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것이 밝혀졌다
조너선 사프란 포어 지음, 송은주 엮음 / 민음사 / 2009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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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엄청나게 시끄럽고, 믿을 수 없게 가까운>에서 2차 세계대전 중의 드레스덴 폭격과 뉴욕 세계무역센터빌딩 폭파 사건에 연루된 가족의 비극에 초점을 맞춤으로써 고래 싸움에 날벼락을 맞은 보통의 인간 모습을 잘 그린 바 있는 조너선 사프란 포어. 그의 데뷔작이 이번에 읽은 <모든 것이 밝혀졌다>이다. 폴란드와 우크라이나 국경을 흐르던 브로드 강변의 슈테틀(2차 대전 이전까지 중부, 동부 유럽에 산재해 있던 유대인들의 작은 마을을 칭함) 트라킴브로드에서 있었던 학살을 찾아가는 여정. 단 두 명의 생존자 가운데 한 명을 할아버지로 둔 미국인 조너선 사프란 포어. 이 이름을 단 등장인물의 직업이 소설가이라, 작가 자신의 이야기인지 상당히 아리송하지만, 독자들이여 기억하시라, 이 작품은 소설이란 사실을. 더구나 작가 자신이면 어떻고 아니면 또 어떠리. 우리는 그냥 읽기만 하면 된다.
 이야기는 모차르트가 죽은 해인 1791년까지 올라간다. 그해 3월 트라킴 B가 전속력으로 몰던 이중굴대 마차가 브로드 강에 처박히는 일이 벌어졌고, 이때 W 쌍둥이가 강의 표면으로 떠오르는 잔해들을 목격했는데 품목은 다음과 같았다. 뱀처럼 꾸불꾸불 엉킨 흰색 끈, 쫙 뻗은 손가락이 붙은 구겨진 벨벳 장갑 한 짝, 실이 거의 감기지 않은 실패들, 구지레한 코안경, 나무딸기와 보이젠베리, 배설물, 주름 장식, 산산조각 난 분무기 파편, 피처럼 붉은 잉크로 결의 ‘난 할 거다…, 하고 말 거다….’를 적은 필적 등등. 쌍둥이 한나와 차나가 물에 떠오른 잔해들을 밀어내며 마차에 가까이 다가가니, 불명예스러운 대금업자 늙은 양켈 D가 쌍둥이의 시야를 막아선다. 순식간에 슈테틀에서 사람들이 모여 아수라장이 됐는데, 쌍둥이 중 눈썰미가 좋은 어린 한나가 유대인 아버지가 기도할 때 입는 숄의 깃 아래로 거품이 이는 강물을 가리킨다.
 “끄나풀과 깃털들 속에, 양초와 푹 젖은 성냥, 참새우 떼, 저당물, 해파리처럼 하늘거리는 비단 장식술에 둘러싸여서, 아직 점액질에 덮여 있어 번들거리는, 자두 속살 같은 분홍색의 여자 아기가 거기에 있었다.”
 마차와 함께 브로드 강에 빠져죽은 여인이 죽어가면서 물속에서 낳은 아기. 랍비는 이 아이를 불명예스러운 대금업자 양켈이 키우도록 의탁하고 강 이름을 따서 ‘브로드’라고 호적에 올린다. 이 브로드란 여자 아이가 열세 살이 된 1804년. 매년 그랬듯이 당시 사고를 기념하던 것이 축제로 승화되어 축제의 꽃인 인어로 분장해 거리행진을 마친 브로드가, 집에 돌아오던 길에 겁탈을 당하고, 몸을 씻기 위해 옷을 모두 벗은 상태에서 자기보다 네 배나 더 나이가 들은 의붓아버지 양켈이 하필이면 그날 갑자기 죽었음을 확인한 순간, 창밖에서 자기를 바라보는 눈이 있었으니, 앞으로 그녀의 남편이 될 콜키인. 브로드와 콜키인. 이들이 작중 조너선 사프란 포어의 7대 조부모가 된다.
 콜키인은 사랑하는 브로디와 결혼생활을 위해 남성의 의무인 돈을 벌려고 조금 위험한 직업인 물방앗간에 취직을 한다. 그러던 어느 날, 원반형 톱이 회전하다가 핀이 부러지면서 튕겨나가는 일이 발생하고, 철근으로 만든 지지대에 튕겨 콜키인의 머리통에 세로로 박혀버린다. 기적 같은 생존. 양쪽 뇌 사이에 정확하게 박힌 톱날을 제거하면 과다출혈로 그 자리에서 죽는다는 의사들의 견해. 그냥 해골에 톱날이 박힌 대로 둔라면 비록 오래 살지는 못하겠지만 어쨌든 살 수는 있다. 그러나 이게 뇌의 화학작용에 부작용을 일으켜 이를 계기로 콜키인의 행동에 문제가 생긴다. 어여쁜 아내 브로디를 학대하기 시작하는 것. 이미 아들 둘을 둔 이들은 이 와중에도 셋째 아들을 하나 더 만들고 결국 콜키인은 숟가락 놓고 만다. 예술품 제작과 감상과 감식안엔 세계적으로 안목이 있는 유대인들, 콜키인의 사체에 청동을 입혀 동상 비슷하게 세우고 어떤 용도로 사용하느냐 하면, 머리에 박힌 원반형 톱을 이용해, 해시계로 쓰는 것과 동시에 소원을 비는 토템으로도 만들어버린다. 동상을 만지면서 소원을 빌면 틀림없이 이루어진다나.
