잘 나가던 한 시절엔 꽤나 떠르르르 했던 집안이었다고 주장한다. 그래봤자 대대로 착하고 훌륭한 바닷가 사람들이란다. 이상하지? 착하고 훌륭한 사람들이 떠르르르한 거 보셨어? 하여튼 작품의 막이 오르면 그래도 바닷가 어촌에서는 중상 정도의 괜찮은 집안이다. 본당 명부에는 ‘토스카노’라고 적혀 있는 걸로 봐서 이탈리아 중부 피렌체를 주도로 하는 토스카나에서 왔던 이들인가 보다. 물론 그냥 짐작이다

  이 가족은 가장 파드론 느토니와 아들/며느리인 바스티아노/롱가, 다섯 명의 손주들 느토니, 루카, 폴로메나, 알레시오, 로살리아로 구성되어 있다. 할아버지 파드론 느토니는 그냥 ‘파드론’이라고 하자. 맏손자 이름도 느토니라서. 커다란 모과나무가 있는 넓고 튼튼한 집에서 살며 낡은 고기잡이배 프로비텐차 호를 가지고 있다. 대대로 어부니까 어업이 생업이고 때에 따라 이것저것 가리지 않는다. 아이가 다섯, 모두 여덟 식구의 대가족이 먹고 살려면 일을 가릴 수 없다. 모과나무 집은 며느리 마루차 애칭 롱가가 시집올 때 지참금 대신 가져온 거라서 아직도 실소유주는 마루차 이름으로 되어 있다.

  덩치가 크고 건장해 힘도 장사라서 동네사람들 한테 애칭 ‘바스티아나초’라고 불리는 아들 바스티아노는 아버지를 거역하는 법이 없는 우직한 성격이다. 며느리 롱가는 둘도 없는 훌륭한 주부. 근데 맏손자 느토니가 좀 문제다. 키 크고 덩치도 좋고 힘도 대단한데다가 어부 집안 맏이답게 배를 모는 솜씨가 장난이 아니지만 딱 한 가지, 스무 살이나 먹은 젊은 것이 게으르다. 게을러도 너무 게으르다. 둘째 손자 루카는 큰 아이하고 비하면 엄청나게 현명하고 사리도 밝고, 말도 잘 듣고, 언제나 좋은 의견을 내며 세상을 똑바로 살려고 애쓴다. 이런 아이들이 대개 명이 짧지? 이 작품에서도 예외는 아니다. 셋째 팔로메나, 약칭 ‘메나’는 언제나 베틀에 앉아 베를 짜는 성실하고 착한 딸. 그래서 별명이 아가타 성녀이다. 첫째부터 셋째까지는 연년생. 메나가 그래서 열여덟 살. 넷째 알레시오는 할아버지를 쏙 빼닮은 코흘리개. 할아버지를 닮았으니 당연히 일 잘하고, 성실하고, 잘 생기고 생활력 강한 청년으로 성장한다. ‘리아’라고 불리는 막내 로살리아는 아직 물고기인지 사람인지 잘 구별이 가지 않는 젖먹이지만 작품이 끝날 때는 한 미모 하는 바람에 불행을 피하지 못하는 캐릭터.


  조반니 베르가가 자연주의 또는 베리즈모 장르의 선구자니까 이 말라보리아 집안이 잘 될 수 없는 팔자를 타고 났다는 건 당연하다. 일단 불행이 찾아와야 실의와 일탈과 더 큰 상실이 잇따라 도래해 잔혹극이든, 막장 드라마든 생길 것이니까. 시간적 공간은 1860년대에 시작한다.

  가난한 시칠리아 섬에서도 작은 마을 트레차 주민들의 가장 큰 애로사항은 당연히 먹고 사는 일이다. 마을 주민 가운데 그나마 살기 괜찮은 사람들로 말할 것 같으면 교활한 면서기 돈 실베스트로, 약국 주인 돈 프랑코, 본당 주임신부 돈 잠마리아, 세관의 하급 관리 돈 미켈레, 그리고 농부는 농분데 주업이 농업인지 고리대금업인지 구분이 가지 않는 크로치피소. 이들과 비할 수는 없지만 그래도 오첩반상은 차려먹는 절름발이 티노. 이름 앞에 ‘돈’자 붙으면 그래도 함부로 악역을 시키기 꺼림칙하니까 말라볼리아 집안 사람들을 불행하게 만드는 인물은 셰익스피어 시대 이후로 늘 그랬듯이 고리대금 하는 구두쇠, 수전노 악당 크로치피소.

  1863년에 파드로의 맏손자 느토니가 해군에 징집된 사이 크로치피소가 파드론 느토니에게 잠두를 판다. 잠두? 蠶豆. ‘잠’이 누에. 그러니까 누에콩이다. 크로치피소가 직접 농사일을 하는 건 아니고 누나의 아들 그러니까 조카한테 통상적으로 주는 품삯의 절반도 안 되는 돈만 주고 일을 시키면서도 물 탄 포도주 한 모금도 안 먹이는 악당 가운데 악당이다. 이 해에 가뭄이 심하게 들어 누에콩 농사가 완전 망쳐버려 간신히 수확한 얼마 되지 않는 것도 알고는 먹지 못할 형편없는 것이었다. 근데 가뭄이 시칠리아만 그런 것이 아니라 전 이탈리아가 다 마찬가지여서 파드로는 누에콩을 사 저 북동 이탈리아 지역인 트리에스테로 가져가 팔면 꽤 돈이 남을 것이라는 계산이 나왔다. 근데 종자돈이 있나? 하여 다달이 갚기로 하고 살마 당 2온차 1리라, 헛갈리지? 그냥 거금을 들여 샀다고 여기면 된다. 근데 고리대금업자를 겸하는 인간이 그냥 물건을 넘길 수는 없다. 그리하여 파드로가 며느리 롱가의 재산인 모과나무 집을 담보로 누에콩을 사 온다. 40온차. 집 한 채 값이다. 촌 집이긴 하지만. 그리하여 잘생기고 건장하고 힘 센 아들 바스티아노가 크로치피소의 큰조카 메니코와 함께 낡은 프로비덴차 호에 올라 바닷길로 아드리아해를 바라보고 긴 항해를 떠난다. 어떻게 됐을까? 결론만 말해, 풍랑을 만나 좌초해 둘 다 죽었다. 이제 실제적인 가장을 잃은 말라볼리아 가족의 본격적인 비극이 막을 올린다.


  파드로가 크로치피소한테 가서 사정을 해 부활절까지 납기를 끌고, 어찌어찌 하고, 우여곡절 끝에 크로치피소는 또 한 명의 악당 오리다리라는 별명의 절름발이 티노에게 채권을 판 척해버린다. 자기 손에는 피 안 묻히겠다는 거지 뭐. 그래서 결국 집 뺏기고 작은 집으로 세 들어 나간다. 그나마 다행으로 맏손자가 제대해 돌아와 멸치를 잡아 돈을 만진다. 안 되는 집은 어떻게 해도 안 되는 법이라 잘 나가는 순간, 똑똑하고 성실한 둘째 아들 루카도 해군으로 나갔다가 프랑스와 전투 중에 전사해버리고 엄마마저 1866년이든가 콜레라 팬데믹 때 죽는다.

