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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차토를 쫓아서
팀 오브라이언 지음, 이승학 옮김 / 섬과달 / 2020년 11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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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트남 참전용사 팀 오브라이언은 작품을 통해 베트남의 기억을 쏟아낸다. 그곳에서 자신이 보았던 다양한 참상, 동료들이 자신의 눈 앞에서 신체가 분리되고 내장이 나뭇가지에 걸리는데도 불구하고 손끝 하나 어찌할 수 없었던 속수무책. 다시 미국의 가족 품으로 돌아갔음에도 이런 그림들이 머리속에서 전혀 사라지지 않는 공황의 상황으로 여전히 되살아나는 외상 후 스트레스장애 PTSD. 이 지옥 같은 환영들. 오브라이언은 이를 치유하기 위한 방법으로 “이야기”를 선택했다. 정말로 자신이 그곳에서 경험했던 것을 이야기함으로써 스트레스장애를 이기는 것이 아니라, 이야기가 스트레스장애와 함께 살아가기 위한 유일한 안간힘이기 때문에.
내가 이이의 작품을 집중해 읽은 건 아니다. 5년여 전에 <그들이 가지고 다니던 것들> 한 권을 읽었을 뿐. 그 책이 흥미로웠다. 내가 읽은 베트남전 소설과 조금 맥을 달리해서 미국 병사들이 전쟁터에서 갖고 다니던 다양한 소지품이 재미있었다. 읽을 때는 거의 다 인상 깊었지만 지금 딱 하나 기억나는 건 마치 부적처럼 (열대 밀림에서) 목에 두르고 다니던 애인의 팬티 스타킹. <카차토를 쫓아서>를 읽으며 기억났던 건 잘라진 다리를 부둥켜안고 고통스러워하는 병사에게 진통제 대신 M&M 초콜릿을 입에 물려주는 병사.
베트남 전쟁에 1년 동안 참전해 그 안에서 벌어진 참경으로 인해 스트레스장애를 겪어야 할 정도였으니 병사들은 거의 비슷한 광경을 집중해서 경험했을 것이다. 불과 1년도 되지 않는 기간 동안 바로 옆에서 먹고, 자고, 싸고, 박박 기고, 주먹질했던, 어쩌면 또다른 나였을 지도 모르는 병사들이 푹푹 죽어 나가는 걸 그저 습관적으로 보는, 또는 보게 되는 일. 그리하여 작품마다 중첩해 묘사할 수밖에 없는 장면이 다른 작가들보다 많겠지. 물론 집중해서 경험한 일들이 “거의 비슷한 광경을 집중해서 경험”한 것은 아니고 다양한 참혹의 장면이었겠지만 최하 신체 절단이 기본인 부상과 죽음, 아니면 생존이라는 크게 세 가지 측면에서 그랬을 것이라는 뜻이다. 이 독후감을 읽는 분 가운데 정말 전쟁에 참전한 경험이 있는 분들이 있으면 양해를 구한다. 당신들의 희생과 노고와 지금도 겪고 있을 지 모르는 고통을 폄훼하려는 의도는 전혀, 조금도 없음을 이해해주기 바란다.
1968년 10월말이 가까울 무렵. 부대에서 카차토가 사라졌다. ‘카차토.’ 이탈리아 말로 ‘쫓기다’ ‘포획당하다’라는 뜻이라고 각주에 적혀 있다. 근데 어떤 부모가 이름을 이런 식으로 지어 주었을까? 끔찍하게 멍청한 병사. 순진하고 포동포동한 얼굴이 원과 거의 비슷하게 둥글기는 한데 뭔가 미완성된 듯한 기분을 느끼게 한다. 한 마디로 모호하고 개성이 없다. 도무지 뭘 생각하고 있는 듯이 보이지 않는다. 거의 언제나 멍청했지만 때로는 용감한 짓도 했다. 참호에서 여자 베트콩을 꺼낼 때, 꼬마 녀석을 쏘아 죽여야 했을 때. 이제 생각해보니 멍청하고 모호한 표정이 꼬마 베트콩을 쏘아 죽인 다음부터 그랬는지 원래 그랬는지 잘 기억나지 않는다.
카차토가 폴 벌린에게 자기는 파리로 떠난다고 말하고 사라졌다. 그걸 고참이자 의무병인 닥 페럿에게 보고하고, 닥 페럿이 나이 많은 소대장 코슨 중위에게 보고했다. 코슨 중위. 이 양반도 조금 골치 아픈 인간이다. 직업군인 20년. 이 가운데 14년을 한국전쟁과 베트남전쟁에서 보냈다. 막 소령 진급심사가 있기 바로 전에 뭔지 모를 사고를 쳐서 대위에서 중위로 한 계급 강등당해 지금 말단 보병부대의 소대장으로 새로 왔다. 전임 소대장 시드니 마틴 중위였는데 지금 막 전입해 온 실질상 주인공 폴 벌린 만큼 신참이다. 육군사관학교를 졸업한 신참의 특징? FM Field Manual 야전교범에 충실한 골통. 그래서 죽었다. 세계 전쟁사에 빛나는 베트남 전쟁의 땅굴에 기어들어갔다가 지옥으로 기어들어갔다.