 150년을 별 탈 없이 살던 브로디, 콜키인의 후손들. 그러다 1941년을 맞이한다. 독일이 우크라이나를 점령해버리는 해. 나치에 의하여 인종청소라는 명분으로 유대인을 학살했던 시기. 이미 그 전에도 우크라이나에선 유대인들을 학살한 적이 있고, 이후에도 유대인을 부당하게 대우하는 관습이 있어, 처음에는 나치에 귀순하자는 유대인도 있었으나, 슈테틀에 들어선 나치들이 제일 먼저 하는 일은 유대인을 골라 회당 안에 몰아넣고 불을 싸질러 화형에 처하는 일. 회당 앞에 모든 유대인들을 집합시키고 아무에게나 먼저 걸리는 사람한테 묻는다. “누가 유대인인가. 한 명만 지명하라.” 그의 앞에 불려나온 아내 입 속에 쑤셔 박힌 총구. “말하지 않으면 쏘겠다.” 슈테틀에 단 두 명만 살아남는데 한 명이 조너선의 할아버지이고, 다른 한 명은?
 1997년. 미국인 조너선 사프란 포어는 바랜 사진 한 장을 들고 우크라이나를 방문한다. 사진엔 자신의 할아버지가 서 있고, 옆에는 할아버지의 목숨을 구할 수 있게 숨겨준 고마운 은인 오거스틴. 비록 젊고 건강한 여인이지만 지금은 틀림없이 형편없이 늙었을 테고 아니면 이미 죽었을지도 모른다. 포어는 우크라이나에서 유대인이 아닌 척하면서 아직도 살고 있는 유대인 가족 가운데 할아버지와 손자에게 이젠 이미 지도에서 사라진 트라킴브로드를 찾아 나선다. 할아버지는 알렉산드르, 손자도 알렉산드르. 그래 손자는 애칭인 사샤로 부른다. 알렉산드르 할아버지는 여태 자신의 고향이 바닷가 도시 오데사라고 주장했지만, 오거스틴인줄 알고 찾아낸 다 쓰러져가는 집에 사는 할머니와의 대화 도중에, 할아버지의 고향이 오데사가 아니라 콜키임이 밝혀진다. 콜키 역시 나치에 의한 유대인 학살을 피할 수 없었던 곳. 할아버지도 극적인 생존자 가운데 한 명이었다. 그리하여 조너선이나 사샤나, 유대인의 불행했던 과거사 안에 자기도 포함될 수밖에 없는데…….
 재미있다. 곳곳에 젊은 미국인이라면 피해갈 수 없는 미국식 유머가 깔려있기도 하고, 각 인물 간에 얽히고설킨 드라마의 칡뿌리. 작품은 미국인 조너선 사프란 포어가 자신의 우크라이나 방문을 소재로 쓰는 소설을 사샤에게 먼저 보내고, 사샤 역시 오거스틴 탐색작전에 있었던 것을 기억하며 사실에 입각한 내용을 조너선에게 보내는 것으로 되어 있다. 하나 더는 사샤가 조너선에게 보내는 편지. 다시 한 번 보자. 조너선이 쓰는 건, 공감할 수 있는 허구로의 소설. 사샤의 글은 조너선이 우크라이나에서 겪은 일을 사실에 입각해 영어로 쓴 것. 그래서 사샤의 글 속에선 매우 어색한 단어가 출몰하고 표현도 부자연스러울 때가 많다. 또 사샤가 조너선에게 쓴 편지는 자연스레 사실과 허구의 간극이 불행한 과거를 가진 사람들에게 어떤 의미가 있는지를 (뒷부분에 가면) 보여준다. 아주 재미있는 구성.
 엇! 근데 이제 보니 품절이다. 왜 그랬을까. 민음사가 예전 같으면 이런 책 품절되면 조금 있다가 “민음사 모던 클래식” 시리즈로 다시 찍고는 했건만, 이제 눈치를 보니 모던 클래식 시리즈는 잘 팔리는 가즈오 이시구로 말고 다른 책은 3년이 넘도록 한 권도 내지 않아 과연 절판을 시키고 말 것인지 궁금하기도 하다. 전적으로 그 사람들 마음대로이긴 하다.
 참고로 한 마디만 더 하면, 재미있는 장면이 많이 나오는데, 여기다 하나도 써놓지 않았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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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현대 명작 희곡선집 - 연인희곡총서 5
김성희 지음 / 연극과인간 / 2000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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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본인 스스로 극작가이며 한양여대 문학창작과 교수로 재임 중인 김성희가 직접 고른 열 편의 한국 현대 희곡. 한국극예술학회가 엮은 두 권의 희곡집은 1910년대부터 1960년대까지의 작품을 선정했고, 이 책은 1974년부터 1994년까지의 작품에서 골랐다. 이제 시대는 1972년 10월 유신을 시작으로 1987년 6.29 선언까지 본격적인 한국적 민주주의이자 한국적 파시즘의 시대가 펼쳐지고 이후 자동차, 철강, 화학, 건설, 조선 등의 중공업, 반도체의 발전에 힘입어 1997년 외환위기로 인해 세계통화기금의 지원을 받기 전, 사회 전 분야에 걸쳐 급속한 민주화, 세계화가 이루어져 각 계층의 목소리가 광장에 쏟아진 백화제방의 시대까지의 희곡들 가운데 제목대로 ‘명작’의 반열에 오를 수 있는 작품을 수록했다. 말 그대로 격랑의 시기였다. 한국전쟁이 숱한 사람들의 피를 뿌린 거대지진이었다면, 74년부터 94년까지는 독재와 민주투쟁, 급속한 경제발전에 따라 필연적으로 뿌리내렸던 천민자본주의의 시대였다.