  여기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어릴 때 게을렀던 맏손자 느토니도 할아버지가 쇠약해지자 본성을 드러내기 시작해 일도 안 하고 어찌어찌 하다가 몇 년 동안 콩밥을 먹는 신세로 떨어지고 이 집구석은 날이 갈수록 태산만 앞에 나타나는데, 어떠셔? 좀 궁상맞겠지?

  하여튼 이런 건 말로 백 번 하는 것보다 한 번 직접 읽어보는 게 낫긴 한데, 아무래도 스타일이 좀 예스러워 읽어보시라고 적극 권하기도 뭐하고 그렇다. 이탈리아 문학사에서는 한 페이지를 장식할 듯한데 이게 지중해와 수에즈 운하, 인도양, 태평양을 건너 동아시아까지 오면 뭐 꼭 읽어볼 필요가 있을까 싶기도 하고…. 베리즈모 오페라 좋아하시는 분들은 읽어보시는 게 좋을 것 같기도 하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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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amoo 2026-02-20 09:3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이거...꽤 됐는데...읽다가 관뒀어요. 드럽게 재미없더라구요~~^^;;

Falstaff 2026-02-20 16:19   좋아요 1 | URL
ㅋㅋㅋ 이해합니다. 스타일이 너무 구식이라 베리즈모 팬 아니면 그리 반갑지 않을 겁니다.
 
카차토를 쫓아서
팀 오브라이언 지음, 이승학 옮김 / 섬과달 / 202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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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베트남 참전용사 팀 오브라이언은 작품을 통해 베트남의 기억을 쏟아낸다. 그곳에서 자신이 보았던 다양한 참상, 동료들이 자신의 눈 앞에서 신체가 분리되고 내장이 나뭇가지에 걸리는데도 불구하고 손끝 하나 어찌할 수 없었던 속수무책. 다시 미국의 가족 품으로 돌아갔음에도 이런 그림들이 머리속에서 전혀 사라지지 않는 공황의 상황으로 여전히 되살아나는 외상 후 스트레스장애 PTSD. 이 지옥 같은 환영들. 오브라이언은 이를 치유하기 위한 방법으로 “이야기”를 선택했다. 정말로 자신이 그곳에서 경험했던 것을 이야기함으로써 스트레스장애를 이기는 것이 아니라, 이야기가 스트레스장애와 함께 살아가기 위한 유일한 안간힘이기 때문에.

  내가 이이의 작품을 집중해 읽은 건 아니다. 5년여 전에 <그들이 가지고 다니던 것들> 한 권을 읽었을 뿐. 그 책이 흥미로웠다. 내가 읽은 베트남전 소설과 조금 맥을 달리해서 미국 병사들이 전쟁터에서 갖고 다니던 다양한 소지품이 재미있었다. 읽을 때는 거의 다 인상 깊었지만 지금 딱 하나 기억나는 건 마치 부적처럼 (열대 밀림에서) 목에 두르고 다니던 애인의 팬티 스타킹. <카차토를 쫓아서>를 읽으며 기억났던 건 잘라진 다리를 부둥켜안고 고통스러워하는 병사에게 진통제 대신 M&M 초콜릿을 입에 물려주는 병사.

  베트남 전쟁에 1년 동안 참전해 그 안에서 벌어진 참경으로 인해 스트레스장애를 겪어야 할 정도였으니 병사들은 거의 비슷한 광경을 집중해서 경험했을 것이다. 불과 1년도 되지 않는 기간 동안 바로 옆에서 먹고, 자고, 싸고, 박박 기고, 주먹질했던, 어쩌면 또다른 나였을 지도 모르는 병사들이 푹푹 죽어 나가는 걸 그저 습관적으로 보는, 또는 보게 되는 일. 그리하여 작품마다 중첩해 묘사할 수밖에 없는 장면이 다른 작가들보다 많겠지. 물론 집중해서 경험한 일들이 “거의 비슷한 광경을 집중해서 경험”한 것은 아니고 다양한 참혹의 장면이었겠지만 최하 신체 절단이 기본인 부상과 죽음, 아니면 생존이라는 크게 세 가지 측면에서 그랬을 것이라는 뜻이다. 이 독후감을 읽는 분 가운데 정말 전쟁에 참전한 경험이 있는 분들이 있으면 양해를 구한다. 당신들의 희생과 노고와 지금도 겪고 있을 지 모르는 고통을 폄훼하려는 의도는 전혀, 조금도 없음을 이해해주기 바란다.


  1968년 10월말이 가까울 무렵. 부대에서 카차토가 사라졌다. ‘카차토.’ 이탈리아 말로 ‘쫓기다’ ‘포획당하다’라는 뜻이라고 각주에 적혀 있다. 근데 어떤 부모가 이름을 이런 식으로 지어 주었을까? 끔찍하게 멍청한 병사. 순진하고 포동포동한 얼굴이 원과 거의 비슷하게 둥글기는 한데 뭔가 미완성된 듯한 기분을 느끼게 한다. 한 마디로 모호하고 개성이 없다. 도무지 뭘 생각하고 있는 듯이 보이지 않는다. 거의 언제나 멍청했지만 때로는 용감한 짓도 했다. 참호에서 여자 베트콩을 꺼낼 때, 꼬마 녀석을 쏘아 죽여야 했을 때. 이제 생각해보니 멍청하고 모호한 표정이 꼬마 베트콩을 쏘아 죽인 다음부터 그랬는지 원래 그랬는지 잘 기억나지 않는다.

  카차토가 폴 벌린에게 자기는 파리로 떠난다고 말하고 사라졌다. 그걸 고참이자 의무병인 닥 페럿에게 보고하고, 닥 페럿이 나이 많은 소대장 코슨 중위에게 보고했다. 코슨 중위. 이 양반도 조금 골치 아픈 인간이다. 직업군인 20년. 이 가운데 14년을 한국전쟁과 베트남전쟁에서 보냈다. 막 소령 진급심사가 있기 바로 전에 뭔지 모를 사고를 쳐서 대위에서 중위로 한 계급 강등당해 지금 말단 보병부대의 소대장으로 새로 왔다. 전임 소대장 시드니 마틴 중위였는데 지금 막 전입해 온 실질상 주인공 폴 벌린 만큼 신참이다. 육군사관학교를 졸업한 신참의 특징? FM Field Manual 야전교범에 충실한 골통. 그래서 죽었다. 세계 전쟁사에 빛나는 베트남 전쟁의 땅굴에 기어들어갔다가 지옥으로 기어들어갔다.


  늙다리 코슨 중위는 마틴 같이 바보짓은 절대 하지 않는다. 땅굴 속에 뭐가 있는지 어떻게 알고 거길 기어 들어가? 내가 아니고 졸병들이라도 그렇지. 안 그래? 하면서 늙은 소대장은 야전교범을 애초에 깡그리 무시하고 수류탄이면 수류탄, 화염방사기면 화염방사기를 땅굴에다 쏟아 붓거나 화염을 방사해 깡그리 태워버린다.