늙다리 코슨 중위는 마틴 같이 바보짓은 절대 하지 않는다. 땅굴 속에 뭐가 있는지 어떻게 알고 거길 기어 들어가? 내가 아니고 졸병들이라도 그렇지. 안 그래? 하면서 늙은 소대장은 야전교범을 애초에 깡그리 무시하고 수류탄이면 수류탄, 화염방사기면 화염방사기를 땅굴에다 쏟아 붓거나 화염을 방사해 깡그리 태워버린다.
작전 중에 지휘관인 소대장이 직접 땅굴에 들어갔다고? 세상에 그런 법이 어디 있어? 등장인물이 많이 나온다. 그들 전부 이름을 쓰면 서로 헛갈리니까 이렇게 하자. 거구의 A병사한테 시드니 마틴 중위가 땅굴을 수색하라고 명령을 내렸다. 안 내려가면 명령불복종 처분하겠단다. 적을 직접 대면한 상황이 아니니 즉결처분은 아니지만 귀대하면 군사재판은 피할 수 없다. 그래서 군화와 양말을 벗고, 군복도 벗어 팬티 바람으로 꾸역꾸역 좁은 땅굴 속으로 머리부터 집어넣었다. 그리고 불과 몇 분 후, 그리 크지 않은 폭발음과 진동을 느낄 수 있었고 이후 아무 흔적이 나지 않았다. 소대장은 (재수없이 지목당한) B에게 가서 A의 시신을 가져오라 시켰다. 에잇 빌어먹을. B가 내려갔다. 이때 총소리 딱 한 방. 총알이 엎드린 B의 몸통을 위에서 아래로 관통했는데, 불행하게도 B의 숨이 붙어 있다. 그래서 아플만큼, 충분히 아플만큼 고통스러워하다가, 비명도 지르다가, 모르핀도 맞고, M&M 초콜릿도 먹어봤지만 너무 아파서, 비명도 지를만큼 지르다가 죽었다.
그런데도 시드니 마틴 중위는 며칠 혹은 몇 주 지나 또다른 땅굴을 발견했을 때 병사들한테 그 안으로 들어가 수색하라 명령하니 그걸 들을 수 있겠어? 병사들이 죽어도 안 들어가겠다고 개기는 바람에 자진해서 들어간 거다. 들어갔다가, 죽었다. 소대장이 직접 들어가기 전에 소대원 전부에게 네가 들어가, 일일이 명령했고, 한 명도 따르지 않아 전원의 이름을 수첩에 적어 놓았다. 그래서 어쩔 수 없이 소대장이 졸병들 보는데 군화와 양말 벗고, 군복도 벗고, 빤쓰 바람으로 내려간 거다. 세상에, 근데 아무 문제없이 살아서 그냥 나오려는 거 아니냐는 말이지.
병사들 고민 많게 생겼다. 그리하여 이들 가운데 한 명 스팅크가 세열수류탄을 꺼내 부대원 모두에게 한 번씩 만지라고 하고는, 본문에는 자세하게 나오지 않지만, 소대장이 땅굴에서 나오기 전에 그 안으로 집어넣은 거 같다. 그래서 시드니 마틴 중위는 죽었다. 각주에는 이런 상급자 살인이 드물지 않았다고 쓰여 있는데 믿을 만하다. 어쨌건 병사들이 보기에 새로 온 늙은 코슨 중위가 얼마나 존경스럽겠느냐는 뜻이다. 병사들도 그런 짓 하기가 얼마나 싫겠어.
카차토가 튀었다. 폴 벌린에게 자기는 파리로 떠난다고 말하고 사라졌다. 보고 받은 코슨 중위는 지금 컨디션이 제로다. 만성 설사병에 걸려 골골거린다. 뭐라고? 파리? 프랑스 파리?
“빠아리? 즐거운 그 빠아리?”
지금 이들이 있는 곳은 전쟁중인 베트남 전선. 사실 베트남전에는 전선이 따로 없다. 밀림 속 어디에나 적들이 있다. 그러니 미국군이 익숙한 전선 밀어 올리기와 전선 사수하기 같은 개념이 없다. 카차토가 아무리 멍청한 병사라도 이럴 때 자기가 가지고 갈 수 있는 모든 무기와 식량도 가져가야 하는 걸 모를 리가 없다. 아군이라도 만나면 서로 총질할 수 있는 매우 높은 가능성을 포함한다. 이것을 충분히 아는 늙다리 코슨 중위는 카차토가 속한 3분대원과 함께 카차토 수색 및 체포에 나선다. 아직 카차토는 탈영병이 아니다. 곧 그렇게 되겠지만 지금까지는 무단이탈병이다. 탈영 처리가 되기 전에 잡아 원대복귀 시키면 아무 문제도 발생하지 않을 것이다. 이들도 완전무장하고 카차토를 쫓기 시작한다.