 1970년의 전태일 분신사건으로 지식인들이 벼락같이 뒤통수를 맞은 것 같은 각성을 겪어 노동 운동과 민주주의 운동이 본격적으로 연합하기 시작했으며, 유신시대의 종말 이후 광주에서는 남북전쟁 이후 한국현대사의 가장 큰 비극이 탄생한다. 정의사회구현사제단과 자유실천문인협의회가 본격적인 활동을 시작했으며, 역시 본격적으로 탄압을 받기 시작한다. 엄혹한 파시즘 정권 아래에서 극작가들 역시 도전적으로, 마치 1920~30년대 카프 문학과 비견할 수 있을 정도로 정권과 부르주아에 의하여 핍박받는 국민들의 삶을 직접, 간접적으로 표현했으며, 파시즘 정권은 공연 불가 판정과 작가 일신상의 불이익으로 이에 대응했다.
 이 책에서도 첫 작품, 윤대성의 <출세기>는 사북 탄광에서 일어난 매몰사고와 갱내에서 16일을 버텨 당시 세계기록을 세운 김창호를 내세워 비정한 자본주의와 황색 저널리즘에 대해 일침을 가했는데, 이는 1967년 충남 청양의 한 탄광에서 매몰 후 16일 만에 구조된 양창선을 모델로 했다고 한다. 몇 년이 지나고 아이러니컬하게 박정희 암살 후 정권을 잡은 전두환 초기시절에 국가보위비상대책위원회라는 무신정권의 도방이 만들어지기 전, 사북 탄광에서 대규모 파업이 일어나기도 한다. 당시엔 내용 상 어쨌건 간에 체제비판이라기보다 천민자본주의와 저널리즘을 풍자의 대상으로 했기 때문에 공연이 가능했을 거라고 본다.
 그러나 두 번째 작품 박조열의 <오장군의 발톱>은 남북전쟁이 아니라 가상의 집단체제인 동서전쟁 중 순박한 청년의 희생을 다루면서 사실상 군인출신의 현 정권에 대한 비판 역시 포함할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정부가 취한 행동은 1975년 작품으로 공연을 위해 거의 모든 준비가 완료된 상태에서 공연예술윤리위원회로 하여금 ‘공연불가’ 결정을 극단劇團에 ‘하달’하는 것이었다. 1975년이면 통기타, 미니스커트, 외국어 이름 등의 사용을 금지시키고 수많은 가수, 희극배우 등에 대하여 방송출연 금지를 단행했던 야만의 시절이었으니 누구를 탓하랴.
 이 책에 작품을 수록시킨 극작가를 보면, 윤대성, 박조열, 이근삼, 최인훈, 오태석, 이강백, 윤조병, 정복근, 조원석, 이만희, 이리 열 명이며 드디어 극작가 가운데서도 여류 작가 정복근이 처음으로 소개되기에 이른다.
 이 시기는 또한 백낙청의 유명한 평론집 <민족문학과 세계문학>에서 ‘민족문학’ 담론을 처음으로 꺼낸 시기였으며, 문단은 ‘창작과비평’을 맹주로 한 리얼리즘 문학과, ‘문학과지성’을 지주로 해 명맥을 확실하게 이어간 순수문학의 시기였다. 지금은 그렇지 않지만 당시엔 창비 또는 리얼리즘 계열이 우세했다고 판정할 수 있는데 그건 놀라운 수준의 경찰주의 또는 선군주의 적的 압제에 대한 반작용에서 비롯했을 것이다. 이런 시대가 이 희곡선집의 전반부에 그대로 반영이 되어 윤대성, 박조열, 이근삼(아벨만의 재판)은 현재 시점에서 또는 과거 시점을 이용하여 현 체제비판으로 읽힐 수 있는 풍자적 작품을 썼으며, 최인훈(옛날 옛적에 훠어이 훠이)은 순문학적 토대 위에서 민족문학 계열에서 볼 수 있는 민중 메시아(어린 장수)의 탄생을 소재로 했다.
 오태석(자전거)과 이강백(봄날)은 한국의 토속적 소재로 각기 특색 있는 우화적 드라마를 이 책에 담았다, 윤조병은 결혼하는 날 결혼식장에서 도망해버린 신혼부부를 주인공으로 갖가지 은유와 상징을 사용해 복잡한 연극을 만들기도 한다. 오태석, 이강백, 윤조병의 작업은 1980년대 초반, 1984년까지 이루어진 것으로, 보는 시각에 따라 국민생활 전반에 걸쳐 박정희 독재보다 훨씬 가혹한 통치를 한 깡패 전두환 정권을 지내면서 나름대로 생명유지 장치를 단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었다. 탄압을 가장 효과적으로 피해가는 방법은 우화寓話, 우의寓意, 상징象徵인 것이 분명하니까.