  작전 중에 지휘관인 소대장이 직접 땅굴에 들어갔다고? 세상에 그런 법이 어디 있어? 등장인물이 많이 나온다. 그들 전부 이름을 쓰면 서로 헛갈리니까 이렇게 하자. 거구의 A병사한테 시드니 마틴 중위가 땅굴을 수색하라고 명령을 내렸다. 안 내려가면 명령불복종 처분하겠단다. 적을 직접 대면한 상황이 아니니 즉결처분은 아니지만 귀대하면 군사재판은 피할 수 없다. 그래서 군화와 양말을 벗고, 군복도 벗어 팬티 바람으로 꾸역꾸역 좁은 땅굴 속으로 머리부터 집어넣었다. 그리고 불과 몇 분 후, 그리 크지 않은 폭발음과 진동을 느낄 수 있었고 이후 아무 흔적이 나지 않았다. 소대장은 (재수없이 지목당한) B에게 가서 A의 시신을 가져오라 시켰다. 에잇 빌어먹을. B가 내려갔다. 이때 총소리 딱 한 방. 총알이 엎드린 B의 몸통을 위에서 아래로 관통했는데, 불행하게도 B의 숨이 붙어 있다. 그래서 아플만큼, 충분히 아플만큼 고통스러워하다가, 비명도 지르다가, 모르핀도 맞고, M&M 초콜릿도 먹어봤지만 너무 아파서, 비명도 지를만큼 지르다가 죽었다.

  그런데도 시드니 마틴 중위는 며칠 혹은 몇 주 지나 또다른 땅굴을 발견했을 때 병사들한테 그 안으로 들어가 수색하라 명령하니 그걸 들을 수 있겠어? 병사들이 죽어도 안 들어가겠다고 개기는 바람에 자진해서 들어간 거다. 들어갔다가, 죽었다. 소대장이 직접 들어가기 전에 소대원 전부에게 네가 들어가, 일일이 명령했고, 한 명도 따르지 않아 전원의 이름을 수첩에 적어 놓았다. 그래서 어쩔 수 없이 소대장이 졸병들 보는데 군화와 양말 벗고, 군복도 벗고, 빤쓰 바람으로 내려간 거다. 세상에, 근데 아무 문제없이 살아서 그냥 나오려는 거 아니냐는 말이지.

  병사들 고민 많게 생겼다. 그리하여 이들 가운데 한 명 스팅크가 세열수류탄을 꺼내 부대원 모두에게 한 번씩 만지라고 하고는, 본문에는 자세하게 나오지 않지만, 소대장이 땅굴에서 나오기 전에 그 안으로 집어넣은 거 같다. 그래서 시드니 마틴 중위는 죽었다. 각주에는 이런 상급자 살인이 드물지 않았다고 쓰여 있는데 믿을 만하다. 어쨌건 병사들이 보기에 새로 온 늙은 코슨 중위가 얼마나 존경스럽겠느냐는 뜻이다. 병사들도 그런 짓 하기가 얼마나 싫겠어.


  카차토가 튀었다. 폴 벌린에게 자기는 파리로 떠난다고 말하고 사라졌다. 보고 받은 코슨 중위는 지금 컨디션이 제로다. 만성 설사병에 걸려 골골거린다. 뭐라고? 파리? 프랑스 파리?

  “빠아리? 즐거운 그 빠아리?”

  지금 이들이 있는 곳은 전쟁중인 베트남 전선. 사실 베트남전에는 전선이 따로 없다. 밀림 속 어디에나 적들이 있다. 그러니 미국군이 익숙한 전선 밀어 올리기와 전선 사수하기 같은 개념이 없다. 카차토가 아무리 멍청한 병사라도 이럴 때 자기가 가지고 갈 수 있는 모든 무기와 식량도 가져가야 하는 걸 모를 리가 없다. 아군이라도 만나면 서로 총질할 수 있는 매우 높은 가능성을 포함한다. 이것을 충분히 아는 늙다리 코슨 중위는 카차토가 속한 3분대원과 함께 카차토 수색 및 체포에 나선다. 아직 카차토는 탈영병이 아니다. 곧 그렇게 되겠지만 지금까지는 무단이탈병이다. 탈영 처리가 되기 전에 잡아 원대복귀 시키면 아무 문제도 발생하지 않을 것이다. 이들도 완전무장하고 카차토를 쫓기 시작한다.

  첫날 야영. 폴 벌린은 생각한다. 그냥 녀석이 그대로 나아갔으면 좋겠어. 녀석이 계속 가기만 하면 우리가 못 잡을 텐데. 폴은 카차토가 무사히 파리까지 갔으면 좋겠다. 그렇게 해서라도 지긋지긋한 전장에서 해방될 수 있으면 좋겠다. 이날 멀리 바위 위에서 쫓는 자들과 쫓기는 자가 서로 발견했다. 카차토가 멀리서 뭐라 외치고 있다. 너무 멀어서 소리가 들리지 않는다. 쌍안경으로 그를 확대해서 입모양으로 짐작해보건대 “잘 있어!” 한다. 그리고 사라졌다. 가파른 지대를 지나 더 깊숙한 산맥 너머로 직진, 마침내 파리에 다다르면 진짜 그럴싸하겠다.

  추적 나흘째 전방 멀리서 카차토의 방탄조끼, 총검, 탄낭, 야전삽, 신분증을 발견했다. 버리고 간 것. 왜 그랬을까?

  엿새째, 2백미터 앞 아담한 언덕 꼭대기에서 이제는 민간인 티가 나는 카차토가 두려움 없는 표정으로 서 있다. 스팅크 해리스가 그를 향해 전진한다. 당연히 소총을 들고. 점점 가까이, 그러나 조금 빠른 걸음으로. 순간, 다리에 뭔가가 걸린다. 가는 줄이다. 이른바 부비트랩에 걸린 거다. 수류탄이라면 레버가 떨어질 때 나는 것 같은 소리가 약하게 나고 이어서 뇌관 타는 소리가 들린다. 부대원 전원은 땅바닥에 납작 엎드렸다. 갑자기 아드레날린을 폭발적으로 분비하기 시작하는 스팅크. 몇 초 되지 않았지만 아드레날린 스팅크에게는 영원 같은 시간이 흘렀고, 드디어 터졌다. 연.막.탄. 우리의 주인공 폴 벌린은 그만 바지에 오줌을 저리고 말았다.

  오스카 존슨이 백기를 들고 전령 노릇을 하러 카차토에게 가서 그의 말을 듣고 왔다. 자기는 잘 지내고 있으며, 연막탄은 미안하게 됐다고. 그는 그저 웃기만 하고 상냥하게 대꾸했다. 그리고 다시 날라버렸다. 라오스, 방글라데시, 인도의 델리, 이란, 터키, 그리스, 독일을 거쳐 파리까지. 장장 8,600마일. 13,840km. 그걸 걸어서? 아니, 걷기도 하고, 기차도 타고, 배도 타고 다시 기차 타고.

  라오스 국경에서 병사들은 투표한다. 여기서 그냥 복귀할 것인가, 파리까지라도 가서 무슨 수를 쓰든지 카차토를 잡아올 것인가. 다수결로 끝까지 쫓기로 했고, 놀랍게도 정말 한 명을 뺀 나머지 모두가 파리까지 쫓아갔다.