첫날 야영. 폴 벌린은 생각한다. 그냥 녀석이 그대로 나아갔으면 좋겠어. 녀석이 계속 가기만 하면 우리가 못 잡을 텐데. 폴은 카차토가 무사히 파리까지 갔으면 좋겠다. 그렇게 해서라도 지긋지긋한 전장에서 해방될 수 있으면 좋겠다. 이날 멀리 바위 위에서 쫓는 자들과 쫓기는 자가 서로 발견했다. 카차토가 멀리서 뭐라 외치고 있다. 너무 멀어서 소리가 들리지 않는다. 쌍안경으로 그를 확대해서 입모양으로 짐작해보건대 “잘 있어!” 한다. 그리고 사라졌다. 가파른 지대를 지나 더 깊숙한 산맥 너머로 직진, 마침내 파리에 다다르면 진짜 그럴싸하겠다.
추적 나흘째 전방 멀리서 카차토의 방탄조끼, 총검, 탄낭, 야전삽, 신분증을 발견했다. 버리고 간 것. 왜 그랬을까?
엿새째, 2백미터 앞 아담한 언덕 꼭대기에서 이제는 민간인 티가 나는 카차토가 두려움 없는 표정으로 서 있다. 스팅크 해리스가 그를 향해 전진한다. 당연히 소총을 들고. 점점 가까이, 그러나 조금 빠른 걸음으로. 순간, 다리에 뭔가가 걸린다. 가는 줄이다. 이른바 부비트랩에 걸린 거다. 수류탄이라면 레버가 떨어질 때 나는 것 같은 소리가 약하게 나고 이어서 뇌관 타는 소리가 들린다. 부대원 전원은 땅바닥에 납작 엎드렸다. 갑자기 아드레날린을 폭발적으로 분비하기 시작하는 스팅크. 몇 초 되지 않았지만 아드레날린 스팅크에게는 영원 같은 시간이 흘렀고, 드디어 터졌다. 연.막.탄. 우리의 주인공 폴 벌린은 그만 바지에 오줌을 저리고 말았다.
오스카 존슨이 백기를 들고 전령 노릇을 하러 카차토에게 가서 그의 말을 듣고 왔다. 자기는 잘 지내고 있으며, 연막탄은 미안하게 됐다고. 그는 그저 웃기만 하고 상냥하게 대꾸했다. 그리고 다시 날라버렸다. 라오스, 방글라데시, 인도의 델리, 이란, 터키, 그리스, 독일을 거쳐 파리까지. 장장 8,600마일. 13,840km. 그걸 걸어서? 아니, 걷기도 하고, 기차도 타고, 배도 타고 다시 기차 타고.
라오스 국경에서 병사들은 투표한다. 여기서 그냥 복귀할 것인가, 파리까지라도 가서 무슨 수를 쓰든지 카차토를 잡아올 것인가. 다수결로 끝까지 쫓기로 했고, 놀랍게도 정말 한 명을 뺀 나머지 모두가 파리까지 쫓아갔다.
당연히 사실이 아니다. 책을 중간까지 읽으면 알아챈다. 너무 황당해서. 바로 옆 밀림지대니까 라오스는 어떻게 이해하더라도 방글라데시를 거쳐 델리? 이건 폴 벌린, 해안 초소에서 바다를 등지고 육지를 경계하는 밤근무 중에 그가 하는 공상이겠지. 그런 거 있잖아? 만일 당신한테 1조 달러 정도의 현금이 생기면 어떻게 할지, 비슷한 헛되고 헛된 공상. 그러면 아예 힐튼 호텔 로열 스위트 룸으로 옮겨 나보코프처럼 살아봐? 뭐 이런 거.
끝까지 풀리지 않는 것. 팀 오브라이언은 그래서 ‘카차토’라는 별명의 병사가 탈영을 했는데, 정말 파리에 도착해 (탈영병이 행복하면 안 되는 법이니까) 그럭저럭 살았는지, 가다가 밀림 속에서 베트콩한테 사로잡혀 영화 <람보>에서 나오는 대나무 감옥에 갇혀 고문당해 죽었는지, 아니면 폴 벌린이 바지에 오줌 쌀 때 연막탄이 터지자마자 자기편 병사들의 기총소사를 받아 절명했는지 결코 밝히지 않았다. 결말의 선택은 작가가 아니라 독자의 몫으로 남겨 두었다는 것인데, 뭐 그럴 필요 있나?
끝까지 읽으면 그냥저냥 재미있는 작품이지만 파리까지 가는 여정이 그리 쓸모 있어 보이지는 않았다. 내 맘대로 휴대폰 북적북적 앱에 별 셋 반 달았다. 도서관에 이이의 <미국 환상곡>을 희망도서 신청한 기념으로 읽은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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