 이후엔 창작을 하는데 특별한 제약이 없는 시대로 접어든다. 그래 정복근, 조원석, 이만희 같은 이들은 자신들이 쓰고자 하는 대로, 표현하고 싶은 만큼 자유롭게 지난 시절의 파시즘 치하에서 벌어진 어처구니없는 희생을 그렸으며(정복근 <실비명>, 조원석 <박사를 찾아서>), 단군 이래 가장 부유했던 1993년 김영삼 정권 시절에 이르러서는 촌스럽게 리얼리즘이니 순수문학이니, 더구나 민족문학 같은 구분은 전혀 따지지 않고 마음 놓고 늙은 도굴꾼 세 명을 등장시켜 인생과 삶에 대하여 논한다.(이만희 <피고지고 피고지고>)
 1970년대부터 1990년대까지의 작품들이라 각 희곡의 무대, 당시의 생각, 사조, 사건들이 아주 친숙해서 읽기에 전혀 부담이 없었고, 시기적으로도 가까워 앞에 읽은 1910년대부터의 대표 희곡 스물세 편보다 훨씬 호소력이 있었다. 또, 내가 뭘 알까마는, 각 작품의 질도 (당연히) 매우 세련되고, 수준도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높아진다. 최인훈을 빼고 나머지 거의 대부분 극작가는 신춘문예를 통해 등단해 평생 연극과 영화계에 종사하거나 대학에서 후학을 가르치는 것도 극작가로서 이들의 전문성을 더 확실하게 하지 않았을까. 앞 세대 선배들은 극작가로 시작했다가 TV 드라마 작가, 라디오 연속극 작가, 영화 시나리오 작가, 소설가로 진출한 반면, 1970년대 후반부터는 TV에도 전문 연속극 작가가 등장하기 시작했으니 대표적인 사람이 누구? 맞습니다. 김수현. 김수현의 등장 이후 극작가가 TV 드라마를 맡는 경우가 대폭 줄지 않았을까 싶다. 이건 극작가 본인의 생계에는 타격을 주었을 수도 있겠으나, 우리나라 연극계엔 뜻하지도 않게 긍정적인 측면으로 작용했을 것이다. 그래, 세상에 다 좋기만 한 것도 없고, 다 나쁘기만 한 것도 없으니, 그러면 됐지.
 이 책, 정말 한 번 읽어보시라. 우리나라 희곡 수준도 이 정도면 꽤 괜찮다. 문제는 책이 품절이란 거. 나도 헌책방에서 샀는데, 책에 밑줄 그어져 있고 뭐 그렇다. 그냥 시간 나면 동네 도서관 이용하시라 권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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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친 민음사 모던 클래식 5
요시모토 바나나 지음, 김난주 옮김 / 민음사 / 200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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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굳이 제목을 ‘키친’이라 한 건 원제 <キツチン>을 영어로 보냈다가 다시 한글로 쓴 거다. 일어 ‘キツチン’을 음가 그대로 한국말로 쓰면 ‘키쯔찡’ 정도. 학창시절에 잠깐 일어 독학할 때 제일 애먹었던 것이 카타카나 문자를 해독하는 일이었다. 그땐 요새 젊은이한텐 그냥 줘도 안 읽는 <공산당 선언> 같은 거 읽어보려면 죽으나 사나 일본어 공부를 해야 했던 시절이었으니 일어 독학이 드문 일은 아니었다. 제목을 그냥 ‘부엌’ 또는 우리말 쓰는 걸 그리 천하게 생각하면 ‘주방’ 정도로 해도 좋았을 텐데 아쉬워서 쓸데없는 말 덧붙였다. 요시모토 바나나. 1987년에 바로 이 책 <키친>을 히트시킴으로 해서 등장과 더불어 잘 팔리는 작가로 이름을 굳건히 한다. 그때 하도 찬란하게 한국의 매스컴에서도 난리굿을 벌이는지라, 괜히 가자미눈을 뜨고 이이를 꼬나보고 있다가, 정작 작품은 하나도 읽어보지 않았다. 한국에선 1999년에 초판이 민음사에서 나오고, 10년 후인 2009년에 민음사 모던 클래식 시리즈의 다섯 번째 작품이란 형식으로 중판이 나온다. 초판의 책 광고에 이렇게 써놓았다.


 “요시모토 바나나는 가볍고 경쾌하게 글을 쓴다. 가볍고 경쾌하다는 건 그의 글이 경망스럽다는 말이 아니다. 그녀의 글에는 심하게 고통받거나 괴로워하는 사람도 없고 스스로의 심연에 빠져 허덕이는 이도 없다. 그들 또한 상처를 받고 상실에 슬퍼하지만 서로를 다독이는 따뜻한 분위기 속에 생을 꾸린다.”


 요시모토의 다른 작품들은 그럴지도 모르겠다. 가볍고 경쾌한 글을 쓰는지 아닌지 굳이 찾아 읽어볼 생각은 없지만, 적어도 <키친>에 들어 있는 세 편의 단편소설은 전혀 가볍지도 않고 경쾌하지 않다. 경쾌하기는커녕 화자 ‘나’를 포함한 주인공과 주변 인물들은 심하게 상처받고 괴로워하며 스스로의 심연에 빠져 허덕인다. 그러다 상처와 상실 때문에 스스로 파멸의 길로 접어들면 진짜 삼류소설이 될까봐 어떻게 해서든지, 예를 들어 친구와 애인 사이의 남자가 자살을 할지도 모른다는 불길한 예감이 들자 돈까스 덮밥을 싸들고 한밤중에 택시를 타고 달려가 조그마한 구원의 손길을 내밀거나, 안개 낀 한 겨울의 새벽 5시 5분 전에 다리 위에서 이미 죽은 애인의 유령을 만나는 식으로 삶과 화해하는 거다.