  당연히 사실이 아니다. 책을 중간까지 읽으면 알아챈다. 너무 황당해서. 바로 옆 밀림지대니까 라오스는 어떻게 이해하더라도 방글라데시를 거쳐 델리? 이건 폴 벌린, 해안 초소에서 바다를 등지고 육지를 경계하는 밤근무 중에 그가 하는 공상이겠지. 그런 거 있잖아? 만일 당신한테 1조 달러 정도의 현금이 생기면 어떻게 할지, 비슷한 헛되고 헛된 공상. 그러면 아예 힐튼 호텔 로열 스위트 룸으로 옮겨 나보코프처럼 살아봐? 뭐 이런 거.

  끝까지 풀리지 않는 것. 팀 오브라이언은 그래서 ‘카차토’라는 별명의 병사가 탈영을 했는데, 정말 파리에 도착해 (탈영병이 행복하면 안 되는 법이니까) 그럭저럭 살았는지, 가다가 밀림 속에서 베트콩한테 사로잡혀 영화 <람보>에서 나오는 대나무 감옥에 갇혀 고문당해 죽었는지, 아니면 폴 벌린이 바지에 오줌 쌀 때 연막탄이 터지자마자 자기편 병사들의 기총소사를 받아 절명했는지 결코 밝히지 않았다. 결말의 선택은 작가가 아니라 독자의 몫으로 남겨 두었다는 것인데, 뭐 그럴 필요 있나?

  끝까지 읽으면 그냥저냥 재미있는 작품이지만 파리까지 가는 여정이 그리 쓸모 있어 보이지는 않았다. 내 맘대로 휴대폰 북적북적 앱에 별 셋 반 달았다. 도서관에 이이의 <미국 환상곡>을 희망도서 신청한 기념으로 읽은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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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틴 에덴 1 - 추앙으로 시작된 사랑의 붕괴
잭 런던 지음, 오수연 옮김 / 녹색광선 / 2022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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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런던은 11년 전에 중편 <야성의 부름> 꼴랑 하나 읽고 그런 작품을 쓰는 작가인 것으로만 알았다. 그러니 더 읽어볼 마음을 갖지 못했다. 하지만 특히 미국 소설을 읽으면 드물지 않게 이이의 작품을 짧게 인용하는 장면들이 있어 언젠가 한 번 읽기는 해야겠다는 마음을 가지고 있었다. 2022년 가을에 <마틴 에덴>이 출간되고, 출판계를 선도하는 녹색광선이 책값 인상의 기치도 드높이 들고 있는지라 분량도 많지 않은 책을 두 권으로 분책한 다음에 표지만 딱딱하게 양장으로 분식하고는 한 권에 정가를 2만2천원을 책정하는 바람에, 내 돈 주고는 안 사겠다, 해서 도서관에 희망도서 신청했었다. 그러나 나보다 조금 먼저 신청한 이용자가 있어 책이 입고되자마자 읽지 못했다. 그후 예약, 예약, 상호대차 신청 등 온갖 이용자의 손을 거치더니 세상에나, 한 빌런이 이 책 1권만 빌려놓고 1년이 넘도록 반납을 하지 않아 사람의 헛심만 빼놓았다가 이제야 겨우 손에 들어 읽게 되었으니, 그동안 책방 독자 리뷰란에 열화와 같은 성원의 글을 읽어 마음 속에 작품에 대한 기대만 커지고, 커지고 또 커지고 있었던 거디었던 거디었다.


  미국에서 가장 범죄율이 높은 도시 다섯 군데를 고를 때마다 거기 한 자리를 꿰차지 않으면 성질내는 사람들이 빼곡히 모여 사는 도시, 범죄자들의 마음의 고향 오클랜드. 만을 가운데 두고 대륙쪽 도시가 오클랜드, 태평양쪽 도시가 샌프란시스코. 원래 가까운 도시끼리 서로 못 잡아먹어 눈을 부릅뜨는 법이지만 아직 1차 세계대전이 터지지도 않은 20세기 초의 캘리포니아에서는 그렇지 않았던 모양이다. 마피아라고 불릴 본격적인 갱단 말고 동네 젊은 건달 패거리들은 지역에 따라 몇 집단이 자생적으로 만들어져 있던 건 당연한 일이었다.

  거리에서 전혀 이상한 짓도 하지 않은 부잣집 도련님이 패거리한테 둘러 싸여 있었다. 워낙 곱게 자라 굳은 살 한 군데 박인데 없는 샌님이 설마 험악한 양아치하고 눈이라도 마주쳤겠느냐고. 그냥 몇 양아치들이 되도 않는 시비를 걸고 있었던 것이겠지. 지나가다가 이 장면이 눈에 들어온 정의의 건달, 젊은 뱃사람이자 한 양아치 무리의 대표 고수 마틴 에덴. 마트가 보기에 그냥 가난한 양아치들이 귀한 집안 아들 하나를 심심해서 두드려 패려 하는 것 같다. 심심해서. 흠. 그러면 안 되지. 마틴이, 어이, 형제, 그러지 말고 그냥 가, 응? 귀찮은 듯이 손등을 휘휘 내저었는데, 네가 마틴 에덴이냐? 마틴이면 마틴이지, 우리 나와바리에 와서 눈에 힘주면 안 되지. 뭐 이런 식으로 사건이 전개되어 1대 몇으로 와다다닥 주먹싸움이 벌어져, 물론 마틴도 몇 대 얻어 터지기는 했지만 조금 과장해서 말하자면 몇 놈은 똥을 지렸고, 넋을 잃은 것들은 발에 채일 정도로 많았으며, 팔 다리 부러진 것들은 추풍령 낙엽만큼이더라고. 하이고, 덕분에 목숨까지는 아니고, 어디 한 군데 다친 곳 없이, 주머니와 지갑도 털리지 않고, 입고 있는 최고급 정장과 외투, 구두도 뺏기지 않은 귀한 집 자제는 너무도 고마워 자기 이름이 아서 모스인 걸 밝히고, 은인을 며칠 후 자기 집에 와서 만찬을 즐기자고 초대하기에 이른다.

  이렇게 해서 <마틴 에덴>의 첫 장면은 으리으리한 모스 저택을 방문하는 씬. 아서가 앞장서고 양아치와 뱃사람 특유의 건들거리는 걸음걸이로 뒤를 따르는 스무살의 마틴 에덴. 교육을 잘 받은 아서는 집에 가서 아버지, 형, 누나, 그리고 엄마한테 침을 튀며 마틴 에덴이 자신을 구해줄 당시가 얼마나 급박한 상태였으며, 양아치들을 제압한 마틴의 무공이 얼마나 절륜했는지 흉내까지 내가면서 설명을 해두었겠지. 그게 아니더라도 부르주아 가문의 아들을 구해주었으니 부모, 누나, 형 입장에서 아무리 하찮은 출신의 양아치라도 밥 한끼 근사하게 먹이지 않을 이유가 없다. 그래야 한다고 부모, 조부모, 증조부모 어릴 때부터 받은 좋은 교육 덕택에 몸에 밴 예절이니까.


  이렇게 해서 저 밑바닥, 완전 프롤레타리아 계급에서도 하빠리 인생만 전전하던 마틴 에덴은 대도시 오클랜드에서도 크게 방귀 깨나 뀌는 법률가 모스 집안을 난생 처음 구경하는 기회를 얻는데, 세상에나, 계급 차이라니. 계급 간의 차이는 사람 사이의 차이보다 훨씬 멀어서, 의자에 앉는 방식, 말하는 문법, 발성하는 목소리의 크기, 대화를 이어가는 순서 기타 등등이 전부 다르다는 걸 마틴은 처음으로 알게 된다. 아, 저들과 나는 아예 다른 인간들이로구나. 그래, 그래. 이제 스무살. 뭘 알겠니.

  몇 마디를 하다가 이제는 회합의 메인 테이블, 식당에 들어 턱 앉은 자리가 자신보다 서너살이 많은 루스, 가느다란 가지에 핀 옅은 황금색 꽃이며 정령이고, 거룩한 존재이며 여신처럼 지상의 것이 아닌 숭고한 아름다움을 지닌 여성이었다. 무지렁이 마틴이 그래도 천성적으로 아름다움을 보는 눈이 있어서 루스에게도 경이로운 아름다움을 발견해, 루스를 위해 자신의 나머지 삶을 살 만한, 자신을 내던질 만한, 싸울만한, 죽음을 무릅쓸만한 어떤 것이 있다고 단정했다.

  이때 마틴을 본 루스의 속마음도 분량이 만만치 않다. 그걸 다 쓸 수는 없고, 손목 위로 남자의 몸을 만져본 적 없고, 자기 손목 말고는 남자의 손이 거친 적 없는 스물세 살 숫처녀 루스는 상처투성이 손과 빳빳한 칼라에 익숙하지 못해 빨갛게 스친 목, 거친 생활로 얼룩지고 더렵혀진 젊은이의 거친 힘이 눈에 보이면서, 파바박, 찌르르, 전류가 시각을 통해 목구멍의 갈증을 유발하고 신경줄을 따라 아래로, 아래로, 아랫배까지 내려가 간질간질한 조그만 요동을 치기에 이르렀다. 그리하여 당장 두 손으로 마틴의 목을 잡고 그의 정열을 자신이 받아보고 싶은 충동을 느끼기는 했지만 잘 배운 구중궁궐의 규수가 어찌 함부로 손을 내밀 수 있었으랴.


  여기까지 읽으면 노동자, 노동자 계급 가운데서도 (당시 시각, 출연진 가운데 모스 가문 사람들도 그렇게 생각했듯) 더러운 동성애를 밥 먹듯 저지르고 기항지마다 현지처를 두는 천하디 천한 선원 출신의 무식한 남자와, 법률가 가문의 톱 클래스 부르주아 여성 사이의 로맨스를 다룬 희비극이겠구나, 하고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나도 그랬다. <야성의 부름>을 쓴 잭 런던이 그런 이야기 말고 또 뭘 쓰겠나 싶기도 했다. 이런 생각은 나처럼 무식한 것들이나 한다는 걸 모르는 채.

  마틴과 루스가 서로 사랑을 시작하면서, 작가의 방점은 이들의 사랑에 있지 않고, 어떤 식으로든 문학에 가까이 갈 수 있는 계제를 만들었다는 데 찍힌다. 루스가 책을 빌려주기 시작해 본격적으로 IQ가 한 300 수준인 것처럼 보이는 마틴한테 문학과 철학, 자연과학 가운데서 특히 진화에 관한 독특한 관념을 세울 기회를 마련해준다. 모스 저택을 나서면서 마틴은 루스가 빌려준 책에서 시작해 공립도서관을 들락거리며 온갖 어려운 책을 섭렵해가며 자신의 주관을 정립해 나간다.

  다음에 수백 페이지를 할애해 전개되는 이러저러한 과정, 며칠씩 밥을 굶으며 글을 쓰는 마틴 에덴. 자전거와 정장을 팔고, 임대해 쓰는 타자기를 회수당하는데도 야박한 매부들은 상종도 하지 않는 고독한 천재작가. 오직 같은 노동자계급의 하숙치는 문맹 아줌마 마리아와 빨래방 전문가 조 같은 이들만 조금씩 돌보는 가운데, 후에 나타나는 천재 폐결핵 환자 시인의 등장과 죽음. 그리고 루스와의 약혼과 파혼 같은 건 다 생략하자.

  드디어 마틴 에덴은 한 시절 찬란한 별이 된다. 천재 작가. 혜성처럼 등장한 상식을 깨는 소설가, 단편작가, 에세이스트, 철학자. 세상은 마틴 에덴에 열광한다.


  그런데 독자의 눈에는 서걱거린다. 이건 처음부터 로맨스 소설이 아니었다. 루스와의 연애와 약혼, 파혼은 마틴 에덴의 천재를 돋보이게 하려는 중요한 포장길에 지나지 않았던 거다. 작품의 가장 큰 주제는 한 가난하고 무식한 천재가 눈을 떠 지독하게 열악한 환경에서 공부를 하고, 글을 쓰고, 초기의 일천한 과정도 조속하게 마쳐, 극악의 상태에서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걸작 몇 작품을 생산하고, 결국에는 성공하는 과정이다. 불쌍한 루스는 아차, 더 말하면 스포일러다.

  나는 이 책, 특히 2권을 읽으면서 에인 랜드가 쓴 <파운틴 헤드>의 눈부신 주인공 하워드 로크를 떠올렸다. 물론 마틴 에덴은 스무살부터 스물두셋까지인 반면에 하워드 로크는 20대에서 시작해 40대까지 올라가기는 한다. 그러나 미국사람들한테 나이가 무슨 소용. 오히려 철학적 사고만 놓고 보면 마틴이 하워드보다 몇 길이나 위인 것을.

  이 둘의 공통점은 개인주의자라는 것. 다른 점은 마틴의 경우, 변하지 않는 신념은 세상은 강한 자들이 이끌어야 하고, 나아가 강한 자들만 살아 남는다는 약육강식 법칙의 신봉자라는 점. 육체적으로 강건하고 정신적으로 천재적인 마틴 에덴이니까 이런 생각을 조금도 양보하지 않을 수 있겠지만, 나 같은 독자는 속이 별로 좋지 않다. 어쨌거나 전지전능한 마틴 에덴은 그리하여 신이 될 수 있었다.

  나는 여성작가 에인 랜드가 창조한 개인주의자 하워드 로크가 남성작가 잭 런던이 창조한 마틴 에덴보다 57배쯤 더 좋다. 그러니 당신도 시간 있으면 <마틴 에덴> 말고 <파운틴 헤드>를 읽으시라.

  이 작품은 연애소설이 아니다. 한 천재의 궤적을 통해 문학 또는 예술을 어떻게 볼 것인가를 유도하는 미끼 소설이다. 별로 잘 쓰지도 못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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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둘기 재앙
루이스 어드리크 지음, 정연희 옮김 / 문학동네 / 201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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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처음 어드리크를 읽고나서 이름은 처음 들어보는 작가인데도 마음에 들어 다음 작품을 골랐으니 <정육점 주인들의 노래 클럽>이었다. 근데 그게 대박. 이후 어드리크를 더 파 봐야겠다 싶어 한 편을 더 읽에 삼세권을 만든 후, 한꺼번에 어드리크만 꽈과광 연달아 읽기도 뭣해서 좀 있다가 읽자, 그랬는데 그만 잊고 해를 넘겼다.