 등장인물로는, 주변의 사랑하는 사람이 죽어 완전히 외톨이가 된 인물, ① 사랑하는 아내가 죽자 성전환을 해 여자의 몸으로 갓난 아들을 키우는 아버지 겸 엄마, ② 그 아버지 겸 엄마가 불의의 폭행사고로 살해당한 이제는 다 큰 아들. ③ 4년의 애인관계 끝에 교통사고로 어느 날 갑자기 애인이 죽어버린 여자와 애인의 동생. ④ 형과 함께 교통사고로 죽은 자기 애인을 잊지 못해 애인의 교복인 (치마를 포함한)세일러 복을 입고 다니는 남자애, 등등. 주인공들이 어떤 상태인지 알면 이 책은 일본의 1980년대 젊은이들의 우울과 고독과 상처와 내밀한 위안을 묘사하고 있으며, 가장 주된 병증은 억지로 외면하고자 하는 우울증이란 걸 금방 알아낼 수 있다. 완전 개인의 취향이지만, 이 책 역시 일본의 사소설들과 유사하게 다 읽은 다음에 뭔가 좀 찜찜하게 남아있는 개운하지 못한 정서를 가득 느끼게 된다.
 세 편의 단편 가운데 앞의 두 편, <키친>과 <만월>은 연작 형태이며, 마지막 <달빛 그림자>는 추천을 받아 요시모토가 등단할 수 있었던 것처럼 작가후기에 쓰여 있는 독립된 작품이다. 일조시간이 짧아져 비타민 디 흡수량 부족으로 가뜩이나 우울증이 도지는 시절에 굳이 요시모토 바나나의 <키친>을 읽어 불행한 일을 초래할까 겁난다. 이왕 읽으시려면 해 길어지는 내년 봄에나 읽어보시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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엉덩이에 입맞춤을 일루저니스트 illusionist 세계의 작가 9
에펠리 하우오파 지음, 서남희 옮김 / 들녘 / 2008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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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바닷고기, 어류가 물을 벗어나 육지에 터를 잡으면서 가장 큰 곤욕을 겪는 것이 코와 입의 위치였다. 여태 물속에서 아가미 호흡을 하다가 낯선 대기 중의 산소를 얻기 위해 코를 만들어야 했고, 하필이면 코가 음식을 먹는 입 위에 생김으로 해서 목 깊은 곳에서 식도와 기도가 겹치게 디자인 되고 만다. 그래 가끔가다 밥 먹다 재채기하면 코를 통해 밥알도 나오고, 콩나물 대가리도 나오고, 심지어 라면 가닥도 나오는 횡재수를 당하는 것. 뭐라? 맞다. 고춧가루는 기본이다.
 인간이 땅에 두 발만 딛고 척추를 곧추세울 수 있게 되면서 역시 몇 가지 대가를 치룬 것이 있다. 대표적인 것이 대장 옆에 붙어 있는 충수. 사람마다 그런 건 아닌데 만일 여기서 염증을 일으키게 되면, 우리나라에서도 불과 백 년 전까지 만해도 며칠 동안 ‘창자가 끊어지는’ 고통 속을 헤매다 결국 제삿날 예약해야 했다. 또 뭐가 있느냐 하면, 입으로 섭취한 각종 음식물에서 영양분을 흡수하고 남은 것, 소화시키지 못한 약 70%의 영양분을 포함해서 참 훌륭한 퇴비이긴 한데 담즙이 섞여있어 아름답지 못한 냄새와 덩어리진 모습을 갖춘 음식뭉치를 몸 밖 세상으로 내보내는 마지막 기관, 미주알에 중력gravity이 가해지게 되었다. 거기다가 소화물消化物을 체내에서 방출하기 위한 안간힘까지 더해져 네발짐승들과는 비교하지 못할 정도의 높은 비율로 인간의 미주알에 치명적 부담을 지게 만든 것. 그리하여 거의 모든 인간은 주로 “치痔”자로 시작하는, 사실 그럴 필요 전혀 없지만, “치恥”스러운 질병을 숙명처럼 달고 산다. 치질痔疾, 치루痔漏, 치핵痔核, 치열痔裂 등등 참 여러 가지다. 오늘 아침 변을 보고 화장지로 뒤를 닦을 때 휴지에 묻은 잔류물이 거의 없는 사람이 백 명 가운데 한 명 정도 있다. 최상의 미주알을 가진 축복받은 존재들. 나머지, 99%의 호모 에렉투스들은 불행하게도 조금이나마 문제를 가지고 산다. 미주알이 밖으로 비죽 나온 건 이름도 재미있지, 수치질. 안으로 옴쪽 밀려들어간 건 암치질. 수치질은 외과에 가서 싹둑 잘라버리면 되지만, 나 어렸을 적 살던 동네에서 옆집 석호네 엄마는, 편히 쉬시기를, 암치질을 견디지 못해 끔찍한 고통 속에 세상 하직하고 말았다. 나처럼 술, 그것도 소주를 일 년 내내 장복하는 사람들은 일 년 중에서 한 열흘 정도는 따끔거리면서, 화장지에 조금의 개양귀비 색깔 피가 묻는다. 쉬운 얘기로 째진 거다. 멀쩡하다가도 며칠의 변비에 시달리다가 재수 없는 사람들한텐 미주알 끄트머리가 물집처럼 부풀어 오르는, 그러나 물집 속에 물 대신 혈액이 담기는 현상 때문에 유사시 때마다 매우 큰 고통을 당하기도 한다. 그중에서 가장 고약한 건 미주알 속에서 천공이 생겨 그게 점점 깊어져 나름대로 길을 내긴 하는데 거기서 그만 염증까지 도지는 병. 바로 치루. 여기서 잠깐. 말은 그냥 그렇다. 염증. 근데 그걸 순 우리말로 하면 뭔 줄 아시나? 맞습니다. 고름. 그러니 미주알을 뚫고 옆길로 샌 천공마다 고름으로 가득 찼다는 얘기. 거기다가 유사시 때마다 천공 속으로 변이 들이차면 피와, 고름과 변의 기막힌 반죽이 생기겠어, 안 생기겠어. 머릿속에 그려지시지? 나, 오늘 휴일이고, 아직 조반朝飯 전이다. 주방에서 새로 산 전기밥솥 꼭지 돌아가는 소리 들린다. 밥 다 됐나보다. 이런 때 이런 아름답지 못한 질병에 관해 쓰는 일 역시 좋을 리가 없다. 밥 먼저 먹고 좀 쉬었다가 이어서 쓰자.