  <비둘기 재앙>, 재미있다. <정육점 주인들의 노래 클럽>만큼 대박은 아닐지언정 책 뒤표지에 박여 있는 필립 로스의 주례사처럼 “상상력의 자유로움”이 놀랄 만하다.


  사건은 노스다코타주 원주민 보호구역 근처의 작은 도시 플푸토 외곽지역에서 발생한다.

  1911년 한 가정에서 부모와 십대 소녀, 여덟 살과 네 살 소년이 살해당했다. 그러면 누군가가 죽인 ①살인범이 있을 건 당연지사. 플루토 시에서는 와일드스트랜드 가문과 부켄도르프 가문이 시가 생길 때부터 결정적 공헌을 한 권력층이라고 볼 수 있는데, 이들은 백인 가족의 집단 살인을 조사도 하기 전에 틀림없이 인디언들의 소행이라고 판단해버렸다. 살인 현장을 좀 더 세심하게 조사했더라면 결코 그들의 범행이 아니라는 것을 알 수도 있었을 터이나, 사실 이들은 아직 범행 현장을 가보지도 않았지만 ②두 가문의 수장들 생각은 확고했다.

  피해자 가족이 몰살한 건 아니다. 난 지 ③일곱 달 된 아기가 침대 모서리에 끼어 있는 것을 살인자가 발견하지 못해 그야말로 구사일생으로 목숨을 건졌다. 이 아기는 선한 부부에게 입양되어 극진한 사랑을 받아 좋은 교육을 거쳐 동부의 유명 대학을 졸업하고 다시 플루토 시에 돌아와 중요한 시의 일원으로 평생을 살게 된다. 어떤 인물인지는 알려주지 않겠다.

  선량한 인디언 아시지낙과 홀리 트랙이라는 별명으로 불리는 소년, 그리고 다른 인디언 커스버트와 ④세라프 밀크 이렇게 네 명이 우연히 만나 아시지낙과 홀리 트랙이 만든 수공예품 바구니를 팔러 가다가 하필이면 살인사건이 벌어진 현장에 도착한다. 이들이 보니까 사람들은 다 죽어 있고, 침대 모서리에 낀 아기만 살아 있어서 ③아기를 안고 젖이 잔뜩 불어 고통스러워하는 암소에게 가 젖을 빨게 해준다. 이래서 ③은 생명을 구한 것.

  하지만 이때 ②들이 이 현장에 도착해 인디언 네 명이 있는 것을 보고, 도스토예프스키의 법칙, 살인범은 범행 현장에 반드시 다시 와본다, 이들을 붙잡아 즉각 범인들로 확정해버린다. 그리하여 이들을 총으로 위협해 팔과 다리를 꽁꽁 묶어 수레에 태운 다음 숲을 돌아다니며 튼튼한 가지가 달린 나무를 찾아 여지없이 목매달아 버렸다. 거의 죽어갈 즈음 ② 가운데 유진 와일드스트랜드가 ④세라프의 목을 당기는 줄을 끊어 ④만 살려준다. 왜 그랬을까? 당연히 안 알려줌.


  그럼 ①은 누구지? 누구기는 누구야, 백인이지. 지금 내가 1911년에 있었던 백인에 의한 “부당한 정의” 사건을 먼저 써서 그렇지 작품의 시작은 1896년에 이어 1960년대의 한 시절이 나온 후에, 60년대 화자의 주인공 열네 살 먹은 에블리나가 (원주민 미치프족의 말로 ‘무슘’) 외할아버지 세라프 밀크가 해주는 당시의 이야기를 들은 것이다. 그러니까 이것도 진실이 아니라 1911년에 목에 밧줄을 걸었다가 살아난 유일한 한 명의 이야기이니 당연히 자기 입장에서 진술한 것. 물론 독자는 이 사실을 저 뒤편에 가서야 알게 되지만. 그래서 이이가 살아난 진짜 이유를 내가 말하지 않는 거다. 들리는 말에 의하면 무슘이 교수형 현장에 있었고 집행에 직접 참여했던 유진 와일드스트랜드의 친아들이라는 설도 있고 뭐 그렇다. 궁금하시라고 조금만 일러드리는 것.

  훗날, 아마도 1980년대 정도 될 걸로 보이는데 ①이 1차 세계대전에 참전해 전사했다는 이야기도 있고 뭐 그렇다. 이것도 내 말을 믿지는 마시고. 딱 쓰여 있지 않지만 전사한 인물은 진짜 살인범이 아닐 듯하다.


  그런데, 이 책을 읽는 재미는 위의 범죄 사실을 정의에 입각해서 밝히는 것, 흠, 그렇다고 할 수도 있지만 하여간 내가 읽기로는 그 사건을 앞뒤로 해서, 앞으로는 플루토 시를 만들기 위한 극한 조건에서의 탐험, 훗날 플루토 시의 유지 가문으로 말뚝을 박을 와일드스트랜드와 부켄도르프가 차파웨족과 프랑스 혼혈인 앙리와 라파예트 피스 형제의 인도로 목숨을 건 서부 개척부터, 개척 당시엔 합류했다가 다시 동부로 돌아가 공부를 더 해 플루토로 온 판사/변호사 가문, 그리고 무엇보다 목 매달렸다가 살아난 세라프의 손녀까지, 얽히고설킨 복잡다단한 실꾸리를 푸는 재미에 있다. 위에서 말한 가문의 후손들이 전부 등장한다. 등장하는 선을 넘어 서로 사랑하고, 결혼하고, 지지고 볶다가, 이혼(당)하고, 납치도 하고, 사제의 연도 맺으며, 옛 시절의 진짜 사연에도 불구하고 후손이 죄의식을 벗어나지 못하기도 하는, 한도 끝도 없는 인연의 뒤엉킴. 뒤엉킨 세상이 뭐야? 그게 바로 사는 일이지, 사는 게 별거냐?


  게다가 나를 미치게 하는 건, 주인공 격인 에블리나와 무슘. 목 매달렸다가 살아남은 ④세라프 할아버지 말야, 이 두 사람이 독자를 배고파질 때까지 웃게 만든다. 특히 무슘이 자기 친동생 샤멩과, 어렸을 때 소 뒷발에 채여 왼팔이 부러져, 부러진대로 뼈가 비틀렸어도 소도시 수준으로 최상의 바이올린 연주를 하게 되는 새멩과와 더불어 플루토 시의 주임신부 캐시디를 놀려 먹는 대목이, 정말, 죽여준다.

  캐시디 신부라고 얌전히 가만 있을 수 있나? 세월이 흘러 바이올리니스트 샤멩과가 죽어 진혼미사를 집전하는데, 제일 앞줄에 앉아 있는 고인의 친형 세라프를 추도하는 강론만 드립다 해대는 거다. 조금 정리해서 본문을 앞뒤로 다시 배열해 보자면:

  “세라프 밀크, 원죄 없는 잉태와 동정 출산에 의심을 표해 그의 영혼이 어쩌면 지옥에 갔을지 모르지만 동정녀 마리아가 그를 돌봐주고 계실 겁니다. 비록 ‘나는 마리아가 사기를 쳤다고 생각하오.’라고 했을지라도 말입니다. 지금 세라프는 지옥이 무한하지도 아주 뜨겁지도 않다는 믿음이 옳았는지 틀렸는지 확인하고 있을 것입니다. 그의 남동생도 언제가 될지 모르지만 악마의 불꽃을 싹 틔우는 바이올린을 켜고 그 활에서 거룩한 고통을 쥐어짜면서 그를 만나게 될 것입니다.”