 (사이)
 이젠 작가에 대하여. 1939년 파푸아 뉴기니에서 태어나 피지의 수도 수바의 병원에서 2009년에 세상을 뜬 피지 국적의 에펠리 하우오파. 그는 소설가이기 전에 오스트레일리아 국립대학에서 박사학위를 받고 피지의 수바에 있는 남태평양대학에서 후학을 가르친 인류학자였다. 위키피디아를 보면 그냥 병원에서 죽었다고만 나오지, 죽음에 이르게 한 병명은 나오지 않는다. 책 뒤의 인터뷰 자료를 보면, 1981년, 그러니까 작가가 마흔두 살 때 통가에서 항문에 생긴 염증과 고통을 직접 경험을 하기 시작했다고 한다. 그래 간단한 수술을 받았는데, 1년 후에 또다시 재발했음에도 작가는 그때까지 치루에 대하여는 아무 것도 몰랐던 상태였단다. 두 번째 수술 후엔 좀처럼 수술 받은 자리가 아물지 않고 그때부터 일상적인 대단한 고통의 습격을 받으면서 살았다고 하니 소위 ‘삶의 질’은 곤두박질치고 말았을 것이다. 참다가, 참다가, 얼마나 아픈지 이웃에게 이야기를 해주니 이웃이 얼른 나가 수염이 허연 늙은이를 데리고 오더라는 것. 소위 말하는 민간요법을 시작하는 순간이다. 그 후 숱하게 민간요법을 써봤지만 종기와 고통은 조금도 멈추지 않았고, 오히려 종기의 크기는 점점 커지면서 더욱 자주 재발되곤 해서 결국 병원에 가 의사의 설명을 들었단다. (그땐 공부하던 시절이라 병원에 갈만큼 돈이 많지도 않았고, 워낙 후진국이라 병원에 대한 신뢰도 없었단다.) 의사 가라사대, 종기(라고 말하지만 극심한 치루)는 매우 세밀한 수술을 해야 하는데 미국이나 오스트레일리아나 뉴질랜드에 가서 받으라고 권고했다. 그러나 병원 갈 돈도 없는 사람이 어찌 비싼 비행기 타고 그런 치유여행을 꿈이나마 꿀 수 있었으랴. 와중에 약물에 대한 과민성 쇼크 때문에 저승 문을 노크한 경험도 있어 수술에 대한 심적 저항도 작지 않았고. 미주알의 상태가 얼마나 심각했느냐 하면, 피와 고름이 엉겨 흘러나오는데 얼마나 많이 나오는지 여성용 생리대를 하루 종일, 그것도 매일 하고 있어야 했을 정도였단다. 작가는 이렇게 말한다. “정말 어이가 없었답니다. 저는 끝도 없이 생리를 하는 암컷 만드릴(서아프리카 큰 비비) 같은 기분이었어요.” 이후 3년을 더 고생한 1985년에야 학교의 재정적 도움을 받아 뉴질랜드 병원으로 날아가 성공적으로 수술을 마친다.
 작가가 직접 경험한 질병과 고통, 그리고 인류학자라는 직업은, 제목이 좀 바람직하지 않은 이 책 <엉덩이에 입맞춤을>을 매우 재미있고 의미 있는 작품으로 만들어낸다. 무대는 남태평양의 가난한 작은 섬나라. 통가나 피지쯤으로 생각하면 될듯한데 정확하게 어디라고는 말하지 않는다. 작가 대신 미주알 질병과 엄청난 고통을 견디는 주인공은 전 헤비급 복싱 챔피언이자 예비 상원의원이며 나름대로 사업에 성공한 오를레이. 첫 장면이 오전 6시의 침상. 아내 “마카리타는 옆에서 드르렁드르렁 코를 골고 있다. 남편의 얼굴에 자기 얼굴을 들이대고 코를 고는 건 22년 전이나 지금이나 한결같다. 입 냄새가 고약했다. 오일레이는 제 입을 틀어막으며 뒤척뒤척 몸을 옮겼다. 그러다가 화들짝 놀랐다. 티포타 말로 ‘푸프푸프’라고 부르는 ‘연발 폭발’이 터졌기 때문이다. 지금 이 폭발음은 저도 모르게 시동이 걸려 깜짝 놀라는 오토바이의 비명처럼 들린다.” 우리의 챔피언이자 지독한 항문 염증에 시달리고 있는 오를레이의 아침일상. 침대에서 멈추지 않고 냄새 또한 경이적인 연발 방귀를 뀌어대고, 질식할 듯한 아내 리타는 친정으로 내빼버리는 장면으로 시작하는데, 오를레이는 전에 도시 병원에서 수술을 받은 항문 염증 환자가 뇨urine와 변을 동시에 실금하게 된 결과를 들은 다음부터 민간요법으로 병을 치유하기로 결심한다. 작가 에펠리 하우오파가 누군가. 브라질과 함께 세계적으로 민간치료와 주술 등이 많이 남아 있는 남태평양 지역의 인류학자 아닌가. 작가는 자신의 전공과 경험한 바대로 정말로 다양한 방식의 민간요법으로 오를레이의 항문을 관찰하고, 비록 방식이 야만적이기 짝이 없을지언정, 뭔가를 바르고, 뭔가로 쑤시고, 연기를 쬐고, 뜸을 들이고, 침을 놓으면서 환부의 상태를 점점 악화시켜나간다. 자신이 경험한 피와 고름이 쏟아지는 것도 그대로 표현해놓았으며, 심지어 침술 시술중인 (중국인이라고 잘못 표현한 것이 분명한) 한국인 약재상의 얼굴에다 대고 힘차게 방귀를 뀌어댐으로 해서 얼굴에다 피고름과 변 범벅을 만들어놓기도 한다. 환부가 환부이니만큼 주인공을 농민출신 전 세계챔피언으로 해놓고 마음대로 그가 떠드는 대로 내버려두니, 속어와 외설과 욕설과 적나라한 표현이 서슴지 않고 등장하는데, 이 책은 절대로 버스나 지하철에서 읽으면 안 되는 것이, 날것대로의 문장이 과하게 세속적이기 때문이 아니라, 너무 재미있어서 웃다가, 웃다가 눈물까지 질금거리게 만들어서다. 남이 보면 미쳤다 할 것이 틀림없을 정도로.
 왜 하필이면 제목이 엉덩이에 입맞춤을 하는 것으로 했는가, 하는 것만 이야기하고 독후감을 끝내자. 서구열강에 의한 100년이 넘는 침략의 역사와 히로히토 군대와의 전쟁 말고는 별로 남은 것이 없는 남태평양의 정체성. 그걸 민간치료요법으로 대신하여 이야기를 하는데, 서로가 서로의 항문에 코를 박고 키스를 하는 날, 세계의 평화가 도래할 거란 담론. 물론 상징적인 의미이며, 이 상징 또는 의미를 해석하는 건 세계 각처 독자들의 몫이다. 책 속에 인도 요가 선생 바부가 오를레이의 항문에 입을 맞추면서 이렇게 얘기한다.


 “저는 선생의 신성한 항문에 사랑과 존경을 담아 입을 맞추었습니다. 만약 미국과 소련의 두 지도자들이 다음번 회담에서 이렇게 한다면 핵으로 인한 전멸의 위협은 더 이상 없을 테고, 세계 모든 지도자들의 본보기가 될 것입니다. 대개의 경우 우리는 위에서 시작해 아래로 내려가야 합니다. 위가 아래와 만날 때 영원한 평화가 이루어질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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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의 빛
로맹 가리 지음, 김남주 옮김 / 마음산책 / 2013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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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로맹 가리는 남자. 그의 책 <여자의 빛>을 우리말로 번역한 사람 김남주는 여자. 김남주, 외국어를 우리말로 옮기면서 쓰는 한국어 문장이 아주 좋다. 또 뭐가 좋은가 하면, 전에도 한 번 얘기한 것 같은데, 책 앞날개에 쓰인 옮긴이 소개가 조금 웃겨서.
 “서울에서 태어나 자아를 의식할 무렵 사르트르와 카뮈, 랭보를 통해 프랑스 문학을 만났다.”
 흠. 난 자아를 의식할 무렵 뭐했나? 하긴 뭐해, 만날 미적분 풀고, 상춘곡賞春曲 외고, 종합영어에 실린 지문 해석하고, 간간히 헤세, 말로, 레마르크 이런 사람들이 쓴 문고판 읽고 그랬지. 그래 이 모양 이 꼴이지, 안 그래? 그렇다고 뭐 후회하는 건 아냐. 일단 세상에 나오면 주어진 날들을 살아가는 거 자체가 참 대단한 거니까.
 로맹 가리의 책 <여자의 빛>에도 어쨌든 살아가는 사람들이 나온다. 미셸과 리디아. 미셸은 남자이자 화자. 왜 남자인 걸 밝히느냐 하면, ‘미셸’이란 이름의 여자도 간혹 있기 때문이다. 하여간 미셸은 에어 프랑스의 자회사에서 지금 반년짜리 휴직을 한 상태인 항공기 조종사. 카라카스로 출발하는 항공편을 예약하고, 가지고 있는 돈도 샤를드골 공항에서 달러로 다 바꾼 다음, 무슨 이유인지는 몰라도 그냥 취소해버리고 택시를 타고 파리 부르고뉴가 담배 가게 앞에 도착해 택시 문을 왈칵 열어젖혔는데, 에구머니, 슈퍼에서 장을 봐오던 마흔 살 가량의, 벌써 반백의 머리를 한 여자 리디아를, 하필이면 그녀가 장 본 종이봉지를 툭, 쳤고, 그래 꾸러미에서 빵, 달걀, 우유가 인도 위로 흩어져버린다. 달걀이 땅에 떨어지면서 깨졌는지 멀쩡한지, 우유팩이 터졌는지 안 터졌는지는 책에 나오지 않는다. (이런 의문이 있을까봐 우리나라 소설가 같으면 절대로 포장된 인도 위로 떨어진 품목에 ‘달걀’은 포함시키지 않는다는데 만 원 건다.) 이 장면에서 땅에 떨어진 식료품을 다시 꾸러미에 담고 각자 갈 길 가면 얘기는 끝나버리는데, 소설이 되기 위해 작가는 애초에 공항에서 미셸이 가지고 있던 프랑화를 전부 달러로 바꿔버리게 해버렸다. 택시 운전수가 어이 여보, 여긴 프랑슨데? 라고 똬리를 붙자 어쩔 수 없이 마음 착한 리디아가 택시비를 내 주고, 신세 진 건 꼭 갚아야 하는 서양 예의범절에 충실한 상류계급(비행기 파이로트면 동서를 불문하고 상류계급이라 할 수 있겠지? 영화 <Catch me, if you can>의 잘 생긴 청년 디카프리오를 보신 분은 아시리라.) 미셸 역시 리디아에게 돈을 갚기 위해 수표를 써주겠다고 하고, 준 돈 받는 거에 관해선 다른 어떤 민족보다 악착같은 유대인 리디아 역시 당연하게 그러라고 하며 찻집에 들어 대화를 나누는 것으로, 드디어 이 두 불행한 남녀의 관계가 시작한다.