  세상에. 루이스 어드리크가 희극적인 묘사도 이렇게 잘 할 줄은 내 미쳐 몰랐다. 그래, 이건 알려드리지. 술을 워낙 좋아하는 캐시디 플루토 성당 주임신부는 세월이 조금 흐르면 그깟 사제직 때려치우고 큰 도시로 진출해 미국산 와인이던가 뭔가를 일본 등지에 수출하는 일을 해 큰 부자가 된다. 술 하나는 실컷 마셨겠지? 지방간을 넘어 간경화나 안 됐으면 좋겠다.


  그러면 “비둘기 재앙”이라는 것이 무엇인지 말해야 할 것 같다. 작품의 뒤쪽에 한 번 더 나오지만 뒤편의 비둘기 재앙이 어떤 것을 의미하는 지는 직접 궁리하시는 걸로 하고, 진짜 19세기 말, 1896년에 있었던 비둘기 재앙.

  이때의 비둘기는 공원이나 광장에서 흔히 보는 유해조류를 말하는 게 아니고, 지금은 거의 멸종됐다고 하는 비둘기 떼를 가리킨다. 마치 메뚜기떼처럼 거대한 무리를 이루어 노스다코타주의 농장마다 밀 모종, 호밀, 옥수수를 먹어 치우고, 과수 꽃송이는 물론이고 왕겨까지 하여간 소화시킬 수 있는 모든 것을 다 고갈시켰다고 한다. 노스다코타 지역의 인디언과 백인 농장주는 시즌이 되면 이 비둘기 떼를 없애기 위하여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고 포획해, 구워도 먹고, 삶아도 먹고, 비둘기 볶음탕도 해먹고, 백숙, 전골, 매운탕, 하여간 먹다, 먹다, 먹다가 지칠지언정 전체 개체수로 치면 새발의 피, 티도 나지 않았단다. 그리하여 나중에 먹지도 않고 보이는대로 다 잡아 죽였는데, 그러면 뭐해, 널브러진 비둘기 시체는 또다른 비둘기가 포식, 영양보충을 한 비둘기들이 더욱 왕성하게 번식을 할 정도였다니. 그리하여 1896년에는 무슘의 의붓형이 주임신부를 하던 시절이었는데, 교구민 전부에게 사발통문을 돌려 미사할 때 입는 의례복 스카풀라를 착용하고 미사경본을 챙겨 성요셉 성당에 모이라고 해서, 형제자매들을 총동원해 벌판으로 나가 하느님께 열심 기도를 할 정도였다는 거다. 이 장면이 책의 제일 앞에 나온다. 비둘기 재앙이 무슨 계시록을 의미하는 건 아니지만, 아니, 계시록적일 수도 있기는 하겠다. 백인에 의한 원주민 살해, 즉 부당한 정의를 계시록적 비극이라고 판단하면.

  결말은 어떻게 될까? 당연하지. 어떤 형태로든지 1911년의 비극은 해소되어야 한다. 그럼, 근 70년 이상이 지나 와일드스트랜드와 부켄도르프 가문의 후손들이 인디언 후예들에게 무릎 팍 꿇고 사과라고 해야 하나? 흠. 책에서는 아니다. 그걸 해결해주는 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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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고 2026-02-17 12:4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도 이 책 읽으려고 사뒀는데 평이 좋아서 기대가 됩니다 배고파질 때까지 웃게 만든다니😄 배부를때 읽겠습니당ㅋㅋㅋㅋ

Falstaff 2026-02-17 21:19   좋아요 1 | URL
ㅎㅎㅎ 전 이 책 좋았는데요, <정육점 주인들의 노래 클럽>이 좀 더 좋더라고요.
 
적당히 쓸쓸하게 바람 부는 최측의농간 시집선 3
심재휘 지음 / 최측의농간 / 2017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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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3 토끼띠 문예콘텐츠 창작학과 교수 심재휘의 시집. 2002년 문학세계사에서 나온 책을 2017년에 복간한 시집이다. 출판사 “최측의농간”이 시집선 시리즈를 모두 일곱 권 찍었는데 처음 세 권은 이 시집처럼 이미 절판된 시집을 복간한 것으로 당시 세간의 화제가 되기도 했다. 출판사가 마지막으로 출간한 책이 2020년에 찍은 책이다. 짐작하건대 좀 어려운 처지를 당한 것 같다. 안타까운 일이다.

  심재휘는 21세기 들어 우리나라 시들이 전위를 향해 용맹돌진하고 있는 가운데 전통적 시쓰기를 고수하는 몇 안 되는 시인 가운데 대표적 한 명이라고 알려져 있다. 쉽게 말해서 우리한테 익숙한 서정시인이라는 의미겠지. 이런 의미에서 제일 앞 순서로 실린 시 전문을 읽어보자.



  남쪽 마을을 지나며



  서러움 하나 간신히 빠져나갈

  참나무 숲을 지나자 가을 저녁은

  목화밭 너머의 봉분들과 참

  다정해 보였습니다

  마을은 낡은 그림자들을 

  탐스럽게 매달고 있었습니다

  초행길이었습니다

  엉겁결에 전생 하나를 밟고

  신발이 더러워지기도 했습니다만

  무덤 같은 신발로 오래 걷다 보면

  낯선 곳에서도 겨울은 맞을 만합니다

  단지 잎 다 진 키 작은 나무에

  탐욕스럽게 매달려 있는 모과처럼

  오늘과 나는 서로 이복형제 같아서

  조금 서러웠습니다  (전문. p.13)



  시를 척, 읽으면 탁, 하고 알 거 같다. 하지만 내가 읽기에 국한해 말하자면 문제가 있다. “오늘과 나는 서로 이복형제 같아서 / 조금 서러웠습니다” 제목이 남쪽 마을이라고 해서 참나무 숲이 있는 산골 지나 초행길 마을로 여길 수도 있고, 그걸 팍 확장해서 그냥 사람 사는 판이라 생각해도 괜찮을 듯하다. 근데 왜 오늘과 내가 이복형제 같았을까? 그게 왜 서러웠을까? 이복異腹이라니까 오늘을 낳은 엄마하고 내 엄마가 달라서? 그걸 앞에서 수식하는 절節이 있다. “단지 잎 다 진 키 작은 나무에 / 탐욕스럽게 매달린 모과처럼” 나의 또다른 고민은 이 절 앞에 “단지”는 왜 썼을까, 하는 것인데 그건 그냥 넘어가자. 그러면 [오늘 = 잎 다 진 키 작은 나무] 그리고 [나 = 탐욕스럽게 매달린 모과]라고 볼 수 있을까, 없을까? 만일 이 등식이 참이라면 바야흐로 시가 그리 쉽게 읽히지 않는다. 시절 또는 시간 혹은 63년 토끼띠가 지내온 현대사와 오늘의 간극이 존재해버릴 수도 있다는 거. 에이, 물론 아니겠지만. 어쨌든 이렇게 쓸데없는 고민만 열라 하고 있으니 가뜩이나 없는 머리 숱만 더 듬성듬성해지지.

  학교 졸업한지 몇 년인데 아직도 이렇게 시를 읽어야 하느냐고 타박하지 마시라. 이 화두를 깨지 못하면 시 맛을 제대로 보지 못할 것 같은 생각이 들지 않나? 물론 내 경우겠지만 시 한 수 읽는 게 쉬운 일은 아니다. 병맛이라고? 그럼 할 수 없고.


  독자들이 이 시집에서 제일 인용을 많이 하는 시가 <편지, 여관, 그리고 한평생>인 것 같은데 전문을 인용하려면 좀 길다. 모두 7연으로 되어 있는 시. 이 가운데 처음 세 연만 가져와보자.



  후회는 한평생 너무나 많은 편지를 썼다는 것이다

  세월이 더러운 여관방을 전전하는 동안

  시장 입구에서는 우체통이 선 채로 낡아갔고

  사랑한다는 말들은 시장을 기웃거렸다


  새벽이 되어도 비릿한 냄새는 커튼에서 묻어났는데

  바람 속에 손을 넣어 보면 단단한 것들은 모두 안으로 잠겨 있었다


  편지들은 용케 여관으로 되돌아와 오랫동안 벽을 보며 울고는 하였다  (부분. p.18)



  시를 읽는 건 독자 마음인데, 그렇다고 다 마음대로 느끼라는 건 아니지 싶다. 1연에서 “세월이 더러운 여관방을 전전하는 동안”이 어느 동안일까, 나는 모르겠다. 이 시에서 여관방의 이미지는? 피곤한 나그네의 심신을 쉴 수 있는 여관방이라기보다 뭔가 사연이 있어 머물 수밖에 없는 누추하고 슬픈 장소의 분위기가 풍긴다. 그러니 이 방에 머물며 많은 편지를 썼지만 편지들이 수신인한테 제대로 가는 대신 다시 시인이 머문 여관방으로 회송된 것. 이 시도 읽으면서 독자가 감지할 수 있는 건 이미지, 여관과 편지로 인생을 이야기하고 있다는 느낌일 뿐이다. 서정시의 외피를 입은 반half구상시라고나 할까? 물론 시를 읽으면서 메시지를 얻어야 하는 건 아니겠지. 이미지만 포착할 수 있어도 그게 어디냐. 다만 시의 무대인 여관이 아주 오래 전에 신경림이든가 정호승이 즐겨 쓰던 시어 “여관잠”하고 관련이 있을 지도 모른다는 느낌이 문득 들었던 건 왜 그랬을까?

  독자마다 시를 읽으며 느끼는 것이 다른 이유는 시인이나 독자나 다 개별적이기 때문이겠지. 그게 어떻게 교집합을 이루면 시인하고 궁합이 맞는 거고, 아니면 마는 것이고. 이런 의미에서 이 시는 읽으며 꼭 인용을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환자들



  길을 가다가 불현듯

  가스는 잠그고 나왔을까 또

  난로는 켜 둔 것이 아닐까 병이

  더 깊어지면 말입니다

  발로 비벼 끈 담뱃불이나 이별 같은 것들도

  자꾸 돌아보게 만드는데요 그게 말입니다

  달아오른 난로나 끓어 넘친 가스레인지

  한동안 외로움에 지지직거리던 TV의 마음에도

  요새는 안전장치가 있어서 제풀에 꺼지더라

  이 말입니다 새카맣게 타버리지는 않더란 말입니다

  꼭 죽지 않을 만큼만 죽고 싶다가도

  금방 멀쩡하더란 말입니다 신기하게도

  다시 불이 붙더란 말입니다

  세상 도처에 깔린 안전장치들

  너무 안심이란 말입니다  (전문. p.69)



  이 양반이 훗날 낼 시집 《중국인 맹인 안마사》에서 그러듯이 이 시집에서도 구질구질하게 첫사랑 이야기를 제법 한다. 왜 구질구질하냐고? 첫사랑. 그런 거 오래 기억하지 말라. 우연이라도 만나지 말고, 꿈에서도 마주치지 않는 게 신상에 편하다. 잠꼬대라도 했다가 옆에서 침흘리고 자던 마누라 들으면 곡소리난다. 정말로 다시 만나 사고치면 그거 보통 일 아니다. 농담이라도 입에 올리지도 말고 살아라. 근데 심재휘는 그러지 못하겠던 모양이다.



  첫사랑



  장충동에 비가 온다

  꽃잎들이 서둘러 지던 그날

  그녀와 함께 뛰어든 태극당 문 앞에서

  비를 그으며 담배를 빼물었지만

  예감처럼 자꾸만 성냥은 엇나가기만 하고

  샴푸향기 잊혀지듯 그렇게 세월은 갔다

  여름은 대체로 견딜 만하였는데

  여름 위에 여름 또 여름 새로운 듯

  새롭지 않게 여름 오면

  급히 비를 피해 내 한 몸 겨우 가릴 때마다

  비에 젖은 성냥갑만 늘었다 그래도

  훨씬 많은 것은 비가 오지 않은 날들이었고

  나뭇가지들은 가늘어지는 운명을 향해 걸어갔다

  가늘어지기는 여름날 저녁의 비도 마찬가지였지만

  그 후로 많은 저녁들이 나를 지나갔지만

  발아래 쌓인 세월은 귀갓길의 느린 걸음에도

  낡은 간판처럼 가끔 벗겨지기도 하는 것이다

  그러면 마른 꽃잎에게 묻는 안부처럼


  들춰 보는 그 여름 저녁에는 여전히

  버스만 무심하게 달리고 있었다

  이별도 그대로였다

  비가 오는 장충동 네거리 내 스물두 살이

  여태껏 그 자리에 서 있던 거였다  (전문. p.100~101)



  스물두 살의 비 내리는 장충동 공원 바로 옆 태극당의 첫사랑 그녀. 이 첫사랑이 정말 첫사랑 그녀를 향한 것인가? 이렇게 묻지 말자. 그냥 스물두 살의 첫사랑이라도 충분히 좋으니까. 괜히 시인의 22세 시절, 재수없게 혁명과 투쟁의 구호와 분신 시위의 시대에 살던 책무 같은 걸로 포장하지 않아도 얼마나 어여쁘냐, 그렇지?

  근데 그렇게 생각해도 좀 문제가 있다. 심재휘는 첫사랑도 참 여러 번 한다.

  <자작나무 흰 몸>에서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대학 입학을 위하여 서울로 버스타고 올라갈 때 “그때 고향에 두고 온 것들 이를테면 / 눈 맞으며 손 흔들어주던 사랑도 이제는 / 쌓이고 녹고 하여 또 내일처럼 낡아갔는데”라고 노래하고, <나무 계단에 관한 오래전 이야기>에서도 “내가 손을 잡았던 사진관집 딸이 다만 어디쯤에서 홀로 늙어가듯”이라 노래했는데, 그것들은 사랑 아니었나?

  하긴, 시인들한테는 다정도 병이니까.

  심재휘를 읽으며 다시 느낀다. 시 읽는 게 쉽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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