 여기까지 얘기했으니 두 중년 남녀가 어떤 식으로 불행한지 좀 보자. 왜냐하면 톨스토이의 명문, 불행한 가정은 제각각 이유로 불행하다는 게, 아주 가끔은 맞지 않을 수 있으니까.
 미셸. 결혼은 하지 않았지만 14년 동안 회사 동료인 아름다운 야니크와 동거 중. 그동안 둘은 숱한 말다툼과 갈등을 거쳐 서로의 악습과 결점과 비루함을 충분히 이해하고, 납득해 이젠 진정한 서로의 빛 속에 자신들을 가둘 수 있는 지경에 와 있는 상태. 올림포스 산 위에 있는 아름다운 전당에서 넥타르를 마시고 사는 신들은 어리석은 사람들에게 지극히 짧은 행복만 허여하는 것이 아주 오래된 전통이라, 야니크에게 회복할 수 없는 암종을 보내 이제 죽음의 침상에 오르도록 만들어버렸다. 고통과 질병의 가혹한 품 안에서 거의 완벽하게 망가진 야니크는 미셸과 합의 하에 스스로 죽음에 이르기로 결정한다. 그리하여 미셸이 하루 혹은 이틀 정도, 자세한 건 나오지 않지만 야니크가 자신이 마련한 스스로의 방법에 의해 죽음에 이를 시간 동안 완벽한 알리바이를 만들어야만 한다. 그리하여 카라카스로 가는 비행기 티켓을 끊었다가 취소하고, 다시 부르고뉴로 돌아오는 길에 리디아를 만나, 그날로 8층에서 떨어지는 것 같은 섹스를 하고, 하루를 더 지낸 다음날 리디아와 함께 야니크가 죽어있는 집으로 돌아오게 된다. 윽. 너무 많이 얘기했나?
 마흔 살의 리디아 토바르스키는 어느 재수 없는 날, 남편 알랭 토바르스키가 뒷자리에 딸을 태우고 드라이브 중에 큰 교통사고가 나서 딸은 그 자리에서 즉사하고, 남편은 뇌에 충격을 받아 지금은 러시아 출신 백만장자 시어머니 올가 토바르스카야와 함께 살며 간호를 받고 있다. 물론 최고의 의료진이 끊임없이 최선의 치료를 하는 덕택에 실어증이 많이 호전되기는 했으나 고부갈등이 심한 리디아는 남편의 사고나 치료보다는 딸의 죽음에 남편의 책임이 막중하다는 생각에 사로잡혀 있는 상태.
 근데 두 사람의 경우, 먼저 미셸을 보면, 동거녀 야니크는 명쾌한 의식을 가지고 있어서 스스로의 죽음을 결정한 거고, 그 결과 스스로에게 가장 짧은 시간 동안만의 고통을 갖게 한다. 리디아는 딸의 죽음으로 일단 (무정하다고 비난해도 소용없다. 난 이렇게 얘기해야겠다.) 깔끔하게 끝난 슬픔이다. 진짜 비극은 말이지, 야니크-미셸 커플의 경우, 야니크가 죽음에도 이르지 못하고 그렇다고 살지도 못한 상태에서 끈질긴 삶의 본능으로 심각한 고통을 오래 오래 겪는 경우이고, 리디아의 경우도 굳이 말은 안 하겠지만 이와 비슷하다. 그러나 미셸과 리디아의 고통은 충분히 존중받아야 한다. 그래서 독후감의 첫머리에 주어진 삶을 사는 자체가 참 대단한 일이라고 밑밥을 깔아놓은 것. 내 말이 조금 과격했더라도 이런 의미에서 용서하시기 바람.
 여기에 늙은 개를 데리고 다니며 자기도 심근경색 기미가 있어 언제 죽을지 모르는 동물조련공연가 세뇨르 갈바가 등장한다. 이이가 소설을 이끄는 중요한 스티어링steering 기능을 하는데, 이 사람에 대한 설명을 하면 말 그대로 책을 통째로 옮기는 것과 비슷하기 때문에 그건 직접 읽어보시라는 뜻에서 생략한다.
 로맹 가리. 이이가 1980년에 파리에서 권총자살로 생을 마감하는 걸로 봐서, 특히 말년에는 우울증이 심각했으리라. 이 책은 그가 죽기 3년 전에 쓴 소설. 소설은 병과, 예정된 죽음과, 어둠과, 아침에 우울하게 돋보이기 시작하는 여인의 주름살과, 8층에서 떨어지는 것처럼 느껴지는 섹스와, 느닷없는 죽음까지 온갖 우울증 증세를 엿볼 수 있다. 책 한 권이 소금물에 담긴 배추처럼 우울증에 푹 절여 있는 느낌. 매우 세련되고 의미심장한 문장을, 자아를 의식할 무렵부터 사르트르, 카뮈, 랭보를 통해 프랑스 문학을 만난 김남주가 섬세하게 한국어 문장으로 돋보이게 바꿔 썼으나, 만의 하나, 당신 역시 우울증 증세가 있는 인류 가운데 한 명이라면, 권하지 않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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